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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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하얗게 흙으로 덧칠된 동편 계단, 서편 계단을 쓸고 있는 학생의 굽은 허리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둠을 이용해 신발을 신고 계단을 내려오는 익명의 아이들.

제 양말 더러워지는 생각만 할 뿐 그로 인해 다른 친구들의 양말이 얼마나 더러워지는지,

이튿날 친구가 그곳을 얼마나 공들여 쓸고 닦아야 하는지 생각지 않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얼마든지 선생님의 눈을 피한다.
하지만 자신의 눈을 피하진 못할 것이다.
사랑하는 친구의 눈도.

구깃구깃 창틀에 몸을 비틀고 쳐박혀 있는 과장 봉지, 아이스크림 봉지,

어느 창턱에 홀쭉 군살을 빼고 배듬히 누워있는 오랜지 쥬스 팩,

교정 곳곳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일회용 코카콜라 잔과 커피잔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또 누군가는 시린 손을 호호 불며 그것들을 주워 내야만 할 것이다.

새로 산 신발을 잃어버렸다며 교무실에 와 울먹이는 아이의 표정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 세상 어디에나 도둑은 있기 마련이니 그저 조심해야 할 뿐이라고

근사하게 충고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괴롭다.
신발을 가져간 아이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수업을 듣는 아이들 중 하나일 것이다.

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고 학교에 늦거나 빠지는 아이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결국 이 아이들에게 학교는 영어, 수학, 과학 이런 것들을 배우는 곳 그 이상이 아니었다.
얻을 것을 얻고 나면 규칙도 예의도 인간관계도 무너져버린다.

수업시간,
가끔 무슨 일인가를 몰래하는 듯한 표정으로 힐끔힐끔 올려다보며 다른 짓을 하는 아이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십중팔구 만화를 보거나 편지를 쓰는 아이들이다.
소설책을 읽거나 다른 과목을 공부할 때도 있다.

나는 다른 짓 그보다도 그 표정이 더 걱정이다.
혹이라도 그 표정이 습관이 될까봐 걱정인 것이다.
깊게 주름진 이마와 흰자위가 넓어진 눈.

아니, 어쩌면 그 외모보다도 늘 눈치를 보며 사는 마음의 습관이 들까봐 더 걱정된다.

5.18광주항쟁 .4.19의거. 3.1운동 이런 이야기만 나오면

무표정하게 잠을 청하는 아이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역사 없는 현실은 없다.
역사 없는 해석이나 행동은 오류의 가능성이 높다.
이런 단어에 이렇게 무관심하다가

언젠가 누군가 또다시 총칼을 우리 목에 들이댈지 모른다고 위협해도 소용없다.
현실의 감각과 달콤함에 이미 중독되어 버린 것일까.

으레 약속시간보다 이삼분 쯤 늦는 그러면서도 늘 당당한 아이들의 게으름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7시까지 오라고 하면 7시 3분에 오고 8시까지 오라고 하면 8시 3분에 온다.
특별히 배려하여 9시까지 오라고 하면 9시 3분에 온다.
지각 인생.
그것은 여유있는 인생이란 말과 같은 뜻이 아니다.

혹이라도 인사를 했는데 인사를 받지 않았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을까봐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지나는데

말똥말똥하는 눈으로 지나는 아이들, 아예 남남인양 외면하는 아이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렇게 쑥스러울 수가 없다.
11시까지 함께 자율학습을 하고 가는데도

인사 한마디 없이 바쁘게 사라져가는 아이들이 서늘한 등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먼지 쌓인 교사의 책상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태양이 밝게 비취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시험 때만 되면 느슨해지는 주번활동, 청소활동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점수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아이들, 점수 앞에만 서면 규범도 약속도 믿음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면책특권.

연락없는 제자들의 후일담을 궁금해 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버릇없이 구는 혹은 말썽피우는 제자 때문에 서늘한 휴게실에 앉아 홀로 담배 피우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이를 나무라고 혹이라도 그 아이가 찾아올까 교무실을 떠나지 못하는 선생님의 주름진 얼굴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웅성거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또 웅성거리는 아이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나는 안다.

이 슬픔의 어느 한 부분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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