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Stephen King),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
by 처사21스티븐 킹(Stephen King),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말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고루한 상투어일 뿐이다. 물론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하지만 이론은 보다 깊은 혜안(慧眼)을 준다. 한 분야에서 일가견을 지닌 사람들이 쓴 이론서는 특히 그렇다. 세상에 글쓰기 책은 참 많다. 하지만 이런 유의 책은 <강을 건널 때 쓰는 뗏목>과 같다.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에는 신경 쓰지 않듯이, 일단 글쓰기가 궤도에 오른 후에는 제대로 읽게 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여전히 별 볼일 없지만 이제는 심심치 않게 '청탁'도 받는 정도로 '전문 필자(?)'가 된 나로서도 이 점은 예외가 아니다. 나는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거의 없다. 있다면 대학 시절 본 에코의『논문작성법』과 안정효의 『번역의 기술』정도다. 왠지 이런 글을 보면 풋내기들에게 자식들, 많이 커봐라!하고 무용담을 늘어놓는 퀘퀘한 노땅들 보는 듯해서 닭살 돋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글쓰기에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마디 첨삭지도가 더 효과 있다는 편견도 한몫했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 글쓰기 이론서가 번역 책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우리말과 외국어 글쓰기는 문장 호흡부터 다르다. 외국의 작법이 우리말에도 통한다는 법은 없는데 뭐 굳이 외국 이론서를 볼 필요가 있겠나... ... 뭐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좀처럼 <작문>에 관한 책을 보지 않았다. (사실 별 재미도 없었고. )
도서평론가 이권우 선생님의 권유가 아니었다면 나는 『유혹하는 글쓰기』도 보지 않았을 거다. 나는 그의 현란할 말발에 넘어가서 이 책을 사고 말았는데, 결론적으로 그는 괜찮은 선물을 던져준 셈이다. 무지하게 재미있게 이 책을 읽었으니 말이다.
스티븐 킹은 구구절절한 할머니 잔소리마저도 구수한 옛 이야기로 바뀌어 놓을 만한 재주를 지닌 사람이다. 『유혹하는 글쓰기』도 그렇다. 어디까지가 딱딱한 이론 설명이고 어디부터가 이야기인지 구분하기조차 쉽지 않다. 스티븐 킹이라는 유명인사의 신변잡담에 귀 기울이고 있다 보면 어느덧 글쓰기의 핵심은 미쳐 머리 쓸 겨를 도 없이 이해 되어 버리고 만다.
쓸 때 마다 번번이 받는 출판사의 거절 쪽지 (거절 쪽지를 벽에 못을 박아 끼워놓곤 했는데, 나중에는 차고 넘쳐서 꽂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거절의 메시지마저도 자기 글에 대한 반응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우쭐해 하는 모습, 첫 원고료를 받았을 때의 그 감동은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생히 공감(sympathy)할 수 있을 터이다. 누구에게나 공통된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듯 3-4시간씩 일정한 시간에 글쓰기를 하는 자신의 모습, 그렇게 쓸수록 글솜씨도 는다는 조언, 젊은 시절 글의 속도감을 높이라는 뜻으로 거절 쪽지에 편집자가 적어준 수정본=원본-10%라는 문학적 비아그라 공식 등등, 한없이 딱딱해 질 수 있는 내용을 그는 일상에서 친구와 노닥거리듯 자연스럽게 전해준다. 수동태를 피해야 한다., 부사를 피하라., 문단은 모양도 중요하다.는 등등의 소소한 조언도 빠뜨리지 않고 말이다.
그는 플롯(plot)에 따라 짜 맞추어 나가는 글쓰기를 혐오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풀리는 데로 써나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유혹하는 글쓰기』에서도 전혀 억지스러움이나 어색함을 느낄 수 없다. 논리에서 의도성을 다분히 느낄 수밖에 없는 따분한 이론서를 그는 화장실에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정도의 수필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면서도 노련한 대가답게 이야기 할 것을 놓치는 법도 없다.
번역자의 역량도 돋보인다. 풋내기 역자들은 원문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직역투를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역자(김진준)는 자신에게 쏟아질 수 있는 전문 역자들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가볍게 무시해버릴 수 있는 강심장을 지닌 사람인 듯하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가장 적확한 우리말로 옮겨놓는데, 오히려 그 편이 대부분 아마추어일 것인 이 책에 독자들에게는 훨씬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한 마디로 그 저자에 그 역자라 할 수 있겠다. (둘 다 뛰어나다는 뜻이다.)
물론 비판할 점도 적지 않다. 성과에 늘 좇기는 미국 작가들 특유의 완성도 떨어지는 구성을 우리는 이 책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별 상관없는 듯한 자신의 교통사고를 빌미로 억지결론 맺는 것도 그렇고, 생애, 글쓰기, 교통사고 이후의 삶이라는 따로 노는 듯한 3단 구성도 억지 책 만들기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필자 개인의 창작 방법을 지나치게 일반화시킨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겠다.
그럼에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하다. 그가 강조하는 글쓰기 기법이 스티븐 킹이라는 우리 시대 최고 대중 작가의 일상에 어떻게 녹아들었고 적용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려면 많이 읽고 쓰는 방법밖에 없다., 글을 쓸 때는 한 번은 서재 문을 닫고 쓰고 한번은 열어놓고 써라.(쓸 때는 집중해서 쓰고 퇴고 단계에서는 비판이 필요하다는 듯이다.), 퇴고는 (자신의 원고가) 어느 고물상에서 구입한 골동품처럼 낯설게 보일 정도로 충분한 시간을 묵힌 후에 해라.는 등등 어느 시대 어느 작가에게라도 적용될 만한 금언들을 발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지적 기쁨이다.
※ 이 서평은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서강대 철학과 박사과정)이 작성한 것입니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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