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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자살은 타살이다?"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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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자살은 타살이다?"

 

설득에는 󰡐분위기 파악󰡑도 중요하다. 논리만이 능사는 아니다. 날카로운 논증은 때로 상대에게 상처만 입혀 반감만 더 키울 때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성의 칼날을 접고 가슴으로 공감(共感)해 주는 것이, 혹은 직접적인 논박 대신 에둘러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진정한 󰡐논리의 달인󰡑은 이처럼 상대의 코드에 맞추어 다양한 설득 방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뒤르켐(Emile Durkeim:1858~1917)"자살론(Le Suicide:1897)"은 이런 󰡐맞춤형 설득󰡑의 정수(精髓)를 보여준다. "자살론"의 내용은 제목처럼 섬뜩하지 않다. 자살을 찬양하거나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왜 사람들이 자살하는가 하는 이유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찾아보려 할 뿐이다.

 

뒤르켐은 자살 원인을 개인적인 갈등이나 나약함에서 찾지 않는다. 가출은 개인의 일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가출 청소년의 비율이 높고 낮아지는 것은 그만한 사회적인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살도 마찬가지다. 자살자가 늘고 주는 문제는 개인의 󰡐취향󰡑때문이라기보다 뭔가 그만한 사회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모든 자살은 타살이다.󰡓라는 말은 스스로를 죽일 수밖에 없게 시민들을 몰고 가는 사회 구조적인 원인이 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뒤르켐이 찾으려고 한 것은 이러한 자살의 󰡐사회적인 원인󰡑이다.

 

진단이 다르면 처방도 다른 법, 뒤르켐은 도덕적 훈계나 가르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그가 내놓는 처방전은 󰡐사회의 변화󰡑. 뒤르켐은 상황에 따라 다른 코드로 논리를 펼 수 있는 설득의 귀재였던 것이다.

 

 

"패거리로 덤빌 때도 한 놈씩 상대하라."

 

복잡하게 꼬여 있어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문제들은 해결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교육문제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성급히 달려들 일은 아니다. 서두를수록 상황은 점점 더 얽히고설켜 버려서 나중에는 뭐가 문제인지조차 헷갈릴 수 있다. 침착하게 문제의 원인을 조목조목 짚어 가능한 해결 방안을 하나씩 검토해 보아야 한다.

 

뒤르켐은 자살이라는 미묘한 사안에 신중하게 접근한다. 그는 자살의 원인이라고 제안되는 것들을 나누어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해 나간다. 󰡒패거리로 덤빌 때도 한 놈씩 상대한다.󰡓는 싸움꾼들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셈이다.

 

그는 먼저 자살의 원인 중 인종, 날씨, 지리적인 위치, 유전(遺傳)과 같은 비사회적 요소들부터 검토한다. 그것도 단순한 󰡐󰡑이나 머리 속의 논리가 아니라 󰡐통계󰡑라는 지극히 객관적인 방법으로 자살과 여러 요소들 간의 연관성을 탐구했다.

 

뒤르켐은 일반적인 편견과는 달리 날씨가 좋은지 나쁜지, 흑인이냐 백인이냐 하는 문제는 자살에 별 상관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그가 자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밝힌 요소는 사회적인 요인, 즉 사회의 통일성과 응집력이다. , 사회가 개인에게 소속감과 삶의 의미를 얼마나 줄 수 있는지가 자살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기적, 이타적 자살과 아노미성 자살"

 

어찌 보면 뒤르켐의 주장은 대단히 상식적이다. 친구가 많고 부모님에게서도 충분히 사랑받는 사람은 어려운 고난에 닥쳐서도 쉽사리 죽을 결심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왕따󰡑인데다가 삶의 의미를 도통 찾을 수 없는 이들은 사소한 고민에도 죽고 싶다고 생각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회의 응집력은 너무 낮아도, 아주 높아도 자살률을 끌어올린다. 응집력이 너무 낮으면 󰡐이기적 자살󰡑이 발생한다. 보통 독신자의 자살률은 기혼자보다 높다. 더 많은 관심을 자신에게 기울이고 해야 할 역할을 부여하는 집단 속에 있는 개인은 자유 속에 방치된 사람들보다 더 적게 자살한다. 이기적 자살은 사회 속에서 충분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기에 죽음을 택하는 경우다.

 

반대로 사회의 응집력이 지나치게 높을 때는 󰡐이타적 자살󰡑이 자주 일어난다.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목숨을 던지는 것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런 사회에서는 도덕적인 가치나 명분을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자기 생명 󰡐따위󰡑는 오히려 하찮게 여긴다. 일본에서 종종 일어나는 망한 회사의 사장이 경영의 책임을 지고 자결(自決)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아노미(anomie)성 자살󰡑은 급격한 변화로 사회의 규율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자살이다. IMF 때 직장 잃은 가장(家長)들이 목숨을 끊는 경우를 떠올리면 되겠다. 삶의 이유였던 직장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실직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혼한 남성이 미혼 남성보다 자살률이 높은 이유도 그렇다. 생활을 절제하고 인내해야 할 이유가 사라져버리고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사람을 자살로 이끌곤 한다.

 

물론 모든 자살이 이 세 가지 요인으로 명쾌하게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직한 군인의 자살은 아노미성 자살과 명예를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는 이타적 자살 동기가 합쳐서 나타난 결과다. 부모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 한다는 󰡐핑계󰡑로 자진(自盡)하는 문제 학생에게는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 동기가 섞여 있다.

 

"질문도 대답도 열려 있는 사회과학"

 

어찌되었던 중요한 것은 뒤르켐이 자살의 원인을 사회의 응집력과 통일성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진단이 그렇다면 처방도 그에 걸맞게 나올 수밖에 없다. 뒤르켐이 의사라면 아마도 자살률 증가라는 병을 앓고 있는 사회에 대한 진단서에 󰡒비대해졌지만 개인의 실제 고민에는 무능한 정부와 구심점을 잃고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린 개인이 원인󰡓라고 적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전쟁이나 혁명 상황이 아닌 한 우리에게 이타적 자살은 심각한 골칫거리가 아니다. 문제는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성 자살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가이다. 뒤르켐에 따르자면 자살에 대한 처방은 당연히 사회의 응집력과 통일성을 높이는 것일 터이다. 실제로 그는 사람들에게 삶의 동기를 부여하며 보상해 줄 수 있는 󰡐자살 방지제󰡑로 법인(法人), 즉 회사 역할의 강화를 꼽는다. 현대적으로 고쳐 말한다면, 동아리나 소모임을 활발하게 하고 사회적인 역할을 더욱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될 터이다.

 

뒤르켐의 주장은 IMF라는 정신적, 경제적 공황기를 겪는 우리에게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문제는 뒤르켐 식으로 조처 하더라도 그의 방식으로는 해명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개인적인 자살들이 여전히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이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과학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법칙도 처방도 없다. 어느 관점을 택하건 나름의 설득력이 있지만 동시에 미흡한 점도 있다. 물음도 열려있고 대답도 열려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회과학의 탐구란 정답이 없는 삶의 과정과 같다. 스스로 여러 답을 제시하면서 좌절과 성공을 맛보는 가운데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사회과학도 그런 가운데 성숙해 간다. 뒤르켐의 ?자살론?에는 언제나 미완성에 그치지만 조금씩 향상되어가는 사회과학적 탐구의 묘미가 잘 담겨 있다.


안광복(중동고 철학 교사, 서강대 철학과 박사과정)이 작성한 이 서평은 고교 교양지 "입시타임즈" 20031128일자 <논리로 읽는 고전> 칼럼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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