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브룩스(D.Brooks), "보보스(BOBOS in Paradise)"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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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스(D.Brooks), "보보스(BOBOS in Paradise)"

 

독서 경험에 비추어 보건데 '글발 받게' 읽히는 책들은 대개 저자가 저널리스트 부류인 경우가 많다. 반면, 학자-특히 대학 강단에 있는 사람들-들이 쓴 책은 꼭 읽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제목과 목차만 보고서도 읽기 싫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자신들에게만 중요한 문제에 천착하느라 독자로서는 전혀 '이해하고 싶지 않은' 논의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아 김을 빼놓기 일쑤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들은 일반 대중을 주 고객으로 하기 때문에 적어도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군살이 빠진 그들의 글은 속도감 있을 뿐더러 눈에 확 뜨이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두뇌에 군침이 돌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의 글은 때로 조미료 잔뜩 친 뜨내기 식당 음식 같다. 처음 먹을 때는 맛있지만 쉽사리 질린다는 점, 그리고 입맛엔 맞지만 대개 영양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학자들의 글에 비해 치밀한 근거보다는 독자 감성에 많이 호소한다는 점(선정적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주장의 결과에 대해서 대개는 무책임하다는 점도 이들의 글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보보스(Bobos)}도 이러한 저널리스트의 글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대개 신문 기사가 그렇듯 이 책도 제목이 전체 글의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보보스(Bobos)''부르주와(Bourgeois)''보헤미안(Bohemians)'를 합쳐 만든 말로 새롭게 등장하는 미국 사회의 주류계층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 미국의 주류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고 불리는 백인계 앵글로색슨 기독교 집단이었다. 이들은 명문가 출신으로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부와 명예를 물려받는 계층이었다.

 

그러나 지식과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현대에 와서, 인정받는 사회의 엘리트란 세습 받은 재산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고등 교육을 받았으며 배워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인재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물려받아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걸 맞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형편없는 속물로 몰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또한, 현재 미국 사회를 주도 세력은 이른바 '68 운동'세대이다. 고답적인 권위를 내세우는 사회 기득권 세력에 맞서 싸우던 세대가 자라나 이제는 사회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이들은 '엘리트에 반대하면서 자란 엘리트'로서, 지배층이 되었으면서 청바지와 통기타로 상징되는 젊은 저항계층-보헤미안-의 태도를 간직하고 있다.

 

 

브룩스는 이들을 가리켜 '보보스'라고 부른다. , 이들은 이제는 사회의 권력과 부를 손에 쥐고 있는 부르주아이면서도, 여전히 자유를 갈망하며 평등을 꿈꾸며 세속적인 권위에 저항하는 보헤미안의 의식을 지닌 새로운 형태의 지배계층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고 많은 재산을 모은 사람들이지만 결코 돈과 명예를 그 자체로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창의적인 비전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즐겁게 하다보니 돈과 명예가 저절로 따라오는 생활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들은 과시하기 위한 소비를 경멸한다. 그러나 생필품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들의 특기는 '들어내지 않게 잘난 척 하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비싼 승용차, 요트 등을 구입하는 대신에 생필품에 엄청난 투자를 한다. 산악자전거 한대에 4,000달러를 거리낌 없이 쓰며 부엌을 꾸미는 데 어마어마한 돈을 지출한다. 그리고 으리으리한 가구대신에 소박한 골동품 가구를 선호한다. 이들은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게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데 투자를 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에게 있어 일은 곧 '레저'이다. 일터는 놀이터와 비슷하다. CEO가 예전 같으면 근엄해야 할 회의실에 애완용 강아지를 데리고 앉아 있다든지, 청바지 차림으로 근무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새로운 형태의 엘리트들은 권위와 경력을 내세우기 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자유롭고 창의적인 정신의 소유자인가를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이들은 명령과 복종을 강조하지 않는다. 이들은 조화와 친근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공동체 내의 따뜻한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친밀한 권위(Intimate Authority)'를 갖추려고 노력한다.

 

사실, '보보스'란 우리에게도 이미 낯선 개념이 아니다. CF에서는 이미 '보보'족이 이상적인 성공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고 아내에게 '깜짝 선물'을 주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능력 있는 사원,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출근하면서 근엄한 중역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젊은 사장 등 광고에 등장하는 '성공 인물'들이 바로 '보보'들이다.

보보스는 세습 받은 부와 권위적인 권력에 바탕을 두었던 기존의 엘리트에 비해서 실용적이고 포용적이며 갈등보다는 조화와 타협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더 바람직한 지배계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브룩스는 이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속물'의 모습을 본다. 이들은 더 이상 '세계적인 평화', '정의의 구현'과 같은 엘리트들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안락하고 재미있는 삶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엘리트가 소시민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 사회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를 브룩스는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브룩스가 걱정해야 할 것은, 소시민적인 보보스의 태도가 아니라 브룩스 자신의 글쓰는 방식이다. 미국의 '먹물'들이 흔히 그렇듯, 이 책도 성과를 내기위한 조급증에 산물이라는 것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책에서 주는 메시지로만 본다면, 4-5쪽 내외의 칼럼 하나로도 충분한 글을 그는 그동안 기고했던 여러 글들을 모아서 300쪽 분량의 '저서'로 만들어 내었다. 때문에, 브룩스는 스스로 자신의 저술을 '직접 읽기 보다는 괜찮은 서평 2-3개 골라 읽는 것이 더 나은 책'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 점은 업적물로 능력을 평가받는 사회 속에서 조급히 성과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현대 미국의 지식인 문화의 고질적인 병폐라 할 수 있겠다. 브룩스는 자신을 '보보'라고 단정하지만, 이러한 면에서 그는 전혀 보보답지 못하다. 그 스스로가 즐겁게 일했는데 성공이 저절로 따라온 것이 아니라, 성공을 하기 위해 어떻게든 두뇌를 쥐어짜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은 브룩스뿐만 아니라 그가 '보보스족'이라고 부른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 그들은 한가로이 연못을 헤엄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가라앉지 않기 위해 물 속에서 부단히 다리를 놀려야 하는 거위와 같다. 무한 경쟁 속에서 후진국 국민보다 더 낮은 삶의 만족도를 보이고 있는 현대 엘리트들의 '성공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처량한 '연기', 브룩스가 아무리 우겨도 나는 소위 '보보'들의 여유에서 가식의 냄새를 지울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브룩스가 자신의 작업을 '코믹사회학'이라고 한 것은 결코 겸양이나 농담이 아니라 그에 작업에 대해서 독자들이 가장 진실 되게 할 수 있는 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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