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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예의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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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영국에서  우리나라 어학 연수생 한 명이 피살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보도장면을 보니, 그 학생의 죽은 자리에 꽃다발이 여럿 놓여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특별히 유명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사연이 있지도 않았고, 무슨 정의로운 일을 하다가 죽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영국 사람도 아니었고, 특별히 영국을 위해 기여한 것도 없는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는데, 그 죽음의 자리에 꽃다발들이 놓인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저 먼 나라, 한 학생의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사뭇 진지해서 숙연했습니다. 

언뜻 화면에 스치는 걸 보니 그 꽃다발들 속에 ‘I am sorry we could not save you'라는 글귀도 보였습니다.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의미 정도가 될까요. 이 익명의 죽음에 대한 그들의 대응을 보면서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비록 형식적 수사(?)일망정, 한 개인의 죽음을 개인의 죽음으로 보지 않고 공동의 아픔으로 볼 줄 아는 이웃들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 같은 살인 사건이 났다고 가정해 보았습니다. 살인 사건이 난 자리는 기피의 대상이 되고, 또 그 살인사건은 호사가들의 값싼 이야깃거리나 되지나 않았을까. 얼마의 돈을 들여 꽃다발을 사고, 아픈 마음을 담은 글귀를 준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생명에 대한 긴장감이 떨어져서일까요. 타인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너무 한가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나와 내 주변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면요.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이들에게 꽃다발이나 포스트잇을 쓰는 문화가 조금씩 정착되어 가는 듯 합니다. 그 죽음이 누군의 것이듯 망자에 대한 연민은 좋은 마음으로 여겨집니다. 그것은 산 자에 대한 존중감이기도 하니까요.

 

© by_syeoni,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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