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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어 보호와 사랑에 대한 고찰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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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어 보호와 사랑에 대한 고찰

 

 

프랑스에는 '프랑스어 사용에 관한 법'이 제정될 전망이라고 한다. 이 법안의 제안자인 '자크 투봉'의 이름을 따서 간단히 '투봉안'이라 불린다.

 

이 법안은, 프랑스 내에서의 모든 의사 소통은 프랑스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이 말은 뒤집어서 생각하면, 현재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만 알아서는 불편한 일을 겪기도 한다는 말이 된다.

 

이 법안은 간단한 일상 소비 생활에서부터 사업, 교역, 문화, 연구 활동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침투한 영어로부터 프랑스어 사용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되어 있다. 같은 의미의 말이 존재할 경우 외국어 사용을 금하고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할 것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거나 오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외국어 35백 단어를 프랑스어로 옮긴 사전도 편찬되었다.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이 법안의 내용을 어기는 사람에겐 상당한 벌금을 물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

 

언어는 국민 정신의 반영이라는 견지에서 법적 강제에 의한 국어 사랑 운동을 찬성할 수도 있고, 국어 사랑 운동 그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강제하는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논리를 전개할 수도 있다.

 

동일한 사상(事象:사물과 현상)을 가리키는 말에 자국어(自國語)와 외국어(外國語)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에 외국어를 말하면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의 의문이 생긴다. 이는 언어 사용을 법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문화는 물이 흐르듯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게 마련이다. 문화의 대표적인 한 유형인 언어도 마찬가지로 본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언어가 다른 나라의 언어로 흘러 들어가 그 나라의 언어 속에 혼용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프랑스가 자국어를 보호하기 위해 벌금을 물리기로 한 결정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문화 현상을 잘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발상이 아닌가 한다. 영어로부터 프랑스어 사용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같은 의미의 말이 프랑스어에 존재할 경우 외국어 사용을 금하고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할 것을 명문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언어의 자연발생관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일종의 국수주의적 태도로 볼 수 있다. 또 국민의 언어 생활에 공권력이 개입하여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은 민주 사회에서 부적합한 발상이다. 그리고 그 실효성도 의문이 간다.

 

 

우리가 영어 단어를 말한다고 해서 벌금을 부과한다고 생각해 보라. 외국어를 사용한다고 하여 벌금을 물린다면 그것을 누가 성실히 집행할 것인가. 사적인 자리에서는 여전히 외국어를 쓰지 않겠는가, 언어 생활에도 공권력의 감시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국민들의 언어 생활은 불편하지 않겠는가 등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국어 사랑 운동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순수하게 범시민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어야지 그것이 법적으로 강제성을 띠게 되면 이상과 같은 문제점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에 보이는 애착이 유별나다는 점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 덕분에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영어로 길을 묻는 외국인에게는 영어를 알아도 대답 안 하는 민족이라는 말이 붙어 다닌다. 실제로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그 나라 말 한두 마디 정도로 성의를 보이는 관광객은 환대 받게 마련인데 유독 프랑스에서만은 사정이 다르다. 프랑스 사람들의 사고 방식으로는 프랑스에 발을 디디는 사람이면 누구나 프랑스어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나랏말의 건강 여부는 국운을 재는 잣대라는 강박 관념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이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영어가 나날이 국제 무대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의사 소통 수단으로 군림하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프랑스어가 과거에 누렸던 영화를 빼앗기는 데 대한 반작용이 이와 같은 법안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영어라는 특정 언어가 세계 언어로 군림하는 데서 오는 위험도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은 비단 프랑스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문제로 이동될 수 있다. 전국 곳곳에 빼곡이 들어찬 국적 불명의 간판, 한글이라고는 한 자도 찾아볼 수 없는 옷가지와 장난감, 학용품 등의 범람을 보며 우리말의 미래는 과연 어떠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섣부르게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것이 세계화에 발맞추는 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국어를 바르게 구사하는 사람만이 외국어도 정확하게 잘 배울 수 있다는 언어학자들의 공통된 지적 또한 더 늦기 전에 되새겨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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