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예술
by 처사21조선의 예술
야나기 무네요시 (柳宗悅) ( 일본, 미학 )
예술에는 민족의 마음이 나타나 있다. 어떤 민족이든 그 예술에 있어서만은 자신을 참되게 표현한다. 한 나라의 심리를 이해하려면 예술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빠른 길이 없다. 미술사가는 필연적으로 심리학자이다. 나탄난 미에서 심리의 번뜩임을 읽을 때 그는 진정한 미술사가일 수가 있다. 만약 조선의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단지 그 미의 특질에 관해서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 표현을 통해 그 민족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호소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나도 이 한 편의 글에서 마음을 통찰할 수 있는 그런 심리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자연과 역사는 언제나 예술의 어머니였다. 자연은 그 민족의 예술이 걸어야 할 방향을 정해 주고 역사는 밟아야 할 경로를 부여했다. 조선 예술의 근본적인 특질을 포착하려면 우리는 그들의 자연으로 돌아가고 그 역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특질은 비교를 통해 한층 더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극동을 형성하는 세 나라, 즉 중국과 조선과 일본은 어떤 대비를 이루고 있는가. 나는 이것을 돌이켜봄으로써 고유한 조선의 미를 찾아보려고 한다. 다같이 동방의 기질에 같은 문화의 흐름을 받고는 있으나 그 자연의 다름과 역사의 다름으로 예술도 그 색조를 바꾸고 말았다.
중국은 어디까지나 대륙이며 대국이다. 가로지르는 강은 망대하고 솟아오른 산은 거대하며 펼쳐진 들판은 무한하다. 땅은 오래되고 돌은 굳으며 기후는 대단히 덥고 대단히 춥다. 여기에서 살려는 사람은 이런 위대한 힘에 어울리는 강한 힘을 지닌 자라야 한다. 그 대지를 걷는 사람은 안정된 발과 강건한 몸을 가져야 한다. 그곳은 위대한 대지의 나라이다. 중국에 나타난 사상은 바로 대지의 가르침인 유교가 아닌가. 민족의 성정(性情)은 인내심이 강하여, 얼마나 확실하게 이 세상의 실정에 견뎌 낼 수 있는가를 명확하게 말해 주고 있다. 건축만 보아도 기대하면서 평탄하다. 그것은 부동의 자세로 바르게 대지에 드러눕기 위해서가 아닌가(저 첨탑을 갖고 높이 솟는 중세의 기독교 건축과 얼마나 좋은 대조를 이루는가. 하나는 땅에 앉고 하나는 하늘에 이어져 있다. 유교는 현세의 가르침이고 기독교는 내세의 가르침이다.)
중국의 역사는 이 거대한 공간 위에 일어난 위대한 흥망의 역사이다. 싸움은 치열하고 성벽은 높으며 포부는 원대했다. 어느 시대에도 자랑하기에 충분한 특수한 문화를 낳았다. 세상을 이끄는 사람은 시대를 제어하는 지칠줄 모르는 의지의 권화였다. 이리하여 깊은 사색과 종교가 성하고 위대한 문학과 시가가 나타나고, 건실한 회화와 공예가 그 뒤를 이었다. 모든 것이 다 자극적이고 무거우면서도 날카롭다. 자연 그 자신이 약자의 존재를 허용치 않는다. 사람은 살이 찌고 동물은 끈기가 강하며 음식물은 기름지고 음악은 찢어지는 것 같다.
불과 하루 남짓한 항해로 우리가 일본에 들어왔을때 얼마나 다른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는지 모른다. 자연은 방대한 대륙에서 가련한 섬나라로 변한다. 흐리던 강은 맑아지고 잿빛 봉우리는 초록빛 언덕으로 변한다. 자연에 기복(起伏)하는 선은 평온해지고 들판은 정원처럼 꽃으로 꾸며진다. 파도소리는 바닷가에서 속삭이고 산들바람은 소나무 가지 끝에서 노래한다. 공기는 습하고 흙은 부드러우며 기후는 온화하다. 나라를 바다가 지켜 주고 자연은 인정을 부드럽게 해 주고 있다. 어째서 이런 환경 속에서 고통의 역사가 될 수 있겠는가. 민족은 외침의 두려움을 모르고도 그 황실의 혈통을 오래 계속했다. 공포없는 민족에게 이 고도(孤島)는 하나의 낙원이었다. 생활에 여유가 있고 사람들이 정치에 빠져 있는 이 나라에서처럼 기호로 시간을 즐기는 유래는 달리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힘이라든가 무게라든가 강함이라든가, 사람들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름다움과 즐거움과 부드러움이 그들의 마음에 넘치고 있다. 격렬한 자연에 대항하는 힘에 그들의 생명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부드럽고 조용한 자연에 따르는 것이 그들의 생활이었다.
이 명확한 대비 사이에서 조선은 어떤 위치를 차지했던 것일까. 그곳은 대륙도 아니고 섬나라도 아니다. 그 어느 쪽도 아닌 반도였다. 반도라는 사실이 곧 이 나라 운명의 방향을 정했다. 다도해로 둘러싸인 남쪽 사람들은 생활을 즐기려 하지만 북쪽에서는 대륙의 무거운 짐에 짓눌려 편안한 생명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인정은 어디에 영주할 곳을 정할지 방황하고 있다. 앞으로는 따뜻한 빛을 바라보면서도 뒤에서는 추운 바람 소리를 듣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은 자유를 찾아 대양으로 나가려 하면서도 몸은 대륙에 꽁꽁 묶여 있다. 땅은 그들에게 있어 편안한 곳이 못된다.
이러한 국토에 나타난 역사가 즐거움과 강함을 잃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끊임없는 외국의 압박으로 나라의 평화는 오래 계속되지 못하고 백성은 힘 앞에 굽힐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것은 외침을 거의 모르고 지낸 일본과 얼마나 다른 처지인가. 조선의 역사는 실로 대외관계의 역사였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사대를 강요당한 역사였다. 신라의 다행스런 통일도 흘러가 버린 순식간의 추억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얼마나 석방을 원하고 독립을 희구했을 것인가. 이러한 희망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무상감을 느꼈을 것인가. 그들은 믿어야 할 아무 것도 지상에서 찾을 수 없었다. 주위에서는 그들을 학대하는 것같이만 보인다. 아무도 그들에게 기운을 돋구어 주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도 힘없이 지쳐서 오늘을 살고 있다. 그러니 내일도 산다고 누가 보증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자유롭고 쾌활하게 생명을 즐길 수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정(情)은 안에서 불타지만 불꽃이 되어 밖으로 타오르는 힘은 갖지 못한다. 이리하여 마음은 흔들리고 어지러워져 있다. 괴로움과 외로움이 전신에 배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상의 희망은 희박해졌다. 남아 있는 피안에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무언가를 꿈꾸고 무언가를 동경하며 고뇌를 안으로 감추고 있다. 동요와 불안과 고민과 비애가 그들이 사는 세계였다.
그곳에서는 자연마저도 쓸쓸하게 보인다. 산은 헐벗고 나무는 앙상하며 꽃은 퇴색해 있다. 땅은 메마르고 물건들은 윤기가 없으며 방은 어둡고 사람은 드물다. 예술에 마음을 맡길 때 그들은 무엇을 호소할 수가 있었을까. 소리에는 강한 가락이 없고 색에는 즐거운 빛이 없다. 다만 감정에 넘쳐 눈물이 충만한 마음이 있을 뿐이다. 표현된 미는 애상의 미이다. 슬픔만이 슬픔을 달래 준다. 슬픈 미가 그들의 친한 벗이었다. 예술에서만 그들은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었다. 민족은 주어진 그 숙명을, 미로써 따뜻하게 하고 그것을 무한의 세계에 연결하려고 했다. 가슴을 압박하는 이러한 미가 다른 어디에 또 있을 것인가. 탄식의 울림이 도처에 울려퍼지고 있다. 중국의 예술은 의지의 예술이고 일본의 그것은 정취의 예술이었다. 그 사이에 서서 홀로 비애의 운명을 짊어져야 했던 것이 조선의 예술이다.
그러나 이것을 나약한 자의 미라고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만약 저 셀리의 유명한 구절이 진실이라면 그 미는 아름다움의 극치인 것이다. “가장 슬픈 생각을 노래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시가”라고 그는 말하지 않았던가. 불안은 적막감을 자아내고 적막은 동경의 마음으로 이끈다. 바라는 것은 땅에 충만되어 있지 않고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다. 슬퍼하는 자는 위로를 받는다고 예수는 말하지 않았던가. 비애란 신의 마음으로 지켜지는 비애일 것이다. 신은 위로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슬퍼하는 사람에게 신의 마음은 끌리고 있다. 어째서 미가 슬픔을 형성하는 것일까. 또한 슬픔의 미가 어째서 그토록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그것은 신이 생각하고 있는 슬픔일 것이기 때문이다. 힘있는 자는 자기 속에 살고 즐거운 자는 자연에 산다. 그러나 슬퍼하는 자는 신 속에서 산다. 예술의 미가 비애의 미일 때 더 뛰어나게 되는 것은 그것이 미지의 신이 무한한 온정으로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얼마나 비극을 깊이 사랑했는지 모른다. 뛰어난 희곡은 거의 모두가 비극이었다.)
조선민족이여, 주어진 운명을 참고 살아가자. 보이지 않는 나라에서 그 운명은 따뜻하게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 조선의 예술 1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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