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문화와 세계 문화
by 처사21민족 문화와 세계 문화
문화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문화는 이성적 존재의, 임의의 목적 일반에 대한 유용성의 산출"이라고 본 칸트의 견해가 있는가 하면, "문화는 세계 속에서 자신을 상실하지 않고 자기 안으로 세계를 끌어당겨 자기의 이성의 통일성 아래 종속시키는 것"이라는 실러의 견해도 있다. 이러한 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문화를 '인간이 인간 자신의 삶의 활동을 돌아보고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해 볼 수 있다. 한편 사전에서는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 내지 생활 양식의 총체. 자연 상태와 대립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을 극복한 것이다'로 되어 있다. 이상을 종합하여 문화를 정의하자면, '문화는 집단 구성원이 갖는 공통적인 행동 유형 또는 생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는 기술적(도구, 의복, 주택 등의 재화와 그것의 기술), 제도적(가족 제도, 혼인, 경제, 법률, 교육), 관념적(신화, 전설, 철학, 언어, 문학, 예술)인 부분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문화라고 할 때는 흔히 대조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을 지칭하는 좁은 의미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민족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의 개념이 다양한 것 못지 않게 민족 문화의 개념도 다의적이나 그것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포괄적인 전칭* 개념으로 고대의 민족 형성기이래 전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민족 구성원에 의해 이루어진 문화의 총체라고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한 것으로, 근대적 의미의 민족 사회 형성에 기반하여 발달, 전개된 문화로 보는 것이다. 중국 중심의 천하관(天下觀)*이라는 중세적 보편주의와 봉건적 신분 체제가 무너지면서 등장한 근대 지향적 의미의 문화관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식민지화, 민족의 분단, 현실 사회의 갈등 등 민족 현실과 그 성원들의 절실한 문제에 부응하여 전민족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기여하는 문화를 뜻하기도 한다. 예컨대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는 문화 중에서 특히 민족 당면의 과제, 즉 분단이나 민주화의 정착 등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만을 민족 문화라고 보는 것이다.
민족 문화라는 말은 이 세 가지 중에 흔히 둘째, 셋째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으나 그것을 고집하여 첫째를 배제할 수 없다. 왜냐 하면 민족 문화란 민족 구성원 전체에 의해서 산출된 문화이면서 동시에 민족적 가치를 일정하게 구현한 문화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기 때문이다.
민족 문화와 세계 문화와의 관계를 말할 때 자칫 빠지기 쉬운 두 가지의 극단적인 태도가 있다. 하나는 세계 문화라는 보편성만을 추구하는 태도이고, 또 하나는 자민족(自民族) 문화의 특수성에만 집착하여 폐쇄적 자아(自我) 중심주의*로 빠지는 태도이다. 문화 사대주의, 이식 문학론*은 첫 번째의 태도에 해당된다. 이들이 추구하는 세계 문화란 주로 서구 문화를 가리키며 여기에는 19세기 이전의 중화주의와 20세기 초 이후의 서구 문학 지향 그리고 식민지 시대에 널리 유포된 종속적 문화 의식이 놓여 있다. 이들의 사고에 의하면 '보편적인 것,' '세계적인 것'은 우리가 사는 영역 밖의 무엇이며, 이에 합치하는 길은 타자의 세계성이라는 척도를 추종하는 데 있다고 본다. 이것은 중세 아시아의 중국인들이 품었던 중국 중심적 천하 의식과 근대 이후의 서구 중심적 보편주의라는 논리가 만들어 낸 착각이다. 이러한 종속적 문화 의식은 맹목적으로 외래 문화를 추구하는 자기 부정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문화라는 것은 다른 문화와의 교섭을 통해 상호 발전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족 문화라는 것도 사실은 불교와 유교의 전래를 통해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민족 문화와 세계 문화에 대한 생각은 한국 문화, 중국 문화, 영국 문화 등 모든 개별 문화의 총체를 세계 문화라고 봄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갖가지의 나무가 모여서 숲이 되고 여러 종족과 인종이 모여서 인류를 이루는 것처럼 문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한 민족의 문화만을 우월한 보편 문화라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한 사고이며 보편성이란 모든 개별 민족의 문화 요소들이 귀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즉 각각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요소들이 인류 공영의 자산으로 남겨질 때 그것이 바로 세계 문화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 문화가 곧 세계 문화'라는 말은 민족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 문화가 바로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함유하는 세계 문화라는 뜻이다.
<용어 설명>
* 전칭(全稱) : 명제 중에서 주어가 가리키는 외연 전체의 범주에 걸치는 말. 즉 민족 문화에서 '민족'이나, '모든 사람은 죽는다'에서 '모든' 따위
* 중국 중심의 천하관 : 세상의 중심을 중국으로 보는 세계관. 중화주의(中華主義)는 한민족이 여러 민족을 야만시하고 자기네 나라가 세계의 중앙에 위치한 가장 문명한 나라라는 생각을 말한다.
* 이식(移植)문화론 : 임화(林和)가 주장한 이론으로, 우리 근대 문학이 서양적인 문학 장르를 채용하면서부터 형성되고 모든 시대가 외국 문화의 자극과 영향으로 일관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런 시각에는 전통 문화에 대한 폄하와 서구 문화에 대한 사대주의적 태도가 개입되어 있다.
블로그의 정보
국어독서창고
처사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