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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의 수용 자세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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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의 수용 자세

 

 

산업 기술 부문에서의 높은 대일 의존도와 우리의 자립을 위한 기술 개발의 필요성

 

우리의 경제, 사회, 문화에 스며드는 신일제(新日帝)의 영향력이 이제 가공스러울 정도이다. 우리의 경제, 특히 산업 기술 부문은 대일(對日) 의존도가 높아져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는 지탱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나라에서 도입한 외국 기술 중 절반 이상이 일본 기술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 62년부터 9111월까지 도입된 기술은 74백 건으로 전체의 50.6%를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 기업들의 생산 설비는 괄목할 만하게 자동화로 바뀌고 있다. 특히 노사 분규가 심해지면서 노동 집중형의 생산라인이 설계 자동화로 급격하게 전환되고 있으며 그 설계 자동화가 대부분 일본제 자동화 기계들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본 기계들이 한국의 생산 공장들을 장악,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닐 것이다. 일본 시설재에 의존하고 그 시설에 맞는 부품들을 들여와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산업 구조 때문에 우리의 대일 무역 역조 개선은 백년하청(白年河淸)이다. 우리가 아무리 기술 이전을 요구한다 해도 일본은 이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자립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의 기술로부터 자립해야 한다. 기술의 자립을 위해서 우리의 기술력을 향상시키는 길 이외에 다른 정도(正道)가 없을 것이다.

 

 

일본 문화의 파급 상황

 

일제는 36년간 우리들 지배했던 찌꺼기들을 고스란히 남겨 놓고 물러갔다. 그런데 일제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에서 우리에게 남겨 놓은 찌꺼기들이 아직도 말끔히 청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일본의 문화가 쳐들어오고 남겨진 찌꺼기들이 오히려 더 큰 덩어리로 확대되고 있다. 오늘날 사회, 문화 부문에 파고드는 일본의 영향력은 우리의 의식을 일본식으로 바꾸어 놓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다. 이 시점에서 다시금 우리에게 미치는 일본의 영향력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들어서는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서 일본말 가게 이름과 간판에다 건물 외관까지 일본식으로 꾸민 음식업소들이 크게 늘고 있다. 마치 일본의 어느 도시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라고 한다. 요리 이름도 일본 그대로고 맛도 일본에서 다년간 연수한 연구진에 의해 일본식 그대로 들여왔다고 선전한다고 한다. 이런 고급 음식점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음식, 술집, 노래방 등도 일본식 이름부터 일본식 음식, 일본식 노래가 나온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한편으로는 일본 문화를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풍에 쉽게 매료당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의식 구조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두 문화가 접촉하면 양쪽이 변용하기 마련이다, 일본 문화가 상위이고, 우리가 하위라면 일방적으로 우리 문화가 영향을 입을 것은 틀림없다. 우리의 문화를 향상시키지 않는 한 우리의 것을 잃어버리고 일본 문화권에 종속되거나 그 아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어떤 영향 미칠까

 

한일 대중 문화는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지역적으로 가까워서 정서적 바탕이 유사한데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50대 이후의 장노년층에서 일종의 향수를 느끼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만화를 제외하고는 아직 세계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내수용에 그치고 있는 점도 같다. 50년대 황금기를 구가하던 일본 영화는 이제 국제시장의 40%를 지키는데도 급급하며 비디오는 야쿠자 영화와 AV(성인용 포르노영화)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가요 역시 미국 팝스타들에 상당 부분 시장을 내준 상태. 미국의 독주에 속수무책으로 위축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대중 문화 산업의 규모에서는 양국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일본의 소니가 미국 할리우드의 컬럼비아를 소유하고 있는 데서도 읽을 수 있듯이 일본의 영상 산업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음반 산업도 국내 수요에 연연하는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만화 영화 산업은 월트디즈니사가 버티고 있는 할리우드를 전체 매출에서 55%45%로 앞서고 있다.

 

, 일 대중 문화 개방이 단계적으로 산업적인 측면으로 확대될 경우 우리 대중 문화 산업은 일본에 종속되거나 하청 산업화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때문에 대중문화개방이 세계적인 추세이며 개방을 통해 우리의 경쟁력을 기를 수 있다는 긍정적 계산 하에 개방을 허용한다 해도, 상당 기간 문화 교류적 차원에서 적절히 차단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대중 문화 산업이 이미 상당 부분 우리 나라에 들어와 있는 상태이다. 일본의 소니사가 실질적인 소유주인 컬럼비아 트라이스타가 미국 영화를 직접 배급하고 있으며, 소니 뮤직은 외국 음악의 음반을 제작, 판매뿐 아니라 국내 가수들의 음반도 직접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일본 만화 수입에는 "일본색이 없는 청소년물에 한한다"는 단서가 따라붙기는 하지만, 우리 청소년은 일본 출판 만화와 TV 영화 앞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일본의 영화 산업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1950년대를 정점으로 쇠퇴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영화계는 쇼치쿠 도호 도에이 등 연간 매출액이 2백억~5백억엔에 이르는 3대 메이저사가 제작과 배급을 장악, 외화의 공격 속에도 안정을 유지하며 45.1%의 시장 점유를 보이고 있다. 일본 영화는 장르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선정적이고 잔인하며 봉건 윤리적인 신분관을 바탕에 깔고 있어 우리가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 많다. 영화계는 일본의 상업 영화가 수입될 경우 상당기간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일본 영화를 본 후 "별 느낌이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4이어서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음반 부문에는 일본 가요가 개방될 경우 전체 음반 시장의 10% 정도를 일본 음악에 빼앗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일본 유흥 업소에서 사용하는 음악의 30% 정도가 한국 음악일 만큼 일본인들도 한국 음악을 좋아하고 있다. 일본의 대중 음악이 우리와 정서적인 공감대가 큰 반면 편곡과 녹음 등 기술적인 면에서 앞서 있으므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일본음악에 경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대중 문화의 본질

 

일본 대중 문화의 본질은 에로티시즘이다. 문화는 그 민족의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 민족의 성품과 관습이 그 본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중 문화는 고급 문화의 대립 개념이다. 엘리트층의 위세와 권위를 만족시키는 고급 문화에 반대되는 서민 대중의 일상 생활인 평민 문화를 말한다. 일본 대중 문화는 전통적인 에로티시즘을 모태로 한다. 유곽과 창녀, 혼용과 성교, 인신매매와 축첩, 복식과 침소, 춘화와 외설, 가무와 연극, 성기숭배와 음란무속, 강담과 변태, 심지어 고대역사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진한 에로티시즘이 깔려 있다. 그것이 오늘의 영화와 가요, 만화와 소설을 휩쓸고 있다.

 

세계는 지금 탕객의 대중 문화 시대이다. 미국 영화에서 상소리를 빼면 대사가 없어질 정도가 되었다. 유럽 영화도 알몸의 베드신을 빼면 스토리가 단절될 정도다. "꼭 껴안아 애무해줘"라는 열애의 가사가 없으면 일본의 유행가가 성립되기 어렵게 되었다. 이 물결이 미디어를 통한 연예로, 무대의 실연으로, 가라오케처럼 일상 생활을 통한 오락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문화 동태에 비하면 일본 대중 문화 개방 여부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너무 관념적이고 사변적이다.

 

 

일본 대중 문화 개방

 

"이제 일본 음악, 영화 등의 수입을 검토할 시기가 됐다. 일본 대중 문화를 음성적으로 들여오는 것보다 양질의 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고 본다."

 

주일 한국 대사의 일본 문화 개방을 공론화한 말이다. 이 발언을 계기로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한 공론화가 이루어져 한때 붐처럼 일본문화개방에 대한 여론이 분분하였다.

 

일본 대중 문화 시장의 개방 문제에 대하여 단계적으로 개방한다는 계획 아래 "왜색 문화"는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 넘쳐흐르고 있다. 일본에 대한 민족 정서, 문화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이 반대론자들의 주장 근거이며, 현실론과 세계화 개방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입 개방 문제로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일본 대중 문화는 영화, 비디오, 가요 음반, 만화 등 모두 4개 분야로 일본인의 사고 방식과 정서가 뚜렷하고 파급력이 크며 상품성이 매우 높은 분야들이다.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한 논점과 의견을 정리해본다.

 

 

1) 반대하는 이유

 

광복 50주년을 맞아 일본의 대중 문화에 대한 빗장을 열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 다. 그 여론의 진원지는 물론 일본이다.

 

자기 문화만을 고집하는 국수주의는 자칫 고립주의로 인한 문화 정체와 급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낙오와 도태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 섬처럼 떠있는 소수 종족의 운명이 이를 대변해준다. 반면 자기 문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정체성 수호의 의지 없이 타문화에 경도 되어 일방적으로 수용할 때 그 중심 문화의 변방으로 탈락해 종속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 나라는 우리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튼튼히 지키면서 외래 문화를 수용하는 슬기를 발휘해 양극단의 위험성을 극복했다. 양자를 조화시켜 보합하는 균형감각을 갖고 첫째, 대상 문화가 선진 문화인지 아닌지 따져보고 둘째, 그 문화를 꼭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당위성을 점검했다. 그 결과 수용의 단계에서는 자주적이며 주체적이었지 강요나 강압에 의한 적은 없었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문화 수입 대상은 조선이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일본 문화 발전의 원동력은 조선 문화였다. 포로로 잡혀간 도공을 비롯한 수많은 기능인들의 기술제고,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다량의 약탈문화재, 1611년부터 1811 년까지 계속된 조선통신사에 의한 문화 전파 등이 그것이다.

 

19세기 서구 열강에 의한 세계 질서 개편이라는 지각 변동은 일본에게 절호의 기회가 됐다. 1894년 청일 전쟁에 승리하자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황인종 단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동아시아 각국에 군국주의적 침략을 자행했다.

 

1910년에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정치, 군사적 무단통치와 경제적 착취 외에 우리의 민족문화를 철저하게 파괴, 말살했다. 자신들은 아직까지 천황을 신격화해 국민 단결의 구심점으로 삼고 있으면서 조선 국체의 상징이던 왕을 전근대적 전제왕권의 상징으로 매도해 궁궐을 대대적으로 훼절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경복궁(景福宮)이나 창덕궁(昌德宮)의 전각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선진국이었던 우리의 문화 역량을 파괴하고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른바 식민사관(植民史觀)은 아직까지 우리 학계가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제국주의 논리가 기본 틀이 돼 있는 식민사관은 제국주의가 잔존하는 한 유효하기 때문이다.

 

1945년 광복 후 남북 분단과 동족상잔의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생존문제 해결에 골몰했다. 이제 훼손된 문화 전통과 상처받은 민족적 자부심을 회복하려는 국민적 여망이 고조되고 있다.

 

일제통치 35년간 심어 놓은 친일파가 사망, 또는 고령화해 사회지도력을 상실했으므로 다음 세대인 청소년에게 문화적 동질성을 확산시켜 반일감정을 희석시켜 보려는 의도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미 불법 유통되고 있다는 만화, 비디오, 가요 음반 외에 영화까지 합쳐 막대한 문화 시장을 겨냥한 이중 전략임은 물론이다.

 

일본 대중 문화가 우리에게 이득이 될지 해가 될지 곰곰이 따져본 뒤 빗장을 열어도 늦어서 손해볼 일은 없을 것이며 개방과 수용은 우리의 판단과 필요에 의해 주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 찬성하는 이유

 

개방을 찬성하는 입장에서 제일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개방운운하고 있는 그 문화는 현실적으로 거의 다 이미 우리에게 개방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 유통되고 있는 만화의 거의 90%가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가라오케, 비디오 게임기며 소프트웨어가 모두 일제이고 일본에서 건너온 온갖 잡지들이 다른 인쇄물들과 함께 서울거리에 범람하고 있다. 위성 방송을 통하여 이곳에 가만히 앉아 일본의 대중 문화를 24시간 접할 수 있기도 하다. 이제 새삼 개방이라는 용어를 쓰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세계화, 국제화라는 용어를 앞세우고 지금 우리 나라는 상품과 문화를 들고 세계에 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마치 세계에는 더 이상 어떤 국경도 없는 듯, 지구 전체가 하나의 작은 이웃마을처럼 바뀌어 버린 듯, 지금 우리는 열심히 뛰어다니며 우리의 상품과 문화를 팔고 있다. 이처럼 나의 문화는 밖으로 내보내면서 남의 문화는 안 받겠다는 태도가 가능한 시대는 아니다.

 

공식적인 개방은 일본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저질 문화의 대대적인 유입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들을 나타낸다. 그러나 개방이 방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는 그런 저질 문화를 걸러내는 공식적인 그리고 비공식적인 기구들이 있다. 오히려 공식적으로 개방함으로써 이런 기구들의 단속 없이 음성적으로 마구 유입되는 나쁜 문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저질 문화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청소년 보호와 자국 문화 보호를 이유로 내세워 반대를 한다. 마치 일본의 대중 문화가 들어오면 우리의 청소년들이 곧 퇴폐주의에 빠지고 우리 문화는 쇠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청소년들과 우리 문화는 이미 몇 십 년간의 미국 문화 유입을 꿋꿋하게 이겨낸 경험을 갖고있다. 미국 문화는 건강한 문화만은 아니다. 지금도 우리 영화관에서는 미국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저질 영화들이 끊임없이 상영되고 있다. 그런 문화 속에서 우리 청소년들은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를 찾겠다는 건강한 운동을 펼쳐 왔으며 우리의 전통 문화는 어느 때보다 건전한 모습으로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일본 대중 문화의 개방은 오히려 우리 청소년들에게 저질 문화를 이겨내는 면역을 키워줄 것이며 우리 문화에는 내성이 강한 자생력을 불어 넣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선별된 고급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됨으로써 우리의 문화 생활은 그만큼 윤택해질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문화 일색인 우리 문화계가 더 다양해진다는 이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3) 일본 문화 개방과 국민적 정서 문제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한 가장 큰 걸림돌은 일제 침략 35년에 대한 국민 감정이다. 정신대에서 꽃 같은 인생을 망친 우리의 어머니들, 징용터에서 그리고 싸움터에서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은 우리의 아버지들, 말과 이름과 모든 것을 빼앗겼던 우리의 과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대중 문화의 개방과 그러한 국민적 감정이 실제로 어떻게 관련되는지 한번 냉철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일본 대중 문화 개방에 대한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이 나타난다. 적어도 역사적 감정 때문에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의 비율은 급격히 줄고 있다. 그 비율이 80년대만 해도 70~80%에 달했으나 이제는 20~30% 수준에 불과하다.

 

국민들의 정서적 반발이 줄어듦에 따라 정부로서는 개방을 본격화할 명분을 얻고 있는 셈이다. 우리 대중 문화를 국제화 다양화하려면 더 이상 쇄국 정책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일본 대중 문화는 정서 문제가 해소됐다고 쉽게 개방할 사안이 아니다.

 

 

4) 성급한 개방 조치가 부를 폐해

 

성급한 개방 조치는 엄청난 폐해를 부를 수 있다는 게 문화계와 관련 학자들의 중론이다. 이들이 지적하는 개방의 문제점은 4가지로 집약된다.

 

 

일본 문화 상품의 퇴폐성이다.

 

영화, 만화, 비디오 게임 등과 같은 일본 대중 문화 상품이 가지는 퇴폐성이 다수 국민이 개방을 반대하는 원인이다. 물론 개방이 고급 대중 문화 유입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불법적 유통이 오히려 저질 문화가 판을 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대중 문화의 주류는 퇴폐적이다.

 

98년을 기점으로 일본 대중 문화를 전면 개방하자고 주장했던 서울대 김문 교수(미학과 )조차도 일본 대중문화는 성도착적 경향을 지녔다고 분석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국내 영화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연간 3백여 편씩 제작되는 일본 영화 중 예술성을 갖춘 것은 10여편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는 모두 폭력 에로물들로 분류된다.

 

 

일본 대중 문화 자체의 독창성 결여

 

실제로 일본 대중 문화는 일본제 서양풍에 가깝다. 일본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어느 해인가 여름에 압구정동이나 신촌 거리를 휩쓸었던 배꼽티만 해도 원산지는 미국이다. 우리가 받아들이기를 <논노> 등 일본 청소년 패션 잡지의 국내판을 통해서 했을 뿐이다.

 

 

일본 대중 문화 모방으로 인한 주체성 상실과 독자적 발전 방해

 

일본 대중 문화 중 국내에서 압도적으로 경쟁력이 센 분야는 역시 만화와 만화 영화이다. 이미 60년대부터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기 시작한 일본 문화 번역본 사본은 한국 만화의 독자적인 발전을 방해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 시기에 많은 젊은 만화가들은 일본 만화를 교과서로 삼아 기량을 닦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최대의 만화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은 성인용이라기에는 유치하지만 아동용으로 보기에는 폭력이나 성 묘사가 지나친 청소년 대상의 만화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다. 이러한 눈에 보이는 저질성 외에도 일본식의 미묘한 출세주의나 이기적 생존 윤리를 바닥에 깔고 있는 작품이 많아 우리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이 만만치 않다. <드래곤볼> , <시티 헌터>가 엄청나게 성공을 거둔 데 이어 최근에도 농구 만화 <슬램덩크>가 무려 250만 부 넘게 팔리는 등 일본 만화의 위세는 쉽사리 꺾일 것 같지 않다.

 

가요도 실제로 여행 자유화 이후 일본 음반의 밀반입이 급속도로 늘어나 일부 레코드 가게에서도 일본 음반을 공공연히 판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또 압구정동이나 홍대 앞 등에는 하루 종일 일본 노래만 틀어 주는 카페가 성업 중이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국내 인기 가수들 중 일본 음악을 자신의 음악적 기본으로 삼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것이다. 공륜 심의에서 일본 가요의 표절이라는 판정을 받은 곡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TV 방송의 일본 방송 모방이나 표절도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프로그램 모방은 일본 TV 방송에서 한국 방송의 '일본 프로 베끼기'를 특집으로 꾸미는 등 국제적 놀림감이 된 바 있다. 모방의 정도가 특히 심한 분야는 퀴즈 게임 프로그램이 가장 많이 지적되고 있다. 10대의 오락, 연예 정보 프로그램 대부분이 일본 것을 모방하고 있다.

 

일본 문화의 국내 진출에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일본 위성 방송이다. 현재 위성 방송 수신 가구는 전국적으로 50-60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상당수가 아파트 등을 통한 집단 수신이어서 실제 위성 방송 시청자 수는 이미 3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본다.

 

 

한국 문화의 경제적 근거 위협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는 그 자체가 시장 논리를 따르는 경제적 상품이다. 자본주의의 문화 상품의 시장 경제력은 자본력과 기술 수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경제력에서 월등한 일본이 그것을 기반으로 우리의 문화를 잠식할 것이다.

 

 

5) 일본 문화 수입을 앞둔 상황에서의 지향해야 할 인간상

 

일본 문화든 미국 문화든 우리의 문화를 외래 문화의 침략으로부터 지켜 내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문화 투쟁에 임해야 한다. 문화 투쟁은 단순히 애국심에 의존하여 일본 문화를 배척하자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문화를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면서 재창출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 문화랍시고 으리으리한 박물관에 박제시켜 보관해 놓고 행사 때나 끄집어내어 구경거리로 즐기는 건 죽은 문화이지 살아 있는 문화가 아니다.

 

여론 조사를 해 보면 우리 국민은 절대 다수가 일본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적대감은 일과성(一過性) 감정의 문제일 뿐 경제, 문화 상품의 소비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문화 투쟁이 사고나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과 실천의 문제여야 한다는 필요성이 발생한다.

 

우리는 문화를 끊임없이 삶에 밀착시키는 문화 투쟁과 더불어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화의 하부 구조가 절대적으로 열등한 상황에서 일본 문화를 배격하자는 결의는 소수의 문화 운동가들에게는 얼마든지 실천 가능한 일이겠으나 우리가 지향하는 자주적 문화의 궁극적 주체는 일반 민중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비판 능력이 성숙되지 않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문화 판매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 국내에 침투하는 일본 문화 상품에 대해서는 판매자와 소비자를 불문하고 높은 세금을 매겨 일본 문화 상품의 사용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두는 동시에 그 재원(財源)을 청소년의 건전한 놀이 공간을 확보하는 데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대중 문화 소비자의 절대 다수가 청소년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에 청소년을 일본 문화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국가의 백년 대계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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