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동해의 ‘곤색’ 바람

by 처사21
728x90
반응형

생각하며 읽기


동해의 곤색바람

 

꽤 오래된 이야기다. 해방 직후 어느 국민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실 때의 일이다.

김 말동이.”

!”

이 순돌이.”

녜에…….”

박 간돌이.”

그런데 이번에는 가 아니고 하이!’라고 대답한다. 선생님은 버럭 화를 내면서 나무라신다.

요놈아 넌 왜놈의 자식이냐, 하이가 뭐냐? ‘라고 대답하지 못 하겠어!”

 

그제야 간돌군은 라고 다소곳이 대답하니, 선생님은 일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요오시!‘했다는 이야기다.

어느 익살꾼이 지어낸 얘기인지 모르겠으나 당시로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어디 그때 뿐이겠는가, 광복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일이기도 하다.

 

일제는 1938년 교육령을 개정하여 전국의 각급 학교에서 조선말의 사용을 금지시켰다. 이듬 해에는 일본식 창씨개명을 단행하여 그야말로 한민족 말살 정책을 기도했었다. 그 결과 7년이 지난 1945까지 일본어 보급률이 무려 30퍼센트에 이른 것으로 추산되었다. 만약 광복이 더 늦어져서 우리 모국어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상태를 가정한다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할 따름이다.

 

얼마 전 강남의 어떤 일식집 상호가 하필이면 다께지마’[竹島]여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 식당 주인은 아마도 애국심이 남달리 강한 일본인이었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도 평수가 넓은 고급 아파트촌일수록 일본 텔레비전 수신용 안테나가 자신의 부()를 과시하듯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들이 모두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 일본의 대중 문화를 그토록 선망하는 족속들인지, 또 자라는 어린 세대에게 일본 문화일본 언어를 가르쳐서 어쩌겠다는 얘기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잖아도 어린이용 만화나 전자 오락 기구를 통하여 일본의 언어와 문화는 우리 어린이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우리의 텔레비전 광고물도 일본의 그것을 그대로 베낀 것이 부지기수라는 말을 들었다. 이런 풍토 속에서 성장한 탓인지 우리 젊은 세대의 두발이나 의상이 일본의 그것을 닮아 가고, 대학가에서조차 일본 대중 잡지나 유행가가 범람하는 실정이라 한다. 민족 감정에 의한 반일(反日)이나 극일(克日)이니 하는 표어는 겉으로 내뱉는 구호일 뿐이고, 실제에 있어 일본의 것, 일본적인 색채나 냄새를 흉내내기에 모두 혈안이 된 듯하다.

 

광복 이후 우리의 국어 순화 운동은 우리말에 스며든 일본어의 찌꺼기를 몰아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같은 일본어 추방 운동의 역사는 먼 옛날 임진왜란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했던 조정이 1년 반만인 159310월 환도한 서울에서 왜어금지령’(倭語禁止令)을 내린 바 있다.

 

그 당시 우리말에 어느 정도 일본어가 스며들었으며, 또 어느 정도 추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다. 어쨌든 지리적인 여건 탓인지, 또는 언어적인 유사성 탓인지는 몰라도 우리말에 끼여들기도 잘하고, 또 우리말 속에 섞인 어느 요소보다도 배척 당하기 잘하는 언어가 일본어인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어 추방 운동이 본격화되기는 해방 직후인 1948, 당시 문교부가 주관이 되어 우리말 도로 찾기운동을 벌였을 때 일이다. 이때 약 칠팔 백에 달하는 일본어 단어를 우리말로 대체시키는 작업이 있었다. 그러나 이 운동도 벤또를 도시락으로, ‘쓰시를 김밥으로 바꾼 정도로 몇몇 단어는 성공했으나 대부분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만약 이 당시 더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전개했더라면 일본어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해 버릴 수 있었을 텐데, 아무튼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우동이나 밀국수 또는 가락 국수가 아직도 우리말에 공존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시마이와 마감, 시아게와 끝손질, 신마이와 풋내기, 사시미와 생선회, 아나고와 붕장어, 오뎅과 꼬치, 쓰끼다시와 곁들이 안주, 덴뿌라와 튀김, 곤색과 감색, 데모도와 조수, 단도리와 채비, 가라와 무늬, 고데와 인두, 나라시와 길들이기, 시보리와 물수건, 와리바시와 젓가락, 야끼만두와 군만두, 사라와 접시, 에리와 깃, 자부동과 방석, 고바이와 언덕길, 와이로와 뇌물 등 그 수를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수월치 않다. 일상적인 용어가 이런 정도이면 전문 용어, 예컨대 인쇄출판 용어나 토목, 건축 용어, 미용 용어 등에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심지어 도박이나 오락에 대한 용어까지 일본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노래방에서 자기가 가장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흔히 ‘18이라고 한다. 이는 일본의 전통 무용인 가부끼’(歌舞伎)에서 나온 말임을 아무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최근 국민 오락(?)이라 자타가 인정하는 고도리를 비롯하여 대체로 화투 놀이에서 쓰이는 용어가 일본어로서, ()삥땅(, 일본어로 야꾸) 등이 그런 예이다. 아무튼 이런 용어까지도 일본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고도리를 차라리 고스톱이란 영어를 쓴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제발 일본어만은 피해 주었으면 하는 심정은 필자만의 소망이 아니리라.

 

광복 직후의 국어 순화 운동이 실패한 원인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당시 순화 운동의 목표를 일본어의 청산에만 두었더라면 그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자어와 일본어 두 곳에 놓았다가 결국 둘 다 놓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일본어의 잔재부터 먼저 없애고, 차후 영어를 비롯한 서구계 외국어로 눈길을 돌려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일본어를 추방하는 데는 종래의 찌꺼기도 씻어내야 하겠지만 아울러 새로이 빌려다 쓰는 일도 삼가야 할 것이다. 특히 관공서 등지의 행정 용어에서 일본어를 차용하는 예가 많은 것 같다. 고속도로의 갓길을 노견’(路肩)이라 명명한 것이나, ‘고수부지’(高水敷地)윤중제’(輪中堤)란 용어를 차용한 것도 그런 예이다.

 

윤중제의 경우, 1968년 서울시는 여의도에 방죽을 쌓은 후 무슨 영문에서인지 그 곳에 윤중제란 이름을 붙였다. 윤중제란 일본어 와쥬우떼이를 그대로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것인데, 우리말로는 방죽이라 부르는 말이다. 방죽(防築) 역시 한자말이긴 하나 발음에서 보듯 이미 고유어로 바뀐 한자말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시는 모 학회의 건의에 따라 여의방죽으로 이름을 고쳤으나, 그러나 정작 바꾸어야 할 윤중국민학교나 윤중중학교의 학교 이름엔 윤중이 여전히 남아 있다.

 

땅 이름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첨가해야 겠다. 최근 수도권 주변에 새로 들어선 도시의 이름이 한결같이 일본어 냄새를 피우고 있어 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산본(山本)이란 이름이 그 대표적인 것으로, 이는 바로 일본인의 성씨를 연상시킨다. 또한 일산(一山)이나 평촌(坪村)중동(中洞)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일본 지명과 비슷하다.

 

한때 지방 자치 단체가 나서서 이런 지명을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는데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 이름이 달라졌다는 소문을 들은 바는 없다. 산본은 수리산 아래 있으므로 그저 수리라고 하면 무난하리라 생각한다. 서울이란 이름이 한자가 없어도 불편함이 없는 것처럼 수리 역시 한자 없이 사용해도 좋을 터이다. 수리란 말은 고유어로 으뜸[]이란 뜻이다. 이를 굳이 한자를 쓰고자 하여 修理修安으로 표기할 필요는 없다. 잘못하면 집 수리나 구두 수리의 수리가 연상되기 때문에 본래의 좋은 의미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문화 민족일수록 자국에 대한 애착과 긍지는 대단하다. 말을 아끼고 다듬는 노력은 바로 자국 문화에 대한 자랑과 열정의 발로라 할 수 있다. 196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이스라엘의 아그논에 대한 스웨덴 한림원이 발표한 선정 이유에서는, 그의 모국어인 히브리어 재생에 대한 노력이 첫번째로 꼽히고 있다.

 

지금도 동해에서는 곤색바람이 줄기차게 불어오고 있다. 그 거센 파도를 혼자의 힘으로 막고 있는 우리의 돌섬, 독도(石島獨島)를 생각한다. ‘곤색’(ごん)은 분명 우리말의 색채 이름은 아니다. 동해를 지키는 그 독도를 생각할 때마다 이 곤색 바람만은 꼭 막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프랑스인의 국어 아끼는 정신 -리영희

(“유우는 언제 스테이츠에 다녀왔냐?”에서 발췌)

 

자기 국어를 지키려는 프랑스인들의 최근 움직임은 감동적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본 것이지만 프랑스어가 있는데도 굳이 외국어를 표현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프랑스어 사용에 관한 법률을 프랑스 의회가 통과시켜, 법률과 벌금(한 건 위반에 5만 프랑=280만원)의 위력으로 주로 영어에 의한 프랑스어의 오염을 방지하려는 노력은 눈물겹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다름없이 프랑스에서도 영어 침투의 일반화로 프랑스어와 영어의 합성어인 프랑글레(franglais)'가 판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법안의 제정에 앞장선 문화부 장관(자크 부동)은 미국(영국)의 천박하고 타락한 문화의 표현인 영어(특히 미국어)문화제국주의적 역할을 하는 데 대한 방역(防疫)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세계 제1차대전 이전까지 몇 백년 동안 유럽의 상층사회와 상층문화의 공용어였던 프랑스어가 영어(미국어)에 밀려서 문명세계의 변방어(邊方語)’로 위축되어가는 상태를 프랑스의 우익적 사상의 개인과 집단은 보고 있을 수 없다는 꿋꿋한 절개이다.

 

영어문화의 세계화현상에 대해서 프랑스의 을 숭상하고 자랑하는 프랑스인들의 감정이 어떨 것인지 이해가 간다. 지난번 우루과이라운드 파동에서 프랑스는 미국을 상대로 끝까지 오디오,비디오,영화 등의 시장개방 압력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남의 나라에서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의 문제를 생각하면 자연히 생각은 우리 나라, 우리 민족, 우리 사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어때야 하는가? 통일을 지향하는 분단 50년의 남북 동포 사회의 언어정책과 사상은 어때야 하는가? 또 언어의 이질화(異質化)와 그 동질화(同質化)?

 

그런 주제들에 생각이 미치면 역시 프랑스인의 국어 아끼는 정신을 거울삼을 수밖에 없다.

앙드레 말로는 그의 회고록에서, 프랑스인들이 문약(文弱)했던 까닭에 제2차대전 초기에 나치 독일의 침략에 총알 한 방 제대로 쏘지 못하고 패전했다고 나무랐다. 그 예로 그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쓴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이 194065일 프랑스의 국경 솜무지역에서 총공격을 시작했다. 아무런 대비책도 없었던 프랑스 정부와 군대는 저항다운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총퇴각을 계속했고, 독일군은 공격 개시 후 9일 만에 수도 파리에 입성했다.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진격해 들어오는 독일군의 선두부대가 파리에서 불과 40km 지점까지 다다랐을 때, 말로는 한림원과 한림원 동료들의 신변이 걱정돼 급히 한림원으로 달려 갔다. 정문에서 총총히 계단을 올라가 문예홀의 문을 열어젖히니까 한림원 문예 분야의 동료들이 커다란 원탁 주변에 둘러 앉아 열심히 논쟁을 하고 있었다.

 

말로가 독일군이 40km까지 다가왔는데 뭣들을 하고 있는 거냐!”고 소리쳤다. 말로의 흥분한 태도에 오히려 놀란 듯한 한림원 학자들의 답변인즉, “프랑스어 사전의 R부분에서 현재 사용 빈도가 낮은 낱말들을 골라내어 그중 어느 것을 사어(死語)로 규정해 사전에서 제거할 것인가를 토론중이라는 것이었다.

 

말로는 그의 회고록에서 적군이 수도의 성밑에 육박했는데 프랑스의 최고 지성들이 나라를 지킬 생각은 않고 죽은 낱말이나 고르고 앉아 있으니, 프랑스가 망할 수밖에 다른 길이 있겠느냐?”고 프랑스 지식인들의 일반적 문약성(文弱性)을 개탄했다.

 

이 글을 읽은 나는 말로의 그 장면의 설명에서 말로와는 정반대의 심한 감동을 느꼈다.개탄해야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감격스러운 장면이었다. 나라가 풍전등화(風前燈火)인 것을 그 한림원 학자들이 모를 까닭이 있겠는가? 수도 파리가 적군의 수중에 들어갈 순간에도 모여서 프랑스어를 다듬고, 닦고, 어루만지는 정신!

 

나는 그것이 바로 프랑스()임을 깨달았다. 물론 말로인들 그런 생각이 없어서 동료들을 나무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럴 까닭이 있겠는가? 다만 국가 위기의 중대성을 생각한 순간적 감정이었을 것이다.


개인별 탐구 과제

1. 현재 일본의 문화가 우리 나라에 침투하고 있는 양상은 어떠한지 본문 속에서 찾아 정 리해 보자.

2. 일본어 추방 운동의 역사를 정리해 보자. 그리고 아직도 우리말에 남아 있는 일본어가 무엇인지 본문에서 찾아 적어보자.

3. 광복 직후 국어 순화 운동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4. 말을 아끼고 다듬는 노력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5 .이 글의 제목 동해의 곤색 바람에 함축된 의미는 무엇인가?

6. ‘프랑스어 사용에 관한 법률제정의 필요성은 무엇인가?

7. 프랑스 한림원 학자들의 태도에 대한 말로의 입장과 필자의 입장을 각각 정리해 보자.

 

 

모둠별 토의 과제

1. 현재 우리 주변에서 쓰이고 있는 외래어들을 찾아서 정리해보자. 아울러 비속한 말이 나 저속한 말, 불필요하게 줄여 쓰는 말(, 학생과장-학과)도 같이 정리해 보자.

2. 윗글에 나오는 한림원 학자의 태도와 아래 글의 대학교수의 태도에 대해서 동시에 비 판해 보자.

 

미국에서 여러 해 동안 유학하고 돌아온 대학교수들에게도 공통적인 (반드시 전부는 아니지만) 미국식 얼이 있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표현할 때, 으레 스테이트()”라고 말한다. “유우는 언제 스테이츠에 다녀왔나?” “! 그 친구말이요? 어제 스테이츠에서 왔대.” 그들이 말하는 스테이츠는 물론 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카를 말한다. 미국인에게 있어서 다른 주()에 가 있을 때 스테이츠는 물론 자기 고향인 어느 주를 말한다. 해외에 나와 있는 미국인에게는 미국은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테이츠이다. ‘스테이츠로 간다고국으로 돌아간다이다.

 


 

728x90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독서창고

처사21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