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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와 기성 세대의 윤리적 갈등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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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와 기성 세대의 윤리적 갈등

 

 

 

우리는 흔히 '우리'라는 단어를 아무런 저항감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는 사람이 ''의 마누라, ''의 자식, ''의 엄마 또는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는 말을 사용해도 대부분 그 말하는 사람의 부인, 자식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요즈음에는 의도적으로 ''의 마누라, ''의 자식이라는 식의 표현을 쓴다. 이처럼 우리가 공동체 의식을 담고 있는 '우리'라는 단어를 아무런 저항감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문화, 철학, 사상을 지배하고 있었던 유학사상의 개인보다는 '우리' 즉 집단을 우선시하는 집단 의식, 공동체 의식이 우리에게 '우리'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우리'라는 의식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개인주의적 사고가 유입되면서부터 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을 평가할 때, "그는 개인주의적이야"라고 하면 마치 상대방의 이기주의적 속성을 비난하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아직 개인주의라는 단어를 백안시 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경우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인주의라고 하면 이기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듣는 사람도 자신을 비난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개인주의란 각자의 개성을 바로 하고 가꾸고 확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개성도 소중하지만 타인의 개성도 소중하다는 정신이 깊이 깔려 있다. 이 개인주의는 다원주의의 뿌리를 이루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존적 자아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 진정한 의미의 개인주의는 이처럼 공동체 의식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의 개인주의는 남이야 어떻든 나만 잘살면 된다는 파괴적 이기주의로 인식되고 있다. 이렇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특히 개인주의는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세대와 연관하여 말하고 있는 개인주의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의미를 지닌다. 개인주의도 더불어 산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제약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점은 잘 인정되지 않는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농경 사회를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유가의 사상, 윤리였다고 할 수 있다. 농경은 집단의 노동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대가족 중심의 사회가 요구되고 따라서 혈연관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된다. 혈연을 중시하다 보니 이 사회는 법과 제도가 있지만 정을 매우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으로는 법치보다 인치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정은 속성상 보존과 현상 유지를 좋아하지 변화나 개혁을 좋아하지 않는다. 변화는 기존의 관계가 깨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정으로 맺어진 인간 관계는 개성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 버린다. 정의 관계는 나의 인격과 타인의 인격이 합쳐지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 말해서 너도 없어지고 나도 없어지는 개성 증발의 상태가 나타난다. 정이 많은 사회에서는 개인 중심의 다원주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농사는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연장자, 노인을 중시하며 그들의 말 한마디는 권위가 있고 의사 결정권이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다만 순종만이 있을 뿐이다. 그 결과 권위주의가 만연하게 된다. 획일화된 사회가 형성된다. 농사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이주와는 거리가 멀고 한 곳에 정착하면서 살기 때문에 뿌리의식이 강하고, 오랜 기간 타인과 함께 삶을 유지하기 때문에 주변 인물들을 다 알게 되므로 비도덕적 행위는 금물이다. 즉 예의염치를 무엇보다 강조한다. 아울러 가문의 명예를 위하여 부단히 입신양명을 꾀한다. 특히 체면을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허례허식을 야기한다. 일반적으로 내면의 욕구보다 체면이나 형식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눈치로 자기 행위가 규제되는 수치(羞恥) 문화의 사회에서는 장인 정신과 성취 동기가 강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동양의 문화를 수치의 문화이고 서양의 문화를 죄의식의 문화라고 했는데, 전자의 경우는 인간의 행위가 수치에 의해서 규제되고 후자의 경우는 죄의식에 의해서 규제된다고 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나 개성은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고 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주체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보다는 타인, 집단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그 사회는 안정을 획득할 수는 있지만 획일화될 가능성이 많다. 그 집단의 안정을 위해서 개인은 욕망을 절제할 것을 강요당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신세대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개성을 추구하고 나만의 것, 자신만의 공간을 고집하는, 그렇다고 타인의 삶의 공간도 침해하지 않는 개인주의적 속성이라고 본다. 매스컴에서도 옷을 선전하건 구두를 선전하건 모두 나만의 개성을 강조한다. 기성 세대들은 그런 광고를 보고 지나치게 자기만을 주장하는 까닭에 신선하다는 평가보다는 개인주의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는 기성 세대와 신세대가 혼재되어 있고 유교 윤리에 익숙한 기성 세대의 경우 현실적으로 욕구 분출을 하거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를 꺼려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나를 중심으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았고 항상 '우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화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신세대들은 과거의 이상과 같은 사회 분위기에 정면으로 맞서고 도전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신세대들의 이런 행위는 사춘기 청소년들이 으레 한번쯤 시도해보는 단순 반항과는 질적인 차이가 난다. 그것은 자기 표현이 획일적이었던 시대, 몰개성화가 만연하던 세대에 대한 창조적인 반항이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들은 소비를 통해서건 아니면 컴퓨터를 통해서건 자신들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자기를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성 세대는 전쟁 후의 폐허 위에서 찢어질 듯한 가난을 겪은 세대로서, '하면 된다,' '잘 살아보세'라는 대중적 성장 이데올로기 아래 앞만 보고 달려온 성장 제일주의 세대였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것도 욕망 긍정의 차원이 아니라 정권에서 내건 슬로건을 그냥 무비판적으로 따라 행한 것에 불과하다.

 

신세대라 불리는 일군의 젊은 세대 집단은 거의 모두가 60년대 중, 후반 혹은 70년대 초반의 절대 빈곤을 경험하지 않았고, 먹는 것도 이제는 양으로서가 아니라 질적으로 골라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잉여의 혜택을 누린 세대이다. 현단계 우리 나라의 자본주의를 그 양적 규정성의 차원으로 볼 때 이제는 생산 중심주의에서 소비 지상주의로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새 주인이 바로 신세대이다. 즉 한 사회 내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지위에 있어서 신세대들은 생산자라기보다는 소비자이며 문화적으로는 자본주의 대중 문화 혹은 소비 문화의 주요 고객이자 향유 계층이다. 그들은 성장 지상주의로 규정되는 그들의 부모 세대가 축적한 경제적 잉여를 바탕으로 막강한 구매력을 과시한다. 즉 이들은 이전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풍부한 경제적 잉여를 생산하기 시작했던 시기에 태어나고 이것들을 충분히 향유하면서 성장한 세대이다.

 

지금의 신세대를 신세대라는 고유 명사가 붙도록 한 90년대 초의 사회적 조건의 하나로는 영상 매체의 발달, 컴퓨터나 뉴미디어와 같은 새로운 첨단 기술 매체의 영향, 그리고 무엇보다도 칼라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필두로 하는 대중 매체의 확산과 이를 통한 대중 상품의 일반화를 들 수 있다. 더구나 전자파를 통한 빠른 정보는 서구 문화를 순식간에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이 세대는 서구 문화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하게 된다. 양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만으로 철창 신세가 되었던 기성 세대와는 다른 문화, 다른 삶의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의 의식도 기성 세대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 사회에서 중시하는 상하의 위계성과 서열, 엄격한 예절과 복종 등의 규범 체계는 신세대들에게 아래 사람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며 권위를 내세워 무조건 복종하라는 명령일 뿐이기 때문에 불만스러운 것이다. 그에 따른 갈등의 모습들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신세대는 이런 사회적 추세에 민감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즉 요즈음 우리 사회의 한쪽에서는 유교 문화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가부장제, 장노 사회, 남근 중심주의, 권위주의, 수직적 상하 관계 등이 점차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소비를 통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첨단의 문화 산업들을 향유하며 자신들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는 신세대의 모습이 있다. 이러한 신세대는 한편으로는 부모, 학교, 국가 권력 등으로부터 유교적 덕목을 교육받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구체적인 삶의 차원에서는 이러한 덕목들이 전혀 통하지 않는 첨단의 자본주의를 먹고 마시고 경험한다. 그들은 수직적 상하관계와 비합리적 권위, 요지부동의 남성 중심주의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대들고 따지고 맞섬으로써 그들만의 공공 영역을 확보하고 넓혀간다. 여기에서 기성 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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