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청산별곡』과 평민적 삶 의식-신 동 욱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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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별곡과 평민적 삶 의식

-신 동 욱

 

1

 

옛 문헌을 현대인이 대함에는 여러 가지 난점이 있다. 왜냐하면 문헌 자체의 제작 시기와 작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문헌 자체의 언어와 시대의 풍속이나 종교, 그 밖의 제도 등에 관해서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러는 명확히 알려졌다 해도 작품의 미적 가치를 비교적 손상 없이 해명해 낸다는 것은 여간한 독서법의 훈련이나 통찰력 없고서는 이루어지기가 어렵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청산별곡한 편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만 하더라도 그 한 편에 씌어진 연구사를 따로이 다루어 볼 수 있을 만큼 많고 또 그만큼 주목을 요하는 업적들이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계속 더 이루어져야 마땅하고 가능하면 이론이나 견해를 달리하는 연구자의 참여에 의하여 새로이 그 가치를 조명해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려 시대의 노래로서의 시대적 특색이 있다면 그 시대 사람 일반의 생활 내용에 관한 다각적 검토가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되므로 심지어 음식이나 주거나 가정 생활이나 사회 생활의 세부까지도 이해해야만 노래의 뜻을 알 수 있게 되리라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언어 분석적 고찰이나 시 창조의 관례에 비추어 연구하는 일이라도 풍속과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2

 

이 작품에 관한 연구는 국어학자들의 전문적인 기예에 의하여 상당히 많은 의문이 풀린 것이 사실이고, 또 문학자들의 시적 해명에 의하여 그 뜻이 밝혀져 왔다. 그러나 이 작품이 아직도 단일한 작품이냐 또는 여러 작품이 집성된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고, 이 작품을 형성하고 있는 생활면의 배경이 분명하지 않다고 보인다. 이러한 문제는 아마도 긴 기간을 입으로만 전해 온 작품으로서 훨씬 후대에 이르러서야 기록되어 그 노래의 소종래를 알 수 없이 된 까닭이 아닌가도 생각한다. 그러나 악장을 정리했던 사람이 속악가사상(俗樂歌詞上)”이라고 규정한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이는 분명히 평민들이 부르던 노래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악장가사에 수록된 다른 작품을 보면 단련(單聯)으로 된 작품들도 있지만 여러 연이 겹쳐서 된 노래도 있다.

 

이 작품의 여덟 개의 연이 보여 주고 있는 뜻을 간추리면 대개 다음과 같은 요지를 보이고 있다.

 

1연 청산에 살겠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2연 새와 같이 시름으로 울고 지낸다.

3연 잉무든 장글란 가지고 물 아래 가던 새 본다.

4연 낮은 그럭저럭 지냈으나 올 이도 갈 이도 없는 밤은 어떻게

지낼 것인가.

5연 미워한 이도 사랑한 이도 없는데 돌에 맞아 운다.

6연 나마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다에서 살겠다.

7연 에정지에 가다가 놀이를 본다.

8연 설진 강수를 빚어 마시겠다.

 

이렇게 요약하는 것이 타당한가도 물론 문제가 있지만, 이 노래의 화자는 작품 전체에 비친 마음의 동향을 미루어 보아 현재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고려 시대 사람들의 말씨에서 시제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첫 연에서 화자는 그전부터 청산에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고 이제부터 살아갈 다짐을 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즉 현재의 상태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뜻을 굳히는 것같이 보인다. 이러한 다짐은 그 전의 정상적인 생활로부터 유리된 사정이 그 사이에 개재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에서 살아야 할 이유는 노래의 표면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주석자들의 견해가 그러하다. 머루와 다래를 먹고 살아야 하겠다는 진술이 정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첫 연부터 먹이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화자의 태도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기에 이 문제를 노래하는 것같이 보인다. 옛날의 경제 구조를 소상히 알 방도는 없지만 소수의 관료와 승려를 제외하고 나면 대체로 백성은 모두가 농민이었을 것이고 전쟁이 나면 장정들은 모두가 군인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미루어 보면, 화자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혹은 불행한 사정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산에서 살아갈 형편에 놓인 것을 체념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사정은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화자의 전체적인 진술의 태도는 체념과 낙천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2연에서 화자는 분명히 외로움을 말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우러라를 명령형으로 보는 경향이 짙은데, 시의 진술이 듣는 이를 명확히 의식할 때나 강렬한 외침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원망이 격심할 때나 있을 법한 명령의 뜻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이 작품의 화자는 강렬한 원망보다는 전체적인 어조에서 보아 체념과 자포자기의 뜻이 더 나타난 것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걱정과 근심은 새보다도 화자가 더함을 알려 주고 있다. 이러한 화자는 생활의 방도나 사람과의 관계나 여러 가지로 걱정이 많은 주인공임을 독자에게 알려 준다고 하겠다.

 

3연에서 주인공은 물 아래쪽으로 날아간 새를 바라보는 것으로 보통 풀이하고 있는데, 서재극은 갈던 사래() 본다로 해석하고 있고, 필자도 그렇게 본 바가 있다. 서재극은 이 문맥의 해석에서 시간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바, 탁월한 한 관찰을 일깨웠다고 생각된다. 녹슨 농구를 가지고 물 아래 농토를 경작하던 한 주인공을 상정하기 어렵지 않다. 이렇게 풀이한다면 이 작품의 화자는 농토를 잃었거나 또는 농사일을 할 수 없게 된 한 불행한 농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만약 적절한 것이 아니고 녹슨 무기를 든 한 병사가 물 아래쪽으로 날아가는 새를 보고 있다면, 이 노래의 뜻의 짜임에 병사로서 겪었던 경험이나 심정상의 표징이 드러나 있어야 할 것으로 추정해 볼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 노래에는 서정적 주인공이 병사로서 이해될 만한 타당성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이 연의 뜻의 추정은 고려 시대의 어법이 밝혀진 다음에라야 분명해질 것이지만, 필자는 가던 새를 풀이해 보는 하나의 시도에서 이 노래의 율격과 어울린다고 추정되는 뜻을 상정해 보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도일 따름이지 명확한 결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3음절을 한 박으로 하여 이룬 노래라고 할 때 소리의 약축은 불가피한 현상으로 ‘(논이나 밭이나) 갈던 사래가던 새로 구송되거나 노래로 불리어질 가능성도 있음직하다고 생각된다.

 

고려 시대의 여러 어려움은 역사학자들의 보고에서 이미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있듯이, 고려 시대의 민중 생활의 어려움과 병역에서 오는 고통을 상기해 볼 때, 유민의 일반적인 애환에 찬 모습이 이해됨직하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은 민중들 사이에서 구송된 노래의 뜻을 추정하는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유표한 참고가 될 것이다. 삶의 터전으로서의 농토를 잃고 유랑하며 생활했던 고려 시대의 민중이 그들의 슬픔을 다수간은 체념적으로 또는 자포자기의 태도로 혹은 자조적으로 노래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이해 방식에서는 서정적 화자가 연애의 고민으로 그의 외로움을 호소한다는 추정은 어렵게 될 것이다. 또는 이상향을 추구한다는 서정적 주인공을 상정해 보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가던 새를 날아가는 새로 이해한다면 시제상으로는 과거에 속하므로 현재의 시상에서 날아간 또는 날아간 새를 본다는 진술은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본다를 의문형 종결 어미로 볼 경우, 날아가던 새를 보았느냐는 뜻을 확정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화자는 남에 관하여 말하거나 대상을 설정해 놓고 그 대상에게 말을 거는 방식을 취한 것이 아닌 것같이 보인다. 이 화자는 일인칭 서정적 주인공으로서 변함이 없다고 판독되기 때문이다. 1연에서 제 8연까지 그의 일인칭 시선은 고정되어 있고, 이 하나의 사실이 이 작품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증거도 되고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짙다. 이 화자가 어느 특정한 대상을 보고 말을 건네는 진술의 방식을 취했다면, 또 사랑의 고통이나 고독감을 호소함에 있어 곧바로 그 특정한 대상에게 연결되도록 했을 것이다. 요컨데 이 화자는 남에게 말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 아니고, 화자 자신이 자신의 처지나 괴로움을 말하고 있는 독백적 진술 방식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말하기의 방식은 서정시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4연에서 화자는 분명히 그의 외로운 처지를 말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구체적인 대상을 설정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외로운 처지를 한탄하는 혼잣말을 하고 있다. 더구나 이 연에서의 외로움은 의지할 데가 없다는 의취가 명확히 드러나 있다고 하겠다. 고려 시대의 장가가 보여주고 있는 일반적 경향을 보면 서정적 화자와 대상이 분명한 것들이 있는데, 사모곡에서는 어머니가 있고 그 진술은 화자의 혼잣말의 방식을 취했고, 서경별곡의 이별하는 괴로움을 보이는 화자도 대상은 설정되어 있으나 혼잣말을 하고 있다. 쌍화점의 사랑의 외설적 노출도 혼잣말로 되어 있으며,만전춘』ㆍ『정석가등도 그러하다.

 

이 노래에서 외로움의 뜻은 살아가기에 매우 고달픈 사람의 태도가 더 우세하다고 보이는데, 그 이유는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다는 뜻으로 내왕이 없고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임이 분명하다고 하겠기 때문이다. 전란과 가중한 부역과 세금은 보통 사람들의 정상적인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유민으로 떠도는 뿌리 뽑힌 존재로 만들었을 시대적 중압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정황에서 외로움은 그러한 계층 일반을 대변하는 뜻이 있었기에 오래도록 구전되어 왕조가 바뀐 조선 시대까지 노래 불렸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5연에서 그러한 유랑의 무리 일반이 지녔던 삶의 처지는 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같이 보인다. 미워하고 사랑한 사람도 없는데 무고히 돌을 맞아서 울고 있는 화자가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화자의 진술에서 애매함의 뜻이 보이는데, 그 억울함을 혼잣말로 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6연에서 화자는 바다에서 살겠다는 뜻을 말하고 있는데 아마도 민가가 있고 행정력이 미치는 지역에서 벗어나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의 처지를 말하는 것같이 보인다. 청산에서 살아가야 할 처지임을 말한 것도 그러한 사정에 놓여 있는 화자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화자는 애초부터 유민이 아니었기에 경작했던 전답을 보는 감회도 나타나기도 했다고 보여진다.

 

7연에서 늦은 녘에 화자는 놀이가 벌어진 곳을 지나며 그 광경을 노래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놀이판의 광경은 다음 연의 술 마시기를 권하는 술집의 주모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된다. 이 작품의 뜻을 해명하려는 많은 관심은 그만큼의 성과를 거둔 것이지만 그 선명성은 아직도 더 맑아져야 할 것같이 보인다.

이 작품을 필자는 대체로 남성 화자의 일관된 생활 의식에서 표출된 서정적 속요라고 보는 것이지만, 슬픔과 고통은 체념과 패배자적 타협으로 수렴되는 것으로 보인다.

 

 

3

 

이상에서 필자는 이 노래가 일정한 화자에 의하여 혼잣말로 된 서정시임을 밝힌 셈이지만, 유민의 공동적 참여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여러 참여가 있었기에 왕조를 달리하여 가악의 정리까지 지속되었을 것이 틀림 없다고 하겠다. 또 이 화자는 남성적 화자로 추정했는데, 그럴 만한 객관적 증거는 제 3연의 풀이에 의거한 것이지만 아직도 분명하다고 단언할 시기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이 노래의 주 정서는 어떤 소속으로부터 유리된 자의 외로움이나 괴로움이 나타나 있고, 사람과의 왕래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사람의 심정임이 확연한 것 같다.


신동욱. 국문학자로 현재 연세 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 현대 문학론, 문학의 해석, 현대 비평사등이 있다.


개인별 탐구 과제

1. 윗글의 필자는 고전문학의 의미를 밝히는 바람직한 태도를 무엇이라고 했는 가?

2. 본문 속에서 청산별곡 전 8장의 내용을 요약하고 그렇게 요약하는 것에 문제 가 있다고 했는데, 그 문제는 무엇인지 본문 속에서 찾아보자.

3. 3연의 의미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를 정리해 보자. 그리고 이 글의 필자는 어느 견해를 따르고 있으며, 그렇게 보는 근거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4. 이 노래가 오랫동안 구전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라고 했는가?

5. 필자는 이 노래의 화자가 남성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그 근거로 3연의 해석을 들고 있다. 3연의 내용을 다시 검토해 보고 필자의 논거를 찾아서 정리해 보 자.

 

 

모둠별 토의 과제

1. 이 글에서는 고려시대의 장가가 보여주는 일반적 경향으로 서정적 화자와 대 상이 분명하다는 것을 들고 있으며, 사모곡,서경별곡,쌍화점,만 전춘,정석가를 예로 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다. 각 모둠별로 위에 제시된 작품을 찾아 내용을 검토해 보고 필자의 견해가 바른 것인지 검토해 보자.

2. 사모곡, 서경별곡, 쌍화점, 만전춘, 정석가 중 한 작품을 골라 함께 감상해 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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