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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여자란 무엇인가"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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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여자란 무엇인가"

 

...에듀테이너(Edutainer). 교수 직함을 오래 전에 버린 김용옥을 소개할 때는 이 신조어(新造語)를 쓰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 같다. 그는 이 시대에 가장 성공한 '대중 철학자'이다. 사람들은 마치 인기 연예인의 쇼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그의 강의를 '즐긴다.' 그렇다고 그의 강의가 대중이 쇼프로 보듯 즐길 정도로 가벼운 것은 아니다. 특유의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와 어지러운 칠판 속에는 어려운 한문과 철학 개념이 난무하다. 그런데도 그의 강의는 즐거운 ''. 사람들은 미간에 주름 잡으면서도 자리를 뜨지 못한다. '웃고 즐기는 가운데' 김용옥과 함께 심오한 철학적 사유 한 가운데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가 이 시대에 가장 성공한 대중 철학자로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여자란 무엇인가}는 고대 철학과 교수 시절에 그가 썼던 책이다. 10여 년 전의 배스트셀러를 나는 지금에 와서야 읽을 결심을 했다. 재미있고 인상깊지만 철학자에게 요구되는 엄밀함과 명료함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대중적 강의에서보다는 '강단 철학자' 시절의 그의 글에서 보다 명확하게 '김용옥의 철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나는 만약 김용옥이 쓴 것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결코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대학 1학년들도 알고 있을 법한 논리적 글쓰기의 기본을 모조리 무시하고 있다. '여자'를 다루면서도 주제는 자신의 부모님의 회갑연 같은 일상에서부터 시작하여 판소리, 역사와 문헌학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다한 분야를 헤매고 다닌다. 학적인 엄밀성의 잣대로 이 글에 대한 평점을 매긴다면 아마 최하점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대가(大家)를 범인(凡人)의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는 법, 그의 난삽한 글쓰기는 오히려 그 자체가 독특한 하나의 전달 기법이다. 홍운탁월(洪雲省月), 달을 표현하기 위해서 구름을 그린다는 고사성어같이 그는 '여자'라는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수많은 구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독자들은 어떤 명료한 논증보다도 더 분명하게 그가 의도했던 바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이 김용옥의 글쓰기 스타일이다.

 

이 책에서 그가 말하려는 바는 어찌 보면 간단하다. 근본에서 따지고 보면 서양(보다 구체적으로는 기독교) 문명에서는 여성을 남성의 불완전한 모습(결여태) 정도로만 여겼던 반면에 동양 문명권에서는 여성을 남성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존재로 존중하였다는 것. 그는 이를 밝히기 위해서 여성을 나타내는 낱말의 어원들을 분석한다. 예컨대, 영어의 'woman''man'에 접사 'wo-'가 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에서도 여성은 남성의 갈비뼈로 만든 '잉여인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양(동북아)에 있어서 여성은 남성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엄연한 독립된 존재이다. 영어의 남자를 뜻하는 'man'은 곧 '사람'을 뜻하기도 하지만, 한문에서 사람을 뜻하는 인()에는 남자''이라는 의미는 없다. 또한, 여자를 나타내는 여()도 애 낳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뿐만 아니라, 하늘-아버지(남성) 중심의 기독교 세계관과는 달리 동양의 우주관은 하늘과 땅(여성)을 동시에 강조한다. 김용옥은 또다시 여기서 언어학적인 분석을 하는데, 그에 의하면 딸을 높여 부르는 '따님'과 땅을 부르는 '땅님'은 어원적으로 똑같은 말이다. , 기독교 문명에서와 달리 '(여성)'''은 하늘에 견주어 불결하고 저주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루는 당당한 한 축이라는 의미이다.

 

- 땅을 보는 이런 동서양의 관점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김용옥에 의하면 이는 기독교가 발생한 사막의 유목 문화와 우리 농경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사막은 결코 순환과 생명의 터가 되지 못한다. 건조하고 매마른 사막에서 죽은 시체는 결코 거름이 아니다. 죽음은 재생산이 없는 끝이며 지상에서의 삶은 소멸해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완전하고 영원한 세상은 천상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농경 문화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은 또다시 자손들이 곡물을 키울 땅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또 다른 탄생을 의미한다. 때문에, 생산과 번식을 강조하는 동양의 농경 문화 속에서 땅을 상징하는 여성은 하늘(아버지) 못지 않은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明堂)도 살펴보면 결국 여성의 성기의 모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우리의 사유 깊숙한 곳에는 페미니스트적인 관념이 살아있다.

 

따라서 김용옥은 주장한다. "하느님에 대해 따님의 회복, 그것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회복이며, 'man'에 대한 인()의 회복"이라고. 어줍지 않게 서양 사상을 인용하여 여성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전통 사상을 복원하는 것이 곧 페미니즘의 원의(原義)에 더 가까운 것이며 이는 결국 그동안 왜곡되어온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의 회복이라고.

...{여자란 무엇인가}는 김용옥의 책들이 거의 그랬듯이 여기서 소개한 서론적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그리고 10여년이 흘렀지만 '본론'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려오지 않는다. 아니, 그의 스타일로 볼 때 '본론' 따위는 쓰지 않을 것이다. 학자적인 엄밀한 논증(argument)를 기대한다면 김용옥에게서 얻을 것은 실망뿐이다. 그러나 달을 표현하기 위해 구름을 그리는 그의 글쓰기 방식을 이해한다면 수많은 영감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굳이 달을 보지 못하더라도 그가 그려주는 구름만으로도 많은 영감과 학적 소재거리를 얻을 수 있으므로.

 

교사 안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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