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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피엔스는 자살하려는가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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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피엔스는 자살하려는가

 

 

이갑진ㆍ서만석ㆍ박명순

오늘날 인류의 공통적 관심사이자 가장 공포를 느끼는 문제는 전쟁과 공해다. 현대의 전쟁은 핵전쟁으로 인류 전체를 한꺼번에 파멸시킬 수 있다. 지금 현재 지구 상에는 온 인류를 몇십 번 죽일 수 있는 핵이 있다. 머지않은 날 <행성 탈출>이라는 영화가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핵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다. 그것은 바로 공해다. 핵이 인류를 한꺼번에 멸망시킨다면 공해는 인류를 서서히 죽이고 있다. 그래서 공해는 죽음을 향해 달리는 완행열차라고 이야기 한 사람도 있다. 사실 지금은 이미 급행 열차가 되어 버렸지만.

 

이렇게 무서운 핵과 공해는 둘 다 과학 기술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약주고 병주는 꼴이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먹는데 그 약 때문에 더 큰 병이 생긴다면 차라리 약을 먹지 않느니만 못하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약을 먹어서 후유증없이 병이 완쾌될 수 있다면 아주 좋은 일이다. 과학은 인간을 위해 ─ 특정한 소수의 인간이 아니라 대다수의 인간을 위해 ─ 사용되어야 하는 수단이다. 이것이 특정 소수의 불순한 이익을 위해 사용될 때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지만 다수를 위해 옳게 사용될 때는 그야말로 고마운 존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산업 사회에서 공해는 불가피하다든지 또는 공해가 없는 환경에서 살려면 과학 기술 문명을 모두 버리고 원시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옳지도 않고 오늘날의 현실에도 맞지 않는다.

인간 대 인간의 문제

산업 혁명 후 인류는 급속한 물질적 발전을 해 왔다. 그에 따른 인구의 증가, 도시화, 공업화 현상들이 나타났고 공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모든 오염 문제는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발생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현대 공해는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현대 공해는 소수의 부당한 이득을 위해 대다수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형태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사전 대책만 세운다면 그 피해를 극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공해를 방지하는 기술 면에 있어서도 사후 제거가 사전 방지보다 훨씬 어렵고 비용 면에서도 3∼10배 정도로 사후 제거가 더 많이 든다.

 

경제 성장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의 공해는 불가피하지만 그 정도는 자연의 정화 능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악화 상태가 된 것은 불가피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일부 어리석고 욕심 많은 자들에 의한 것이다.

 

이렇듯 모든 인간이 자연에 대한 가해자라기보다는 인간들 사이에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것은 공해로 인한 피해가 생물적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나타나며, 더 심하게 나타난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최근의 연구 보도에 의하면 서울 시내 저소득층 주거 지역의 아황산 가스 오염도는 고소득 지역보다 최고 4배나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고소득자는 공기 좋은 곳에서 산다. 그것도 모자라서 공기 청정기를 가동시켜 가면서 산다. 또 오염되지 않은 물을 비싼 돈을 들여 사먹는다. 심지어는 북극이나 남극의 얼음을 사다 부유층에 팔려 했던 봉이 김선달 같은 장사꾼도 생겨났다.

 

이에 비해 저소득자는 그렇지 못하다. 영양 면에서도 뒤져 있어 결과적으로 공해의 피해를 쉽게 받을 수밖에 없다. 또 병이 나도 병원에 제대로 가지 못하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커진다. 그리고 병으로 인한 치료비, 노동 시간 감소 등으로 더욱 경제적 부담까지 안게 되어 이중적 피해를 당하게 된다.

공해 식민지

공해 문제를 국제 관계 속에서 살펴보아도 강자와 약자의 문제로 귀결된다.

 

60년대 들어 어느 정도 경제 성장을 이룩한 선진 공업국에서는 주민들 사이에 공해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공해 반대 운동이 확산되었다. 공해 산업은 자국 내에 발붙일 수 없게 되자 비교적 규제가 허술한 제3세계 개발 도상국에 침투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후진국에서는 공해로 인한 공장 입지 문제가 쉽게 해결되며 규제가 비교적 심하지 않아 공해 방지 시설 투자에 대한 비용이 절감된다는 이점까지 있어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일석 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개발 도상국은 경제 성장이 최대의 목표이기 때문에 선진국의 독약을 자본이라는 미끼 때문에 서슴없이 계속 받아들이고 있다.

 

다국적 기업은 '깨끗한 기술'을 사용할 능력이 있음에도 선진국보다 훨씬 느슨한 후진국 기준에 따른다. 다국적 기업이 정교한 기술을 갖고 있는데도 환경 분야에서 기술이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다국적 기업의 주요 관심사는 최대한의 안전 보장이 아니라 이윤의 극대화이다. 이런 태도는 한국의 울산, 온산 공단에서 공해 방지 시설조차 감독하지 않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처럼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는 빈부 격차의 확대라는 문제 외에도 '선진국 공해를 후진국에로'라는 새로운 문제가 야기되었다. 이제 후진국은 선진국의 새로운 식민지가 되고 있다. 정치 식민지, 경제 식민지, 문화 식민지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공해 식민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진국의 공해 수출로 제3세계 국민들은 더 한층 심한 피해를 받는다. 그럼에도 제3세계의 공해 반대 운동은 어려운 실정이다. 왜냐하면, 다국적 기업은 여러모로 그 나라 정부와 이해 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없이 제 3세계 국민들에 대해 마음대로 횡포를 부리고 있다. 게다가 경제 성장 제일주의를 신봉하는 정부는 지역 주민과 뜻있는 국민이 함께 벌이는 건강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공해 반대 운동을 반체제 운동으로 몰아붙여 국민들의 주체적인 반공해 운동을 탄압한다.

공해로 죽어가는 사람들

공해로 인한 피해는 온 이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물질적 성과물을 능가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하다. 공해 피해는 이 지구상의 어디서나 언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일상적이고 광범위하다. 그리고 현대 공해는 이미 자연의 정화 능력을 넘어 섰기 때문에 원상 회복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에 이르렀다.

 

1952년 스모그가 런던을 덮고 있는 동안 그 직접적인 영향으로 4천여 명이 죽었으며, 그 후 2달 동안 8천여 명이 더 사망했다. 이와 같은 스모그는 세계 곳곳에서 계속일어났으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현재 전세계 6억 5천만 인구가 건강에 해로운 수준의 아황산 가스에 노출되어 있으며 10억 인 이상이 유해한 먼지를 마시고 있다. 아테네 시의 사망자 수는 공기가 맑은 날에 비해 오염이 심한 날에 6배나 더 높다고 한다.

 

이렇듯 공해가 사람의 건강에 끼치는 피해는 극심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해가 바로 목숨을 잃게 하거나 매스컴을 통해 크게 알려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홀히 생각하는 수가 많다. 공해병은 발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한 질병이 나타났다 해도 철저한 조사가 시행되지 않는 한, 공해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씩 차이는 있을지언정 서울의 시민이든 아프리카의 부시맨이든 모든 인류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생활 속에 공해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생각해 보자. 우리는 오염된 물로 세수를 하고, 그 물을 마시며, 농악투성이 밥을 먹는다. 광화학 스모그로 가득찬 희뿌연 대기 속에서 자동차 배기 가스를 마시며 산성비를 맞기도 한다. 도시를 벗어나 보아도 우리를 맞이하는 건 지독한 농약 냄새와 썩은 강과 호수이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현대에는 신경성이라는 병이 많다. 신경성 두통, 신경성 위장병, 신경성 피부염 등 현대 의학으로 원인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병들에 대해 의사들은 대부분 신경성 탓으로 돌리고 만다. 그렇지만 그 병들 중에 많은 것들이 더러운 공기 속에서 호흡하며, 썩은 물로 씻으며, 농약투성이 음식을 먹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공해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암의 원인이 되는 발암 물질은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서울의 대기 속에는 40가지 이상이 포함되어 있으며, 수돗물에도 마찬가지다. 또한 우리가 즐겨 먹는 소시지나 햄에도 빛깔을 곱게 내는 색소(발색제)가 발암 성분을 갖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자살하려는가?

공해는 인간에게 직접적 건강 피해를 줄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온실 효과, 오존층 파괴, 지구의 사막화, 바다 수면의 상승, 이상 기후 등 여러 가지 예측할 수 없는 현상들을 일으켜 전 지구의 운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공해는 단순히 삶을 쾌적하게 누리느냐 않느냐의 문제를 넘어 인간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현대의 공해는 전지구적인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렇게 환경 문제에 대한 걱정이 전세계에 걸쳐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 보존을 위해 지출되는 비용은 군비 지출에 비해 너무나도 적다. 미국의 1990년 예산도 1:22로 군비 지출이 엄청나게 많으며, 이것은 전세계에 걸친 일반적인 양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국방비가 1조 달러에 이르고 있다. 서로를 파괴하는 전쟁 무기의 개발에는 그런 막대한 돈을 쓰면서도 당면해 있는 환경 위험에는 돈을 아끼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지구는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 이 막대한 돈이 환경 문제 해결에 이용될 수 있다면 우리는 건강한 삶을 되찾을 수 있으며 나아가 후손들에게도 풍요로운 지구를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생태학자인 배리 코모너의 말처럼 자연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들 사이의 평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구의 환경 문제는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환경 문제는 모든 이해 관계나 이데올로기를 떠나 전지구가 같이 노력해야만 해결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공동 운명체다. 그런데도 지구인들은 이 지구를 전쟁과 증오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들은 후손들까지도 멸망의 길로 보내고 있다.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건강한 지구를 되찾는 일에 우리 모두의 힘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이갑진ㆍ서만석ㆍ박명순/세 분 모두 서울대 사범대 지구과학 교육과를 졸업했다. 이갑진ㆍ박명순 선생님은 같은 대학 지구과학 교육과 대학원을 졸업하여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서만석 선생님은 같은 대학 천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경기 여고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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