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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브 아이스베트(Bev Aisbett), "검정개 블래키의 우울증 탈출기(Taming the Black Dog)"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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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브 아이스베트(Bev Aisbett), "검정개 블래키의 우울증 탈출기(Taming the Black Dog)"

 

나는 고민이 있을 때면 항상 서가(書架) 사이를 거니는 습관이 있다. 심각한 얼굴로 서점이나 도서관의 서가를 거닐다가 보면 눈에 확 띄며 마음을 잡아당기는 책이 있다. 사실 󰡐독서치료󰡑라는 것도 별 것 아니다. 10만권쯤 책이 있는 서가를 거닐다 보면 누구나 자신에게 절실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저절로󰡑 찾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도서관은 가장 해박하고 경험 많은 상담자󰡑라는 말은 단순히 수사적인 은유만은 아니다. 몸에 어느 성분이 부족하면 그것이 담긴 음식에 저절로 입맛이 당기듯, 우리 정신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원해서 찾는 경향이 있다.

 

"검정개 블래키..."도 고뇌하는 얼굴로 책꽂이 사이를 거닐다가 󰡐저절로󰡑 손에 들어온 책이다. 나는 서점 계산대에 선 모습 그대로 한 시간 만에 게걸스럽게 이 책을 읽어 치웠다. 절실한 책은 그만큼 잘 읽힌다.

 

블래키란 󰡐검은 개(black dog)󰡑의 애칭이다. 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윈스턴 처칠이 자신의 증상을 󰡐검은 개󰡑라고 부른 데에서 따왔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잠재적인 우울증 환자다. 결코 이룰 수 없지만 누구나 내심 바라는 소망- 󰡐돈은 원하는 만큼 항상 가질 수 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절대 변하지 않으며 내가 원하는 일자리는 항상 있을 것이라는 기대...자신은 결코 늙지 않을 것이라는 허황된 기대󰡑는 언젠가는 반드시 좌절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바라보기 나름이다. 바비 인형 같이 예쁘고 빌 게이츠 같은 재벌이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변화를 긍정하고 열린 눈으로 밝은 내일을 꿈꾼다면 세상도 이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아이스베트가 이 책에서 말하는 󰡐자신이 내보내는 메시지가 결국 (자신의 인생이 되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말은 서른을 넘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릴 말이다. 세상이 꺼져라 한숨짓는 사람 옆에 않아서 몇 시간씩 하소연 듣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흔치 않다. 사람들은 밝고 확신에 찬 사람을 좋아하는 법이다. 결국 자신의 삶의 태도가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

 

블래키같은 사람-우울증에 사로잡힌 사람은 늘 혼자 지내며 모든 에너지를 고민하는데 소비한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며 사람들의 도움도 원하지 않고 우울함에서 빠져나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자신 만의 동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블래키들에게 아이스베트는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라고 충고한다.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들은 대부분 생각보다 별 것 아니다. 어린 시절 심각했던 것들이 지나고 보면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듯, 우리는 실제보다 문제를 더 크게 받아드리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해서 세상에서 󰡐매장󰡑 당하는 것도 아니다. 과감하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도움을 구하라. 감정은 일시적일 뿐이다. 그리고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든다.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블래키는 어느덧 󰡐해피(happy)󰡑로 바뀔 것이다.

 

아울러, 블래키들을 돕고 싶다면, 그들을 보는 일반적인 태도-그들이 느끼는 고통을 사소한 투정이라고 생각하고, 사회 부적응아처럼 여기며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자기중심적인 놈이라고 비난하거나 자신이 누리는 혜택에 만족 못하는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여기는-를 버리라는 충고는 교사라는 내 직업상 가슴이 뜨끔한 부분이었다. 나의 블래키 학생들에게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자아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대목이다.

 

항상 할 수 있는 것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고, 할 수 없는 것의 목록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아지는 30대이다. 우울증 걸리기에 󰡐󰡑인 생활환경, 나는 내 자신이 블래키인 줄도 모르고 일 년여를 찌푸린 채로 보냈던 듯 하다. 하지만 나는 책을 잡은 지 한 시간 여 만에 가뿐한 얼굴을 하고 서점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은 우울증 환자를 위한 󰡐독서치료󰡑용 교재로 손색이 없다. 적어도 이 책을 통해서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한없이 심각한 학술 용어와 싸우느라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낭패를 보는 일은 없겠다. 가벼운 삽화, 그리고 핵심을 찌르는 짤막한 글을 읽다보면 어느덧 블랭키의 영혼이 저절로 󰡐(up)'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서평은 안광복(중동고 철학 교사, 서강대 철학과 박사과정)이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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