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거시 세계와 미시세계

by 처사21
728x90
반응형

거시 세계와 미시세계

 

 

권재술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의심하므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보는 삼라 만상은 우리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사고 결과이다. 같은 사물을 관찰한다고 해도 관찰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 과학은 과학자의 마음에 그려진 대자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에 그려진 대자연이 그려지기 전에 대자연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과학은,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완전 무결한 것이 아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풍경화와 같아서 실제 자연 현상과 그것을 파악하고 표현해 놓은 자연 과학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불완전한 학문이긴 하지만, 마치 어린아이에게는 자기가 그린 풍경화가 실제 풍경을 잘 나타낸 것같이 보이듯이, 자연과학은 우리 인류가 대자연의 본질이 어떤 모습으로 이해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거인국과 소인국에 관한 이야기인 걸리버의 여행기를 기억하는가? 걸리버가 도착한 거인국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 짐승, 새 등 모든 것이 걸리버가 살던 고향에서보다 몇십 배씩 큰 것들이었다. 또한 그가 소인국에 도착하자 ,그 곳에서는 모든 것이 거인국과는 반대로 자기보다 몇 십배 작아 보였다.

 

이 이야기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을 극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거인국에서나 소인국에서나 모든 자연현상이나 인간의 사고방식, 생활방식에는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날아다니는 파리는 날개를 1초에도 수십 회 흔든다. 만약 파리가 원래 크기의 수십 배로 되어도 그렇게 빠르게 날개를 움직일 수 있을까? 날아다니는 큰 독수리가 날개를 파리만큼 빠르게 움직인다고 상상해 보라. 직관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불가능하게 생각된다. 따라서 물체가 확대되거나 축소된다면 그 확대와 축소는 다만 크기의 확대·축소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고 그것의 질 또는 기능에도 관계되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여러분의 몸이 10배로 확대되었다고 가정하자. 여러분은 그 몸을 지탱할 수 있을까? 우선 몸을 지탱하는데 필요한 것은 뼈의 굵기이다. 확대되는 과정에서 뼈의 강도는 변하지 않고 다만 뼈의 길이와 굵기만 10배씩 확대되었다고 가정하자. 이 뼈가 무게를 지탱하는 능력은 뼈의 단면적에 비례하게 된다. 길이가 10배로 되면 단면적은 100배로 되기 때문에 몸을 지탱하는 능력은 100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몸무게는 부피에 비례하므로 처음상태의1,000배가 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이 10배씩 단순하게 확대만 된다면 우리 몸의 뼈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와해 될 것이다.

 

사람의 몸이 확대되는 경우에 단순한 확대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게 밝혀졌듯이 사회적이 조직체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조그마한 단체, 예컨대 종업원이 50명정도 되는 공장인 경우, 공장장과 전무 그리고 경리 한 사람으로 모든 업무가 순조롭게 잘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공장의 종업원이 100배로 늘어났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공장장 100명, 전무 100명, 경리 100명으로 증원하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될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공장장은 한 사람으로도 되겠지만 전무도 경리도 아닌 다른 일을 하는 사람 이를테면 자문 위원, 연구원 등 전에는 필요 없었던 사람들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장의 규모가 커지면 공장의 운영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무엇이 확대되거나 축소되면, 그에 따라서 그 구조와 기능까지도 변화가 있어야만 그 확대·축소된 상태가 유지된다.

 

그러면 이제 자연 현상으로 관심을 돌려보자. 도대체 대자연에는 얼마나 큰 세계가 있으며, 또한 얼마나 작은 세계가 있는가? 있다면 그 큰 세계와 작은 세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 기능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서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들을 토대로 논의해 보도록 하자.

 

(1)거시 세계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450km이다. 상당히 먼 거리 같다. 그러나 미국에 가 본 사람이면 그 정도의 거리는 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는 약 38만 km 이다. 매우 먼 거리이다. 그러나 빛으로 간다면 1초 남짓 걸리는 대수롭지 않은 거리이다. 태양까지의 거리는 약 1억 5천만 km로서 빛과 같은 빠르기로 달려도 8분여 걸리는 거리이다. 그러나 이것도 별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는 데는 약 4광년(광년은 빛이 1년 동안 진행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로 약 1013km이다.) 이나 걸린다. 빛이 4년 동안 달려서 갈 수 있는 거리, 한번 상상해 보라,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은 그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4광년이란 우리가 보는 별들 중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우주에는 수없이 많은 별의 집단이 있는데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도 그 중의 하나인 은하계(Milky Way)에 속해 있다. 이 은하계의 지름은 약 10만 광년이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어떤 별빛은 수만 년, 아니 수백만 년 전에 그별에서 출발한 것이다. 어쩌면 지금쯤은 그 별이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거대한 우주에 있는 별과 별들의 운동이나 상호 작용 또는 은하계와 은하계 사이의 상호 작용이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경험하는 상호 작용과 같은 것일까? 예컨대, 달아나는 토끼를 쫓을 때 우리는 토끼가 움직이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토끼를 쫓는 사람의 행동은 모두 즉각적이고 동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멀리 있는 별에 가기 위해서 별을 보면서 그곳을 향하여 우주선을 운전하면 그 별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옛날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지구가 둥근 것이 아니라 매우 넓은 평면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도 모든 일상 생활에 하등의 불편이 없었다. 사실 현대의 우리들도 대부분은 지구가 둥근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먼 곳을 여행해 본 사람이면 지구가 평평하고 가만히 정지해 있다고 생각해서는 여행을 순조롭게 할 수가 없게 된다. 비행기를 타고 우리 나라에서 미국으로 가는 경우 아침에 출발하면 미국에 도착해도 역시 같은 날 아침일 수가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우리 나라에 오는 경우는, 예컨대 9월 20일 아침에 출발하는 경우, 그 다음날 ( 21 일) 아침에 도착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지금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중세기 사람들이 듣는다면 기절초풍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계속 앞으로 진행만 하면 제자리로 되돌아오게 된다."고 말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지구에서 얼마든지 있다.

 

지구에 지능이 고도로 발달된 개미가 살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 개미들에게 "앞으로 계속 가면 제자리로 온다."는 말이 이해될 수 있겠는가? 개미들에게 지구는 무한히 넓은 곳이며, 수평면은 완전한 평면이고 수평면 상에 그린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항상 180도이다. 그러나 그 삼각형의 세 점이 서울, 모스크바, 뉴욕에 각각 있다고 하면 그 세각의 합은 180도 보다 크게 된다. 이와 같이 개미들이 보는 세상은 자기들 행동 범위 내에서는 매우 좋은 우주 모델이 되지만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도 이 거대한 우주에 살고 잇는 개미와 같은 존재이지나 않을까?

 

우리가 보는 우주의 모습은 혹시 개미가 보는 지구의 모습과 같은 것이나 아닐까? 다음과 같은 간단한 계산을 해 보아도 우주를 보는 사람의 안목이, 개미가 보는 지구에 대한 안목보다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님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우주를 보는 방법은 망원경이다. 망원경은 빛이나 전파를 사용한다. 이 빛이나 전파의 빠르기는 3×10m/초이다. 그런데 이 빛으로 우주를 가로지르는 데 약 100억 년 정도 걸린다. 만약 개미가 지구를 답사한다면 일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개미가 1분당 1cm속력으로 움직인다고 하면 약 8 천년이 소요된다. 하루를 개미 달력의 1년으로 계산한다 고 해도 약 삼백만 개미 년에 불과하다. 100억 년과 300만 년은 그 단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인간이 보는 우주의 모습이 개미가 보는 지구의 모습보다 더 실제에 가깝다고 말할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2) 미시 세계

 

이제 우리의 상상력을 매우 작은 세계로 옮겨 보자.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작은 생명체라면 바이러스를 들 수 있다. 바이러스는 상당히 좋은 현미경을 통하지 않고는 보이지 않는데, 그 크기는 약 1.2×10-8m 이다. 바이러스 약 1억 개가 쌓여야 사람 키 정도가 된다. 또 모든 물질은 분자로 구성되어 있고, 분자는 다시 몇 개의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는 다시 원자핵과 전자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수소 원자의 반지름은 약 5×10-11m 이다. 원자핵의 크기는 그 반지름이 약 10-14m이다. 이러한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 알아보기로 하자.

 

원자의 크기는 그 반지름이 약 10-10m정도인데 그것이 얼마나 작은지 짐작이 가는가? 다음과 같은 유추를 하여 보자. 길이 1cm에 원자를 일렬로 배열했다고 가정하자. 몇 개의 원자가 필요할까 ? 간단히 말하여 108개가 필요하다. 108개는 얼마나 많은 숫자인가? 1초에 하나씩 헤아린다고 했을 때 108개를 모두 헤아리는 데는 3년이 더 걸린다. 이것은 3년 동안 식사도 하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쉬지도 않고 헤아려야 할 정도이다. 은행에 108장의 돈이 있다면 그것을 헤아리는 것이 큰일일 것이며, 1㎝두께인 책 108권이 도서관에 있다면 서가의 길이만도 1,000㎞나 되는 세계최대의 도서관이 될 것이다. 물 1cm3에는 약 1024개의 원자가 있다. 만약 돈이 1024장 있다면 이 돈을 쌓았을 때(100장이 1cm두께라고 가정) 그 두께가 1016㎞가 된다. 이것은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의 약 6×107배이다.

 

물 한 컵, 아니 물 한 방울에도 엄청나게 많은 수의 원자들이 존재한다. 이와 같이 작은 세계에서 입자들이 행동하는 모습을 우리가 흔히 보는 물체, 탁구공, 연필, 지우개 등의 모습과 같이 생각해도 될 것인가? 내가 사용하던 지우개를 책상 위에 두면 언제나 책상 위에 있다. 내가 연필을 오른쪽으로 밀면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밀면 왼쪽으로 간다. 이와 같은 현상이 원자 세계에 들어가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해도 무방할까?

 

우리의 일상 경험에서 물체가 가장 자유롭고 안정된 상태는 정지 상태이다. 나무. 집, 돌멩이 모두 정지해 있는 상태가 기본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원자 세계도 그럴까?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물체는 확실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원자 세계의 입자도 이 와 같은 각자 나름대로의 모양이 있을까? '모양'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말하는 모양이란 빛을 비추었을 때 반사된 빛으로 판별하거나 감각을 통해서 감지된 기하학적 형태이다. 미시 세계인 원자 세계에도 이와 같은 의미의 '모양'이라는 말이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상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일상 경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적합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언어가 미시 세계를 표현하는 데에 적합할 것인가? 아니 적합한 것은 고사하고 도대체 가능이라도 할 것인가? 이제까지 우리는 미시 세계가 우리의 일상 경험 세계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을 검토해 보았다. 미시 세계, 거시 세계를 막론하고 규모에 엄청난 차이가 있을 때는 그것을 다루는 물리학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 예상된다.

 

우리는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에 관해서 논의했으나 또 다른 방법으로 세계를 나눌 수도 있다. 아주 빠른 세계와 아주 느린 세계, 아주 무거운 세계와 아주 가벼운 세계, 아주 뜨거운 세계와 아주 차가운 세계 등에서도 우리의 일상 경험 세계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 예상된다. 따라서 일상 경험을 토대로 하여 얻어진 우리의 상식, 지식, 또 이들을 표현하는 도구인 언어는 이와 같은 차이를 깨닫거나 표현하는 데 한계성을 드러내거나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일상 경험 세계를 잘 설명해 주는 이론이 고전 역학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거시 세계나 미시 세계, 아주 빠른 세계, 아주 차가운 세계 등에서는 잘 성립되지 않는다. 이러한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이 탄생하게 되었다.


권재술 / 서울 대학교 물리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교원 대학교 물리 교육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과학교육』(공저), 『과학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728x90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독서창고

처사21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