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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이중성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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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즉 일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필요 조건으로서의 일이라는 측면과, 삶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충분 조건으로서의 일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따라서 노동은 보람의 기쁨과 연결되어 있다. 고대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열매를 따먹고, 사냥과 낚시를 하며 사는 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노동의 결과는 자기 몸을 즐겁게 하는 것이고, 보람이며, 놀이이자 취미이기도 했다. 이처럼 자기가 하고 싶을 때 노동을 하고, 자기의 필요에 따라 하는 노동은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자 특권이며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보람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사회는 점차 복잡다단해졌다. 따라서 일의 분업이 생기고 자기의 필요에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강제에 의해서 일을 하게 되면서 고통과 괴로움이 따르게 되었다. 고대의 원시 사회에서 씨족 사회, 부족 사회로 발전하면서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라 몸이 지치도록 사냥만 한다든지 농사만 짓게 되었다면 일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니다.

 

무엇보다 일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행위가 된 것은 일과 노동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노예제 사회부터이다. 일과 놀이, 혹은 노동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는 일이나 노동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이것이 분리되어 일하는 자와 노는 자, 노동하는 자와 노동의 산물을 즐기는 자가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일과 노동의 개념이 뚜렷하게 드러난 것이다. '일'이나 '노동'의 어원이 대개 '힘든 노력'이라든지 '괴로운 짐'이라는 뜻을 지니는 것은 일이 괴로움과 고통을 주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힘과 노력과 괴로운 짐으로서의 일은 주로 육체 노동을 뜻했으며 그것은 노예들의 몫으로 여겨졌다. 노예 노동은 고대 사회 문명의 토대로 사용되었는데, 전쟁 포로나 죄인들은 거대한 성곽과 성전, 신전과 피라미드를 건축하였으며, 노예들에게 힘든 일을 떠넘긴 귀족과 자유인들은 힘들이지 않고 정신적인 일과 예술과 취미, 오락, 운동을 즐겼다. 따라서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이 구별되었고 이 가운데에서 육체적인 일들만을 '일'이라 했고, 귀족이나 승려, 무사들이 하는 이론적이고 정신적이며 무력을 쓰는 일들은 일의 개념과 범주에서 제외되기 시작하였다.

후기 고대 사회와 중세로 접어들면서 계급이 다양하게 분화됨에 따라 하층의 계급일수록 힘들고 고통스런 일을 맡게 되었고, 중류 계급과 평민들은 보통의 농사일과 수공업을 맡았으며, 귀족들과 승려들만이 정신 노동과 창작적인 일에 종사하게 되었다. 역시 이 때에도 일이란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이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수공업자나 상공업자들이 재산과 부를 얻게 되면서 노동이 자기 실현이며 보람과 업적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된 일을 하는 노예 및 농민층과, 일하지 않고 놀이와 정신적 활동을 즐기는 귀족이나 봉건 제후들로 나누어진 신분 사회에서는 일이 결코 행복이나 보람의 원천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5~16세기에 일부의 수공업자나 상인들이 교역의 증대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중세의 신분 사회를 무너뜨리게 되자 갑자기 일과 노동에 대한 관념이 바뀌었다. 행복과 재산을 가져다 주는 것은 신분과 계층이 아니라 일과 노동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일의 내용도 농업과 목축업, 어업에서 공업과 상업, 무역업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일의 대가와 보람이 일의 양과 질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 마침내는 일을 많이 한 자가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일이 노동의 보람과 행복의 원천이 된 것이다.

 

근세 사회에서 이러한 일의 윤리를 확립한 것은 루터와 칼뱅으로서, 그들이 기반을 두고 있는 청교도적 윤리를 통해서이다. 루터는 누구나 영적인 소명 의식을 지니고 있지만, 세상에서의 소명 의식은 세상에서의 활동과 일을 통해 나타난다고 함으로써 일과 직업이 신과 인간을 위한 봉사이며, 소명에 따른 활동이라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일의 의미와 가치는 칼뱅에 이르러 한층 더 발전하여 하나님에게 선택되고 구원받은 자들은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검소한 생활과 저축을 통해 소명 의식을 찾을 수 있다는 직업 윤리로 확립되었으며 이는 점차 시민 사회, 산업 사회의 직업관이나 일에 대한 윤리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막스 베버는 이러한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이 서구의 자본주의를 확립하는 획기적인 구실을 했다고 주장한다.

 

 

시민 사회와 자본주의적 산업화 과정에서 일과 근면은 무엇보다 소중한 덕목이었다. 특히 18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산업 혁명은 이러한 일과 근면에 대한 평가를 결정적으로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1776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이 섬유 생산에 이용됨으로써 시작된 산업 혁명기를 통해 일은 엄청난 생산력을 의미했으며, 근면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절대적 가치가 되었다.

 

기계화․산업화와 함께 일의 결과가 신속하게 드러나자 상품과 가치를 생산하는 원동력으로서 일의 의미가 구체화되었으며, 일은 곧 부와 재산을 가져온다는 인식이 확립되었다. 일에 대한 관념이 바뀐 것이다. 또한 기술의 발전과 기계화를 통해 일이 힘들고 괴로운 것이라는 생각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일이란 무식한 사람들이 힘으로 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지식을 가져야 할 수 있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일을 더 많이,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철학이 대중화되고, 노동자들의 교육열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산업의 발전과 함께 일의 종류와 일에 대한 능력과 자격이 다양해지면서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의 차이도 밝혀졌다.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도 얼마쯤은 머리를 쓰고 계산도 하며 때로는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신 노동은 특권층이나 하는 일이라는 관념도 수정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산업화 과정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일과 직업의 선택이 자유로워졌다는 데 있다. 농업 생산이 주된 산업이었던 시대에는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농민들이 도시와 공장으로 몰리면서 그들은 자신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새로이 늘어나는 공업과 상업, 그리고 서비스업 등의 직종을 자유로이 선택하였으며, 거주지와 직장을 바꾸는 일을 예사로 하였다.

 

그러나 일과 노동에 대해 긍정적으로만 인식되는 것은 아니었다. 부정적인 인식은 산업화 시대의 일이 구조와 성격이 대부분 공장 노동과 임금 노동에서 나타난 데서 비롯되었는데, 일이 엄청난 생산력을 발휘하여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지만 생산된 상품의 가치가 노동자에게 모두 대가로 지불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생산된 상품의 가치는 상품의 효용이나 거기에 투입된 노동의 질과 양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되었고, 이렇게 교환된 상품의 대가는 원료나 생산 비용을 빼고 일한 양에 따라 분배되지 않고 토지나 공장과 같은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람들과 재투자를 위해 불공평하게 분배되었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한정되었으며, 부와 재산의 축적은 다른 곳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일이 과거보다 힘이 덜 든 것은 사실이지만, 기계와 함께 하는 노동이 훨씬 편해지거나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힘든 것은 기계가 처리해 주었지만, 노동자들은 기계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쉴새 없이 일해야 했으며, 일의 강도도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육체적인 힘의 소모와 피로는 여전했으며,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경우까지 생겼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일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기대가 환상임이 밝혀졌다. 상공업의 발달로 많은 직종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일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산업의 필요에 따라서 생겨나는 공장에만 일자리가 있었고, 거기에 적합한 기술과 능력을 가져야만 일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농사와는 달리 공장 노동은 그 생산품에 대한 시장이 수요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기 때문에 일을 하다가 해고당하는 일까지 생겼다. 일의 자유는커녕 일을 계속할 자유마저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일은 자유를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임금 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도록 사람을 예속시켰으며 그나마 필요 없는 노동력으로 밀려났을 때는 굶주림과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일을 통해 부와 행복과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과 고달픔과 예속, 그리고 부자유를 얻게 되는 현상을 가리켜 19세기의 사회 사상가들은 일의 소외(疎外)라 하였다. 이는 일과 일의 구조가 일한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상은 초기 자본주의와 시민 사회의 자유주의가 상공업자나 자본가들에게는 한없는 이익을 보장해 주면서 노동자들에게는 정당한 임금이나 사회적 안정을 보장해 주지 않았던 자유 방임주의 시대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일이 가진 윤리적 성격은 산업화와 시민 사회의 시대에도 한 가지로만 규정되지는 않았다. 일은 물질적, 정신적인 행복을 주면서도 고통을 주었고, 자아 실현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소외를 가져다 주었다. 재산을 주기도 했지만 가난과 실업을 주기도 했고 자유를 주는가 하면 예속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일은 고도의 생산성과 극도의 소외를 함께 지닌 이중적 성격의 것으로 여겨지게 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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