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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험프리(Nicholas Humphrey), "감정의 도서관(The Inner Eye: Social Intelligence in Evolution)"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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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험프리(Nicholas Humphrey), "감정의 도서관(The Inner Eye: Social Intelligence in Evolution)"

 

 

 

개는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처음에는 다른 개인 줄 알고 장난치거나 달려들다가 허상(虛像)임을 알고 난 다음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인간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임을 안다. 나아가 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 유일하게 󰡐󰡑󰡐󰡑라고 의식할 수 있는 존재이다.

 

물론 개를 비롯한 생명체도 희로애락 등의 감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존재도 인간처럼 󰡐내가 기쁘다.󰡑, 󰡐내가 슬프다.󰡑는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의식󰡑하지는 못한다. 화가 나서 사납게 짖는 개는 화가 났을 때 반응을 보일지언정 자신이 화가 났음을 󰡐의식󰡑할 수는 없다. 우리가 개가 화났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화가 났을 때 감정과 반응에 비추어 개의 󰡐감정󰡑을 유추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고도로 정교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로봇을 보며 󰡐슬퍼 보인다.󰡑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로봇이 슬퍼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나 자신을 의식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이너 아이(Inner Eye)󰡑를 다루고 있다. 심리학자 험프리는 왜 인간만이 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아주 독특하고도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진화로 본 사회적 지능󰡑이라는 부제(副題)처럼, 험프리는 󰡐자신의 감정을 의식할 수 있는 능력󰡑은 결국 오랜 자연선택으로 얻어진 결과라고 본다. 인간의 자기의식 능력도 결국 생존에 필요했기에 생겨났으리라는 설명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험프리는 그 이유를 인간이 집단생활을 잘 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찾는다.

 

합리적이고도 치밀한 사회적 협동과 군집 생활은 인간이 거친 자연 속에서 살아남는데 매우 효율적이다. 우리 중 누구도 길을 걸으며 호랑이의 습격을 받을까봐 걱정하지는 않는 것처럼, 자연은 더 이상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호랑이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이번에는 사회 밖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며 인정을 받아야 자신의 󰡐사회적󰡑 생존을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려면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들의 감정과 사고를 알 수 있는 자료는 결국 나 자신의 내적인 경험 밖에 없다. 자신이 슬펐던 때, 기뻤던 때 등등에 비추어 다른 이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똑같이 느낄 것이리라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예컨대, 엄마 생일에 장난감 로봇을 선물하는 사내아이를 생각해 보자. 아이는 장난감을 받았을 때 기뻤던 감정을 떠올리며 엄마도 그럴 것이라 유추하여 선물을 준비 한다. 하지만 다양한 상황에서 희로애락을 많이 겪어본 사람은 다양한 경험에 비추어 상대의 소망을 보다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더 상대에게 인정받으며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공감(共感; Sympathy)은 우리 삶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기초이다. 그리고 이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에서부터 비롯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삶은 공감 능력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데 집중되어 있다. 우리는 독서, 영화나 연극과 같은 󰡐간접 체험󰡑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다른 사람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실업자가 되 본적 없는 노동부 장관󰡓, 󰡒결혼 생활에 긴장을 겪어보지 않은 가톨릭 신부󰡓가 제 역할을 해 낼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분노, 슬픔, 질투 등등 감정 체험이 많아질수록, 󰡐감정의 도서관󰡑에 꽂히는 항목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타인의 감정과 고통을 점점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거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은 있다. 자기와 직접적으로는 별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 까지도 잔인하게 죽여 버리는 전쟁이란 대학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병사들이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공감󰡑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설사 공감할 수 있더라도 병사들은 사람들은 죽일 것이라는 것이 험프리의 답이다. 인간의 자기의식은 타인 이해에 근거 두는 인간 공동체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스스로 허물어뜨리기도 한다. 인간이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군대, 교회, 국가 같은 공동체를 만들어 냈지만, 이 것들은 역설적으로 󰡐공적이며 냉철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서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고자 하는 마음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인󰡑 변호사, 의사, 판사 등의 사람들과도 공감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세탁기를 쓰면서도 정작 그 원리에는 관심이 없듯이, 우리는 이들이 받은 전문지식에 대해서는 알려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전문가들은 하나하나의 의뢰인들과 공감하기 보다는 󰡐냉철하게󰡑 거리를 두고 자신의 지식을 적용할 󰡐객관적인󰡑 사례로 보도록 교육받는다.

 

결국 험프리는 "감정의 도서관"을 통해, 위대한 인류 문명을 이룩해 낸 공감 능력을 우리 스스로가 파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의 도서관"을 한마디로 평하자면 짧고 굵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책으로는 드물게 책날개가 없는 페이퍼 백(Paper Back)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칼먼(C. Calman)이라는 유명한 영국 삽화가의 재미있는 그림이 곳곳에 들어 있어서 실제 내용보다는 비교적 가볍게 읽힌다. 200여 페이지 안팎의 얇은 분량도 읽기에 적당하다. 그래서인지 심리학책으로서는 꽤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일반 독자들에게 상당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겠다. 카아( E. H.Carr)"역사란 무엇인가"가 역사철학이라는 지극히 편중된 주제를 다루면서도 역사학도들의 입문서로 읽히듯, "감정의 도서관"도 심리학을 위한 입문서로 충분히 권할 수 있겠다. 무거운 내용을 가볍게 전하는 서적은 예나 지금이나 흔하지 않으므로.


이 서평은 안광복(중동고 철학 교사, 서강대 철학과 박사과정)이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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