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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슐로서(E. Schlosser), "패스트푸드의 제국(Fast Food Nation)"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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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슐로서(E. Schlosser), "패스트푸드의 제국(Fast Food Nation)"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반미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동네북이 되곤 하는 레스토랑들이 있다. 바로 맥도날드, KFC 등의 패스트푸드점들이다. (피자헛은 잘 공격받지 않는데, 사람들이 '피자' 때문에 이태리 체인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얻어맞는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늘 억울해 한다. 이들은 왜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애꿎게 햄버거 장사들이 따귀를 맞아야 하는가 라고 호소하곤 한다. 그러나 중국이 대국(大國) 특유의 비상식적이고 굉장히 불쾌한 외교적 행동을 했다고 해서 시중에 널려있는 '짱개집'들이 공격받는 일은 없다. 짜장면 수요도 감소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맥도날드는 일 있을 때마다 동네북이 되는 것일까?

 

세상에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대중은 명확히 설명할 능력은 없다 하더라도 맥도날드는 단순한 햄버거 가게가 아니며 '미국적 자본주의'라는 문화코드라는 점을 알고 있다. 저자인 슐로서는 기자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발로 수집한 방대한 자료로 왜 맥도날드가 곳곳에서 따귀 맞고 있으며, 왜 맞아도 싼 지를, 나아가 더 얻어맞아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다.

 

현재 맥도날드는 미국 내 최대의 쇠고기, 돼지고기, 감자의 구매자이다.(닭고기는 2위라고 한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여서 프랑스 감자 농민들은 맥도날드 때문에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미국에서 새로 생기는 일자리 중 90%는 맥잡(Mac-job: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하는 허드렛일)이다. 이처럼 맥도날드의 햄버거는 수많은 사람들의 밥줄과 연결되어 있고 그 이유로 맥도날드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는 결코 고급 음식은 아니지만 배고프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축복'과 같은 음식이다. 값싸고 양 많고 먹을 만한 데다가 깨끗하고 친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자본주의의 영원한 진리이다. 값이 싸면서 양질의 음식이라는 말은 어디에선가 이윤을 내기 위해 착취와 불합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패스트푸드 이윤의 열쇠는 음식을 요리사에게 맡기지 않고 '공학'에 맡겼다는 데에 있다. 음식은 '공장'에서 공학적인 '공정'에 따라 만들어진다. 주방에서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재료를 '조립'할 뿐이다. 따라서 더 이상 주방장 같은 숙련된 노동자는 필요하지 않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의 일은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일만큼 간단하다. 때문에 임금은 매우 싸며 별다른 교육도 필요 없다. 실제로 '제로 트레이닝(Zero Training)'과 최소한의 임금은 패스트푸드 업체의 영원한 꿈이다. 그러나 맥잡(Mac-job)의 대부분은 십대들이다. 이들에게 패스트푸드 업계는 아무런 미래에 대한 꿈도 심어주지 않는다. 이들은 소모품에 지나지 않으며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인력일 뿐이다. 청소년들은 최소한의 돈을 벌기 위해 미래를 위해 배우고 투자해야할 소중한 시간들을 날려버리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패스트푸드의 놀라운 능률에 자극 받은 다른 업계에서도 패스트푸드 식의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는 작업 공정과 이 때문에 가능한 '제로 트레이닝'을 통한 저임금 정책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패스트푸드의 성장은 수많은 숙련되고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직업군()을 없애고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할 뿐이다.

 

또한, 패스트푸드 업계는 식품업계에 있어서 '소수의 구매자가 다수의 생산자를 제어하는 체제'를 형성시켰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눈밖에 난다면 어떤 농축산업자도 살아남을 수 없다. 맥도날드는 가격을 낮추도록 생산농가에 계속해서 요구를 하고 낮은 단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농축산업도 대규모화할 수밖에 없다. 결국 패스트푸드 업계의 성장은 자영 농가를 도태시키고 노동자들을 단순잡급직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익을 보는 것은 대규모 기업 집단들뿐이다. , 패스트푸드는 사회의 다른 부분을 희생시켜가면서 돈을 벌고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슐로서는 이 책 전반을 통해 패스트푸드를 '페스트' 푸드로 몰아가면서 조용하면서 집요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결코 마녀 사냥식 논리를 펴지는 않는다. 그는 패스트푸드 업자들이 결코 괴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어 돈을 버는 기업가들일 뿐이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해결방안은 간단하다. , 패스트푸드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심각하다면, 패스트푸드를 소비자들이 먹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업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좀더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반적인 책의 깊이와 내용은 조지 리처(G.Ritzer){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The Macdonaldization of Society)}보다 못했지만 훨씬 더 쉽고 재미있었다. 그는 패스트푸드 때문에 생기는 여러 현상들을 말 그대로 '보여주고'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고 있을 뿐 '어떻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마치 {추적 60}을 보고 있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필자의 논리를 따라가게 하는 것이다. 패스트푸드에 관해 사회학적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지식을 얻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설득력'은 주의 깊게 볼 만하다.

 

중동고 철학교사 안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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