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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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여러 모습 내지는 원천을 갖는다. 힘의 모습이나 원천의 중요한 하나는 앎이다. 힘으로서의 앎의 중요성은 이미 오래 전에 인식되었다. 16세기 말에 프란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은 힘이다"라고 단정했다. 19세기 초엽에 다니엘 웹스터는, "지식은 창공에 떠 있는 커다란 태양이다. 삶과 힘은 그 빛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좀더 은근하게 표현했다. 앎이 힘이라면, 반대로 무지는 무능이다. 그래서 몰리에르는 "앎이 없이는 삶은 죽음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무지는 비참과 악의 제일의 원천"이라는 빅터 카슨의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앎은 상징적인 의미의 힘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의미의 힘을 뜻한다. 환자가 의사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지시를 무조건 따르는 것은 의사의 전문 지식에 의한 실력 때문이다. 의사들이 자격증이나 학위 증서 등을 사무실에 걸어놓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환자로 하여금 의사의 실력을 인정하고 그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도록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우리말의 실력이라는 말이 능력과 완력을 동시에 뜻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문지식을 갖춘 실력 있는 의사는 환자에게는 완력 없이도 완력보다 더 효과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을 단적으로 증거하는 것은 정보다. 오늘날 정보 조직을 관리하는 자들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뿐만 아니라 그들이 권력이 핵심 인물이며 때에 따라서는 권력의 정상에 오르는 것은 이를 잘 증명한다. 보안사라는 군대의 정보 조직과 정보부라는 민간의 정보 조직을 장악했던 전두환이 정권을 탈취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식과 정보가 갖는 이러한 힘 때문에 자고로 권력자는 지식인을 등용하고 정보 조직을 강화한다. 지식과 정부는 힘의 또 다른 형태인 설득과 기만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힘의 중요한 유형의 또 다른 하나로 인격이 들 수 있다. 훌륭한 종교 지도자들은 대개 품성으로 강한 힘을 발휘한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인생경험도 부족하고 재산도 직위도 없는 예수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것은 그의 품성 때문이었다. 이 불가사의한 힘을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신의 은총, 즉 카리스마라 불렀다. 중세 교회는 이러한 카리스마를 정치권력화했다. 오늘날에도 아랍 국가에서는 종교적 카리스마를 정치권력화해서 지배자들이 이용하고 있다. 가톨릭은 예수의 카리스마를 제도화하여 로마 교황을 비롯하여 신부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교의 목사들도 이 제도화된 예수의 카리스마를 물려받는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대개 모든 종교는 그 창시자의 카리스마를 제도화하여 성직자들에게 물려준다. 이 물려받은 카리스마를 신자들에게 주지시키기 위해 성직자들은 특별한 의식, 복장, 언행 등 어떤 형식을 필요로 한다. 의사가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자격증을 걸어놓는 것과 같다. 성직자 자신의 카리스마가 있을 경우는 그런 형식이 별로 필요없다. 종교 지도자에게만 카리스마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 지도자, 심지어 깡패 두목에게도 카리스마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순수한 카리스마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 경우의 힘은 대개 보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보상 또한 힘의 주요한 한 형태다. 보상은 비물질적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물질적이다. 깡패집단의 두목이 그 졸개들에게 행사하는 힘은 대개 이 보상에 의거한다. 졸개들은 보상을 바라고 두목의 명령에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깡패 두목은 자기 명령을 수행하다 감옥에 간 부하들의 뒤치다꺼리를 철저하게 한다. 그 부하가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그 가족이 생계를 책임진다. 그의 힘은 그의 물질적 보상 능력에서 나온다. 고용주가 피고용인들에게 행사하는 힘도 그의 보상 능력에 달려 있다. 피고용자는 자신이 생계 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고용주 앞에서 꼼짝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재벌 총수가 그의 기업에서 행사하는 저 막강한 힘은 그의 보상 능력, 즉 돈의 힘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돈이 말한다."

 

보상은 정치 권력에서도 중요한 힘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권력 집단에서 논공행상이 항시 크게 문제되는 것은 권력에 있어서 보상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불법적인 권력 집단에서 보상은 특히 더욱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정당성이 없는 권력이 더욱 부패하는 이유의 하나는 그 권력의 행사와 유지를 위해 보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과 노태우의 천문학적인 액수의 이른바 '통치 자금'이 이를 증거한다. 특히 부하들에게 씀씀이가 컸던 전두환에게, 그의 골목 성명 발표 때 확인되었듯이, 충성하고 따르는 부하들이 더 많다는 사실도 돈의 위력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힘의 또 다른 중요한 유형의 하나는 정당성 또는 정통성이라고 불리는 당위성이다. 가령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발휘하는 힘은 이런 당위성에 근거한다. 당위성은 대개 합의에 의한다. 합의는 법의 형태일 수도 있고, 계약의 형태일 수도 있다. 당위성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경우는 정치 권력이다. 군주 국가에서 권력의 당위성은 혈통에 의하지만, 오늘날 민주 국가에서 권력의 당위성은 공평한 법과 공정한 선거에 의한다. 공평한 법과 공정한 선거에 의한 권력만이 소위 국민적 합의에 의한 정당한 정치 권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권력은 그 당위성, 즉 권위를 인정받기 때문에 국민들이 그 권력 행사에 자발적으로 따르게 된다. 마치 환자가 의사의 권위를 인정하여 의심 없이 지시를 따르고 신자가 성직자의 권위를 인정하여 기꺼이 그 말을 따르는 것과 같다.

 

 

국민적 합의에 의한 정당한 권력은 그 권력 행사에 저항이 없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강력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쿠데타나 불공평한 법이나 부정한 선거 등으로 차지한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 권력 행사에 저항이 따른다. 그래서 그런 권력은 안정적이지도 못하고 또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때문에 이런 부당한 권력은 자연히 금력과 무력을 동원하거나 무력을 배경으로 위협에 의존하는 공포 정치와 조작과 술수에 의존하는 기만정치를 행하게 된다.

 

현실론자들이 인정하는 힘은 무력과 기만뿐이다. 무력, 즉 완력이나 강제력은 가장 원시적이고 자연적이고 확실한 힘이다. 사실 무력과 무력에 의한 위협은 모든 정치 권력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모든 권력은 무력을 그 배경으로 한다. 아무리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 국가의 권력이라 하더라도 경찰이나 군대 등 무력을 가지고 있다. 흔히 경찰은 치안만을 위해서, 군대는 국방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듯 생각하지만 기실은 권력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경우는 군대가 그 무력을 이용하여 아예 국가 권력을 차지해 버리기도 한다.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모택동의 말은 소름끼치지만 부정하기 힘들다. 문제는 무력만이 힘의 전부가 아니며, 무력에만 의존하는 권력은 오히려 불안하고 강력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무력이나 위협에 저항하여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속성이어서 강제력이 크면 클수록 저항도 커진다. 일시적으로는 무력과 위협이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역효과를 초래한다.

 

조작과 술수에 의한 기만 또는 중요한 힘의 일종이다. 삼국지는 권모술수가 권력 획득과 그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권력의 역사는 무력과 위협의 역사이며 기만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만에 의존하는 권력은 무력과 위협에 의존하는 권력과 마찬가지로 불안하고 강력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링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언제나 모두를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되듯이, 작은 기만을 가리기 위해서 더 크고 많은 기만을 해야 되며 기만이 잦으면 나중에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기 때문이다. 정직이 최상이 정책이라는 금언은 이래서 생겨난 말인지도 모른다.

 

설득도 중요한 힘의 하나이다. 설득에 의한 힘은 당위성에 의한 힘과 마찬가지로 자발적인 복종을 결과하며 저항이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당위성에 의한 힘이 그렇듯이 설득에 의한 힘도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무력이나 기만에 의한 힘보다 안정적이고 강력하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바람과 해의 행인 옷 벗기기 시합 이야기는 설득의 이런 효과를 잘 나타낸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권력은 당위성과 설득에 주로 의존하지만 무력과 기만에 주로 의존하는 권력보다 훨씬 강력하고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 정치는 거의 전적으로 이 설득에 의존했다. 그래서 그 당시는 웅변가가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설득은 자칫 잘못하면 선동이나 위협이나 속임수로 끝나고 만다. 따라서 설득이 안전한 민주적인 힘이 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서 누구든 원하는 사람은 필요한 정보에 접할 수 있고,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개진할 수 있는 자유와 기회를 주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그 권력이 합의와 설득에 의해 행사되며 그럴수록 그 권력이 안정되고 강력하고 또 효과적이다. 독재 국가일수록 무력, 위협, 기만에 의해 그 권력을 행사하며 그럴수록 그 권력이 불안하고 취약하고 또 비효율적이다. 도덕론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현실론적 입장에서도 국가 권력이 강력하고 안정되기 위해서는 무력과 위협과 기만보다는 합의와 설득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적국에 에워싸인 조그마한 나라 이스라엘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그 정치권력이 이스라엘의 특수한 안보상황을 구실로 무력이나 위협이나 기만에 의존하지 않고 합의와 설득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스라엘의 정치 권력이 안보를 구실로 합의와 설득을 무시한 채 무력과 위협과 기만으로 독재를 한다면 어떻게 저런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서 강력하고 안정적인 지배자의 출현을 기대했던 마키아벨리가 지배자는 민중의 지지를 잃고 그들의 혐오를 받는 일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무력이나 위협이나 기만에 의한 권력이야말로 민중의 지지를 잃고 그들의 혐오를 받는 권력이다. 권력이 안정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며, 민중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합의와 설득에 기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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