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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슈타인의 '자본주의 문명'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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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슈타인의 『자본주의 문명』

 

 

월러슈타인은 최근에도 유토피스틱스 또는 역사적 선택들이나 몰락 이후등의 저작이 우리 나라에 꾸준히 소개될 만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회학자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분석을 내놓고 있는 학자이다. 그는 근대이래 인류가 살아온 자본주의 세계 경제가 끊임없는 자본 축적과 상품화를 그 경제적 작동 원리로 한다고 파악한다. 그래서 이 원리 및 세계적 분업 체제가 원활히 관철유지되도록 보장하는 이른바 국가간 체제를 정치적 상부 구조로 두며, 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고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와 과학을 지적문화적 마취제로 삼아온, 하나의 전체로서의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체제라는 점을 그의 사상적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는 역사적 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그 이전의 여러 역사적 체제들에 비해서 진보한 사회라는 믿음을 거부한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 문명이 기계의 발전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작업 중에 혹은 일생 동안 투입해야 하는 총 노동량은 결코 감소하지 않았으며, 오늘날의 삶이 과거보다 안락한 물질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물질적인 풍요에 필연적으로 따라와야 하는 '생활의 질'에 대한 언급이 잦아지고 있다. 또한 아노미소외정신 질환 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음을 볼 때 이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그리고 각종 재난과 죽음 및 돌발적 폭력으로부터 인간의 안전이 폭넓게 보장된 것도 아니다. 월러슈타인은 이러한 증거들을 제시하고, 오늘날의 세계가 천년 전보다 더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닐 수도 있음을 주장한다.

 

역사적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소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월러슈타인에 의하면 성차별주의와 인종차별주의도 역사적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다. 성차별주의는 단순히 여성에 대한 남성우위 관념을 의미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의 지위를 가사 노동과 같은 비생산적인 노동의 영역으로 떨어뜨림과 동시에, 임금을 받는 생산적 노동만을 특권화하고 여성의 노동을 비하시킴으로써 여성들을 이중으로 모욕한다. 인종차별주의도 단순히 이방인에 대한 증오나 박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백인은 사무직 노동자로서 편안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기타 인종은 공장에서 노동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방식으로, 노동력을 계층화하고 억압받는 집단을 체제 안에 묶어두려는 이데올로기였다. 그것은 임금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는 데 가장 중시되어야 할 것이 생산적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기타 인종의 생산적 노동에 대해 낮은 보수를 주는 것을 정당화했다. 그는 이러한 성차별주의와 인종차별주의는 역사적 체제 전체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이러한 주장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공로와 실책을 '참다운 인간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되돌아보게 한다.

 

 

 

이마뉘엘 월러슈타인(Immanuel Wallerstein)

 

월러슈타인은 1930년 뉴욕에서 출생하였다. 미국의 콜롬비아 대학에서 아프리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빙엄튼 소재 뉴욕 주립대학 사회학과 교수이며, 아날학파 제2세대인 페르낭 브로델을 연구하는 <페르낭 브로델센터>의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근대 세계체제론, 자본주의 세계체제론, 역사적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정치학, 자본주의 문명, 유토피스틱스 또는 그 역사적 선택들, 몰락 이후등이 있다.

 

 

시대적 배경

 

자본주의 문명은 독일이 통일되고, 구동구권이 몰락하던 시점에서 자본주의 세계 체제가 인류의 삶에 남긴 공로와 실책을 가늠해보기 위한 저술이다. 그는 이 책에서 성서의 묵시록에 등장하는 네 기사, 즉 전쟁(민족간 혹은 국가간의 전쟁), 내전, 기근, 그리고 역병재난맹수들에 의한 죽음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인류의 삶에 끼친 영향을 검토한다.

 

 

자본주의 문명의 주요 내용

 

월러슈타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있다. 자본주의 문명은 역병재난맹수들에 의한 죽음을 지연시켜왔는가? 월러슈타인은 이 문제를 생각할 때 다음의 세 가지 현상을 고려할 것을 권고한다. 첫째, 운송 분야에서 일어난 기술적 발전으로 말미암아 기생유전자 집단의 혼합이 초래한 파괴적 결과들(1500 1700년 사이의 태평양 횡단 교역의 결과 아메리카 대륙이 토착 인구의 1/3을 넘는 수가 이 과정에서 사라졌다)과 둘째, 경제적 기술들에 직접 연관된 환경 변화에 의해 수많은 질병이 수적으로 증가해온 점, 셋째,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질병들이 발생하고 있는 점 등을 지적한다. 그는 질병에 맞선 투쟁에서 자본주의 문명이 일단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지리적으로는 불균등하게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아직도 저발전 국가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기초적인 진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기아의 문제를 보자. 월러슈타인의 진단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식량의 총생산량과 생산성이 증가를 보인 반면에, 세계 인구의 다수 특히 하층의 5080% 인구는 삼림 파괴와 사바나 지역의 사막화, 그리고 화학생물학적 오염에 의한 중기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세 번째 내전은 어떠한가? 그는 내전이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본질적인 구조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자본주의 세계 경제에서 세계 노동력의 인종 집단화가 진행되어 온 결과(우리 나라에서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로 동남아 지역으로부터 온 외국인 노동자이듯이, 세계적 차원에서 이미 업종과 인종간의 분화가 진행되어 왔다), 인종적 계층과 그들의 직업적계급적 지위 사이에 높은 상관 관계가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인종 집단화에 의해 상층 인종과 하층 인종 사이에 그리고 하층 인종들 사이에 끊임없는 투쟁이 벌어지는 구조적인 기반이 구축된다. 이 투쟁들은 흔히 폭력적인 양상으로 악화되며, 그 양상은 소규모 폭동에서 대대적 인종 학살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내전들'이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20세기 들어 더욱 파괴적이고 살육적인 것이 되었다. 네 번째 전쟁은? 자본주의의 기술은 단 한번에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며 그 파괴력 면에서는 이전의 전쟁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중동 전역을 휩쓸었던 알렉산더 대왕의 정벌도 그 파괴력 면에서는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끼친 페르시아만 전쟁의 영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는 평등한 삶을 구현하였는가? 월러슈타인은 자본주의 체제가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물질적 양극화 현상을 초래했다고 판단한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중간 계급(중산층)은 세계 인구의 1/7을 넘어본 적이 결코 없었다. 그는 세계 경제의 구조 내에 살고 있는 사람의 85%500 1000년 전의 세계 노동 인구가 누리던 생활수준 이상을 분명히 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 삶의 질에서는 어떠한가? 소외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월러슈타인에 의하면 소외란 "우리 자신, 우리의 '참된 본성,' 곧 우리의 진정한 잠재력으로부터 우리 스스로가 멀어지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는 노동력의 상품화를 포함한 보편적인 상품화가 인간성을 말살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그는 이러한 정황을 다음의 세 가지 현상으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우리 체제의 광기와 여러 형태의 질환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둘째, 이 같은 정신 질환과 현 역사적 체제의 특정한 사회 구조 사이에는 분명한 어떤 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셋째, 이같이 광범위한 정신 질환은 사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체제 내에서 꾸준이 늘어가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문명은 묵시록의 네 기사를 물리치지 못했으며, 인간을 소외로부터 해방시키지도 못했다는 것이 월러슈타인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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