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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자치 시대를 맞이하여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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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자치 시대를 맞이하여

 

 

'지방 분권''주민 자치'의 원리에 입각할 때 지방 자치란 일정한 지역을 대표하는 공공 단체가 그 지역 주민의 의사에 따라 공공 단체의 업무를 책임지고 스스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지방 자치는 중앙 정부가 자기 권력의 일부를 지방 자치 단체에 넘겨준다는 의미에서 지방 분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정한 지역을 대표하는 지방 자치 단체가 지역의 공동 업무를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중앙 정부가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지방 자치는 지역 주민들이 자신의 일을 자신들의 책임 아래 자신들이 손수 처리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주민 자치의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방 분권의 실현을 '단체 자치'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이 단체 자치와 주민 자체를 지나치게 분리하여 규정하였으나 현대 국가에서는 지방 자치를 이 두 개념의 종합 위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단체 자치가 지방 자치의 틀, 혹은 그릇이라 한다면 주민 자치는 거기에 담기는 내용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방 자치는 고대 도시 국가(polis)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들 도시 국가 중 그리스는 자치 국가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리스 시민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아테네 광장에서 직접 선출하였으며 수장(首長)을 윤번제로 맡게 하여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경계하였다. 또한 그들은 아테네에 모여 생활의 한 방식으로 국사를 논의하였는데, 이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이 '우정,' '절제,' '용기,' 혹은 ''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들의 공동체가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당시 그리스의 정치 방식이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노예와 여성, 그리고 20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정치적 활동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현대적 의미의 자치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그리스에서 투표권을 가진 인구가 25만명 정도에 불과했고, 그 결과 그들이 서로 친밀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였다.

 

 

인간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국가의 규모도 점점 더 커짐에 따라 그리스 도시 국가에서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 방식에 의한 정치 운영은 불가능해졌다. 그리하여 근대 시민 사회 성립 이후부터 국민이 자신의 대표를 뽑아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간접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정치 형태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의제라고 불리는 간접 민주주의 제도는 국가 운영에 말 그대로 국민이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제도였기 때문에, 일단 국민의 대표로 뽑힌 대표자들의 전횡을 막을 방법이 현실적으로는 거의 없는 폐단이 있었다. 또한 국가 전체의 이익이 정책적으로 우선시됨으로써 국민 개개인의 이익이 국가에 의해 침해당할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었다. 지방 자치는 이처럼 중앙 정부의 권력 남용을 제한하고 중앙 정부에서 소홀히 하기 쉽고 제대로 반영시킬 수 없는 지역 주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즉 간접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취지에서 성립되었다. 이렇게 보면 지방 자치의 발달은 불완전한 민주주의 제도가 자신의 모순을 점차 극복해 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고 그런 까닭에 지방 자치의 발달은 곧 민주주의의 발달을 의미하게 되었다.

 

현대의 정치 이론가들은 지방 자치가 민주주의 발달에 기여하는 바로 대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지방 자치는 전제 정치나 독재 정치의 방파제 구실을 한다. 지방 자치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면 정부와 주민의 관계가 밀접해지지 못하게 되어 주민의 정치적 관심이 줄어들거나,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표출할 정상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바로 국가의 부정과 부패, 나아가 독재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과거 많은 독재 국가들을 보면 모든 권력이 수도에 집중돼 있고, 막대한 권력을 가진 소수의 정치가와 관료가 야합하였으며, 국민들이 정치적 관심을 표출할 어떠한 통로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둘째, 지방 자치는 중앙 정부의 정권 교체 및 기타 정국의 변동에 따르는 정치적 격변이나 행정상의 혼란이 지방에까지 파급되는 것을 막아 줌으로써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한다. 현대의 민주 정치는 정당 정치이며 그렇기 때문에 정권의 교체는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정권이 교체된다는 의미는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정책이 바뀌고 정책 담당자들이 교체된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 경우 흔히 정치적, 행정적으로 과도기적 혼란을 겪게 마련이다. 이 때 지방 분권에 기초한 지방 자치는 중앙의 변화와 혼란이 지방에까지 미치지 않도록 완충하는 구실을 한다.

 

마지막으로 지방 자치는 정치, 행정적 실험을 지역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큰 대가없이 점진적인 사회 개혁을 이루도록 한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어떤 개혁 정책이나 새로운 시안을 특정 지역에 부분적으로 먼저 실시해 본 뒤 결과에 따라 그것의 실시 범위를 확대하거나 폐단을 최소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제대로 운영되는 나라는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모두 지방 자치를 받아들이고 있다. 지방 자치에 대해 뿌리 깊은 의식을 지닌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앙 집권적 관료 체제를 민주적 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해 지방 정부를 강화하고 있는 프랑스, 심지어는 왕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전체주의 국가의 표상이었던 일본까지도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지방 분권에 기초한 지방 자치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방 자치가 민주 정치의 실질적인 교육장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예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말로써 이루어지는 가치가 아니라 국민의 민주주의적인 사고 방식과 이에 따른 생활 양식 속에서 저절로 배어 나와야 하는 실천적 덕목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해방 이후 집권자의 집권 야욕 때문에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였던 우리 나라의 지방 자치제가 20세기를 마감하는 이 때에 다시 꽃필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는 실감 나는 증거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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