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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코 언더힐, "쇼핑의 과학(Why We Buy?)"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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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코 언더힐, "쇼핑의 과학(Why We Buy?)"

 

...고수끼리의 싸움은 사소한 것에 의해 판가름 나는 법이다. 이들은 모두 기량과 경험 면에서 뛰어나므로 이 것으로 서로의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싸울 당시의 미세한 환경 변화, 분위기, 그날의 기분 등 사소한 것들이 승패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마케팅 현장에서의 경쟁은 고수들의 싸움과 같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나머지 제품 사이의 질 차이가 거의 없을뿐더러 각종 매체를 통한 홍보도 엄청나 소비자들이 어떤 광고가 무슨 제품에 대한 것인지 제대로 구분해내지 못할 지경이라 광고로 매출을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또한 치열하게 경쟁을 하다보면 가격도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최저 점까지 떨어져버리기에 소비자가 혹할 정도의 '획기적인' 단가를 만들어 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마케팅에 있어서 성패는 결국 고수들의 싸움에서처럼 사소한 차이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파코 언더힐(Paco Underhill)은 바로 이러한 '사소한 차이'에 주목한다. 그는 손님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오른쪽을 보는지 왼쪽을 보는지 하는 것,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건물 옥상 광고판을 얼마나 많이 쳐다보고 몇 초간 보는지 등과 같은 언뜻 보기에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들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언더힐은 이 속에서 매출을 좌우할 수 있는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려 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매출은 제품보다는 물건이 판매되는 매장 자체에 의해 좌우된다. 아울러 홍보의 효과도 광고 자체보다는 주변 환경 속에서 얼마나 광고가 효과를 발휘하느냐에 있다. 예컨대, 60대를 대상으로 하는 머리 염색약을 선반의 맨 아래쪽에 배열했을 때와 꼭대기 칸에 놓았을 때를 비교해보면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매출 차이가 있다. 멋을 내기 위한 젊은 세대의 염색과는 다르게 노년층의 염색은 그다지 자랑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일을 불편하게 허리를 굽히면서까지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 광고판을 매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과 매장을 나가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 사이에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사람들이 가게에 들어오는 순간에는 자신이 사려고 하는 물건을 구하는데 신경이 집중되어서 주변의 물건이나 광고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지만 일단 원하는 물건을 구입한 후에는 여유가 생겨 주변을 두루 둘러보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고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방향을 향하는 것보다 나가는 쪽을 겨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나아가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일 때보다는 무료하게 기다리는 시간 동안 광고를 더 많이 그리고 자세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기다려야 하는 계산대 주변에 광고나 가벼운 판매거리를 진열하는 것은 매출을 올리는 데 매우 효과적일뿐더러 손님들의 지루함을 덜 수 있기도 하다.(기다리는 시간이 2분이 지나면 사람들은 흘러간 시간을 훨씬 길게 느낀다고 한다.)

 

...이렇듯 언더힐은 매출에 결정적인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발굴해서 법칙으로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는 예로 든 것 같은 정보들을 모아 일반적으로 손님들이 매장에 오래 머물수록 매출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그리고 손님들이 매장에 오래 머물러 있느냐는 얼마나 편하게 쇼핑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편한 쇼핑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는가?

 

...언더힐은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신체적 능력과 성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사람은 손이 둘이다. 만약 양손에 물건을 들고 있다면 사람들은 물건을 손에 들고 골라보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는 바로 매출의 감소로 이어진다. 따라서 물건 보관함을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사람들의 세대별 특징도 세심히 배려해야 한다. 노년층은 안구가 혼탁해지면서 노란색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광고나 안내문에 노란색이나 녹색을 피하고 광고문안을 크고 분명하게 새겨주는 것이 좋다. , 어린아이와 남자들은 매장에 잡아둘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도 중요한 관건이다. 남자들은 쇼핑을 어색하고 불편하게 생각하여 필요한 물건만 사고 곧바로 매장을 떠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매장을 떠날 때는 가게에 오래 머물뿐더러 물건을 살 가능성이 훨씬 높은, 이들과 같이 온 여자들까지도 같이 자리를 떠야 하므로 매출에 지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TV로 스포츠를 상영한다든지 전자제품을 진열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남자들을 매장에 붙잡아 놓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언더힐은 '소극적 감금'이라는 표현을 쓴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이 가는 곳에는 항상 구매력을 가진 어른이 같이 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맥도날드에서 장난감을 끼워넣은 음식세트를 파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언더힐의 이 책은 철저하게 사례 중심이라 책이름처럼 이 모든 것을 '쇼핑의 과학'으로 법칙화 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 책은 이론서라기보다는 '우수사례 모음집' 정도가 더 적당할 듯 싶다. 따라서 장사를 하거나 할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머리 아프게 공부할 필요 없이 책장을 넘기며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추려도 책값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 책은 매우 큰 흥미거리를 준다. 유홍준의 말처럼 우리는 아는 만큼 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언더힐을 접한 후에 우리는 평소 같으면 전혀 의식하지 않고 관심도 없을 매장 배열을 분석하고 이유를 찾느라 백화점에서 매우 흥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고객의 돈을 최대한 뜯어내기 위해 우리가 미쳐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까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자본의 가공한 위력에 식은땀을 흘리기도 할 것이지만 말이다.

 

중동고 철학교사 안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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