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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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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96.5.17, 한국일보)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1859~1941)의 명저 '창조적 진화'는 근대를 풍미하던 과학적 사고를 비판하고 직관에 의한 진리 획득을 강조하는 독창적 사상을 담고 있다.

 

'생의 철학'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같은 사상은 20세기초 청년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어 철학 문학 예술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젊은이들의 사상으로서 '생의 철학'의 지위는 구조주의와 실존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면면이 이어진다. 1907년 이 책이 출간됐을 때 지식인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것은 노벨문학상(1927)을 받을 정도의 수려한 문장 때문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책이 인간성 회복의 가능성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17세기 이후 서양의 가치관은 사실을 근거로 한 경험적 분석을 강조하는 실증주의와 이성에 의한 합리적 접근에 역점을 두는 관념론에 지배돼 있었다. 실증과 이성만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물신적 풍조가 만연하는 상황에서 직관에 의한 인식론을 설파한 것은 삶과 철학에서 인간이 자주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인본주의의 광장'을 마련한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베르그송은 이 책에서 인간의 내면에는 예측 불가능한 충동이 존재하는데 그것으로 인해 '생명의 비약'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물질적 한계로부터 벗어나 비약하고자 하는 욕구야말로 베르그송 사상의 핵심인 것이다.

 

이에 따라 진화는 다윈이 주장하는 '환경요인에 의한 하등에서 고등으로의 단선적 변화',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신의 섭리'도 아닌, '생명의 비약'원리에 의해 규정되는 생명체 하나하나의 자주적 창조과정이라는 것이 이 책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본능에서 지성으로 인간이 진화했다는 기존의 관점에 대해서도 "본능도 지성과 마찬가지로 정신에서 출발한 것으로 각기 다른 진화경로를 겪고있는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이에따라 지성 일변도로 진화해 온 인간의 정신 속에서 이제는 거의 퇴화해버린, 그러나 여전히 소멸되지 않고 존재하고 있는 직관을 복권할 것을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선언한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모든 것이 획일화 규격화하고 있는 오늘날, 수단으로 전락한 인간을 목적으로 살려내려는 베르그송의 노력은 철학자 제임스가 이 책을 두고 말했듯 "아침의 미풍을 들이마시고, 새들의 웃음소리를 듣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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