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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한국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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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한국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신문수 옮김

 

․한국인의 모습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외국인들이 사람을 식별하기 힘들어 괴로움을 겪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문제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몽고족에게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눈 모양이 비스듬하고 피부는 적황색을 띠고 있으나, 얼굴색만은 가무잡잡하고 올리브색에서 옅은 갈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때문이다. 콧등이 넓고 콧구멍이 벌어진 뭉툭한 코를 한 사람은 물론, 반듯한 코와 매부리코를 한 사람도 있다. 머리카락은 검다. 그러나 적갈색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멋지고 윤기 있는 검은 머리를 하려면 검은 안료와 기름을 자주 발라야 한다. 머릿결 또한 다양하여 철사처럼 뻣뻣한 경우도 있고 비단처럼 부드러운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턱수염을 무성하게 기르고 있다. 그 중에는 콧수염과 염소수염을 넓게 기른 사람도 있고, 그것 대신 중국에서 그러하듯이 손질을 잘 한 몇 가닥의 수염만을 남겨 둔 사람도 있다.

 

입의 모양도 다양하다. 입이 크고 입술이 도톰한 경우도 있고, 작지만 윤곽이 뚜렷하거나 입술이 얇으면서 맵시 있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평민층에 많은데, 구강이 드러나도록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후자는 특히 양반들에게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눈은 검은 편이지만, 암갈색에서 담갈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광대뼈가 나와 있다. 이마는 마치 유행이라도 따르듯이 대체로 높이 솟아 있어 이지적으로 보인다. 귀는 작고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사람들의 평상시 표정은 약간 얼뜬 듯하면서도 명랑하다. 사람들의 전반적인 신체 형상은, 특히 잘생긴 사람들의 경우, 힘이나 강인한 의지력보다는 지적 총명함이 더 돋보이는 인상을 준다. 한국 사람들은 분명히 잘생긴 인종이다.

 

사람들의 체격은 좋다. 남자의 평균 키는 약 164센티미터이다. 여자의 평균 키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남자에 비해 걸맞지 않게 작다. 사람들의 볼품 없는 외양은 대단히 보기 흉한 옷차림 때문에 더욱 그 결함이 과장되어 땅딸막하고 펑퍼짐하게 보인다. 손과 발은 성별과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매우 작고, 희며, 아주 섬세하다. 끝이 가늘고 아몬드 모양을 한 손톱은 잘 다듬어져 있다. 남자들은 아주 힘이 세어, 짐꾼들은 45킬로그램 정도의 짐도 대수롭지 않게 나른다. 양반들의 점잔빼는 걸음걸이든, 일 보러 가는 평민들의 또박또박한 걸음걸이든, 한국 사람들은 매우 잘 걷는다.

 

 

․한국의 수도 서울

북위 3734, 동경 1276분에 위치한 서울은 해발 고도가 약 37미터이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부근에서 가장 높은 삼각산은 높이가 818미터에 불과하지만, 경사가 급하고 산봉우리가 우뚝하여 산의 경관이 장엄하다. 서울은 도성 내에서도 호랑이와 표범을 사냥할 수 있다. 세상에 이런 도시는 흔치 않을 것이다. 산등성이가 검은 바위로 끊기고 산봉우리가 여기 저기 솟아 있어서 이들 산은 때로 황량하고 접근할 수 없는 것처럼 험준해 보이고, 소나무가 많아서 그 휘어진 가진 사이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진홍빛 장관을 이루는 저녁 무렵, 이 험준한 산봉우리들은 분홍비의 투명한 자수정으로 빛나고, 그 그림자는 짙은 코발트빛을 띠며 내려앉고, 하늘은 푸른 금빛을 띤다. 서울 인근의 풍광은 이른 봄에도 아름답다. 이따금 녹색의 연무가 산자락을 휘감고, 산등성이는 연보랏빛 진달래로 물들고, 불그레한 자두와 화사한 벚꽃, 그리고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꽃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난다.

 

이 훌륭한 도시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11월에 연꽃 핀 연못의 형상으로 이기도 하고 완전히 성장한 버섯처럼 넓게 펼쳐진 모습을 띠기도 한다. 대단히 이국적인 풍경 가운데 뚜렷하게 보이는 성벽의 길을 따라 자연스레 눈길을 돌리면, 한 쪽으로는 남산으로 올라가게 되고, 다른 쪽으로는 북한산의 능선을 막힘없이 따라가게 된다. 점점이 숲이 있고, 그런가 하면 빈 벌판이 펼쳐져 있고, 사라졌다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다시 나타나는 협곡도 보인다. 이 성벽은 주변의 언덕만큼이나 견고한 모습인데, (공사관의 폭스 씨의 설명에 따르면) 높이는 7.512미터이고, 길이는 총 22.5킬로미터라고 한다. 성벽 전체를 따라 총안(銃眼)이 설치되어 있고, 튼튼한 아치형의 석조 통로로 된 8개의 관문이 있는데, 그 위에 한 겹, 두 겹, 혹은 세 겹으로 기와를 입힌 높은 성루가 자리하고 있다. 성문은 일몰부터 이튿날 일출까지 닫힌다. 이 거대한 성문은 목조인데, 돋을새김 장식이 많고, 철판을 덧붙여 견고하게 만들었다. 성문마다 중국식으로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는데,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혹은 흥인지문(興仁之門)’ 등과 같은 식이다.

 

성 밖으로 나서면 곳곳에 언덕과 숲이 우거진 계곡이 있는데 매혹적인 시골 풍경이 펼쳐져 있다. 이따금 야산에 장중하게 꾸며진 왕릉이 보이는데, 그 주위를 대개 멋진 소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다. 과수원과 화원이 곳곳에 있고 그 사이에 마을이 들어 앉아 있는 낭만적 풍경이 보이기도 한다. 서울처럼 인근에 아름다운 산책로와 마찻길이 있고 외곽 지대로 조금만 나가더라도 한적한 숲이 펼쳐져 있는 도시는 동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 한 가지 덧붙여 말한다면, 서울만큼 안전한 도시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한 바이지만, 이 곳에서는 여자들이 유럽에서처럼 누군가를 대동하지 않고도 성 밖의 어느 곳이든 아무런 성가신 일을 겪지 않고 나다닐 수 있다.

 

 

․한국식 빨래

한국에서는 개울가 어디를 가나 평평한 돌 위에 쪼그리고 앉아 빨래하는 여자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더러운 옷을 물에 담갔다가 건져 내 쥐어짠 다음, 평평한 돌 위에 올려놓고 납작한 방망이로 두드린다. 이에 앞서 나뭇재로 만든 잿물에 빨래를 흠뻑 적시기도 한다. 빨래가 끝나면 홍두깨에 빨래를 감아 놓고 곤봉 모양의 방망이로 얼마 동안 짧고 빠르게 다듬이질을 하고, 이어서 햇볕이 쨍쨍 비칠 때 널어서 말린 다음 쌀로 만든 풀을 살짝 먹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흔한 흰 무명 천도 희부연 공단처럼 눈부시게 하얀 색을 띠는데, 그 흰 빛깔을 보면서 나는 항상 산상에서 거룩하게 변모한 예수의 광채나는 옷을 두고 그 누구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라고 말한 마가복음서의 구절(93)을 상기하게 된다. 이런 흰 옷, 특히 겨울에 입는 흰 솜옷 때문에 여자들은 아주 힘들고 끊임없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루마기는 빨래를 한 다음 매번 뜯었다가 다시 꿰매야 하는데, 긴 솔기 중 어떤 것은 풀로 붙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바느질을 해야 한다.

 

한국의 농촌 여성들은 이 밖에도 온가족의 옷을 직접 만들고, 온갖 음식을 만들고, 무거운 공이와 절구를 사용하여 벼를 찧고, 무거운 짐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장에 가며, 물을 길어 오고, 먼 거리에 있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실을 잣고 베를 짠다. 게다가 이들은 예외 없이 아이을 많이 낳는데,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젖을 먹인다. 농촌 여성들은 삶의 즐거움이 별로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고된 가사 일을 며느리에게 물려줄 때까지 그저 묵묵히 일만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들은 서른에 벌써 쉰 살은 먹어 보이고, 마흔 살이 되면 이가 거의 빠진다. 몸단장을 해야겠다는 생각마저도 아주 이른 나이에 잊어버리고 만다.

 

 

․한국의 여관

한국에는 정규 여관도 있고 간이 여관도 있다. 간이 여관은 여물통이 마련된 마당이 있어서 짐승들에게도 편의를 제공한다는 점을 빼고는 마을 길가에 흔히 보이는 오두막과 다를 바가 없다. 읍이나 큰 마을의 정규 여관은 대개는 안마당이 있고 큰 길가에 면해 있는데, 안마당은 웅덩이와 이것저것 쌓아 놓은 짐더미로 인해 지저분하고, 큰길로 통하는 출입문도 낡아 금방 허불어질 것 같아 보이기 일쑤이다. 귀를 매어 놓은 말라빠진 검은 돼지 한두 마리, 쓰레기를 뒤적이는 커다란 누렁개들, , 아이들, 황소, 조랑말, 마부, 기식자(寄食者), 여행객의 짐보따리 등으로 여관은 북적거린다.

 

여관의 한쪽 또는 양쪽에 허름한 마구간이 있고, 그 앞쪽으로 속이 파인 투박한 나무통이 놓여 있다. 조랑말들이 거기에서 힘과 투지를 유지해 줄 뜨끈한 갈색 여물을 먹는다. 또 다른 편의 헛간에는 가마솥이 있고 거기에서 밀로 여물을 끓인다. 대개는 이 불로 공용 방의 구들을 데우고, 그 안에서 좀더 작은 규모의 불을 피워 손님용 음식을 취사한다. 여관방은 토방인데 낮은 격자문을 통해 출입한다. 격자문의 창호지는 찢겨 있는 경우가 많고 지저분하다. 방에는 닳아빠진 돗자리가 깔려 있고 그 위에 베개로 쓰이는 목침 서너 개가 나뒹굴고 있다. 낮게 드리워진 대들보 위에는 농기구나 모자 상자가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에서 마부, 여행객, 하인, 그 밖의 하층 사람들이 묵어 간다. 관리들이나 양반들은 가까운 관아(官衙)에서 대접을 받고, 농부들은 약간의 안면만 있더라도 원하는 사람들을 재워 준다. 조금 규모 있는 여관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정실(淨室)’이라고 부르는 한 평 남짓한 특실이 있는데, 나는 그런 방이 있으면 거기에 묵었고, 없는 경우에는 뒤쪽 안채의 내실을 빌렸다. 안채 방은 특히 방바닥이 뜨겁고, 벼룩이 들끓기 일쑤인데, 게다가 큰 곡물 독, 헌 옷 꾸러미, 간장을 담기 위해 띄우는 메주, 그 밖의 잡다한 물건들로 꽉 차서 누울 자리만 간신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밤이면, 마당에 걸린 낡은 초롱과 방 안의 침침한 등잔불로는 너무 어두워, 더듬어서 물건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방은 조랑말의 여물을 쑤느라 때는 불 때문에 언제나 더웠다. 방 안의 온도는 통상 섭씨 2729도 정도인데, 종종 33도를 넘었고, 어느 날은 41도에 육박하여 문간에 앉아서 밤을 지새야 했던 끔찍한 경우도 있었다. 방바닥과 등뼈를 편안하게 덥혀 주는 이 가마솥 같은 방을 한국의 나그네들은 무척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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