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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인의 편지" 몽테스키외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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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인의 편지" 몽테스키외

 

유행이 한참 지난 후, 책장을 뒤져 예전에 베스트셀러를 다시 꺼내 읽어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만약 그 철 지난 베스트셀러가 5년 전, 10년 전의 것이 아니라 300년 전의 것이라면 어떨까? {페르시아인의 편지} 무명의 몽테스키외를 일약 '스타'로 만든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나 베스트셀러는 속성상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을 떠나서는 그 온전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법. 300년 전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고소(苦笑)하던 이 책의 날카로운 풍자를 무려 3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그것도 프랑스도 아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란 애초부터 무리한 일이리라. 그러나 묘하게도 이 책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성서의 격언을 상기시키게 한다. 세상은 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프랑스나 한국이나, 우매하고 조롱 받을 만큼 고집 세며 자신은 우수하다고 믿지만 사실상 바보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에서 그려지고 있는 인물상들은 여전히 우리 세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비판받는 사회의 병든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페르시아의 편지}가 당대의 베스트셀러에 그치지 않고 고전(古典)의 범주에 드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풍자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엽기(기이하여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요사이 뉘앙스로써의 엽기 말이다), 섹스, 그리고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풍자. 이 세 가지 요소로 독자를 고루 달궈 놓는다면 독자는 도저히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으리라. 300년 전의 이 베스트셀러는 그러한 '원칙'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이 책에는 우즈베크와 리카라는 두 명의 페르시아 인이 등장한다. 두 명의 주인공이 동양의 '신비의 나라' 페르시아에서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당시 독자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을 것이다. 게다가 화자(話者)'외국인'으로 설정한 것은 루이 14세 시대의 엄청난 철권 통치의 검열에서 도망칠 수 있는 구멍을 마련해 놓고자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게다가 몽테스키외는 첫 도입 부분을 처첩과 환노들의 편지로 채워 놓음으로써 은근한 성적 상상을 자극시키는 측면도 있다. 사실, 극도의 순결 강요와 일부다처제도 때문에 페르시아의 하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이 책 전편을 통해 없어도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종교 권력의 시퍼런 서슬이 아직도 날이 선 채 있었던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그 때의 독자들은 계몽과 사회 비판에 대한 내용보다는 오히려 이 부분들을 더 세심히 읽고 흥분을 느꼈을 지 모를 일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인간적인 질투와 갈등, 암투라는 호기심거리를 강하게 자극하는, 대중서적인 측면을 띄고 있다. 또한, 이 책이 취하는 서신이라는 형식은 서로 다른 주제의 글들로 인해 전체 구조가 산만해 진 것을 절묘하게 '변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저술한 사상서는 아니다. 그러나 어떤 명료한 사상서보다도 더 뚜렷하게 당시의 시대정신- 계몽의 모티브를 느낄 수 있다. 윤리의 전무상태에서부터 윤리 도덕을 만들었다가 다시 왕을 옹립함으로써 윤리 도덕을 자신들을 죄는 족쇄로 만드는 '트로클러아이트'라는 가상의 종족을 만들어 내어 자연법적 윤리설 사상(혹은 계약설?)을 간접적으로 주장하고 있기도 하고(11-14), 절대 권력화 한 교황권과 교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며(29), 보다 철학적으로는 중세적인 정신 우위의 관점에서 벗어나 육체 우위의 세계관을 주장하는 것(33) 등에서 이 점은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다.

 

 

아울러, 이 책은 풍속학적으로도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의 행간 행간에서 우리는 루이 14세 재임기간 동안의 프랑스 사회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 이 책을 읽다보면 허풍장이들을 비판하는 가운데 그들이 있는 카페를 설명하면서 커피가 이미 당시에 유럽 사회에 널리 퍼져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36), 여배우들의 생활이 문란했다는 것(28), 지폐 도입이 수많은 비판을 받았을 뿐더러 부자가 가난뱅이가 되고 하인이 부자가 되는 재산상의 많은 혼란이 있었다는 것 등등의 역사적 사료를 자연스레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가멸찬 풍자들을 통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노부인에게 선뜻 연금을 희사하고, 철권을 휘두르는 왕권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으나, 이 것이 제재받지 않았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되어있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자신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 서신의 구성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짧은 스타카토로 독자의 가슴에 내다 꽂히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글들도 많다. 협박과 처벌의 공포로 말미암아 마지못해 싸우는 페르시아 군과 명예와 자부심을 부추켜 '스스로' 싸우게 하는 프랑스 군대를 비교하면서 인간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서신(90), 그리고 절대왕권은 모든 증오와 해결책이 권력자 한 사람에게 모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암살과 처단 음모에 시달리게 하여 절대권력자 자신에게도 해롭다는 점(104), 또한, 적절하지 못하게 가혹한 처벌은 오히려 반란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는 주장(103), 그리고 부패한 절차로 임용된 관리는 '본전을 뽑기 위해' 마치 점령자처람 마을을 약탈하여 황폐화시킨다는 것 등등은 읽은 이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옛 격언을 다시금 상기하게 하면서 깊은 사색에 잠기게 만드는 무엇을 던져주고 있다.

 

...여러 가지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무려 네 달이 넘는 긴 기간 동안 드문드문 읽었지만 서신이라는 형식 때문에 독서의 맥이 끊기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다만, 내가 읽은 책의 번역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하고 비문이 많아 내용을 잘 다가오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물' 들도 {페르시아인의 편지}가 주는 즐거움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장애물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법, 좀더 매끄러운 우리말로 된 새로운 번역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울러, 아직 이 책을 접해보지 못한 다른 독서가들에게도 이 300년 전 베스트셀러를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

 

교사 안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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