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
by 처사21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
정치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정치 권력이 위협이나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위, 즉 국민들의 자발적인 복종에 의해 행사되어야 한다. 권위는 정권의 정통성에서 나온다. 정통성은 과거에는 혈통, 전통, 카리스마 등에 의해 형성되었지만 현대에는 공평하게 제정된 법의 절차를 제대로 밟아서 정권이 수립될 때 정통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공평한 법에 따른 공정한 투표에서 국민의 다수표를 획득한 당이나 지도자가 정통성을 부여받는다.
정통성이 있는 정권은 권위, 즉 국민의 자발적인 복종에 의해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권력 행사에 있어 마찰이 적을 뿐만 아니라 권력 유지와 행사에 따르는 비용이 적게 된다. 그러나 정통성이 없는 정권은 국민의 자발적인 복종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권력 행사에 있어 금력이나 위협이나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마찰이 따른다.
물론 권위를 위협이나 물리적인 힘과 엄격히 구별하기는 어렵지만 정통성을 부여받은 정권은 힘보다는 권위에 의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왜냐하면, 그 정권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정권은 아무리 강한 권력을 행사하더라도 국민들이 그 권력 행사가 합당하다고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저항이 따르고 따라서 권력 행사가 위협이나 물리적인 힘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정통성이 없는 불법 정권의 거의 모든 부작용이 발단된다. 불법 정권은 정통성이 없기 때문에 권위가 없고 따라서 그 권력은 자연 위협과 물리적인 힘을 수반해야만 작용한다. 그런데 위협과 물리적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사병화해야 하고 경찰력과 정보조직을 강화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효과적으로 국민을 감시하여 위협할 수 있고 필요하면 자의적으로 무력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우선 자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정부패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위협이나 물리적인 힘으로만 권력을 유지하는 경우는 권력 유지비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 조작의 술수를 쓰게 된다. 언론을 통제해서 진실을 은폐하고,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듯이 위장하고, 국가 안전에 대한 위기 의식을 조장하여 압제의 구실로 삼는다. 또 외국의 큰 나라를 대부로 삼고 그 나라에 대한 사대 사상을 조장하여 그 나라의 지지를 정통성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오늘날 제3세계의 친미 군사 독재들은 대개 이런 유형의 독재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기존의 헌정을 무시하고 쿠데타에 의해 불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하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고, 그 정통성이 없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지지를 얻고, 그것을 권력의 정통성으로 내세우는 주체성 없는 사대주의자들이다. 그런가 하면 국민들에게는 위협과 폭력으로 가혹하게 굴고, 위협과 폭력의 수단을 유지하기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는다. 국내에서는 이권에 개입하여 부정을 저지르고, 외국에서는 필요 이상의 차관을 들여와 그 일부를 떼어먹는다.
그러나 국민의 지지 없이 위협과 폭력과 기만으로 유지되는 정권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윌리엄 잉에가 말했듯이, 총검으로 권좌를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위에 오래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제 정권이 무너질지 모르고 또 정권이 무너지면 자신들의 압제와 부정부패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그래서 독재 정권은 항시 불아하고 초조하다. 그 불안과 초조 때문에 여차하면 해외로 도주하기 위해 많은 외화를 외국에 빼돌린다. 또 불안하고 초조한 나머지 무리한 부정부패와 가혹한 탄압을 날이 갈수록 더 가중시키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독재는 자신이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말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며 그 때문에 또한 몰락의 길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독재가 오래 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고 압제가 지나쳐 국민의 분노를 사거나, 그런 상태에서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전쟁을 저질렀다가 패하거나,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나 반대 세력을 폭력으로 말살한 사실이나 말살하려는 음모가 탄로되어 국내외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국민의 지지가 너무 적은 나머지 대부국(代父國)의 지지마저 잃어버려 위축되거나 저희들끼리의 권력 다툼이나 의견 대립으로 허약해지기도 한다.
독재가 종말에 가까워오면 그들은 부정부패와 압제가 극에 달해 국민들이 더 이상 방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국민들이 그들의 위협에 움츠리지 않고 또 그들의 조작에 속지 않고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다. 독재는 폭력과 조작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그들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조작술에 넘어가지 않을 때에는 끝장나고 만다. 그러므로 독재의 말로는 국민의 태도에 의하여 점칠 수 있다. 국민들이 독재의 기만을 꿰뚫어보고 또 그들의 위협에 주저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하기 시작할 때 그 독재의 말로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독재의 말로가 국민들 때문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라는 점이다. 괴테가 지적했듯이, "위대한 혁명은 결코 사람들의 탓이 아니라 정부의 탓이다."
독재는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허약한 존재이다. 국민의 진정한 지지 없이 위협과 기만으로 유지되는 권력은 실은 모래성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추상같이 호령하던 독재라도 망할 때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독재는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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