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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동양 정신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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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동양 정신

김 수 근(金壽根)

 

현대인에게 비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은 인류 문화의 존속 여부와 직접 관련된 문제이므로, 왜 이것이 건축에서도 문제가 되어야 하느냐고 새삼스럽게 논할 필요가 없다.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환경 문제에 관하여 책임감 있는 건축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생활 공간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건축이 어떻게 하면 자연 환경의 균형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켜 나갈 수 있느냐가 문제시되어야 한다.

 

이것은 곧 공간 설계를 하는 건축가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며, 그러한 가치 추구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고려해야 함을 말한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건축가의 가치관, 사고 방식, 또는 공간 개념에 관한 문제가 된다. 어떤 공간 개념이 한 건축가의 생각을 지배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공간 설계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 환경과 인간의 생활 환경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하는 오늘의 건축가들에게 필요한 공간 개념이란 어떤 것인가.

 

공간 개념에 대한 필자의 관심을 한국적인 공간 개념의 특징을 찾는 데서 시작되었다. 공간 개념은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각 문화권마다 특유의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우리 나라의 자연적인 조건들과 문화적인 여건들에 의해서 형성된 공간 개념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러한 관심의 결과로서 얻은 것이 이미 발표된 바 있는 궁극의 공간(ultimate space)’이란 개념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그것은 가장 인간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 인간에게는 단순한 생존을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만도 아니고 생산 및 경제 활동만을 위한 공간도 아닌 3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창작 활동을 위한 공간, 조용히 명상하는 공간, 인간의 정신 생활을 풍부하게 해 주는 여유의 공간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 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궁극의 공간인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 건축에서 문방(文房)은 특히 이러한 궁극의 공간 개념을 잘 나타내 준 것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생활의 멋을 중요한 가치로 여겨 왔던 우리 조상들의 생각을 잘 반영해 주기도 한다.

 

생활에 여유를 주는 공간이라면 더 큰 공간일수록 좋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적 공간 개념에는 그와 같은 여유를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큰 공간일수록 좋다는 생각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왜 여유의 공간을 넓은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의 국토가 너무 좁기 때문이었을까? 넓은 공간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었을까? 이러한 부정적 해답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적극적인 가치 부여를 한다면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사상적 근거가 전제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가장 인간을 위하는 공간은 곧 가장 자연을 위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인간은 결코 자연을 정복할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궁극적인 가치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최대한으로 살리는 공간 개념을 근거로 하고 있음이 중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공간 개념을 환경 문제와 결부시켜서 생각하면 어떤 시사점들을 얻을 수 있을까? 건축 행위라는 것은 자연 환경을 인간의 생활 환경으로 고쳐 가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다. 물질 문명의 발달은 계속 더 적극적인 건축 행위를 필요로 하는 것도 사실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더 크고 화려한 건축물을 요구해 오는 사람들에게 건축은 아무 거리낌없이 건축 행위를 계속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팽창 위주의 건물 행위가 무제한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에 부딪히게 되었다. 인간의 요구 조건만이 아니라 자연의 필요 조건도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새로운 공간 설계를 원하는 고객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건축 행위가 적극적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내느냐도 생각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어떤 부정적 결과가 야기되는 지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네거티비즘이라고 한 것은 이러한 부정적 측면도 고려해 보는 사고 방식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네거티비즘은 결코 건축 행위를 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건축 행위를 하되 긍정적인 면과 밝은 면, 또는 인간 중심적인 면이나 건축주의 요청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건축 설계에서 제외되기 쉬운 중요한 측면들을 신중하게 고려하자는 것이 네거티비즘의 뜻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의 건축 행위가 전제하고 있는 기본 가치관에 관한 문제가 된다. 네거티비즘은 하나의 건축 사상 내지는 건축 철학적 입장이다.

 

한국적 공간 개념의 특징을 네거티비즘으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사상의 근거는 우리의 전통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 사상이 무엇이냐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우리의 전통 문화에 크게 영향을 준 사상을 말하자면 유가 사상(儒家思想), 불가 사상(佛家思想), 그리고 도가 사상(道家思想)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 사상에 관한 한 이웃의 중국이나 일본과 꼭 같은 문화 전통을 이어받아 왔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자연 조건과 역사적 상황의 특이성 때문에 그런 사상들을 받아들이는 데에에 있어서 중국이나 일본과는 좀 다른 면을 강조해 오게 되었다. 그러한 차이점을 우리는 소극적이라든지 소박한이란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바로 네거티비즘적인 사상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라고 하고 싶다. 유가, 불가 및 도가의 사상에서 네거티비즘적인 요소들을 비교적 강하게 살려온 것이 우리 문화의 특징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면 그러한 네거티비즘적 요소들이란 어떤 것인가?

 

첫째, 유가 사상(儒家思想)은 지나치게 실리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부도덕하게 여긴다. 물질적인 손익에 너무 밝은 사람은 인격적으로 모자라는 사람으로 취급해 온 것이다. 이것은 상업주의나 금전 만능주의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해 주는 네거티비즘이다. , 기독교에서 말하는 황금률은 남이 너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일을 먼저 네가 남에게 하라.’라는 긍정적 표현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유가에서는 남이 너에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은 너도 남에게 하지 마라라는 부정적 표현 형식으로 되어 있다. 기독교는 적극적으로 선행(善行)을 주장하지만, 유가에서는 그와 같은 적극적인 선행이 끼칠 수 있는 부정적 결과를 고려해서 자기의 행위가 남에게 어떤 악()을 자행하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네거티비즘적 사고 방식이다.

 

둘째, 불가 사상(佛家思想)은 금욕주의를 통하여 물질 생활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가르친다. 그리고 불가의 자비 정신도 인간의 고통과 번뇌에 깊은 관심을 갖게 하는 네거티비즘적 정신이다. 불가적 윤리도 남에게 행복이나 쾌락을 더해 주는 적극적 행동보다는 남에게 고통이나 불행을 끼치지 않도록 행동하게 하는 소극적 태도를 가르친다. 이것은 서양의 공리주의(功利主義)가 말하는 최다수(最多數)의 사람들을 위한 최대 행복(最大幸福)의 추구를 행동의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수의 사람이 최소한의 불행이나 고통을 가져오게 하도록 노력하라는 부정적 공리주의에 해당하는 윤리 사상이다.

 

셋째, 도가 사상(道家思想)은 인간이 자기 편리를 위하여 또는 자연 정복의 목적을 위하여 기술 개발에 집념하는 것을 옳지 못한 것으로 가르쳐 왔다. 이것은 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네거티비즘적 사상이다. 또한 도가에서는 우리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가 기능적으로 완벽하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하나의 도구가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으며, 한 가지 측면에서만 볼 때는 아무 쓸모 없는 물건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유용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가에서는 고정된 기능만을 고려하는 기능주의적 사고에 대하여 네거티비즘적인 반기능주의를 가르친다. 그뿐만 아니라 도가 사상에도 인간 행동의 역기능적인 면을 강조해서 가능한 한 인간의 의식적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게 하라는 무위(無爲)’의 사상이 있다. 이것은 극단적인 네거티비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우리의 전통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네거티비즘을 오늘의 건축 행위 또는 공간 설계에 적용하고자 할 때 어떠한 공간 개념들을 의식하게 되는가?

 

네거티비즘이 시사하는 공간 개념들은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생활 공간의 한계성에 관한 것으로, 둘째는 공간의 이용으로, 그리고 셋째는 공간 설계에서 공간의 기능과 양식 또는 형태에 관한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의 전통 사상이 가지고 있는 네거티비즘은 분명히 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갖게 해 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네거티비즘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과학 기술이 없이는 살 수 없는 현대에서 과학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던 동굴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생각은 할 수 없다. 과학 기술의 발전을 멈출 수도 없거니와 오히려 그것을 통하여 우리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다만 오늘의 이 시점에서 볼 때 과학 기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인간의 생활 공간에 관해서는 그러한 한계성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아무리 위대한 과학 기술의 힘이지만 인간의 생활 공간을 무제한 확장시켜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달나라 같은 우주 공간이나 바닷속 또는 땅 속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은 개발되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소요되는 자원을 어떻게 공급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소모되지 않는 자원이 무제한 공급될 수 없는 한 그런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의 수도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얼마나 경제적인지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과학 기술에 의한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이 지구상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자연 자원과 생활 공간은 제한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간을 이용할 때 우리는 두 가지 한계점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전체 공간의 제한성을 전제로 하고서 그 중에서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생활 공간의 한계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인간의 생활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제한된 공간을 어떻게 나누어서 이용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므로 어떤 목적을 위해서든 필요 이상의 공간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적정 공간(適正空間)’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우리 인간이 차지할 수 있는 전체 생활 공간도 생태학적으로 적정 공간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개개 인간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도 적정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둘째, 절대적 생활 공간의 한계가 함께 문제가 되는 것은 자연 자원의 한계이므로 우리는 이 문제 때문에도 공간 이용에 관한 한계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생물들이 살아온 공간이란 태양의 열과 빛, 맑은 공기, , 그리고 흙을 이용할 수 있는 자연 환경이었다. 이와 같이 자연 자원에 의존하는 생활 공간을 자연 공간(自然空間)’이라고 한다면, 과학 기술을 이용한 인간의 생활 공간에는 비자연적(非自然的)인 것이 많다. 인공적인 난방 장치, 냉방 장치, 조명 장치, 환기 장치, 상수도 및 하수도 시설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공간이 모두 그런 것이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자연 자원에 대하여 네거티비즘적인 생각을 한다면 인간의 생활 공간도 자연 공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방향으로 고쳐 나가도록 해야 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간 설계에서 네거티비즘을 적용한다는 것은 그 설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쓸모 있게 이용될 것인지를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는 해()가 얼마나 될까 하는 것도 생각해 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란 대체로 이미 다른 생명체들에 의해서 사용이 되고 있는 공간이다. 현재 생명체가 전혀 서식하고 있지 않은 공간을 개척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아주 예외의 경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목적을 위해서 새로운 공간을 이용하고자 하는 계획은 대개의 경우 다른 어떤 생명체의 생활 공간을 침범하는 행위가 되고 만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자연의 공간은 무제한으로 우리 인간을 위해 마련된 것처럼 착각해 왔다. 이것은 마치 유럽에서 북아메리카로 건너간 이민들이 그 넓은 땅을 하느님이 자기들에게 준비해 준 것처럼 착각하고서 그 곳에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이다. 현재와 같은 속도로 우리 인간이 계속 자연의 공간을 침범해 나가다가는 가까운 장래에 자연으로부터의 보복을 받아서 인류가 멸종할 수도 있다는 의식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한 네거티비즘적인 사고가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공간 이용에서 네거티비즘이 문제시되어야 하는 또 한 가지 측면은 인간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이다. 하나의 공간을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제한해 버린다는 것은 언제나 그 제한된 공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항감을 느끼게 하거나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대도시 안에 있는 빈민촌은 그 자체가 제한된 공간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사실상은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행동의 제한을 받는다. 그러한 특수 공간을 만든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그 공간 밖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빈민촌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바깥 공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못 나오는 사람들은 있으나 바깥 공간에서 빈민촌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어떠한 공간 설계든 그것으로 인해서 그 공간에서 추방당하거나 제외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적으로 공간 설계는 그 제한된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그 공간 밖에 있는 사람들이 꼭 같이 그 설계의 결과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처럼 한 공간의 안과 밖이 다 같이 좋은 목적을 위해 이용이 될 수 있게 된 것을 통합 공간(統合空間)’이라고 한다면, 이 공간 개념은 하나의 건물 안에 있는 공간들이나 건물들 사이의 공간들, 또는 도시 공간 전체와 인간의 생활 공간 전체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데도 적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공간 개념을 시로써 표현해 준 사람은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이다. ‘담장 손질(Mending Wall)’이라는 그의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담을 쌓기 전에 나는 알고 싶군요,

내가 무엇을 쌓아 들이거나 무엇을 쌓아 막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내가 해를 끼치게 될 것인지를.

무언가 담장을 싫어하는 게 있지요,

그것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것이.

 

그러나 인간은 담이 없이 살 수가 없다. 그러므로 프로스트는 또한 위에 인용한 시에서 두 집 사이에 있는 담장을 손질해야 한다는 이웃 사람들의 말을 인용한다. ‘좋은 담장은 좋은 이웃을 만듭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유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전체 인구가 현재의 수준에 머문다고 하더라도 제한된 전체 생활 공간을 고려한다면 개인의 사유 공간(私有空間)은 적정 공간의 한계를 넘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사유 공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 대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으면서 사유 공간의 기능도 할 수 있는 공유 공간(公有空間)’을 최대한으로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의 공간을 독점함으로써 나에게 편리한 점도 많겠으나 그것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불편을 줄 것인지를 의식하는 것이 네거티비즘적인 사고이다.

 

공간의 기능과 형태에 관한 네거티비즘적인 접근 방법은 기능주의의 한계와 역기능적 요소를 의식하게 한다. 공간의 기능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설계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설계자가 미리 생각한 공간의 기능만을 배려한 공간 설계가 문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처럼 제한된 기능만을 만족시켜 주는 기능주의적 설계일수록 역기능의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것은 처음에 요청되었던 기능 자체가 불필요하게 되거나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됨으로써 새로운 기능이 요청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기능적으로 애매하면서도 다양한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공간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와 같은 기능적 애매성이란 잘못된 설계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훌륭한 시의 언어가 애매한 의미를 가짐으로써 감상자들에게 여러 가지 풍부한 해석을 하게 해 주는 것과 같이 훌륭한 설계이기 때문에 기능적인 애매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다양한 감정, 기분 또는 사고(思考)의 체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공간을 기분 공간(氣分空間)’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기능적으로는 애매한 공간이지만 그 애매성은 계획된 애매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기분 공간이란 애매하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할 때, 그것의 형태는 그것의 기능과 독립된 것일 수밖에 없다. 기능적으로 애매한 공간은 어떤 고정된 양식의 형태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공간의 기능과 형태에 관한 네거티비즘적인 사고가 시사하는 또 한 가지 개념은 구조적인 가변성이나 유연성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공간의 구조가 기능의 변화에 따라서 변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어머니의 자궁이 태아가 성장해 감에 따라서 커져 가다가 해산 후에는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과 같은 그러한 공간을 말한다. 그런데 공간 자체의 구조가 기능의 변화에 따라서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은 네거티비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공간이 구조상으로 변화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그 주위에 있는 공간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자궁이 커져 감에 따라서 신체 내의 다른 공간들은 거기에 적응해서 그 구조를 변화시켜 가듯이, 외부 공간을 침범하는 공간 확장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하나의 내부 공간을 확대시킬 수 있고, 또 다시 축소시킬 수도 있는 그러한 구조적 가변성이 네거티비즘적인 사고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한 공간을 자궁 공간(子宮空間)’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네거티비즘적인 공간 이용의 방법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개념이라 생각된다. 필요에 따라서 공간의 크기와 형태를 변화시키되 결코 필요 이상의 공간을 차지하게 하지 않는다는 자연의 방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공간 개념이다. 이것은 또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모색하고 자연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자는 네거티비즘의 대표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상과 같은 네거티비즘적 사고는 건축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문화 영역에서도 이미 논의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결코 새로운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이미 있어 온 한 가지 유형의 사고 방식을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 문제와 관련시켜 봄으로써 공간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건축 행위를 더욱더 책임감 있는 행위가 될 수 있게 하자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특히 네거티비즘이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러한 사고 방식이 우리의 가치관과 창작 행위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이것을 하나의 건축 사상으로 제안하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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