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한 인디언 추장이 세상에 주는 메시지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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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며 읽기


1. 한 인디언 추장이 세상에 주는 메시지

 

목사님, 오랜만에 서랍을 정리하다가 벅찬 감동을 받아서 번역해 두었던 어느 인디언 추장의 편지를 다시 읽고 목사님께 보내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백여 년 전 그 추장이 백인들에게 했던 경고가 바로 지금 고국의 현실에도 맞는 경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고국의 기름진 땅과 맑은 공기를, 그리고 깨끗한 물을 회생시킬 가능성이 아직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885,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 씨가 지금의 워싱턴 주에 해당하는 곳의 북미 인디언 쓰와미족의 추장인 시애틀(Seathl) 씨에게 그의 땅을 정부에 팔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 답변으로 시애틀 추장은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위대한 지도자가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요청을 해 왔습니다. 그 위대한 지도자는 또한 우정과 친선의 말들을 우리에게 보내왔습니다. 이런 몸짓은 매우 친절하나, 그 답례로써 우리의 우정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제안을 고려할 것입니다. 그 까닭은,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백인들이 총으로 우리의 땅을 빼앗아 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늘을, 그리고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가 있는가?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 더욱이 우리는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거품조차 소유하고 있지 않은데. 이 땅의 모든 구석구석이 우리에게는 신성합니다. 저 빛나는 솔잎들이며, 모래 해변이며, 어둠침침한 숲 속의 안개며, 노래하는 벌레들 모두 우리들의 기억과 경험 안에서 성스럽습니다.

 

백인들이 우리의 사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조각의 땅을 그 곁에 있는 땅과 같은 것으로 여길 뿐입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밤중에 와서 그 땅으로부터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져가는 타인이기 때문입니다. 땅은 그들에게 있어서 형제가 아니며 적입니다. 그 땅을 정복한 다음에도 그들은 전진을 계속합니다. 게걸스러운 그들의 식욕으로 그 땅을 먹고 나면 그 뒤에는 오직 사막만이 남습니다. 당신들 도시의 광경은 우리 인디언들의 눈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그 까닭은 우리 인디언들이 야만인이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겠지요.

 

내가 만일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할 경우엔 하나의 조건을 내놓겠습니다. 짐승들이 없는 곳에서 사람은 무엇입니까? 만일 모든 짐승들이 사라진다면 사람들은 커다란 정신적인 외로움 때문에 죽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인간에게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백인들이 어느 날엔가는 발견하게 될 한 가지 일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은 바로 당신들의 신과 같은 신입니다. 당신들이 우리의 땅을 갖기 원하는 것처럼 그를 소유하고 있다고 당신들은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신입니다. 그리고 그의 연민은 백인이나 인디언 모두에게 똑같습니다.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땅을 해롭게 하는 것은 창조자를 수없이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백인들 또한 소멸될 것입니다. 아마 다른 종족들보다 더 먼저 소멸될는지 모릅니다. 백인들이 그들의 잠자리를 계속해서 더럽힌다면, 백인들은 언제가 당신 자신의 찌꺼기 안에서 질식하고 말 것입니다.

 

들소들이 모두 살육되고, 야생마들이 길들여지고, 숲 속의 신성한 구석구석들이 인간들의 냄새로 무거워지고, 성숙한 언덕이 주는 광경이 떠들어대는 부인들로 인해 손상이 될 때 덤불이 어디 있으며 독수리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생활의 종말이며, 죽음의 시작입니다.

 

백인들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며, 벌레들의 날개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아마 내가 야만인이고 이해를 못하는 탓인지, 소음은 내 귀를 아프게 합니다. 만일 인간이 쏙독새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와 밤의 연못가에 울리는 개구리들의 논쟁을 들을 수가 없다면 인생에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북미의 인디언들은, 대낮의 비로 씻겨지고 소나무 향내를 실은 바람의 부드러운 소리를 더 좋아합니다. 공기는 인디언들에게 더욱 귀하니, 동물들과 나무들과 인간들, 모든 것들이 같은 숨을 나누어 갖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인들은 그가 마시는 공기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들은 죽어가는 사람처럼 냄새에 무감각합니다.

 

우리가 만일 백인들이 꿈꾸는 것이 무엇이며, 긴 겨울 밤 그들의 자녀들에게 어떠한 희망을 얘기해 주며, 내일을 향하여 그들이 마음 속에 어떤 이상을 태우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면 우리가 백인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들은 야만인입니다. 백인들의 꿈은 우리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것들이 감추어져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동의한다면, 당신이 약속한 우리의 인디언 부락 지정 보유지를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인디언들이 이 땅으로부터 소멸되어 오직 광야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구름의 그림자만이 남을 때, 그 때에도 이 해변들과 숲들은 내 백성들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까닭은, 그들이 새로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가슴에서 들리는 고동 소리를 사랑하듯 이 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우리 땅을 판 후에 당신은 우리가 이 땅을 사랑하듯 사랑하고, 우리가 간수하듯 간수하고, 그것에 대한 기억을 당신 마음 속에 간직하시오. 당신이 이 땅을 가져간 후 당신의 모든 힘과 능력과 마음으로써 당신의 자녀를 위하여 보호하고, 신이 우리를 사랑하듯 사랑하시오. 당신의 신이 우리의 신과 같은 신이라는 그 한 가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합니다. 백인들일지라도 이 공동의 운명으로부터 제외될 수는 없습니다.

 

 

 

2. 뿌리에서 샘솟는 문화,위에서 쏟아 부은 문화--윤구병

 

아우에게.

자네가 강원도 봉평 땅에 농사지으러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웃고 말았네. 내가 알기로는 자네 고향이 마산이고, 그 항구 도시에서 공고를 나온 뒤에 스무 살이 채 안 되어서 고한,정선 어름에서 석탄을 실어 나르는 화차의 기관사 노릇을 하다가 뒤늦게 사범대학을 들어가 그 길로 교직에 들어섰으니 농사일을 배울 틈이 어디 있었겠나. 게다가 꽤 오래 전부터 자네도 아파트생활이 몸에 밴 터라 시골집에서 탈없이 지내기가 쉽지 않을 걸. 그러다 지난번에 자네 만나 그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어쩌면 시골에서 꽤 오래 버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네.

 

자네 이야기 가운데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네. 흙으로 된 것이 아니면 죄다 쓰레기더라고 했지, 아마? 하천 둑이며 개울 바닥이며 고샅길에 널브러져 있는 온갖 폐물들, 고장난 농기구에서부터 가전제품, 플라스틱 그릇, 비닐 따위를 한 주일에 걸쳐서 허리가 부러지게 모아 2톤 트럭에 가득 실어 보낸 뒤에 얻은 깨우침이니, 말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삶을 돌이켜보았네.

 

산자락에 옹기종기 엎드려 있는 초가집들, 대숲을 빠져 달아나는 바람, 외양간에서 거적을 뒤집어쓴 채 허연 입김을 내뿜고 있는 암소, 이 빠진 사발에 담겨 있는 개밥, 돼지우리에서 짚북데기에 코를 박고 잠들어 있는 중톳’.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가 빨래터에서 투명하게 솟아오르던 아낙네들의 웃음소리,동이에 우물물을 가득 채워 똬리 얹은 머리에 이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살쩍을 적시는 물방울을 곱게 뿌리면서 고샅길을 접어들던 새댁의 꼿꼿한 목과 허리. 커다란 항아리에 널판 두 개를 걸쳐놓은 측간, 그 한 쪽에 쌓인 잿더미. 장터 가는 길모퉁이에 서 있는 대장간 화덕에 벌겋게 달구어진 낫과 호미의 모습. 토방 위에 쪽마루, 쪽마루를 향해 남쪽으로 나 있는 창호지 발린 여닫이문. 문고리 언저리에 아주까리 잎사귀 박아 넣은 창무늬, 방 윗목에 요강, 아랫목에 횃대. 안채에 떨어진 행랑채에서 새끼를 꼬거나 삼태기를 엮으면서 엊그제 장터에서 귀넘어들었던 이야기를 주고받는 어른들.

 

이렇게 주섬주섬 주워섬기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네. 이렇게 내가 자라던 시골 풍경을 되새기는 까닭이 있네. 쓰레기와 쓰레기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기준은 흙으로 된 것이냐,아니냐를 바탕으로 해서 세울 수도 있지만, 삶의 구조와 그 구조를 낳은 기능을 바탕으로 해서 세울 수도 있다는 거지. 이를테면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쓰레기 아닌 것이 없네. 끼니 때마다 생기는 음식 찌꺼기에서부터, 수세식 변기를 타고 엄청난 양의 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는 똥, 오줌. 세제 거품과 함께 개수대를 가득 채운 설거지 물, 온갖 종류의 상품 광고지며 포장지, 구겨서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파지,빈 치약통과 솔이 휜 칫솔, 볼때기가 터지고 밑창이 닳은 구두……. 만일에 내가 근대화 바람을 외면하고 내 어린 시절의 전통적 삶의 양식을 고집했다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던 자원들이 새로운 삶의 양식을 선택하자마자 쓰레기로 바뀌어 버린 것일세.

이렇게 이야기를 바꾸어 보면 어떨까? 평생을 농투성이로만 살아오던 어떤 늙은 부부가 도시 아파트에 사는 아들을 보러 처음 상경해서 받게 되는 문화의 충격을 그려보는 방식으로 말이야. 이 노부부가 밤에 아들의 아파트에 들어섰다고 치세. 아주까리 기름으로 어둠을 밝히는 데 습관이 된 이 노부부에게 현관에서부터 마루, 부엌, 방마다 환히 형광등으로 밝혀진 아들의 집은 너무 밝아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지경일 걸세.

 

아버님 어머님,시장하시지요. 식탁에 음식을 준비해 두었으니, 어서 드세요.”

 

노부부는 입에 맞지 않는 인공 조미료로 뒤범벅이 된 인스턴트 식품이 절반 이상 되는 밥상에서 몇 숟갈 뜨다가 일어서는데, 며느리가 달려들어 설거지를 하네. 조금 뜨다 만 온갖 반찬 다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반 넘어 남긴 밥도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빈 그릇을 씻는데, 거품이 북적북적 이는 합성 세제를 써서 그릇마다 반질반질 닦아 내고 한없이 쏟아져 내리는 수돗물로 헹구어 내네. 할머니는 기절을 할 듯이 놀라서 손을 내저을 걸세.

 

야 야, 아가. 아까운 음식을 그렇게 버리면 죄로 간다. 두고두고 먹다가 쉬면 개나 돼지를 주더라도, 아껴야지.”

 

음식 찌꺼기가 쓰레기로 바뀌는 일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온 촌 노인의 눈에 며느리가 끼니 때마다 별 생각 없이 해 온 행동은 벼락 맞을 짓일 거야.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할머니는 그릇 씻은 물까지 조심조심 따라 내서 밑에 갈앉은 찌꺼기는 개나 돼지 먹이로 간직하는 데 습관이 들었던 걸세. 처음 보는 신식 며느리에게 호통을 칠 수도 없고, 안으로만 뜨악해 하는데, 마침 오줌이 마려운지라 할아버지가 요강을 찾느라고 아들을 부르네.

 

얘야, 요강 어디 있냐?”

아 참, 아버지, 제가 깜빡했어요. 이리 오시죠. 소변은 화장실에서 보시고 이렇게 이 꼭지를 누르면 됩니다.”

고의춤을 내리고 일을 본 뒤에 꼭지를 누르니 맑은 물이 한없이 쏟아져 내려 오줌을 냄새마저 없이 감쪽같이 없애버리는 걸세.

쯧쯧, 요강에 누어서 소매통에 비웠다가 밭에 뿌리면 좋은 거름이 될 것을 이렇게 함부로 버리다니, 게다가 이 아까운 물까지.”

 

할아버지도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노인네들이라 잠이 없기도 하려니와 자식과 손자들을 오랜만에 만났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아들 내외와 손자들까지 주말 연속극에 빠져서 갓 올라온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눈길 한번 제대로 돌리지 않네. 할머니는 젊은 시절 우물가나 빨래터에서 동네 아낙들과 무시로 떠들던 화목했던 장면이 떠오르고, 할아버지는 지금 당장에라도 벌떡 일어서서 동네 사랑방에 가고 싶은데 그럴 형편이 안 되어 울적한 나들이가 되어 버렸네.

 

반 세기도 흐르기 전에 거의 모든 측면에서 극단적인 단절을 보이게 된 농촌의 삶과 도시의 삶의 이러한 대비는 어떤 뜻을 지니고 있을까? 또 의심쩍고 비인간적인 모습을 띠고 있기는 하나 그 나름으로 편한 도시의 삶을 마다하고 비어 있는 시골집으로 찾아가 생전 해본 일이 없는 농사에 매달리려는 자네의 결심 뒤에는 어떤 생각이 도사리고 있을까?

 

하싼 파티라는 이집트의 건축가가 있었네. 하싼은 시골 부엌 아궁이 하나를 바꾸는 일도 오랜 관찰을 통하여 여자들이 음식을 만드는 동안 어떻게 몸을 움직이는지 꼼꼼하게 분석한 뒤에라야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이지. 그리고 대장균인지 장구벌레인지가 많이 살고 있다 하여 당장에 마을의 공동 우물을 없애고 집집마다 부엌에 수도를 놓는 것이 제대로 된 근대화가 아니라는 것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네. 이 사람 생각에 따르면 수도가 온갖 이로운 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세밀하게 검토한 뒤에 설치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거지.

 

마을의 아낙네들, 더구나 과년한 처녀들에게는 공동 우물로 물을 길러 가는 것이 마실을 가는 유일한 기회이고, 우물가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음으로써 스스로 사회적 존재임을 확인하고, 또 먼발치에서나마 인근에 사는 떠꺼머리 총각들에게 선을 보일 수 있는 좋은 빌미가 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고루해 보이는 전통의 엄격한 틀이 실제로는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중요한 실용적 목적에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는데, 만일에 우리가 공동 우물을 없애 버린다면 실생활에서 쓸모 있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 하나가 죽어 버리고 만다는 걸세. 이런 관점에서 하싼은 표준화된 모델 하우스에 따라 지어진 수십 수백만 채의 서민 주택이 전혀 사람들의 주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네. 주택 문제의 해결과 삶의 편의라는 이름으로 집주인이 열쇠 하나만 당장 받아 들고 닭장집을 찾아 드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 된 것은 우리의 경우에 최근 이십 년 안팎의 일일세. 우리네 아버지 대만 하더라도 집 두 채가 똑같이 지어진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에 속했지. 하다 못해 개미나 벌, 까치나 제비도 제 집은 제 손으로 지어 사는데, 사람이 손과 머리를 가지고 자기에게 알맞은 보금자리 하나 꾸미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돼. 종합 병원에 환자들이 아무리 북적거려도 그 사람들은 당신은 위장병 환자, 당신은 심장병 환자, 당신은 편도선 쪽, 당신은 맹장 쪽, 이렇게 대강대강 줄을 세워서 한꺼번에 수술하고 약 지어 주고 등 밀어 집에 보내는 법이 없거늘, 사람이 일생을 두고 살거나 대를 물려서 살 소중한 주거 공간이 그 안에서 살 사람들의 소망이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거야. 만일에 획일적인 처방에 따라 기계로 하루에 수천 개씩 맹장을 잘라낸다면 환자들은 떼죽음을 할 것이고, 만일에 일렬로 똑같이 지은 집에다 여러 가족을 한꺼번에 수용한다면 이들 가족 안에 살아 움직이던 무엇인가가 죽어버릴 것이라는 게 하싼의 의견이라네. 특히 서민들일수록 그런 폭력적인 주택 정책에서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는 거지.

 

어디 이런 게 주택 정책에 한정된 문제이겠는가? 하싼의 책을 읽다가 문득 전에 누구한테선가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네.

열대 아프리카에 백인 선교사가 왔다네. 와서 보니 원주민들이 죄다 벌거벗고 돌아다니거든. 이 선교사는 대낮에 사람들이 벌거벗고 다니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짓이라고 판단했다네. 그래서 본국에 긴급히 연락을 했지. 벌거벗고 사는 원주민들에게 옷을 보내 달라고 말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옷이 왔네. 선교사는 이 원주민들에게 옷을 입는 것이 하느님 눈에 좋아 보이는 길이라고 설득해서 드디어 모든 원주민들에게 의상 문화라는 것을 성공적으로 이식시킬 수 있었다네.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선교사는 그 마을을 떠나야 했네. 왜냐고? 마을의 원주민들이 죄다 감기에 덧친 폐렴에 걸려 깡그리 죽어버렸기 때문이지. 까닭인즉슨 이렇다네. 이 열대 지방에서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소나기가 내리는데, 발가벗고 살 적에는 미끄러운 맨몸을 타고 빗방울들이 깨끗이 흘러내려 탈이 없었는데, 옷을 입기 시작하자마자 상황이 바뀐 거야. 한번 비에 젖은 옷은 쉽사리 마를 줄을 몰랐지. 게다가 옷이 햇볕을 받아 마르기 시작할 때나 체온으로 마르기 시작할 때에 몸에서 빼앗아 가는 열량은 엄청났다네. 자네도 기억하지. 물이 수증기로 바뀔 때 얼마나 큰 기화열이 필요한지 말이야. 감기를 모르던 원주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감기에 걸리지 않을 수 없는 끔찍한 신문화(新文化)에 노출되었으니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는 아무나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나. 그래서 원주민들을 모두 요단강을 건넜으니,할 일 없는 선교사는 대서양을 건너야 했겠지.

 

지금까지 지껄인 이런 일들이 죄다 저놈들짓이고, 우리와는 아예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면 얼마나 다행이겠나. 그러나 이제까지 우리도 이런 일을 늘 저질러 왔고,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해서 저지를 것 같으니, 그것이 안타까운 일이지.

연암은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 ()이 중국의 주인인 당시에 중국에서 유행하는 진보 사상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살펴서 우리도 주자학을 숭상한다고 외치며 천하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허랑한 선비들의 마음을 달래 이들로 하여금 날마다 주자학에 대한 연구서와 주석서를 산더미처럼 쌓아 올리는 데 골몰하도록 만듦으로써 진시황처럼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할 필요도 없이 지식인들과 백성들의 대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말일세.

 

아아,슬프도다. 책을 사들이는 재앙이 태우는 재앙보다 더 심하다는 말은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연암이 전하는 당시 뜻있는 중국 지식인의 한탄일세.

 

자네의 시골 행이 이 모든 것을 깨달은 무언(無言)의 실천이기에 나는 자네의 그 행동을 삐딱하게 생각하지 않네.

 

하싼의 말을 옮기네.

 

문화는 뿌리에서 샘솟아

초록빛 피와 같이 세포에서 세포로

온갖 새순에, 잎과 꽃과 눈에 스며,

비가 내리면

젖은 꽃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냄새로

우러나 대기를 채운다.

그러나 위에서부터 사람들 머리에

쏟아 부은 문화는

곧장 눅눅한 설탕처럼 엉겨 붙어

사람들을 설탕 인형처럼 바꾸고

생기를 주는 소나기가 몸을 적시면

끈적거리는 찌꺼기로 녹아 없어진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자네 있는 곳에 한번 가야지. 머지않아 자네 마을 막걸리 맛볼 수 있겠군. 잘 있게나.


윤구병. 현재 충북대 철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교육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청소년에게 주는 생활 속의 철학이야기인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좋아와 교육론집 교사와 이데올르기를 여러 사람과 함께 냈다.


 

개인별 탐구 과제

1. 1에서 인디언 추장이 생각하는 삶의 방식은 무엇인지 정리해 보자.

2. 1에서 백인들의 삶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무엇인가.

3. 2에서 필자는 쓰레기와 쓰레기가 아닌 것을 어떤 기준으로 가르고 있는가.

4. 2는 네 개의 예화가 들어 있다. 각각의 예화가 함축하고 있는 뜻은 무엇인 가.

 

 

모둠별 토의 주제

1. 두 글에서 비판하고 있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우리 삶의 주변에서 찾아 서 정리해 보자.

2. 두 글에서 비판하고 있는 도시적 삶에는 긍정적인 요소가 없는가. 있다면 그 것을 찾아 정리해 보자.

3. 현재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환경보호 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 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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