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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리프킨,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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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리프킨,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

 

제레미 리프킨-새로운 형이상학자

현대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옛 조상들은 그들이 살아갈 삶이 앞서 살았던 사람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기에 역사와 '선현의 말씀'은 미래를 대비하는 유용한 지침서가 되곤 했지만, 우리에게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그만한 수단이 없다. 급격하게 발전하는 현대 과학기술이 과거의 경험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 선 세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지만, 엄청나게 복잡한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예측하여 미래를 대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캄캄한 밤길을 뒷사람에게 떠밀려 앞사람의 등을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명의 본질을 드러내어 이 것으로 실타래처럼 얽힌 사회 현상을 단 칼에 끊어서 명료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이론이다. {소유의 종말}은 이 '단 칼'을 제공해 준다. 제레미 리프킨은 여러 분석자료와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현대 문명을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명의 코드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 것으로 미래 문명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해결책과 대안까지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현상 내면에 놓인 가장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복잡한 세계 현상을 일관되고 명쾌하게 해석해내는 형이상학자의 매력을 지닌 사람이다.

 

"접속"-새로운 자본주의의 핵심 코드

제레미 리프킨이 이 책에서 문명을 해석하는 코드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접속(Access)'이다. 산업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코드는 '소유'였다. 사유재산과 배타적 재산권은 자본주의에 있어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가진 것이었으며 지위의 높고 낮음, 성공과 실패는 모두 누가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는가에 따라 평가되곤 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문명은 자본주의의 모습을 바꾸어 놓고 있다. 이제 '소유'는 재산과 성취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보다는 단순히 지출해야 할 '경상비'쯤으로 여겨진다. 최고급 컴퓨터와 자동차도 1년 만 지나면 한물 간 퇴물이 되는 세상이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소유는 부담이 될 뿐이다. 생산 설비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돈을 들여서 설비를 했다고 해도, 이 장비로 생산될 상품은 손익분기점에 다다르기도 전에 또 다른 새 상품에 밀려 시장에서 퇴출 될 가능성이 있다. 있다. 그렇다면 소유하기보다는 빌려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최근 리스(lease) 산업과 아웃-소싱(Out-sourcing) 산업이 번창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렇다고 소유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치 있는 소유'의 개념 자체가 바뀌었을 뿐이다. 현대 자본주의에 있어 중요한 '소유물'은 지적 자산이다. '나이키'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나이키 본사는 신발을 만들지도, 물건을 직접 팔지도 않는다. 신발은 아웃-소싱된 동남아 공장에서 만들고 판매는 프랜차이즈 된 대리점들이 한다. 나이키가 실제로 파는 것은 '나이키' 상표라는 지적 재산뿐이다. 공급자는 이 지적 재산에 '접속'하여 물건을 만들어 팔고, 소비자도 이 지적 재산을 보고 물건을 산다.

 

이 점은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최근에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12년 정도의 '접속권'만을 판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포드 자동차도 차를 팔기보다 임대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휴대폰도 기기는 공짜로 주고 '접속'하는 시간만큼만 요금을 부과하는 것이 전반적인 추세다. '사용하되 소유하지는 말라'는 이제, 산업 생산뿐만 아니라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적용되는 구호가 되어가고 있다.

 

 

문화자본주의- 그 황량한 끝

이제 새로운 자본주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코드는 '접속'이다. 상품 판매의 개념과 방법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휴대폰 기계, 컴퓨터 등 하드웨어는 '접속'을 팔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과거에는 물건을 팔기 위해 고객과 유대를 맺었지만, 이제는 고객과 '접속'이라는 유대를 맺기 위해 물건은 거저 준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접속'이라는 상품이 고객의 생활 속에 얼마나 친밀하게 녹아 들어가느냐이다. 과거에는 물건이 상품이었지만 이제는 '체험'이 상품이 된 것이다.

 

이 가운데서 상업 세계는 점점 문화의 영역을 대체하고 있다. 문화를 상품으로 파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 팔 물건이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시장을 '체험'에서 찾는다. 이제 사람들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즐겁고 신나는 체험을 하기 위해 쇼핑몰에 간다. 자본은 사람들이 '접속'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체험, 즉 문화를 찾고 개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예컨대, 우리는 놀이공원의 테마 파크에서 세계 각지의 문화의 '핵심'을 짧은 시간의 '접속'만으로도 즐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상품은 특정 문화의 '분위기'를 살리고 이를 판매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과거 산업 자본주의가 천연자원을 고갈시켰듯이, 이제 문화 자본주의는 문화자원을 고갈시키고 황폐화시키고 있다. 문화의 모든 것은 상업화되며, 사람들의 흥미가 사라진 후에는 폐물처럼 버려진다. 그 결과 세계 각지의 문화는 점점 더 다양성을 잃고 획일화되며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문화 생태계의 보존을 위하여

그러나 리프킨에 의하면 상업은 결코 문화를 대체할 수는 없다. 상업은 사람들 사이의 유대와 공감, 건전한 도덕이 살아있지 못한 풍토 위에서는 뿌리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소련 붕괴 후 무정부 상태에 있는 동구권에 침투한 상업 자본이 실패한 사례에서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세상은 상품 광고가 '협찬'이라는 명목으로 학교에까지 버젓이 침투하고 ,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거래와 연관 있는 것으로 바뀌어 갈 정도로 상업화 되고 있다. 산업 문명이 그 토대가 되었던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함으로써 스스로의 생명을 단축시켰듯, 이제 문화 자본주의는 자신의 뿌리인 문화를 갉아먹고 침식하고 있다. 그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리프킨은 문화가 상업보다 우선하는 '건전한 문화 생태계 보전'을 주장한다.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 못지 않게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 리프킨은 시민교육이라고 할 만한 비영리 지역사회 활동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공감(sympathy)' 능력을 향상시키고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상업적 활동의 파편으로 변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 지루한 반복, 형이상학의 위험

리프킨은 몇 가지 중요한 핵심코드를 짚어내어 문명의 여러 현상과 문제를 일목 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학자이다. 반면, 밑도 끝도 없이 중언부언하는 서술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시련을 주기도 한다. 그는 책이 주는 메시지로만 본다면 50 페이지 안팎의 분량으로도 충분할 내용으로 4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만들어 내었다. 때문에, 리프킨은 스스로 자신의 저서를 ' 직접 읽기보다는 괜찮은 서평 몇 개 찾아보는 것이 더 나은 책'으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이런 유의 저술들이 흔히 그렇듯이 이 책도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접속'이라는 핵심 코드는 무질서 해 보이는 많은 현상을 설명해 주지만 역으로 '접속'이라는 용어로 사람들의 눈을 가려 이 것으로 설명해 낼 수 없는 더 많은 부분을 주목하지 않게 하고 만들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이런 유의 '거대 담론'을 만들어 내는 책들은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런 '주의사항'이 리프킨의 위대한 혜안의 힘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한 '접속'이라는 코드는 현대 문명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데 충분히 가치 있는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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