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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소외와 도덕의 위기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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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소외

 

인간은 자연을 변화시키고 주조하는 가운데서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배우고, 도구를 만들어내는 기술과 창조성을 발전시킨다. 지난날 수공업 시대에는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보람을 느꼈고 자기가 만들어내는 상품에서도 즐거움을 느끼면서 노동을 했다. 노동은 어떤 소명을 지닌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계화, 자동화된 현대 사회에서의 대량 생산을 골간으로 하는 체제에서 이와 같은 노동의 의미와 기능은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노동자는 기계의 곁에서 기계가 하는 일에 시중을 들어주는 시녀의 지위로 전락했고, 혹시 새로운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인간이 기계의 주인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의 주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노동은 이제 돈벌이의 수단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고정 관념이 생겨난다는 데 현대인의 비극이 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직업에서 노동과 생산의 보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금전적 보수를 받기 위해 출근한다. 노동자는 한갓 피고용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능동적인 행위자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자기가 맡은 분야 외에는 책임지지 않으려는 무사안일주의가 판을 치게 되고,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필요한 돈을 벌어 가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 된다. 이렇게 노동에 대한 의미를 상실하는 것은 곧 삶의 소외를 낳는다.

 

 

기계화, 자동화를 통한 대량 생산 체계는 한편으로 대량 소비를 가능하게 해준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인간들은 소비를 통해서 자기의 욕구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대량 생산이 가져오는 부작용은 개인들의 취향과 욕구, 그리고 기호에 따라서 소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개개인을 대중으로 묶어 획일화시키는 현상에 일조하기도 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소비하는 상품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 생산자에 의해 소비하는 방식과 대상을 지정 받을 수밖에 없다. 단순 소비자나 무기력한 소비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컴퓨터나 멀티미디어 같은 첨단 기기의 구조에 대해 사실상 거의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첨단 기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느낌을 갖는다. 사람들은 제품들이 자기에서 어떤 점에서 유용하며,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는지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단지 기업의 광고 전략이 만들어 내는 그럴싸한 이미지에 현혹되어 상품을 구매하게 된다.

 

또한 물질적 풍요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많은 것을 기대하고 욕구하게 만드는 심리를 싹트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만든다.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기업의 전략인 광고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느끼게 부추김으로써 상대적 빈곤감에서 오는 불안과 좌절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다.

 

물질 만능주의, 향락주의

 

물질 만능주의 풍조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에 돈만 있으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으며 인격이나 경륜에 관계없이 돈만 많으면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며, 그것을 당연시 여기게 만든다.

 

현대인의 모든 관심과 정열, 그리고 시간의 대부분은 돈 버는 일에 바쳐지고 있는데, 이것은 재물에 대한 소유욕을 멀리하고 도덕적 완성을 추구했던 전통적 가치관과는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생계 수단으로서의 돈이 최고의 가치를 부여받게 되고 예술, 학문, 교육, 스포츠는 물론 종교마저도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심지어는 인격도 돈으로 측정되고 인간의 육체 또한 상품화된다.

 

돈이나 물질은 인간의 몸을 편하고 즐겁게 하기 때문에 물질 만능주의는 자연히 향락주의나 관능적 쾌락주의로 이어진다. 장래를 내다보면서 원대한 목적을 위해 참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우선은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길을 택하는 사조가 지배적인 것이다. 향락 업소는 해마다 늘어가고, 흥미 위주의 인쇄물이 양서(良書)를 물리치고 출판계를 장악하며, 음란, 퇴폐, 폭력으로 가득찬 문화 상품이 활개를 친다.

 

인간이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경향을 현대만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性)을 위시한 육체의 쾌락을 공공연하게 숭상하고 이를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심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우리는 여기에서 현대 사회의 위기를 발견할 수 있다.

 

돈으로 대표되는 물질은 원래 기쁨과 보람을 위한 수단으로서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극도로 팽창함에 따라 오히려 사람보다 돈이 귀중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여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인간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비인간화의 한 현상이다.

이기주의와 윤리 의식의 부재

 

현대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금전과 관능의 쾌락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풍토는 결국 이기주의적 경향을 산출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재산과 지위, 그리고 쾌락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까닭에 남의 입장을 살펴볼 마음의 여유가 없으며, 더 확장된 형태의 공동체를 염두에 두지 않게 된다.

 

자기와 운명을 같이 해야 할 공동체의 이익은 인류의 생존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고, 자기가 소속한 국가나 민족의 부유함일 수도 있으며, 좁게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작은 지역 사회의 이익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자기 나라의 이익에만 눈이 먼 국가들은 공해 산업을 수출하고, 기업들은 남몰래 공장 폐수를 하천에 버린다. 자기 가족과 자신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공공 질서를 쉽게 무시하곤 한다. 공동체의 이익을 망각하고 자신만의 소유물과 지위 그리고 쾌락을 추구할 때 그 공동체는 무너지고 살벌한 전쟁터로 변하고 만다.

 

개인, 집단의 이익 추구가 어떤 질서 내에서만 이루어진다면 이는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국가의 간섭이 없는 개인의 자유로운 이익 추구가 조화롭게 전체 사회의 이익으로 귀결되리라는 전제 위에서 성립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점차 복잡해져감에 따라 이기주의가 공동체의 전체 이익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는 이를 적절히 규제하고 공동체의 조화를 실현해 줄 어떤 윤리적 장치도, 정치적 제도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가 급변하고 아직 새로운 도덕 규칙이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기본적 도덕 의식조차 망각한 행위들을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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