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판단의 발달 단계 이론
by 처사21도덕 판단의 발달 단계 이론
차 잔 (박장호 옮김)
금세기 도덕 교육의 르네상스에서 가장 걸출한 이름의 주인공 그는, 로렌스 콜버그이다. 대학에서, 학술지와 대중 잡지에서 그리고 심포지엄과 세미나에서 도덕 교육을 논하는 자리라면 콜버그의 이론과 저술이 그 토의를 주도한다. 그는 철학자들과 학교 교장들, 심리학자와 교도소 교도원들, 그리고 사회학자와 교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오늘날 학술회의나 비공식적 모임에서 로렌스 콜버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도덕 교육 논의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콜버그 접근법에 대한 분석은 그와 동료들이 많은 문헌들을 내놓았기 때문에 보다 용이하다. 콜버그는 역량 있는 집필가이며, 다양한 자료를 정리해 자신의 견해를 책으로 발간했다. 덧붙여, 그는 가설을 세우고 재검하며, 재음미해서 수정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단성 있는 사고의 소유자이다. 따라서 몇몇 주요 쟁점에 대해 초기와 후기의 견해가 다르며, 최근의 콜버그는 몇 원안적 가정을 재조정하는가 하면, 몇 쟁점들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은 채로 남겨 두고 있다. 이 광범위한 문헌들은, 일련의 개별 논문과 단행본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으나, 근래에 콜버그의 주요 저술들은 세 권으로 된 시리즈로 발간코자 준비되고 있다. 게다가 콜버그에 관한 방대한 해설서들과 2차 문헌들도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콜버그의 제자나 해석자들의 주장이 종종 콜버그의 이론인 양 여겨지기도 한다. 콜버그 저술의 특유한 점의 하나는 그의 이론들에 붙여진 범주, 제목, 명칭들의 광범한 체계이다. 이 이론들은 선택적으로 구조주의, 도덕 발달의 인지 발달 이론, 진보적 상호작용론, 구성주의로 등장한다. 콜버그 자신 또한, 자신의 이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도 소크라테스, 칸트, 롤즈, 듀이와 피아제에 보다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개인과 사회
도덕 영역에서 개인과 사회간의 관계에 대한 콜버그의 입장은 듀이학파의 상호작용론을 따르고 있으며, 그것은 분명히 이 논제를 다루고자 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의 상호작용론과 대조되고, 검토해야 될, 놀랄 만한 윤리적 개인주의도 자주 그의 저술에서 부상되곤 한다. 콜버그는 교육, 지식, 발달에 관한 세 거대 이론, 즉 낭만주의(루소, 프로이트, 밀), 문화 전수론(뒤르껭)과, 진보주의(듀이)를 서술한다. 각 이론은 그 나름 특유의 존재론적, 도덕적, 사회적, 그리고 심리학적 가정과 함축을 지니고 있다. 콜버그는 낭만주의자들의 급진적 개인주의와 문화 전수학파의 급진적 집단주의를 거부하면서, 대신 유기체(인간)와 환경간의 쌍방의 상호관계 관념에 기초한 발달 이론을 주장한다.
인식론적으로 콜버그의 입장은, 지식은 본질적으로 자아나 문화의 어느 하나의 본래적인 경험이라는 관념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오히려 의미와 진리는 개인의 상황과 처지와의 관계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콜버그는 도덕성은 개인과 사회간의 상호관계에 근거한다는 통합된 관념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 그는 그 둘 사이의 구분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라는 듀이의 주장을 수용한다. 도덕에 있어 개인과 사회간의 이러한 내재적인 연계는 콜버그의 이론 체계에서 정의의 가치에 부여된 그 중심적 역할에서 강조됨을 알 수 있다.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서의 정의란, 개별적인 인간 존재가 따로 떼어 낼 수 없을 정도로 사회 맥락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타인에 대한 관심은 상징적, 심리학적 기제도, 또는 문화적 가공물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의 도덕 상황에 한정되는 기본적인 특징인 것이다. 인간적이고 도덕적이라는 것은 사회 맥락에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관계를 맺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콜버그는 점차적으로 도덕의 사회성에 대한 점증된 강조를 하기에 이른다. 이 근래의 경향은 몇몇 사람이 초기 콜버그의 입장이 과도한 개체주의라고 평가했던 것에 대한 콜버그의 반응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콜버그의 문헌들은 상호작용론적 공식에서의 사회테마적 측면이 콜버그의 입장을 시종여일 일관하는 중심 사상이었다는 것을 밝혀 준다.
도덕 판단의 6단계
수준 A : 관습 이전 수준
단계 1 : 처벌과 복종의 단계
내용 : 권리란 문자 그대로 규칙과 권위에 대한 복종이며 처벌을 피 하고, 물리적인 해를 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1. 옳은 것이란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것, 복종 그 자체를 위한 복종과, 신체와 재산에 물리적인 손상이 가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2. 올바른 것을 행하는 이유는 처벌과 보다 강한 권위들의 힘 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적 시각 : 이 단계는 자아 중심적인 관점을 취한다. 이 단계의 사 람은 타인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으며, 자기 이해와 타인의 이 해가 다르다는 것을 모르며, 이 두 관점을 관련짓지 않는다. 행 위를 심리적인 타인의 이해보다는 물리적인 결과를 놓고 판단 한다. 권위자의 시각과 자신의 시각을 혼동한다.
단계 2 : 개인의 수단적인 목적과 교환의 단계
내용 : 권리란 자기 자신 또는 타인의 필요에 기여하는 것이며, 구체 적인 교환에 의해서 정당한 거래를 하는 것이라고 본다.
1. 옳은 것이란 누군가의 당장의 이해에 관계될 때 규칙을 따르 는 것이다. 옳은 것은 자신의 이해와 필요에 부합되게 행위하 는 것이며, 남들도 그렇게 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옳은 것은 또 한 공정한 것이다. 즉, 평등한 교환, 거래, 합의다.
2. 옳은 것을 행하는 이유는 남들 또한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마당에서 자기 자신의 이익과 필요에 기여 하는 것이다.
사회적 시각 : 이 단계는 구체적 개인주의적 관점을 취한다. 이 단계 의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이익과 견해를 권위자와 타인의 그것들 과 구분한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자기 나름의 이익 과 이로 인한 갈등이 있어, 옳은 것이란 상대적인 것임을 (구체 적 개인주의적 의미에서) 안다. 그 사람은 용역의 편의적인 교 환, 타인과 그들의 선 의지에 대한 수단적 필요, 혹은 모두에게 동등한 양이 두루 가는 공정함을 통해서 상호간 갈등을 일으키 는 개인적 이해를 통합하거나 관련짓는다. 그러나 그는 아직 보편적 ‘체계’의 시각을 갖지 못한다.
단계 3 : 대인간의 상호 기대, 관계와 동조의 단계
내용 : 옳은 것이란 선한(멋진) 역할을 하는 것, 타인과 그들의 감정 을 염려하고, 동료간의 성실과 신의를 지키고, 규칙과 기대에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1. 옳은 것이란 가까운 이들의 기대나, 혹은 아들로서, 형제, 친구 등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는 사람들의 기 대에 부응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이는 좋은 동기를 갖고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것 은 또한 신의, 성실, 존경과 감사의 마음 등의 대인적 상호관계 를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옳은 것을 행하는 이유는 자신이나 남들의 눈에 좋게 보일 필 요, 타인에 대한 사랑과, 처지를 바꿔 생각해서 선한 행위를 행 한다는 믿음(황금률) 때문에 행하는 것이다.
사회적 시각 : 이 단계는 타인과의 관련에서 개인을 보는 관점을 취 한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은 개인적 이해에 앞서 공동의 감정, 합의, 기대에 대해 알고 있다. 그 사람은 ‘구체적 황금률’을 통 한 시각, 즉 남의 입장에서 보는 것을 통해 제 관점들을 관련 짓는다. 그러나 그는 아직 보편적 ‘체계’의 시각을 갖지 못한다.
단계 4 : 사회 체계와 양심 유지의 단계
내용 : 옳은 것이란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고, 사회 질서를 지지하며, 사회나 집단의 복지를 주장하는 것이다.
1. 옳은 것이란 자신이 동의한 의무를 실행하는 것이다. 여타의 사회적 의무와 권리들과 갈등을 빚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법을 지킨다. 옳은 것이란 사회, 집단, 제도에 기여하는 것이어 야 한다.
2. 옳은 것을 행하는 이유는 제도가 온전하게 운영되게 하고, 자 신에게 부여된 의무를 이행하는, 혹은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 지는 것으로서의 자존심 또는 양심을 지키는 것이다.
사회적 시각 : 이 단계는 개인들간의 합의와 사회적인 관점을 구분한 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은 역할과 규칙을 규정하는 그 사회 체계의 관점을 갖는다. 그는 사회 전 체계의 관점에서 개인들 간의 관계를 고려한다.
수준 B/C : 과도기 수준
이 수준은 관습 이후의 수준이나 아직 원리에 근거한 수준은 아니다.
내용 : 4 1/2 단계에서 선택은 개인적인 것이거나 주관적인 것이다. 그 선택은 감정에 근거한 것이고, 양심의 ‘의무’나 ‘도덕적으로 옳은 것’과 같은 단면으로서 임의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시각 : 이 단계에서의 단점은 사회를 초월해서, 일반화된 사회 계약이나 관여 없이 의사 결정을 내리는 주체로서 개인을 취한 다. 이 단계의 사람은 사회가 규정한 의무를 고를 수 있지만, 그 선택의 원리를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수준 C : 관습 이후와 원리 수준
도덕적 결정은 공정하고 풍요롭게 혜택받는 현실을 목표로 하는 사회를 구성하거나 창조하는 데 있어 모든 개인들이 화합할 수 있는 권리, 가치 혹은 원리에 근거한다.
단계 5 : 기본권과 사회 계약 혹은 유용성의 단계
내용 : 옳은 것이란 그 집단의 구체적 규칙과 법률과 마찰을 빚을 때 조차도 기본 권리, 가치, 법적 계약을 지지하는 것이다.
1. 옳은 것이란 사람들은 다양한 가치와 의견을 지니고 있으며, 대부분의 가치가 집단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 ‘상대적’ 규칙들은 그래도 불편 부당하게 항상 지지 되어져야 하는데, 이는 그것들이 사회적인 계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비상대적인 가치와 권리들, 이를테면 생존권, 자유 등은 어느 사회에서나 다수 의견에 관계없이 지켜져야만 한다.
2. 옳은 것을 행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모든 이의 선을 위한다 는 것을 법으로 결정하고 따르겠다는 그리고 자신과 타인의 권 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회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법에 복종해 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것이다. 가정, 친구, 신용, 직장상의 의무들 또한 자유롭게 맺은 계약이거나 책임이며, 타인의 권리 를 존중한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은 법과 의무가 총체적인 사 회적 유용성,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합리적으로 계산한 것 에 근거해야 한다는 데 관심을 갖는다.
사회적 시각 : 이 단계는 사회를 우선하는 관점, 사회에 대해 부여된 중요성과 사회 계약에 우선된 가치와 권리가 있음을 아는 합리 적인 개인의 시각을 취한다. 사람들은 공식적인 합의 장치, 계약, 불평 부당성, 마땅히 지켜야 할 과정으로서 제 전망을 통 합한다. 그는 도덕과 법칙 관점을 고려하며, 그들이 마찰을 빚 고 있음을 알고, 그것을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깨닫는다.
단계 6 : 보편적 도덕적 원리의 단계
내용 : 이 단계는 전 인류가 따라야 할 보편적 윤리 원리의 인도를 가정한다.
1. 6단계에서의 옳은 것이란 보편적 윤리 원리에 의해 인도된다. 특정법이나 사회적 합의들이 항시 타당한 것은 그러한 원리들 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법률이 이들 원리를 위배할 때, 사람들 은 이 원리에 따라 행위 한다. 그것들은 정의, 인권의 평등, 개 인으로서의 인간 존엄성의 보편적 원리들이다.
2. 옳은 것을 행하는 이유는 합리적인 사람으로서 그것들이 부여 되어 온 원리에 대한 타당성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시각 : 이 단계는 사회 협약이 파생되고 근거한 도덕적 관점 을 취한다. 그 시각은 도덕의 본질과, 타인을 수단이 아니라 목 적으로서 존중한다는 도덕의 기본 전제를 아는 모든 합리적인 사 람의 관점이다.
동시에 콜버그에게는 그의 상호 작용론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킨 또 다른 요소가 있다. 정의의 원리는 시민사회에서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통제일 뿐 아니라 인간 본성과, 자연, 혹은 우주의 질서에 내재된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인간성을 고양시킬 것을 명하고 있는 단계6의 도덕 원리들은, 그것들이 인간성의 발달에서 생기는 보편적 생성물이라는 의미에서 ‘영원, 자연법’이다.
여기에서 콜버그는, 정의란 특정 문화와 사회에 구애됨이 없고 유기체와 환경간의 상호작용과 무관한 하나의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그것은 자연 질서의 일부이다. 상호작용은 정의라는 사실을 드러내 주는 데 필요할는지는 모르나, 그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콜버그의 입장에 의하면, 정의는 개인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개인 영혼의 부분들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콜버그의 이러한 강조는 동료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의 아가페 도덕과 관계된 것이라기보다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의 당위에 관계된 의무론적 도덕에 보다 근접하고 있다. 사실, 단계6의 도덕은 어떤 의미에서는 초사회적이고 초역사적인 것이며 (소크라테스, 마틴 루터 킹, 링컨은 문화적인 국경을 뛰어넘어 동일한 도덕 언어를 말한다.) 설리번에 의하면 그것은 상호 작용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개인 영혼의 의무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콜버그의 도덕 영역에서의 개인과 사회간의 관계에 대한 두 가지 개념화를 발견한다. 즉 도덕을 개인의 의무와 책무로서 보는 의무론적 관념과, 도덕을 특정 사회 환경의 맥락 속에서 개인이 갖는 역동적인 관계로 보는 상호작용론적인 관념인 것이다.
콜버그는 이들 관념들이 상충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의 과업은 바로 이들 관념들의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론들로 종합하려는 시도일는지도 모른다. 사실 전통적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두 철학 이론들을 종합하려는 이 시도는 콜버그에게 가장 어렵고도 창의적인 과업의 하나인 것이다.
도덕 원리
콜버그의 이론 체계는 도덕적 과정에서 원리의 역할 비중을 강조하는 독특한 도덕 이론의 전형이다. 콜버그는 인습, 권위 혹은 일시적인 상념에 근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근본적 일반 진술들에 근거한 도덕 관념을 열렬히 옹호하고 있다. 콜버그 저술에 대한 분석은 ‘도덕 원리’ 에 대한 두 가지 구분되는 관념을 밝혀 준다. 첫째는, 보다 나은 대안적 도덕의 선택과 행위를 취하기 위한 일련의 지침이나 절차로서의 도덕 원리이다(‘선택을 위한 보편적, 일반적 기초, ’ ‘보편적, 불편부당의 의사 결정이나 판단 양식’). 이 용례에 의하면 도덕 발달의 각 6단계들은 도덕 상황에서의 대안적 선택 양식이나 형태들(처벌, 쾌락, 용인, 지위, 법, 정의) 등을 의미한다. 이 ‘도덕 원리’는 특정 지시나 규범(예, “입 벌리고 음식을 먹지 마라.”, “공중전화에 불량 동전을 사용하지 마라” 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도덕 문제에 대한 절차적인 사고 유형을 말하는 것이다.
콜버그의 두 번째 ‘도덕 원리’ 관념의 용례는 도덕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바람직한 기준으로서 단계6의 정의 표준에 관한 것이다. 이 때의 ‘도덕 원리’는 정의라는 보편적, 처방적 가치를 말한다. 첫 번째 의미의 원리가 임의적이지 않은 일종의 표준이나 기준에 따라 선택하는 것을 가리킨다면, 이 때의 ‘도덕 원리’란 보다 ‘진보된’, ‘성숙된’ 타당한 기준, 즉 정의에 따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정한다.(어떤 의미에서는 콜버그가 정의 원리의 내용이, 궁극적으로 ‘도덕 관점’을 규정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하겠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콜버그가 말하는 두 가지 의미의 ‘도덕 원리’를 확인했다. 즉, 도덕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적 지침과 하나의 궁극적, 한정될 도덕 내용이 그것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콜버그는 도덕 원리를 특정 행위를 지시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후에 특정 처방이나 행위로 전환될 수 있는 사고 양식을 전달하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진술 형태라고 본다.
정의를 도덕 원리로 보는 콜버그는 두 번째 의미의 도덕 원리를 아래와 같이 정식화한다.
정의는 평등하고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이다.
진보된 단계에서, 정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평등이다. 모든 이의 주장을 그 사람의 신분 여하와 관계없이 평등하게 대우하라.
단계6에서 가장 우선되는 실질적 원리는 타인 존중의 원리이다 : 모든 이를 궁극적 가치로서, 목적 그 자체로서 대우하라. 이것은 또한 다음의 하위 원리들을 포함한다. ①자유, ②평등 혹은 정의, ③최대의 선이나 유용성, 타인 존중이라는 단계6의 궁극 원리가 정의 원리이다.
이들 <단계6의 원리들> 속에는 정의, 인권의 상호성과 평등, 개인으로서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의라는 보편 원리들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콜버그 평론가들은 콜버그의 저술에 나타나는 ‘정의’라는 용어의 다양한 용례를 지적해 왔다. 그러나 이들 다양한 의미 중에도 공통적인 두 가지 특징이 있는바, 타인의 복지에 대한 관심을 포함하는 것으로서의 정의와, 타인을 평등하고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에 대한 관심으로서의 정의가 그것이다. 정의란 최소한, 타인들의 선과 그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콜버그의 ‘도덕 원리’ 관념 도덕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적 지침이나 정의가 품고 있는 내용은 도덕 원리에 대한 정의주의적 관념이나 인습주의적 관념 모두를 거부하고 있음을 뜻한다. 콜버그는 도덕 원리가 개인의 감정이나 선호를 표현하는 사적인 진술이라는 주장과, 도덕 원리들이 집단의 규범과 표준의 표현이라는 주장 모두를 거부한다. 두 경우 모두에 대한 콜버그의 입장은, 도덕 원리는 일시적인 생각이나 집단 합의 어느 것에도 의존되지 않은, 진정한 자연적인 현실이라는 것이다. 도덕 원리는 여타의 요인들에 종속되어 있는 파생적이거나 환원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들은 자립적인 것이며, 환원 불가한 자연적 사실이다. “도덕 판단에 대한 나의 분석은 도덕 판단이 실제로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이라고 주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처방적이고 특유한 것이라는 집념을 갖게 한다.”
콜버그는 그 다음으로 도덕 원리의 상대성을 단호히 거부하고, 사회와 개인은 단계1에서 6까지의 각기 상이한 전망을 통해서 같은 도덕 문제를 자주 대하게 된다는 사실에서 다양한 도덕 표준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여기서, 도덕적 상대주의라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데, 왜냐하면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것들은 한 공통된 문제에 대한 상이한 발달 단계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모든 상이함들(과 소위 상대주의)은 가치 쟁점에 대한 전원 일치와 공통의 전망을 가지고 있는 단계6의 사람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이 전원 일치와 공통성-명백히 상대주의와 이질적 의견들이 아니다-은 도덕 원리의 진면목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콜버그의 ‘도덕 원리’ 관념(들)은 여러 점에서 비판되어 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부 사람들은 정의 개념에 대한 그의 설명이 너무 일반론적이고 애매모호하다고 비판한다. 또 다른 이들은 그의 접근 방식이 아동에게 특정 내용을 널리 교양시키는 방식을 쓴다는 것인데, 아무리 정의(正義)의 가치가 훌륭한 것이라 할지라도 교육이란 주입이나 교양의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비판가들은 콜버그가 모든 도덕 원리들을 증류해 ‘정의’로 만들려 애쓰며, 그 결과 여타의 원리들을 소홀히 취급한다는 점에서 과도한 환원주의자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여러 비평가들이 도덕 원리(도덕 교육 일반)에 대한 콜버그의 논의는 두 가지, 가장 중요한 상관 개념인 도덕적 열정과 습관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불충분한 것이라는 지적을 해 왔다. 그들에 의하면, 콜버그는 도덕 원리를 지키는 사람과 도덕적 열정과 습관을 지닌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주의자들은 ‘실재 그대로의’라는 콜버그의 세계 묘사는 전도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원 합의보다는 의견의 상이함과 대안적 가치들의 존재가 오늘날의 도덕 현실이라는 것이다. 의견의 상이함을 도덕 단계의 선진과 후진이라는 개념을 가지고는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현대 생활의 실상은 절대적이고 입증된 ‘참된’ 가치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 반대로 경쟁적인 가치관과 대안들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도덕 원리’를 다루는 콜버그의 일부 모습들은 본서에 등장한 그의 동료들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다른 측면들은 그의 이론을 현대 도덕 교육 이론들 중에도 매우 독특한 것임을 말해 준다.
윤리학에서의 이성
콜버그의 이론은 ‘도덕 발달과 도덕교육에 대한 인지 발달 접근법’(cognitive- developmental approach to moral development and education)으로 널리 소개되어 있으며, 도덕에서의 인지의 역할에 대한 그의 일관된 강조는 그를 반성적 도덕이라는 명성 높은 전통 속에 확고하게 앉혀 놓았다.
도덕의 인지적 요소가 단계6에 들어 있다. 실제 6개의 발달 단계는 각 단계마다 도덕 문제에 대한 사고 유형이나 체계(논리)들을 나름대로 활용하고 있다. 즉, 단계1에서는 아동들이 신체 처벌을 최대한 막을 수 있는 행위가 무엇인가에 따라 자신이 취해야 할 행위를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단계3에서는 아동들은 자신들이 상정하는 좋은 소년, 소녀라면 무슨 일을 해야 된다고 하는 입장에서 대안적 선택을 고려한다. 도덕 발달의 전 수준에서, 도덕적 반성의 과정이 일어나며, 특정 목적을 갖는 것이다. “도덕적 사고의 기능이란 한 규범이나 원리에 근거해 개인들간의 상충되는 주장들을 해결짓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 단계는 나름의 ‘논리’나 ‘추론 유형’을 갖는 것이며, 모든 수준에서 아동은 도덕철학자인 셈이다.
콜버그의 도덕적 사고 과정은 여러 개의 특징을 갖는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그것은 상호작용적이다. 즉, 도덕적 사고란 어떤 개인이 현실적 문제, 경험, 상황들에 대해 논리적 과정이나 조작을 구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적 사고는 어떤 원리와 계산을 구체적인 상황과 딜레마에 응용하는 것을 뜻한다. 이들 과정은 정의 개념에 귀속되어 있어, 도덕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만한 선택에 대해 고려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 과정은 사적 편견이나 집단 압력에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되며 불편 부당해야 한다. 콜버그는 이 과정들이 그가 칸트와 헤어로부터 인용한 용어들 즉, 보편성, 처방성, 불편 부당성에 매우 편리하게 요약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도덕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실제의 구체적인 인간사에 대해서, 정의라는 기본 원리를 반영하는 한 논리 절차를 공평하게 적용하는 것이 된다.
윤리학에서 이성의 역할에 관한 콜버그의 관념에 대해서 세 가지의 주된 비판이 있다. 그 첫째는 도덕적 추론이라는 관념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이 비판에 따르면, 콜버그는 도덕적 추론에 관한 여러 이론들 중의 하나를 택하고 있는 것인데, 비록 그것 역시 훌륭한 것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하나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나 듀이학파가 그 도덕적 추론에 대한 보다 나은 이론을 갖고 있을 수 있다.
두번째 비판은 콜버그의 도덕적 추론 관념이 그가 말하는 정도로 그리 절차적인 특성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실제로는 특정 윤리나 가치의 강요가 개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콜버그는 도덕적 대안에 대해 개방된 고찰을 장려하기는 커녕, 실제로는 아동이 특정 가치를 받아들이도록 아동들을 조종하는 일종의 변론의 형식-소크라테스가 메노에게 한 것과 매우 흡사한-을 구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의 비판은 도덕적 추론에서 정서의 역할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 고발에 의하면, 도덕적 추론에 대한 이론이 명실공히 포괄적인 것으로 인정받고자 한다면 도덕적 감정, 감각과 이성의 관계를 설명해야만 하는 것인데, 콜버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비판에 대해 콜버그는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먼저, 그는 실제로 도덕 발달 단계에 상응하는 다양한 추론 형태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도덕적 추론의 특정 단계나 논리가 여타의 것보다 더 포괄적이고, 타당하고, 정교한 것임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그것은 앞선 논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할 수 있으며,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콜버그는 그가 우연하게 그 추론의 논리를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논리를 자의적으로 선정한 것이 아니라, 이 특정 논리가 가장 발달된 것이고 보편적인 것임이 자명하게 입증된 것이기 때문에 선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강요라는 주장에 대한 콜버그의 반응은 개인의 생득적 특성이나 능력의 발달이 강요나 교화가 아니라 성장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추론은 콜버그 자신의 개인적인 선호나 일시적인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연적, 보편적인 부분이어서 그것을 자극시켜 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메노에게 가치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는 메노의 본연의 능력들을 개발함으로써 그가 성장하는 것을 도왔을 뿐이다.
콜버그는 그가 도덕 발달에 있어서 의지와 감정을 소홀하게 취급한 바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것들은 도덕적 추론 과정의 부분들이라는 것이다. 즉, 그는 단계6의 도덕을 모범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들-간디, 마틴 루터 킹, 예수-‘인지적으로 발달된’ 사람은 또한 위대한 도덕적 열정과 감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려 한다. 의지와 정서는 도덕 발달에 있어 상관이 없는 요소가 아니다. 그러나 도덕의 독립 요소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일반적인 인지 도덕 발달의 부분이거나 파생물인 것이다. 인지 도덕 발달의 정점인 단계6에 이른 사람은 위대한 도덕적 열정을 더불어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
콜버그의 이론 체계는 도덕 발달을, 특정 내용이나 행위의 전수나 교양의 관점에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특정적인 사고의 형식 혹은 구조의 발달이라는 견지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정당화시키려 한다.
나는 도덕이 그 나름의 독자적 영역을 갖는다라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타당성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만일 그것이 독특한 영역이라면, 그 독특성은 반드시 일반적, 형식적 기준에 의해 규정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윤리에 대한 많은 관념들이 형식적인 것이다. 나는 도덕을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의 측면에서보다는 도덕 판단, 방법, 혹은 관점들의 형식성이란 관점에서 정의한다.
이런 의미로, ‘도덕적’이라고 말하는 도덕 판단은 그것의 내용(판단에 의거한 행위)을 고려함이 없이,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판단이나 기준에 부합되는지의 여부를 고려함이 없이 규정할 수 있다.
초기 콜버그는 도덕교육의 과제를 특정의 덕목이나, 행위의 전수나, 교양이라고 보는 ‘착한 소년·소녀’, 혹은 ‘덕목 가방’의 도덕교육 접근법에 대해 누차 비판한다. 도덕성이란 특정 규범이나 행위의 수합물이 아니라, 오히려 전망, 방식, 관점인 것이다. 이 방식이나 관점은 단계6의 도덕관념으로 잘 묘사된다-그것은 앞선 두 개의 장에서 본 바처럼 원리화된 도덕적 추론의 어떤 한 방식을 의미한다.
콜버그의 이론 체계가 특정 내용보다는 그 주장처럼 판단의 구조와 양식으로서의 도덕에 주된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콜버그의 체계는 분명히 말해 특정 행위나 규범의 교양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는 특정 가치 덕목들을 가르치는 것으로서의 도덕교육을 일관되게 거부해 왔다. 특정한 내용으로서의 도덕교육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약해지고 특정 도덕적 행위의 개발에 대한 장려로서의 도덕교육을 보다 강조하는 그의 후기 입장에서조차도, 방식이나 절차로서의 도덕적 행위에 대한 강조는 여전한 것이다. 내용은 양식이나 형식으로서의 도덕을 내재하지 않는다. 대신, 내용은 그러한 방식의 예증을 위한 수단, 조치, 실험실인 것이다. 따라서 도덕이란, 어떤 형식성 이를테면, 보편성, 처방성, 불편 부당성을 갖고 있으며, 어떤 종류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활용되는 절차, 혹은 접근법을 지칭할 수 있다는 한 의미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비판가들이 콜버그의 도덕적 추론의 상위 수준들이 절차적인 성격 못지 않게 내용적인 것이라고 끈질기게 반박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설사 도덕 판단의 어떤 형식적인 특성이 후기 발달 단계에서 보다 더 강하게 일치한다는 것이, 그것들이 ‘거기까지는’ 부합의 정도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해도, 이것이 우리를 더 멀리까지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콜버그가 진실로 우리가 받아 주도록 그토록 추천했던 것은 최상의 도덕 원리로서의 정의 원리(그의 해석상)인 것이다.
실제로 콜버그의 상위 단계들에는 도덕적 추론에 부합되는 형식성들도 있으나, 또한 정의라는 부가된 요소도 있는 것이다. 콜버그는 이 요소를 형식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반면에 비판가들의 입장은 그것을 실질적인 도덕 원리로 취급한다. 그들의 비판은 원리 그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형식성을 갖는다는 그 설명에 있다(실제, 이 토의는, 비판가들이 형식성을 갖기보다는 실제적인 도덕 원리라고 주장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던 윌슨의 도덕 구성소 특히, PHIL의 경우를 상기시킨다).
콜버그가 도덕적 추론이 형식성을 갖는다고 봄은 확실히 분명하다. 그러나 형식성만 갖는다라고 보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사실, 콜버그가 제의하고 있는 것은 듀이의 도덕 이론에 기본인, 즉 형식 내용의 이분법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실지로 콜버그는 그가, “ 이제 도덕원리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궁극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도덕 분석에 있어 내용과 형식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라고 말했을 때 상기의 입장이 뚜렷해진다. 상위의 도덕적 추론 형식에 관여한다는 것은 정의라는 일반적 내용을 적용한다는 의미이다. 도덕적 추론이란 형식은 도덕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며, 도덕의 내용은 추론이라는 특정 형식의 적용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콜버그는 자신이 형식주의 윤리설이라고 지칭되는 전통 속에 있다고 주장한다(예, 헤어, 피터즈, 롤즈). 그러나 그 학파와 콜버그에 대해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형식이란 단순히 차를 몰거나 천을 짤 때의 의미로서의 형식에 관한 것은 아니다. 콜버그는(아마 형식주의자들도) 특정한 지시와 행위로서의 도덕관념을 거부하고, 접근법으로서의 도덕관념을 긍정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가장 발달된 단계에서의 그 접근은 정의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그리고 그것은 그 내용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행위
콜버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서 연유된 것처럼 덕은 지적인 요소와 행적인 요소로 나누어질 수 없다기보다는 오히려, 플라톤의 주장처럼 행동은 도덕적 사고의 본래적인 요소이며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유서 깊은 도덕철학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플라톤-콜버그 학설의 접근법은 도덕적 사고에 대한 강조가 도덕적 행위를 상쇄시키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도덕적 숙고와 행위 양자 모두에 대한 강조라고 말한다. “도덕 발달의 상위 단계에 있는 사람은 보다 나은 사유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판단에 부합되게 행위 한다.”
이 학파의 주장은 참된 도덕적 사고란 행위 하는 것이거나 직접적으로 행위에 인도된다. 즉, 도덕적 지식과 사고는 그 본질상 도덕적 행위에 귀착되며(단계6에 이른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행위 한다), 도덕적 사려의 과정 요소는 선택한 행위에 대한 고려와 예행 연습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콜버그는 그의 이론이 특정 행위들을 수행하는 훈련으로서가 아닌, 도덕적 행동을 취급하고 있음이 명료하다고 주장한다. 도덕 행위에 이르는 적절한 길은 훈련이나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반성적 사고와 사려인 것이다.
콜버그의 행위에 관한 입장은 철학적으로나, 교육학적으로나, 모두 비판받고 있다. 철학자들은 지적 영역과 행동적 영역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아리스토텔레스 학설의 전통을 인용하는 바, 그들은 콜버그가 후자 즉, 행위 영역의 존재를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피터즈는 습관은 도덕 영역에서 이성과 대체되어야 한다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반성적인 도덕을 지닌 사람이 되기 위한 발달 과정이 필요하고 귀중한 계단이 되는, 도덕교육에서 마땅히 인정되어야 할 개념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도덕적 행위를 도덕에 대한 정의 신념, 추론과 같은 그런 인지 과정들이 개재되지 않는 행위 성향과 행위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어거스토 블라시는 “매 사람마다, 다양한 문화 내에 동류의 도덕 행위로 평가되는 다양한 특정 행위들(예, 분배, 협조, 협동, 동정 시혜)의 원인이 되는 수많은 습관, 행동 특성, 혹은 일반화된 행동 성향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육학적 비판은 사려와 반성적 사고가 보다 나은 행위를 초래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보다 지식이 많고 생각이 깊은 사람들이나, 그들이 모인 사회라 해서 그들의 도덕성이 반드시 더 훌륭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콜버그는 이 논제에 대한 토의와 비판을 주의 깊게 경청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이론에 대한 수정을 가하면서 자신의 플라톤적 가정을 옹호하기도 한다. 비판에 대한 첫 반응은 플라톤의 입장을 재서술하고 옹호하는 것이었다. 콜버그의 주장은 보다 나은 사고보다 나은 행동을 함축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예수, 킹 목사, 소크라테스는 도덕적 사유에 뛰어난 생각을 잘했던 것만이 아니라, 비길 데 없이 좋은 방식으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보다 상위의 도덕 단계는 사고와 행위의 상급 단계들이라는 것이다.
콜버그는 후에 도덕교육에서의 “구조 못지 않게 가치 내용에도, 추론 못지 않게 행위에도” 관심을 두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한다. 학교는 변론술 못지 않게 가치 내용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내용과 행위가 구조와 추론을 대신한다거나 혹은 궁극적으로 도덕 판단 기능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콜버그가 애당초 너무 경시했었던 학교교육의 정당한 기능으로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콜버그의 보다 최근 저술에서 도덕교육의 한 부분으로서 특정 행위와 행동의 발달에 대해 보다 비중 있게 강조하는 교육 이론상의 변화를 찾을 수 있다. 이는 교육학적 저술에서의 변화된 두 방향으로 나타나는데, (1) 학생들로 하여금 도덕적 사고를 보다 실제적으로 익히고 응용할 수 있는 학교 상황과 교내 활동에 대한 심화된 강조와 (2) 가설적인 도덕적 딜레마보다는 실제적 딜레마에 대한 보다 심화된 강조가 그것이다. 두 경우 모두에서 콜버그는 학교는 도덕적 추론 과정 못지 않게 도덕적 경험과 행위를 개발시키는 교육 활동에 관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교육 이론상의 조정은 그의 6개의 도덕 단계를 모든 사람들의 공동의 의무인 사회 도덕을 강조하는 5단계로의 수정과 같이 이루어진다.
보다 깊은 사려가 보다 훌륭한 사람들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비난은 물론, 늘 교육 개혁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의 전가의 보도 중의 하나이다. 즉, 듀이의 ‘진보적 교육’은 마약 문화, 소련보다 뒤처진 미국의 우주개발, 장발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외쳐져 왔던 것이다. 분명히, 이 비판은 조금도 체계적이거나 과학적인 평가라고 할 수 없다. 사실상, 인지발달적 도덕교육은 그 성공 여부를 묻는 총괄적인 평가를 미처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이렇게 본다면 콜버그가 70∼80년대의 모든 선과 악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겠는가!
도덕적으로 교육받은 사람
인지 발달 접근법에 의한다면,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인가? 그는 도덕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특성들을 조화롭게 운용해 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즉 반성적 사고, 원리, 정의 가치, 행동할 의향, 그리고 사회 여건을 인지하고 그것과 상관 지을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사람이다. 도덕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덕적) 문제들을 반성적으로 사고하고, 다양한 대안들에 대해 고려해서 (관습, 법 혹은 억지보다는), 정의라는 가장 일반적 원리에 의거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을 배운 사람이다. 콜버그에 있어 도덕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이란 도덕적 숙고와 판단의 과정을 익히고, 더불어 정의의 원리가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조작화시키는 사람이다. 도덕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은 예수, 소크라테스, 코작, 킹 목사와 같이 자신들의 도덕적 해결의 과정들과 실제 그 생활이 부합되는 사람이다.
도덕적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갖춰야 하는 요소들의 대부분은 이미 다룬 여타의 이론들에서도 나왔다. 그러나 콜버그의 그것이 갖는 다른 한 요소는 그 내용에 있다. 사실 우리가 검토한 이론들 가운데서 우리에게 도덕교육을 위해 확실하게 명세화된 가치 내용(또한 도덕적 모범자의 목록을 내놓은 것도)을 내놓은 이는 유일하게 콜버그뿐이다. 뒤르껭은 종종 20세기 도덕교육의 전통주의자로서 간주되기는 하지만, 실제로 가장 모범적인 도덕교육의 이론과 실천을 보여 주고 있는 사람은 바로 현재 도덕교육에 관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콜버그인 것이다.
< 도덕교육론 - 제 접근법의 비교 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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