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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읽는 신세대 문화- 이영미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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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읽는 신세대 문화

- 이영미

 

 

1. 어른들에게 신세대 대중가요가 거슬리는 이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의 마음, 심리상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즈음 신세대들의 노래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는 글이나 강의 요청을 심심치 않게 받고 있는 나로서는, 과연 그런 요청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말하자면 왜 우리들은 90년대에 들어서서 갑자기 신세대 대중가요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가의 문제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몇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우선 어른들이 신세대의 사고와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신세대 대중가요에 대하여 감각적인 못마땅함만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신세대들은 청소년이며 넘쳐 흐르는 육체적 에너지,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능력 등, 중장년층들이 갖지 못한 특징을 그들은 가지고 있다. 특히 그들은 7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성장한 90년대의 청소년이다. 이농으로 도시에 정착하여 농어촌의 경험을 지녔거나, 구멍가게와 산동네, 개천 등이 있었던 60년대에 자라났던 이전 세대들과는 달리,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칼라텔레비전만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지금의 신세대들이다. 어른들과 전혀 다른 경험과 전혀 다른 생체리듬을 가진 이들의 사고와 태도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신세대 대중가요 이해의 지름길이다.

 

이런 강의를 부탁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사항을 알고 싶어하며, 자신이 신세대 대중가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궁금증의 원인으로 다른 것도 꽤나 크고, 오히려 그것들이 더 지배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수 있다.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90년대 들어서서 사회 전체가 갑작스럽게 '신세대'를 떠들어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90년대 초반 대중문화계의 갑작스런 변화가 '신세대'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래서 신세대 대중가요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변화와 세대교체는 어느 정도 항상 일어나고 있으며, 어느 시대이든 신세대는 있었다. 그러나 세대 담론을 중심으로 하여 대중문화가 갑작스러운 변화를 일으킨 것은, 1970년대 초 청년문화 붐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광고에서까지 떠들 정도로 넘쳐흐르는 신세대 담론들은, 어른들로 하여금 충분히 '신세대'에 관심을 두게 할 만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신세대 가요가 어른들에게 거슬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으면 어른들은 왠지 못마땅하고 거부감이 드는데, 그래서 신세대 가요를 문제삼게 되는 것이다. 그 거부감에 대해 어른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를 들지만, 그 거부감은 합리적인 이유를 생각하기 이전에 즉각적으로 튀어나온다. 나는 그러한 거부감의 원인은, 대중가요 취향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세대나 자신들의 노래 취향이 있기 마련이며, 대개 자신의 청소년 시절의 노래 취향을 평생 지니고 살아간다. 그래서 지금의 70대는 남인수, 60대는 현인, 50대는 이미자, 배호나 패티김, 4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는 송창식, 양희은, 김민기, 30대 초반과 20대 말들은 들국화, 동물원 등을 최고의 가수, 대중음악인으로 친다. 이는 다시 말해 어른들의 취향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애들'의 대중가요가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것은, 신세대 대중가요가 나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일차적으로는 (못마땅하게 느끼는) 어른들의 취향과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강의를 듣기 이전에, 우리의 취향에 대한 객관화를 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이 글에서는 90년대 신세대 대중가요의 특징을 우선 어른들의 청소년기의 경험이었던 70년대 청년문화의 특성과 비교하며 설명하고자 한다. 70년대 청년문화와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생각해보는 것은 90년대 신세대 대중가요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신세대 대중가요에서 드러나는 90년대 신세대의 세상에 대한 태도이다. 그래서 주류 대중가요보다는 이러한 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가요(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 가요)에 대한 언급이 많아질 것이다. 이들 언더그라운드 대중가요들은 그 인식과 태도가 어떠하건 간에 90년대 신세대 가요 중 가장 덜 상업적이고 덜 관행적인 부분이며,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한 주류 대중가요는 이보다 훨씬 더 상업적이고 상투적이다. 이에 대한 고려 에서 이 글이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 70년대 청년문화 포크송과 90년대 신세대 대중가요

 

(1) 70년대의 신세대문화인 청년문화, 포크송 되돌아보기

우리는 70년대 신세대 문화인 포크송에 대해서는 다른 대중가요와는 달리 매우 순수한 노래였다는 생각을 흔히 한다. 과연 이 생각은 옳은가? 우리의 추억을 냉철하게 되돌아 보자.

 

포크송은 전후 세대인 1950년대 이후 출생자가 주 수용층이 된 미국식 대중가요였다. 이들은 전쟁 직후 가치관 상실, 가족 파괴, 외로움 등을 경험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주의를 체득했고, 일제시대 문화의 직접 체험을 갖지 않았으며 미국문화 유입기에 태어나 팝송을 듣고 부르며 성장한 세대이다. 따라서 트로트가요에 대해서는 감각적 거부감을 지니고 있으며, 미국식 음악을 선호한다. 이 세대가 바로 팝송, 심야방송에 심취했던 세대이며, 68년 클리프리챠드 내한공연 때에 손수건과 속옷을 던지며 환호한 세대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청소년기에 이르면서 구세대의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로 새 바람을 일으킨 것이 70년대 청년문화였다. 이 바람은 대중문화권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으며 그 여파는 훨씬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상업주의적인) 대중문화가 주도한 것은 사실이다. 포크송은 다른 대중가요와 마찬가지로 체제순응적 사랑타령과 강대국문화를 이식하는 문화식민주의적 특성을 지닌 완전한 대중문화였다. 단지 양식과 질감만 달라졌을 뿐 주류는 사랑타령으며(당시 최고 인기 포크송은 <사랑해>, <꽃반지 끼고>, <두 개의 작은 별> 따위였다), 미국 모던포크의 이식형태였던 것이다.(당시에 얼마나 많은 번안가요들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 몇몇 비인기 대중음악인이 사랑타령을 탈피하여, 그 세대의 '할 말'을 표현하고 있었지만, 김민기, 한대수, 양병집 등 이들은 (지금은 이들이 70년대 포크의 대표주자로 기억되는 것과는 달리) 당시에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아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이를 주도한 창작자, 가수들의 상당수는 이른바 일류대 출신 고학력자였다.(우리 나라 대중가요에서 새로운 외래 양식이 들어올 때마다 고학력자가 주도하는 현상으로 볼 때 포크도 전혀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일제 말과 이승만 정권에 청년기를 보낸 그 이전 세대에 비해, 419516으로부터 시작된, 학생운동의 시대에 성장한 세대로서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이들 청년문화는 단지 포크송만이 아니었다. 청바지나 장발, 생머리, 미니스커트, 생맥주, 테니스 등 여러 생활문화는 물론이거니와, 예술에서도 영화, 소설 등 여러 분야에서 함께 청년문화 바람을 일으켰다. 영화에서의 하길종, 이장호, 소설에서의 최인호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 청년문화에 대해 당사자들인 당시의 대학생들은 상업화된 대중문화라고 비판하였다. 대중문화계에서의 흥분이나 고등학생들의 무작정 환호와는 매우 대비된다. 대학생들에게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반가움보다는, 이들 문화가 지니고 있었던 대중문화의 상업주의성, 지나친 미국성에 대해 이성적인 비판을 하였고, 그리고 무엇보다 삼선개헌을 거쳐 유신으로 치닫고 있었던 당시의 정치적 변화에 대해 적극적 저항의식을 갖지 않은 낭만적이고 소비적인 태도의 소산일 뿐 아니라, 이런 식의 자유주의가 대학생들의 불만을 해소시키는 데에 일조하리라는 점에 경계하였다.

 

(2) 90년대 신세대 대중가요 따져보기

그에 비해 20년 후인 90년대의 신세대 대중가요는 어떠한가?

 

90년대 신세대 대중가요의 주도층은 1970년대 생이다. 포크송 세대의 아들딸들인 셈이다. 이들은 개인화, 분자화된 아파트형 도시생활 속에서 개인주의적 가치관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농촌이나 전원에 대한 체험적 기억이나 그리움이 없을 뿐 아니라, 기계음, 도시소음 등에 익숙하여 오히려 조용한 것을 못 견뎌 한다. 태어날 때부터 텔레비전을 보고 자란 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각적 상상력을 가진 대신 문자를 통한 사고력은 낮다.

 

이들 유년기의 최고 스타는 조용필이었다. 79년 록으로 선회한 80년대 조용필과 마이클잭슨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브레이크 댄스를 흉내내며 유년기를 보냈다. 따라서 전자악기와 디스코음악, 디스코춤을 기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에 대한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마치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먹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는 것처럼. 이들은 청소년기가 되자 구 세대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로 새 바람을 일으켰다. 이들이 주도한 신세대 바람도 문화 전반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컸으며, 신세대 대중가요는 철저하게 대중문화적이다. 물론 70, 80년대와는 전혀 다른 질감의 사랑타령이 나왔지만, 여전히 주류는 사랑타령이고 미국 아류적이다. <난 알아요>부터 '노이즈', '김건모', '룰라' 등으로 이어지는 주류 가요는 모두 사랑노래이며, 랩송 등 미국 가요 양식의 강한 영향 역시 예외가 아니다. 즉 체제순응적인 사랑타령과 문화식민주의라는 대중가요 일반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 중 몇몇 비인기 대중음악인이 탈사랑타령의 노래를 발표하여, 그 세대의 '할 말'을 표현하고 있다. '강산에', '공일오비', '넥스트'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들의 상당수는 이른바 일류대 출신 고학력자 출신이며, 805월 항쟁으로 시작된 민주화운동의 시대에 성장한 세대로서의 자유로움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생활과 감각은 매우 미국지향적이지만 미국이 세계 평화의 사도가 아니라는 말에 레드컴플렉스를 느끼지 않는 세대인 것이다. 신세대 바람은 단지 대중가요만의 것이 아니라, 영화, 소설 등 여러 분야에서 함께 바람이 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당사자들인 대학생들이 스스로를 신세대라고 부르기를 꺼려한다는 점이다. 초기에 신세대란 말은 마치 압구정동 오렌지족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 바람이 사회의 관심을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학생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3) 70년대와 달라진 90년대의 상황들

70년대와 90년대의 신세대 문화는 이렇게 여러 가지 면에서 흡사하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여러 면에서 다르기도 하다.

 

70년대의 대중가요 구매층이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이었다면, 90년대의 가장 극성스러운 구매층은 10대 초중반이다. 그 또래 청소년들이 음반을 구입할 정도의 용돈의 여유가 생기고 워커맨이나 작은 오디오세트로 자기 방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중가요의 영향력은 70년대에 비해 훨씬 막강하여, 대한민국의 전 연령층이 모두 대중가요의 수용자가 되었다. 민요 향유층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고, 국악 프로그램은 더 이상 노인 대상이 아닌 대학생 대상의 프로그램이 되었다. <인기가요 20>,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로부터 <열린 음악회>, <가요무대> 등 다양한 가요 프로그램은 연령별 취향에 맞게 짜여져 있다.

 

70년대 포크송은 다분히 엘리트 지향적이었고 지식인적 절제감을 지니고 있었다. 고상하고 내면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었고 (당시 록과 함께 고고춤 바람이 있었지만) 포크는 춤을 출 수 없는 음악이었다. 그에 비해 90년대의 음악들은 대중 지향적이고 외향적으로 발산하는 음악이 주를 이룬다. 욕망을 절제하기보다는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더 아름다운 것으로 인정된다. 몸의 욕망을 정신으로 절제하는 것은 억압이라고 생각하며, 돈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70년대 포크송은 박정희 정권에 맞선 학생운동과 야당의 세력이 강해진 시기의 산물이며, 내용적으로도 미래의 희망에 대한 확신을 담고 있음으로 해서 그 반()기성세대의 기치가 전반적으로 민주화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지니고 있었던 것에 비해, 군부독재정권이 무너진 90년대의 신세대 문화는 민주화와 평등에 대한 요구가 강했던 80년대에 대한 안티테제의 의미가 포함됨으로써 탈정치화, 양비론과 정치적 무관심 등의 특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즉 기성세대에 맞선 청년세대라는 대립축을 지니고 있었던 70년대 청년문화는 75년 대마초사건과 유신말기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으로 '민주 대 비민주', '반독재 대 독재', '못 가진 자와 가진 자'라는 사고로 옮아간 것에 비해, 80년대를 거친 90년대에는 여기에서 다시 거꾸로 '구세대 대 신세대'라는 세대 갈등의 축으로 옮아온 것이다.

 

3. 90년대 탈()사랑타령의 대중가요가 보여주는 새로운 인간관

 

90년대 탈사랑타령의 대중가요들은 그나마 자신들의 사고방식과 세상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인간을 본원적으로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중가요에서 외로움을 노래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통 사랑타령의 대중가요에서의 외로움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는 특정 조건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노래들은 다르다.

 

어쩌면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 만나면 행복하여도

헤어지면 다시 혼자 남은 시간이 못 견디게 가슴 저미네

비라도 내리는 쓸쓸한 밤이면 남 몰래 울기도 하고

누구라도 행여 찾아오지 않을까 마음 설레어 보네

거리를 거닐고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얘기들을 나누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밀려오는 외로운 파도

우리는 서로가 외로운 사람들 어쩌다 어렵게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 혼자 있기 싫어서 우린 사랑을 하네

- '봄여름가을겨울'<외로운 사람들>

 

이 노래는 70년대에 대중가요 활동을 시작한 이정선이 지은 것이어서 꼭 신세대의 발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80년대 '신촌블루스'의 리더로 활동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함께 겪은 그가 지은 이 노래를 90년대의 그룹이 부르고 있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 노래의 외로움의 질이 단순히 임이 떠난 외로움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외로움은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는 본원적인 것, 혹은 이 90년대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누구나 겪는 이 시대 이 사회의 보편적인 것이다. 오히려 사랑이란 것은, 사람이 외롭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식의 본원적으로 외로운 인간의 모습은 90년대 신세대들의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난 갑자기 아찔한 어지러움을 느꼈지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속에서

또 그렇게 겨울은 지나가고 있었지 난 외로움의 거리를 걸었네

지난 몇 번의 사랑 그리고 또 몇 번의 눈물

아직도 내게 남은 건 지울 수 없는 외로움

아이에서 어른이 되기 위해 난 너에게 머물렀던가

연인에서 타인이 되기 위해 넌 그렇게 서둘렀던가

갑자기 아찔한 어지러움을 느꼈지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속에

(토크) 외로움이 당신에게 속삭일 때 이제는더 이상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죽는 날까지 헤어질 수 없는 친구일 뿐이다.

- '넥스트' <외로움의 거리>

 

사랑과 이별이 오히려 인간의 본원적 외로움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똑같은 얼굴로 악수하지만 모두 각자이며 본질적으로 외롭다.('넥스트'<도시인>) 이러한 인식은 마치 실존주의의 '던져진 존재'의 인식과 흡사한데, 이것이 몇몇 지식인의 인식이 아니라 이제는 익명화된 도시 속에서 사는 후기 산업사회의 사람들에게 보편화되었음을 이 노래들은 보여준다.

 

이들은 세상을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세대라는 새로운 세대의 선언은, 결국 기성세대의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시작하므로, 이러한 태도는 당연하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세상에 끼어들지 못하고 그들은 외롭게 세상의 변두리를 헤매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노래한다. 아웃사이더는 이들 90년대 언더그라운드 대중가요가 매우 즐겨 쓰는 주제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외로움 역시, 그 원인이 인간의 본원적인 것이든 기성세대의 잘못이든,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한 요인일 것이다. 이 세상에는 따뜻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으며, 순수함 같은 것은 다 깨어지고 오염되어 버렸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런 불만을 가진 신세대 자신도 그러한 타락과 오염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타락의 일차적 원인은 기성세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신 역시 그러한 타락과 더러움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대목이 70년대 젊은이들의 순수함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던 포크와 다른 점이다. 70년대 포크는 기성세대의 세상은 오염되었어도,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는 작은 고래처럼 작은 새처럼, 맑은 아침이슬이나 어린아이의 눈에 고인 맑은 눈물처럼,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해주는 하얀 손수건처럼, 순수함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고 젊은이들끼리는 그것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여우와 어린왕자의 교감이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90년대에는 그런 순수함에 대한 믿음이 깨어져 버렸다. 그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도 없다.(혹시 과거에는 존재했을지 모르지만) 환경은 오염되었고 사람들은 획일화되어 있고, 세상은 답답하다. 그래서 미래에 대해서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

 

1. 벤치 위의 노신사 아무 말 없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지친 몸

을 쉬네요

시들어진 꽃들을 어루만지며 세상을 이긴 승리자에 탄식을 하고

흐릿해진 하늘을 보며 어린 시절 꿈들은 한숨이 돼가고

끝도 없이 이어만지는 폭풍우의 계절은 눈물을 뿌리네

2. 역사라고 불렀죠 파괴를 믿고 화폐를 믿고 과학이란 종교를 믿

었는데

누구를 탓할까요 버려진 낙원 신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답니다

위대했던 인류의 꿈은 자신의 관을 직접 만들어갔고

끝도 없이 올려간 탑은 예정된 싸움 속에 무너져버리죠.

- '공일오비', <21세기 모노리스>

 

이들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모두 암울하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종종 진지하고 비극적인 좌절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희망이 없으면 좌절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비판은 냉소적이거나 가볍다. 그러한 비판으로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비판에서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곤 가난한 연인 사랑 얘기에 눈물 흘리고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되고파 할 때도 있었지

이젠 그 사람의 자동차가 무엇인지 더 궁금하고

어느 곳에 사는지 더 중요하게 여기네

우리가 이젠 없는 건 옛 친구만은 아닐 꺼야

더 큰 것을 바래도 많은 꿈마저 잊고 살잖아

- '공일오비' <수필과 자동차>

 

미래에 대하여 희망을 가질 수 없고 이 세상에서 누구도 진정으로 나를 이해해주거나 대신해줄 수 없으므로, 중요한 것은 현재,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철저해지는 것이다.

 

결코 시간이 멈추어 줄 순 없다, !

무엇을 망설이나 되는 것은 단지 하나 뿐인데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

고 말한다

- '서태지와 아이들' <환상 속의 그대>

 

현재,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철저해지고자 하는 이런 생각은 쉽게 순간의 욕망, 순간적인 나의 판단과 생각 등을 절대화하는 주관

주의와 이기주의, 순간적인 향락주의 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그대의 말을 들어보면은

그런 건 지금 걱정할 게 아니지 지금은 바로 지금일 뿐

록앤롤, 헤비메틀, 재즈, 클래식, 펑키, 블루스

어떤 리듬에도 우리는 춤추고 싶네

록앤롤 댄스 록앤롤 댄스 록앤롤 댄스

- '서태지와 아이들' <록앤롤 댄스>

 

이로써 이들 몇몇은 이성과 논리로, 자아, 사회, 역사를 잇는 사고를 포기한다. 비이성성은, 그것이 내포하는 대안 없음의 불건강성에도 불구하고,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기성사회에 대한 반항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설탕에 찍어 딸기를 먹었어 / 딸기밭에서 하루종일 놀았어

한참 놀다보니 하루가 다 갔어 / 하루는 왜 스물네 시간일까

수박 아줌마는 얼룩무늬 치마 / 참외 할머니는 귀머거리 할머니

사과 외숙모는 친절한가봐 / 딸기 내 친구는 사랑스러워

딸기를 사달라고 졸랐어 / 딸기를 먹지 않고 웃기만 했어

나는 왜 이렇게 너를 좋아하는 걸까 / 나는 왜 니가 좋은지 몰라

그건 정말 몰라 나도 몰라 / 새빨간 딸기는 너무 아름다워

포도 아저씨는 꿈꾸는 사람 / 좋아 좋아 좋아 딸기가 좋아

좋아 좋아 좋아 딸기가 좋아 / 딸기가 제일 좋아 맛있어

- '삐삐밴드' <딸기>

 

내가 단어 하날 찾아냈어 내가 지어냈다고 그게 뭐냐하면은 아, ,

바로 슈풍크야, 슈풍크야, 슈풍크야

허나 아무리 찾아보고 뒤져 보아도 슈풍크가 뭔지 모르겠어

어디가도 찾을 수가 없어

하수구도 찾아 봤어 약국에 가서 약이름도 물어 봤어

슈풍크가 뭐지? 슈풍크가 뭐지? 뭘까? 뭘까?

아이고, 궁금해 미치겠네 아이고 내가 왜 이럴까? 슈풍크가 뭔지

모르겠어

 

"2절 있어요."

무슨 일일까? 잠을 안 자면 눈꺼풀이 절로 감겨

거기다가 어지럽고 나도 모르게 정신을 못 차려

그 뿐이 아냐 밥을 먹지 않으면 하루종일 배에서 천둥번개소리 들

리지

뱃가죽이 쑥 들어가버려 머리가 핑핑 돌기까지 한다구

 

"3절 있어요!", "요거 하나면 돼"

"또 있어?"

이 병에 대해서 아는 사람 손 좀 들어봐

아이고 슬퍼. 아무래도 오래 못 살 것 같아

"끝이에요!"

"됐다."

- '삐삐밴드' <슈풍크>

 

완전히 이성의 통제를 제거해버린 어린애나 술 취한 사람의 말도 안되는 소리를 그대로 받아적은 듯한 이런 노래들은 이 시대의 비이성성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이를 주제로 삼아 노골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4. 사랑타령에까지 드러나는 새로운 태도와 새로운 인간형

 

이러한 세상과 인간에 대한 태도는, 위에서 살펴본 탈사랑타령 가요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것 같은 사랑타령 역시 분석을 해보면, 그 밑바닥에 깔린 새로운 인간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신세대의 가요에서만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은, 대중의 마음 속에 내면화되어 의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안에서 드러난다.

 

(1) 철저히 개인적인 인간, 순정이 사라진 세상

이 세상에서 누구나 겪는 본원적인 외로움은,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 남녀간의 사랑도 ''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판단한다. 일찍이 80년대 말 <홀로 된다는 것>으로부터 그 확실한 조짐이 드러난다.

 

(상략)

이별은 두렵지 않아 눈물은 참을 수 있어

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

- 변진섭 <홀로 된다는 것>

 

그와 헤어지는 것과, 내가 홀로 된다는 것이 구별되어 있다. ''

와 헤어지는 것이 슬픈 게 아니라 ''가 홀로 된다는 것이 슬프다

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랑 역시 그가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누군

가를 옆에 두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앞에서 인용했던 <외로운 사람

>의 인간관과 일치한다.

 

(상략)

아직도 눈물이 남아있었나요 내 모습이 정말 싫어요

또다른 사랑을 찾아야 하나요 내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 양수경 <내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다. 이별이 싫은 것은 나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의 사랑노래에서는 떠나간 임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 잊지 못하겠다고 노래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빨리 잊고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를 노래한다. 김건모의 <혼자만의 사랑>, 강수지의 <필요한 건 시간일 뿐> 등 이러한 태도를 가진 노래들은 매우 많으며 또 이런 노래가 인기이다. 만약 '죽어도 잊지 못하겠다'는 식의 노래가 90년대에 불려진다면 사람들은 '촌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촌스러움' 그것은 바로 지금과 맞지 않는 옛날식이라는 말이다. 이 시대에는 순정이 없다.

순정이 없는 시대는 트로트가 종말에 다다른 시대이다. 트로트야말로 순정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다. 임과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죽어도 잊지 못하겠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트로트의 숙명적이고 자학적인 흐느낌은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제는 순정이 없고, 그래서 트로트는 변질되거나 성인적인 향락성을 지닌 노래(<신사동 그 사람>, <사랑의 거리> )이거나, 함께 노래 부르기에 좋은 음성적(音聲的) 재미를 지닌 노래(<남행열차>, <찬찬찬> )로만 남게 된다.

 

미안 미안해 미안 미안해 너를 두고 여기 떠나려니 미안해

미안 미안해 미안 미안해 너를 두고 여기 떠나려니 미안해

아름답던 시절 행복했던 추억 이젠 모두 끝이야

추억 속에 앉아 혼자 울지 말고 어서 빨리 일어나

행복 찾아서 꿈을 찾아서 저 멀리 떠나야 해

나는 너를 사랑했지만 이제는 싫어 나는 너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싫어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나는 갈 테야

미안 미안해 미안 미안해 너를 두고 여기 떠나려니 미안해

- 태진아 <미안 미안해>

 

즉 이러한 특징은 신세대만의 특징이 아니라, 90년대 전 세대의 특징이다. 순정이 깨어지고, 기존의 단순명료한 옳고 그름이 깨어진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분도 모호해진다. 불협화음류의 사용이나 가사의 말이 복잡해지는 것은 이러한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에 기계적이고 인위적 아름다움을 즐기는 태도가 결합하면, 전통적 율격조차 완전히 깨어진다.(<미녀와 야수> )

 

(2) 육체적 욕망의 존중과 기다림이 없는 세상

산업화의 진전으로 기계화 시대가 되면서, 세상은 인간의 육체적 욕망을 최대한 빨리 만족시켜 주는 방향으로 진전한다. 이전 시대에 비해 욕망은 점점 빨리 충족된다.

 

이제는 자연적인 계절감마저 상실되어 있다. 겨울에 봄을 기다린다든가, 여름에 가을을 기다리는 식의 태도는 사라진 지 오래이다.

 

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고 수박을 먹을 수 있다. 겨울에 해수욕을 즐기고 여름이 아닌데도 자외선에 피부를 태울 수 있으며, 한여름에 스키를 탈 수도 있다. 겨울에는 추운 것을, 여름에는 더운 것을 참고 견디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태도는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돈만 있다면 이 정도의 욕망은 당장 채울 수 있다. 그리고 욕망은 당장 충족되는 것이 가장 좋다. 그 욕망의 가장 근원적인 것은 육체적인 것이다. 육체성은 더 이상 악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기다림을 못 견디는 세대들은 욕망이 당장 충족되지 않으면 짜증부터 낸다. 하긴 삐삐와 핸드폰의 시대에 기다림이란 당치도 않은 것이다. 사랑에서도 기다림의 아련함 같은 것은 없고 짜증만이 남는다.(<핑계>, <이브의 경고> )

 

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혼자 남는 법을 내게 가르쳐 준다고

농담처럼 진담인 듯 건넨 그 한 마디

안개꽃 한다발 속에 숨겨둔 편지엔

안녕이란 두 글자만 깊게 새겨 있어

이렇게 쉽게 니가 날 떠날 줄은 몰랐어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내게

슬픈 사랑을 가르쳐 준다며 넌 핑계를 대고 있어

- 김건모 <핑계>

 

여기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기계회전과 같은 빠른 속도감이 결합하면 지루함은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게 된다.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빨리 즐겁고 빨리 잊는다. 여기에 명분과 엄숙주의를 깨어버리는 태도가 결합되면, 장난기가 만발한다. 의미와 말을 계속 뒤집고 엎으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점잖음은 더이상 미덕이 아닌 내숭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일 뿐 아니라,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것이다. 특히 그 장난기는 의미 없이 기호들만을 즉각적으로 즐기는 태도와 결합하여, 더욱 기승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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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울어? 무슨 기분 나쁜일 있었니?)

아니야, 넌 몰라도 돼. 말 시키지마. 지금 기분 최악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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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처음 만난 그때처럼 분위기가 좋던 레게바에서

둘이서 다정히 손잡고 얘기할 수 있던 사이였는데

왜 이제 그런 날들이 내게 다시 돌아올 수 없나 어휴--

그토록 다정했던 우리 사이를 되찾으려 애도 많이 써봤어.

전화도 많이 걸어보고 안 써봤던 편지도 써봤어

집앞에서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추워 덜덜 떨면서

잠들어 버린 적도 있었지-- (흐흐흐---)

그녀는 이제 나를 안 보겠대

그게 그리 크나큰 잘못인지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아(--어휴)

(아 그랬었구나. 도대체 그런데 왜 헤어졌니?)

그게 사실은 --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길 잘 들어봐

그녀는 내가 없는 차가 있었어. 하지만 면허증은 나도 있었다--

그녀는 나를 믿고 운전대를 맡겼지 나는 그냥 폼을 내고 싶었어

경제속도 80100으로 달렸어 이번엔 조금더 속력을 내려다

어떻게 됐겠니? (어떻게 되니?) 멀리서 경찰 아저씨가 나보고 오

난 면허증을 제시했을 때, 내가 그녀보다 나이가 어린 걸

들키고 말았어 들켜버린 거란 말이야 그녀는 그런 내가 싫었었나

(그래서 그년 이제 널 정말 안 보겠다니?)

-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봤지만 그후론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

(, 그게 네 고민이었구나.)

3년만 기다리면 내 나이도 스물셋,

그때 되면 내 고민도 사라지겠지. 우와-- 조금만 기다려

내 나이도 금방 스물 셋이 된단 말이야.

(그랬구나! 그래 니 심정 이해해.)

(이제 그만 가서 자라)

나는 못 자-- 내 얘기도 안들어주고 어휴.

- '룰라' <내가 잠 못 드는 이유>

 

이영미. 노래 평론가


개인별 탐구 과제

1. 어른들이 신세대 대중가요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2. 신세대 대중가요를 알기 위한 지름길은 무엇이라고 했는가?

3.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노래에 대해 어른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4. 70년대 청년 문화의 특징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

5. 70년대 청년 문화를 대했던 당시 대학생들의 자세와 오늘날 대중문화를 대하 는 청소년들의 자세는 어떻게 다른가?

6. 90년대 대중가요의 특징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7. 요즈음 대학생들이 스스로를 신세대라고 부르기 꺼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8. 70년대 포크송과 90년대 대중가요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9. 90년대의 노래에 나오는 외로움은 어떠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가?

10. 90년대 노래에 나타난 신세대 사고의 특성과 그 결과로 나타난 행동 방식은 어떠한가?

11. 90년대의 사랑 타령에 나타나는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은 어떤 것인가?

12. 요즈음 소위 신세대들이 기다림을 짜증스러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둠별 토의 과제

1. 글쓴이는 요즈음 신세대들이 즐겨 듣는 노래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논거를 찾아 타당성을 검토해 보자.

2. 만약 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는 판단을 내렸으면 다시 필자의 논거를 참고하 여 그러한 부정적인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토의해 보자.

3. 필자의 견해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모둠별로 토의를 하여 신세대 대중 가요의 의미를 새롭게 밝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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