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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송강가사'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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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송강가사'

(95.12.29. 한국)

 

송강 정철(1536~1593)의 국문시가집 송강가사는 우리의 정서가 짙게 밴 한 폭의 진경산수화같은 작품집이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린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의 가사작품과 훈민가를 포함한 여러 시조작품을 모아놓았다.

 

송강은 종래의 한자어투를 과감히 탈피해 4.4조 운율에 맞춰 자유자재로 우리말을 구사했다. 후세의 학자들은 송강을 가리켜 '한문학이 지배하는 분위기에서 우리문학을 문학답게 만든 사람', '우리말의 고유미를 발견하고 이를 대담하게 활용한 작가'로 평가한다.

 

흔히들 장가 하면 송강 정철을 꼽고 단가하면 고산 윤선도를 떠올리지만, 단가에서 조차도 송강을 더 낫게 여기는 이들은 그의 탁월한 우리말 구사력을 높이 평가한 듯하다. 송강 이후의 많은 문인이나 관리들은 그의 가사를 즐겨 읊었고, 특히 관동기생들은 필수적으로 이를 암기했다고 전해진다.

 

송강가사는 상하 2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권은 모두 24장으로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이 실려있고, 하권 20장에는 단가라는 제목의 훈민가 16수 등 총 77수가 실려있다. 주요작품을 살펴보면, 관동별곡은 송강이 45세때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해서 지은 가사다. 관동팔경을 유람한 뒤 산수 풍경 고사 풍속 등을 그렸는데 송강의 정치생활 중 비교적 화려했던 시대의 작품인만큼 전체 분위기가 밝고 즐겁다. 조윤제는 관동별곡은 한국장가의 제1등이라 평했고, 이병기는 가사문학의 최고봉이라고 격찬했다.

 

사미인곡은 50세 되던 해 당파싸움으로 탄핵을 받아 전남 담양에 은거하며 지은 가사다. 자신의 처지와 임금에 대한 사모의 정을 한 여인이 남편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마음에 비유했다. 홍만종은 사미인곡을 제갈공명의 출사표에 비길 만한 작품으로 치켜세웠고, 김만중은 '동방의 이소(중국 굴원의 작품), 자고로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이라고 평했다.

 

성산별곡은 송강이 16세부터 27세에 등과할 때까지 10년간 낙향해 있던 성산에서 쓴 작품이다. 친한 벗이자 친척이던 김성원의 은둔 풍류생활을 칭송하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주위의 경치를 노래했다.

 

속미인곡은 50세에서 54세 사이에 지은 것으로 사미인곡의 속편이다. 역시 연군의 뜻을 임을 이별한 여인의 애달픈 심정에 빗대 표현했다. 사미인곡보다 언어의 구사와 시의의 간절함이 더욱 뛰어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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