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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환의 '택리지'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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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환의 '택리지'

(96.2.9. 한국일보)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1650~1752)'택리지'는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위대한 지리서이다. 당시까지의 지리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땅이름과 길을 안내하는 지지적 성격의 책이 전부였다. '택리지'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는 것은 바로 이같은 기존 태도에서 벗어나 최초로 지리적 환경과 인간 삶 사이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규명하려는 근대적 의식에 입각해 쓰여졌기 때문이다. 현대 지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의 카를 리터의 저서보다 100년이나 앞선 18세기중엽에 이런 책이 쓰여졌으니 우리민족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중환은 숙종 때 과거시험에 합격해 병조좌랑에까지 올랐다가 영조 때 장인이 사화에 연루돼 사형을 당하자 귀양길에 올라야 했다. 이중환은 이후 귀양에서 풀려나 30년간 전국을 떠돌았다. '택리지'는 바로 이같은 오랜 방랑 끝에 어렵게 얻어진 보물인 것이다.

 

'택리지'의 일관된 관심은 과연 어느 땅이 살만한 곳인가를 과학적으로 해명해내는 것이었다. 복거총론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책의 후반부에서 이중환은 풍수지리 생리 인심 산수를 명소의 4대 조건으로 들었다. 이중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바로 물질과 재화의 편리함을 뜻하는 생리이다. 생리가 갖춰진 곳으로 이중환은 토지가 기름져 농업이 잘되는 곳과 물자교류가 편리한 지역을 꼽았다.

 

인간의 삶의 조건으로 도덕이나 예절을 강조하기보다 농업 상업 등 경제활동을 강조한 것이 바로 실학자로서 저자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다. 반면 당시까지 사는 곳을 결정할 때 가장 핵심적 요소로 고려되던 풍수지리를 상대적 비중을 가진 한가지 요인으로 생각한 것도 특징이다.

 

제목이 '팔도총론'인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근대적 지리이론인 '지인상관론'이 설파된다. 지리적 환경과 인간의 생활방식을 연관시켜 파악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지리에 대한 정보안내적 접근이나 신비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중환은 이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명 역사 생활상 등 답사를 통해 얻어진 인문지리적 정보를 소상히 제시하고 있는데 이같은 실증적 태도야말로 실학자로서 저자의 면목이 여실히 증명되는 대목인 것이다. 또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조건을 갖춘 명소를 살만한 곳, 피난처, 평시나 난시에 모두 살만한 곳, 은둔지, 유람지 등으로 나눠 구체적인 장소를 적시한 것은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닌 실용적 과학으로서 지리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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