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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그린(Robert Greene) [유혹의 기술(The Art of Seduction)]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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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그린(Robert Greene) [유혹의 기술(The Art of Seduction)]

 

 

확실히 현대는 설득이나 강압 보다는 유혹이 효과적인 시대다. 긴 연설보다 30초짜리 이미지 광고가 더 확실하게 사람들의 눈길을 끄니 말이다. 머리에다가 설득하지 말고 가슴에 호소하라. 정보가 활자에서 탈출하여 오감(五感)에 호소하는 현대의 생존전략이다. 사람들에게는 논리적 기술보다 유혹의 기술이 더 필요하고 유용하다.

 

[유혹의 기술]은 이 점에서 시대에 딱 맞는 책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유혹의 기술]은 유혹적이기 보다는 극히 논리적이다. 분량만 해도 600페이지가 넘어가는데다가 내용도 복잡하여 독자의 상당한 집중력과 인내심을 요구한다. 하지만 [유혹의 기술]은 독자들을 성공적으로 유혹했다. 삼 만원에 가까운 엄청난 책값에도 이미 13쇄를 넘게 찍었을 정도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이 책에 󰡐유혹을 당하고 싶을 만큼󰡑 현대인에게 절실한 주제를 꼭 집어서 치밀하게 헤집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그린은 처음부터 도덕과 선을 긋는다. 그에 따르면 도덕과 양심으로 유혹자들을 비난하는 이들은 사실 제 자신이 유혹할 능력이 없어 질투하는 것에 불과하다. 유혹은 󰡒쾌락을 미끼로 삼아 사람들의 감정을 조종하며 욕망을 자극하고 혼돈을 조성하며 심리적인 굴복을 얻어내는 기술󰡓이다. 또한 유혹 능력은 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기 보다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그린은 마치 신실한 수도사가 예수의 12제자를 설명하는 듯한 열정으로 유혹자들을 9개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튕기는 게 매력인 󰡐코젠트(Cogent)󰡑, 자신감 넘치는 󰡐카리스마󰡑, 힘든 세상에 환상을 심어주는 󰡐스타󰡑, 미모로 남성들의 혼을 빼는 󰡐세이렌󰡑,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여성을 까무러치게 하는 󰡐레이크󰡑, 헌신적으로 사랑을 주는 󰡐아이디얼 러버(Ideal Lover)', 중성적이고 신비한 매력의 󰡑댄디(danny)󰡐,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네추럴(Natural)󰡑, 내 마음을 거울 같이 읽고 맞춰주는 󰡐차머(Charmer)󰡑, 그리고 정 떨어지게 매력 없는 󰡐() 유혹자들󰡑까지. 마를린 먼로, 카사노바, 나폴레옹 등 유명인 들을 들어가며 각 유형의 매력과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제시하고 있다. 과히 이 책의 󰡐압권󰡑이라고 할 만하다.

 

아울러, [유혹의 기술]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는 듯한 재미가 있다. 잠언 같은 한 마디로 답답한 마음을 풀어줄 시원한 혜안을 준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어떤 경우에도 즉흥적인 유혹은 시도하기 말기 바란다. 성급하게 끝장을 보려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경우는 유혹이라기보다는 이기적인 욕구의 발산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유혹의 과정을 밟아나간다면 상대의 경계심을 무너뜨려 사랑에 빠지게 만들 수 있다.󰡓 (2부 서문)

 

󰡒...사람들은 쉽게 얻는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소유할 수 없을 때, 혹은 거절당할 때 오히려 더 애를 태우고 흥분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1)

 

󰡒....어떤 면에서 유혹은 상대에게서 의심과 저항을 제거하는 게임이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상대로 하여금 자기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야 한다... 힘과 자신감은 상대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은 경계심을 풀고 안심하게 된다.󰡓(13)

 

󰡒...만족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유혹하기 어렵다. 먼저 불만과 불안을 일깨워 당신이 그것을 채워줄 수 있다는 환상을 주어라.󰡓 (21 )

 

여러 선현(?)들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그들의 탁월한 유혹 기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완벽 실전 가이드󰡑가 아니다. 만병통치약이 사실 어떤 병도 고치지 못하듯, [유혹의 기술]은 어떤 상황에도 적용 가능한 유혹 기법들을 말하려하지만 그 때문에 어떤 유혹 상황에도 완벽하게 적용될 수 없는 책이 되고 말았다.

 

아울러, 책의 분량도 문제다. 단순히 읽기 벅차다는 차원을 떠나 필자의 역량에 비해 턱없이 많은 내용을 썼다는 것이 문제다. 중언부언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유혹의 기법을 다루는 2부는 사실 읽지 않아도 충분하다. 사례도 앞의 내용과 겹치는 내용이 많다. 많이 쓴다고 더 좋은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책의 많은 부분을 과감히 버릴 필요가 있었다. 저자는 독자의 시간도 배려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혹의 기술]은 꽤 유혹적인 책이다. 인간관계 󰡐개선(?)󰡑을 위한 실용적 목적으로 보았다면 이 책을 덮는 순간에 짜증이 날지도 모르겠다. 600페이지를 읽고도 얻는 것은 턱없이 적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류사를 빛냈던 매력적인 위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인문학적 목적󰡑에서 읽었다면 재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이 󰡐인문학 마니아(mania)󰡑들이 많은 386 세대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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