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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TV는 한국방송의 교과서!(한겨레21/1996.6.5)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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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TV는 한국방송의 교과서!

(한겨레21/1996.6.5)

 

 

󰡒가족들과 둘러 앉아 <일요일 일요일밤에>를 봤다. 무명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하기 위해선 농구스타 우지원이 3점슛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코너였다. 처음으로 그런 코너를 봐선지 굉장히 참신하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나는 심한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우연히 친구네 집에서 위성방송을 보다 똑같은 내용의 일본 프로그램을 봤기 때문이다. 그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본인들이 그걸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사람좋게 생긴 사회자가 무대에 나선다. 소박하게 꾸며진 무대 앞에는 시골티가 나는 청중들이 웅성거리며 앉아 있다. 사회자가 출연자들을 하나씩 무대 위로 불러내 노래잔치를 벌인다. 온몸을 흔들어대며 인기가수의 춤을 흉내내는 출연자들로 웃음꽃이 핀다. 어떤 이는 고장의 특산물을 들고 나와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는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뒷전이라는 투다. 그래도 그날 노래를 가장 멋지게 부른 출연자에겐 번듯한 상이 주어지고 앵콜송을 부를 기회가 찾아든다.

 

이런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방영됐다면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무엇일까? 한국방송공사의 <전국노래자랑>이라고? 정답이다. 하지만 답은 두개다.

 

일본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NHK<노래 자만> 아냐."

 

일본에서 성공하면 한국에서도 성공?

외국 것을 흉내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안방극장을 활보하고 있다. 퀴즈 게임이나 버라이어티쇼 같은 오락물은 물론이고 코미디물, 토크쇼 심지어는 다큐멘터리물까지 유사품이 나돈다. 원본은 대부분 일제다. 일본에서 일본인들을 울리고 웃긴 프로그램이 한국에 와서 한국인들을 울리고 웃기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디를 어떻게 베꼈다는 지적은 적어도 방송가에선 이제 뉴스가 아니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그게 어제 오늘의 일이냐?󰡓고 되묻는다.

외국 프로그램 베끼기는 퀴즈나 게임 프로그램에서 두드러진다. 지난 9310월 한국방송개발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시 12개 퀴즈게임 프로그램 가운데 7개 프로그램이 일본 것을 모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모방 프로그램은 무대 세트, 사회자의 몸짓, 문제유형 등 형식과 내용 양쪽에서 버젓이 원본을 베꼈다. 특히 서울방송의 <알뜰살림 장만 퀴즈>와 문화방송의 <도전, 추리특급>은 각각 일본의 <백만엔 퀴즈 Hunter><퀴즈 Magical 두뇌 Power>를 거의 본뜨다시피 했다.

 

<백만엔 퀴즈 Hunter> <알뜰살림 장만퀴즈>는 남녀 사회자가 방망이를 들고 나오는 것에서부터 서너개의 문제를 푼 뒤에 출연자를 소개하고, 정답을 맞추면 해당 문제에 걸려 있는 상품을 주는 구성까지 쌍둥이처럼 똑같았다. 다른 사람이 딴 상품을 뺏아올 수 있는 코너도 두 프로그램이 빼다 박았다. <도전 추리특급><퀴즈 Magical 두뇌 Power>도 마찬가지다. 이들 프로그램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출연한 연예인들로 하여금 헤드폰을 끼고 문제를 풀도록 해 다른 출연자가 답변을 들을 수 없도록 하고, 정답을 말했을 때에는 묵음으로 처리해 시청자들도 답을 모르도록 진행했다. 무대 세트는 출연자가 없다면 구분이 힘들 정도로 비슷했다.

 

그러나 한국방송개발원의 이 조사는 공개되지 못했다. 방송계 어디에서도 자신의 부끄러운 얼굴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료는 결국 연구자의 서랍에 들어갔고 프로그램 베끼기는 관행으로 굳어졌다.

 

최근 서울방송이 매주 금요일 오전 910분 내보내는 <정보특급 금요 베스트 10>은 일본 NTV에서 지난해 11월부터 방송하고 있는 <소문의 텐 베스트 쇼>와 여러 면에서 닮은 꼴이다. 출연자들이 한 주의 화제나 정보를 찾아가는 이 프로그램은, 소문의 현장을 찾아가는 <소문의>와 발상이 같다. 출연자들이 의자 뒤에 마련된 전광판을 통해 화제에 대한 관심도를 표시하도록 한 󰡐스마일지수󰡑 코너도 베낀 티가 난다. 관심도를 표시하는 전광판의 기호를 별 대신 얼굴 그림으로 만들어 원본을 살짝 바꿨을 뿐이다. 특히 무대세트는 빼다 박았다. 녹화장 전면에 설치한 정보소개 화면은 숫자에서 배열까지 판박이다. 모두 10개인 화면은 위에서부터 1-3-3-3의 차례로 배열돼 있다.

 

아이디어 뿐만 아니라 구성도 닮은 꼴

문화방송이 매주 화요일 오후 730분 방영하는 <경찰청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실제 일어난 사건을 재연한 뒤 현장사진과 관련자들의 증언을 제시해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이 프로그램의 뿌리는 미국 <FOX 텔레비전>의 오락 다큐멘터리물 <COPS><America’s Most Wanted>. 이들 프로그램은 마지막에 범인의 몽타주를 크게 보여주고 이름과 인상착의를 자막으로 처리하는 것까지 똑같다.

 

한국방송공사 제2텔레비전에서 매주 일요일 오전 950분에 방영하는 <도전 지구탐험대>도 일본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을 본떴다. 인기 탤런트나 가수, 스포츠 스타들이 세계의 오지를 찾아가 진기한 풍물을 직접 체험하는 이 프로그램의 참고서는 일본 NTV가 지난 94년부터 내보내고 있는 <감동 익스프레스>. 첫방송을 탄 탤런트 노현희의 모스크바 국립서커스학교 줄타기 체험기는 1년 전 <감동 익스프레스>가 방송한 일본 탤런트의 옛 동독지역 서커스학교 체험기와 내용면에서 매우 비슷했다

 

2 텔레비전이 지난해 봄철 개편을 통해 신설한 특종 웃음대결TV 진품명품도 일본에서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을 고스란히 베낀 혐의가 짙다.

 

시청자 제보를 받아 희한한 볼거리를 소개하는특종 웃음대결NTV<투고 특보왕국>에서 기본 발상은 물론 화면구성과 무대장치 등 세세한 부분까지 빌려왔다. 두 명의 취재부장이 진기한 볼거리나 희한한 사람 또는 동식물 등에 관한 제보를 받아 특파원에게 현장취재를 지시하고, 연예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취재결과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기본구성도 쌍둥이다. 무대장치와 진행 방식, 출연자 구성, 제보를 소개하는 화면 등에서도 모방의 흔적이 역력하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골동품을 감정해주는TV 진품명품>TV도쿄의 개운, 뭐든지 감정단>을 도용했다. 특종 웃음대결>보다 정도는 덜 하나 일본 프로그램과 다른 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골동품 소장자가 나와 전문가들과 연예인 출연자들에게 감정을 받고 소장자가 생각하는 감정가와 전문가들의 그것을 맞춰보는 기본구성부터 닮았다.

 

방송인들은 대체로 베끼기의 정도에 따라 모방 프로그램을 세 가지로 나눈다. 먼저 모방이 있다. 원본의 개념 혹은 기본 아이디어를 가져다 쓰는 경우다. 자연히 프로그램의 전체 분위기와 흐름이 비슷해진다.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표현만 살짝 바꿨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의 <퀴즈여행 달려라 지구촌>이나 서울방송의 <지구촌 퀴즈>가 여기에 속한다. 이 프로그램들은 일본 <후지텔레비전><퀴즈 세계의 Show by show>을 모방했다.

 

모두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그곳의 풍물을 소개하고 그와 연관된 문제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표절이란 아이디어의 동일성 여부를 떠나 표현의 일부가 동일하게 이용되는 경우를 말한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문화방송 미니시리즈 <질투>의 경우, 계단에서 깡통을 굴리는 장면이라든가 편의점 앞에서 여주인공이 비를 맞으며 남주인공을 기다리는 장면 등은 일본의 <동경 러브스토리>를 표절한 보기다.

 

<열전 달리는 일요일> 저작권 시비에 곤욕

마지막으로 복제가 있다. 이는 프로그램의 표현 대부분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를 말한다. 베끼기의 정도가 가장 심한 셈이다. 일본의 <백만엔 퀴즈 Hunter> 를 베낀 서울방송의 <알뜰살림 장만퀴즈>가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모방은 이런 방식들이 뒤섞여 이뤄진다. <퀴즈여행 달려라 지구촌>이 그런 경우다. 이 프로그램은 원본인 <퀴즈 세계의 Show by Show>에서 진행자가 문제를 낸 직후 초대 손님들의 자리로 나와 잡담을 나누거나 자료화면을 보여줄 때 특이한 손짓으로 󰡒VTR 스타트󰡓라고 외치는 것과는 달리 󰡒비디오 스타트󰡓라고 외친다. 모방과 표절이 혼재한 셈이다.

 

프로그램 모방이 성행하는 까닭은 기본적으로 방송사들 사이의 시청률 경쟁 때문이다. 시청률 그래프가 그리는 증감에 일희일비해야 하는 프로그램 제작자들에게 일단 성공작으로 평가받은 외국의 프로그램은 무시할 수 없는 유혹이다. 한 방송사의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한다. 󰡒동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면 누구나 󰡐왜색을 극복하고 우리의 삶과 정서가 담긴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실제 프로그램을 만들 때 이런 다짐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시청률 경쟁을 앞세우는 방송사의 비위를 맞추는 데, 이미 성공한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것만큼 확실한 길은 없다.󰡓

 

하지만 프로그램 모방으로 이룬 성공에 대해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크게는 가치체계가 흔들리고 문화종속이 깊어질 우려가 있다. 우리와 문화가 다르고 역사가 상이한 외국의 방송을 제대로 걸러내지 않고 들여오는 것은 이질적인 정서를 수입하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텔레비전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들은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제작자들에겐 법의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는 부담이 뒤따른다.

 

저작권 시비는 피할 수 없는 함정이다. 지적재산권 침해에 따른 국제적 법률소송이 잇따르고 막대한 벌과금을 물게 될지 모른다.

 

저작권 문제는 이미 코앞에 있다. 한국방송공사는 지난 93년 당시 방영하던 <열전 달리는 일요일>이 저작권 시비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일본 민간상업방송 TBS의 판매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프로그램 공급업체 󰡐베른 엔터프라이즈󰡑와 오고간 이 공방은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도 지적소유권을 지키려는 선진국의 안테나에 잡히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베른은 당시 󰡒<열전>TBS<풍운 다케시성>을 그대로 베꼈다󰡓며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면서 󰡐악마의 통로󰡑탱탱 내 사랑’ ‘왕거미 작전󰡑5개의 코너를 증거물로 제시했다. 한국방송공사의 대응은 옹색했다. 󰡒프로그램을 신설할 때 유럽의 <국경없는 게임>과 미국의 <아메리칸 글레데이터>, 대만의 <백전백승> 등을 자료로 삼았다. <풍운 다케시성>의 내용이 있다면 그건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명하는 게 고작이었다. 문제는 이후 어물쩍 일단락됐지만 이 사건은 우리도 이제 프로그램 표절 불감증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위성방송시대, 모방프로 설 땅 없다

다가올 위성방송 시대의 개막도 모방 프로그램의 앞길을 어둡게 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 상공에서 위성방송을 쏘고 있는 외국위성은 󰡐아시아 샛󰡑을 비롯해 󰡐슈퍼버드- A, B󰡑 󰡐팬암 샛-2󰡑 등 모두 19개에 이른다.

 

이들 위성으로부터 수신할 수 있는 방송채널도 99개로 1백개에 육박한다.

일본의 <NHK>와 홍콩의 <스타TV> 등이 여기에 들어 있다. 게다가 일본의 이토추, 쓰미모토 등 4개 종합상사가 공동출자한 디지털위성방송회사가 지난달부터 시험방송을 시작했다. 오는 9월부터는 3개의 한국어 채널을 비롯해 무려 60여개의 채널로 방송을 시작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상공이 온통 위성방송 신호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위성방송의 전파력이 모방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파괴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최근 컴퓨터통신에는 이런 글이 떴다. 󰡒가족들과 둘러 앉아 <일요일 일요일밤에>를 봤다. 무명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하기 위해선 농구스타 우지원이 3점슛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코너였다. 처음으로 그런 코너를 봐선지 굉장히 참신하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나는 심한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우연히 친구네 집에서 위성방송을 보다 똑같은 내용의 일본 프로그램을 봤기 때문이다. 그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본인들이 그걸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김미애하이텔 ID goddness) <유강문 기자>


개인별 탐구 과제

1. 외국 것을 흉내낸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본문 속에서 모두 찾아서 적어보자.

2. 모방 프로그램의 세 가지 유형을 쓰고, 기본 개념을 적어라.

3. 프로그램 모방이 성행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4. 프로그램 모방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찾아보자.

5. 표절 불감증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프로그램은?

6. “위성 방송의 전파력이 모방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파괴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7. 만약 우리나라 프로그램과 똑 같은 내용을 외국 방송에서 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 이 들까?

 

 

모둠별 토의 과제

1. 모방 프로그램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아울러 텔레비젼 보기를 좋아하는 우리가 이 글을 읽고 난 뒤에 어떤 느낌이 들 었는지 이야기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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