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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애와 사상 / 슈바이쩌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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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애와 사상

생명 외경-사랑을 통한 분열된 자아의 회복

 

삶에 대한 외경심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하여 우리의 마음속에 생겨나는가?

인간이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를 분명히 알기를 바란다면, 자신의 사고와 지식으로 얻어진 잡다한 성과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식 속에 깃들어 있는 근원적이며 직접적이고도 영속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출발할 때 비로소 인간은 사고에 의한 세계관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명제로 사고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출발함으로써 그는 구제할 수 없는 추상의 길에 빠져들고 말았다. 인간은 알맹이 없는 이런 작위적인 사고방법으로는 자신과 우주와의 관계에 관해서 어떠한 성과도 얻어낼 수 없다. 사고란 곧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식의 가장 직접적인 사실은 무엇인가. '나는 살고자 하는, 생명에 둘러싸여 있는, 살고자 하는 생명이다.' 라는 점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하여 생각하는 순간 언제나 자신을 '삶에의 의지' 한가운데 있는 '삶에의 의지로' 파악하게 된다.

우리의 생명의지에는 영속적인 삶에 대한 동경과 흔히 쾌락이라고 불리는 생명의지를 신비스럽게 상승시켜 주는 상태에 대한 동경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사멸에 대한 공포 및 고통이라고 불리는 생명의지를 신비스럽게 침해하는 상태에 대한 공포가 있다. 이러한 동경과 공포는, 그것이 나에게 자신을 표현하든 침묵을 지키든 간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에의 의지'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의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한다. 물론 인간은 이 생명의지를 부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도 사상 및 모든 염세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생명의지를 생명을 부정하는 의지로 변환시키려고 한다면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은 부자연스럽고 참되지 못하며 실행할 수도 없는 것을 자신의 세계관과 인생관으로서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인도 사상과 쇼펜하워의 사상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사상이 세계부정과 인생부정을 아무리 강력히 주장한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존속하는 생명의지 앞에서는 부득이 양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명의지를 긍정함으로써 비로소 그 행동이 자연스럽고 진실해진다. 즉, 그는 이미 본능적인 사고 속에서 실행하고 있는 행위를 의식적인 사고 속에서 반복함으로써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시작, 즉 쉴새 없이 되풀이되는 사고의 시작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단순히 어떤 주어진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고, 규명할 수 없는 어떤 신비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데 있다. 생명긍정이란 인간이 하는 일 없이 되는 대로 살아나가는 태도를 버리고 자신의 삶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데 외경심을 갖고 헌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정신적 행위이다. 생명긍정은 삶에의 의지를 심화시키고 내면화하며 고양시키는 길인 것이다.

이와 동시에 사고하게 된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의지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명의지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생명에 대해 외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그는 타인의 생명을 자신의 내부에서 체험한다. 그러한 사람에게 있어 선이란 생명을 유지하는 것, 생명을 촉진하는 것, 그리고 발전 가능한 생명을 그 최고의 가치에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악은 생명을 파괴하는 것, 생명을 저해하는 것, 그리고 발전 가능한 생명을 억누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윤리의 절대적인 근본원칙이다. 이것이 사고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종래의 윤리가 오직 인간에 대한 인간의 태도만을 문제시했다는 것은 실로 큰 잘못이다. 실제로는 세계 및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모든 생명체에 대하여 인간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든 동식물의 생명이든 상관없이 모든 생명을 생명으로서 신성하게 여기고, 곤경에 빠진 생명을 헌신적으로 도와 줄 때 인간은 비로소 윤리적일 수 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체험하는 보편적 윤리만이 사색에 기초를 둘 수 있으며, 인간 대 인간의 윤리는 그 자체만으로 전부가 될 수 없다. 단지 보편적인 것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삶에 대한 외경심의 윤리는 사랑, 헌신, 동정, 공감, 협력 등으로 불리는 모든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생명의지'의 자기분열이라는 참극에 휘말려 있다. 하나의 존재는 다른 존재의 희생을 통해 자신을 존속시키고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파괴하고, 단지 사고하는 인간의 경우에 있어서만, 그 생명의지는 다른 생명의지를 의식하고 그것과 유대를 맺고자 한다. 그러나 그 또한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고 살아갈 수박에 없고, 생명을 죽이고 저해함으로써 끊임없이 죄를 짓게 된다는 불가사의하고 잔인한 법칙에 속박당해 있는 까닭에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윤리적인 존재로서 가능한 한 그같은 필연성으로부터 이탈하고자 애를 쓰며, 또한 지각이 있는 자비로운 존재로서 자신의 생존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생명의지의 자기분열을 제거하고자 애쓴다. 그는 자신의 인도주의를 견지하면서 다른 생명체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를 갈망한다.

 

이와 같이 사고를 시작한 생명의지 속에서 생겨난 삶에 대한 외경심은 세계긍정 및 인생긍정과 윤리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삶에 대한 외경심은 개인과 인류의 물질적, 정신적, 윤리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하고 개인과 인류의 진보를 실현시키고자 한다. 아무런 사상도 개입되지 않은 현대의 세계긍정과 인생긍정이 지식, 능력, 권력의 이상(理想)들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데 반하여, 사고를 바탕으로 한 세계긍정과 인생긍정은 인간의 정신적, 윤리적 완성을 최고의 이상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진보 이상은 바로 이 이상에 의해 비로소 참된 가치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윤리적인 세계긍정과 인생긍정을 통하여 문화에 내포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판별하는 힘을 상실하고 만다. 우리는 지식 및 능력의 진보로 말미암아 참된 문화의 실현이 용이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대담하게 직시해야만 한다. 여기서 정신 및 물질적인 것의 상호관계라는 문제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인간성을 구제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는 기존의 환경과 싸워야 하며, 또한 불리한 사회환경 속에서 인간성을 구제하고자 전재하고 있는 거의 절망에 가까운 다시 희망적으로 돌리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전력을 기울여야 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렇듯 사고에서 비롯된 심화된 윤리적 진보의지는 비문화와 그 참상에 빠져 있는 우리를 구제하여 참된 문화로 이끌어줄 것이다. 나는 머지않아 반드시 세계 평화를 가져다 줄 참되고 궁극적인 르네상스가 찾아들 것임을 확신한다.

이제 문화철학 전반에 걸친 계획이 구체적으로 정리되었다. 그것은 저절로 4부로 구분되었다.

1. 현대의 문화 상실 및 그 원인에 대하여.

2. 삶에 관한 외경심의 이념과, 윤리적 세계관을 지지하고자 한 지금까지의 유럽 사상의 시도와의 관계에 대한 설명.

3. 삶에 관한 외경심의 세계관에 대한 설명.

4. 문화국가에 대하여.

 

윤리적인 세계긍정과 인생긍정의 확립을 위해 애쓴 유럽 사상의 비극적 투쟁을 기술하게 될 제2부는, 앞으로 다룰 문제를 역사적인 전개과정을 통해 고찰함으로써 내가 내린 결론을 지금까지 시도된 모든 결론의 종합으로 파악하려는 나의 내면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는데, 다시금 이러한 유혹에 빠지게 된 데 대한 후회는 전혀 없었다. 다른 사상과 비교, 검토함으로써 나의 사상은 더욱 명백해졌다.

바이처 / 나의 생애와 사상 : Aus meinem Leben und Denken에서

 

이해와 감상

 

슈바이처는 자기의 ‘생명 외경’의 사상을 철학사적 면에서 또 현대의 정신적 상황과 비교해서 대략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그의 철학은 이 세상이 신비와 고뇌에 가득하고 우리는 정신적인 쇠퇴기에 살고 있다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쇠퇴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보고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를 들면, 첫째 조직화된 사회가 개인에 대한 압력을 너무 강하게 가하고 있고, 주체적 사고 내지 사색의 멸시에서 오는 자아의 상실과, 기성 조직에 의하여 현대인으로 하여금 자아의 사고를 발전시키기 전에 미리 마련된 신념을 강요하고 있으며, 개인의 자주적인 생각은 환영을 받기보다 배척을 당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현대인은 방대한 지식의 중압에 허덕이고 과로로 인한 집중력을 상실한 인간이 되어버렸고, 물질적으로 거대한 능력을 가졌으나 사색할 수 있는 능력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위축되어 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슈바이처는 합리주의는 완전한 발달을 하기 전에 낭만주의와 실제 정치에 굴복하였다고 보고 있으며, 보다 새로운 합리주의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회의주의는 인간이 사색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념을 상실했을 때 생기는 것으로 보고 있고 진리까지도 조직화된 오늘날의 무사상성에 현대의 비극이 있다고 보고 있다. 슈바이처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사색에서 산출된 것만이 생생한 진리인 것이다. 또 정신 생활의 기본을 성실성에서 보고 현대를 구하려면 성실성과 진리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하며 현대는 다시 사색의 길을 걸어갈 때 구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사상을 근본적 사상과 비근본적 사상으로 구분하여, 근본적인 사상이란 인간의 세상에 대한 관계, 생의 의의나 선(善)의 본질 같은 기본적인 문제에서 출발하는 사상으로 보고, 신비주의에 이르는 자연철학인 스토아 철학이나 노자(老子)의 사상을 근본적인 사상으로 보고 있다.

철학사의 주류를 슈바이처는 다음과 같이 본다. 첫째 18세기의 합리주의나 공자·맹자·묵자(孔子·孟子·墨子)나 다른 중국 사상가들은 철학은 인간과 세계라는 근본적 문제에서 출발하여 윤리적인 세계 긍정 및 인생 긍정에 도달하려는 조류와, 둘째 바라문교 및 불교 기타 인도 철학과 쇼펜하워로 대표되는 공간과 시간 속에 나타나는 일체의 존재는 무의미하다는 파와, 셋째는 서구 철학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문제의 중심으로 삼지 않고 인식론이나 논리적 사변의 길을 가는 파로 구분하고 있다. 슈바이처는 미래의 철학은 서구적 사상과 비서구적 사상의 비교에서 출발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 사상과 비근본적 사상의 비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 슈바이처는 신비주의를 근본적 사상으로 보고 있으나 신비주의의 약점은 공상이 작용할 수 있는 직관적인 곳으로 들어가는 데 있다고 보고 있다. 슈바이처에게 있어서는 논리적인 사고에서 생긴 인식만이 진리라고 인정한다. 그에게 있어서 어떤 세계관이 참이냐 아니냐는 것은“그 세계관에 의한 인생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정신적인 관계가 우리를 활동적인 논리를 지닌 내면적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게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슈바이처에게 있어서는 비근본적 사고와 비논리적 신비주의는 소용이 없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사고를 재발견케 하자는 데서 생명외경의 사상이 발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생명외경의 사상이란 무엇인가? 슈바이처의 말에서 살펴보면, 이전에는 세계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 사건의 전체로서 그것을 파악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세계긍정, 인생긍정으로 가는 길, 또는 윤리적 길이 모두 다 막혔다고 보고 있고, 슈바이처는 세계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생명이라는 곳에 그의 사상의 출발점을 두고 있다. 비사실적인 사고에서 사실적인 사고로 가자는 것이다. 생명외경이라는 사상은 인간과 세계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제시하고 사실적으로 해결한다고 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명의지의 발로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인간 존재 의의의 유일한 길을 슈바이처는 인간 대 세계라는 자연적인 관계를 정신적인 것으로 지양하는 데 있다고 보고 있다. 인간은 체념을 통해 세계와의 정신적 관계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고 체념을 통해서 인생 및 세계긍정에 도달할 능력을 얻는다고 보고 있다.

생명의 신비와 자아와의 의식적 대결에서 생명외경 사상이 자라나고, 이것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윤리적 세계 및 인생긍정의 행동으로 나아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슈바이처에게 있어서는 윤리적인 것에 도달하지 않는 것은 사상이 아니라 무사고(無思考)로 보고 있다.

생명외경 사상은 사실적인 사고에서 출발해서 체념의 세계관, 세계 및 인생 긍정의 세계관을 합친 것이라고 하고, 이것은 우주적으로 확대된 사랑의 윤리라고 한다. 자연과 정신의 융합에 생명외경의 사상적 지향점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진정한 윤리적 인간에게 있어서는 생명은 신성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하여 생명외경의 사상은 이성의 한계를 넘는 정열적인 것이라고 한다.

또 슈바이처는 생명외경의 사상은 합리적인 사고에게 출발하였으나 합리적인 사고가 강화되면 필연적으로 비합리적인 신비주의에 귀착한다고 보고 있고, 그래서 생명외경 사상은 윤리적 신비주의라고 한다. 그 이유는 생명과 세계는 둘 다 커다란 신비적 비합리적 존재인 까닭이라고 한다.

또 생명의지는 객관적인 세계에서 창조의지로 나타내며 인간에 있어서는 사랑에 대한 의지로 나타난다고 보고 있으며, 이 사랑의 의지가 인간의 생에 대한 의지로 나타난다고 보고 있으며, 이 사랑의 의지가 인간의 생에 대한 의지의 자기 분열을 지양해 준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생명외경은 또 종교적인 성격을 띤다고 한다. 그러니 이 사상은 합리와 신비, 논리와 직관, 영과 육, 모든 것을 내포한다. 그 근원에는 강한 윤리적 요구가 있고 생명외경에서 오는 만유에 대한 애정이 숨어 있다.

인간은 지금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점점 전락해 가고 있고, 인간을 수단으로 본다는 것은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모독이라는 사실을 점차 잊어 버리고 마는 현대에 있어, 더구나 짤막한 논리를 칼처럼 휘두르며 비근본적 사상을 전부인 것처럼 내세우고, 남의 사상에 의지해서 자기를 망각해 가는 우리들의 세대를 위해 슈바이처 같은 우주적 인격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20세기의 기적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전체적인 요구가 부분적인 욕구보다 우위에 서는 한, 우리는 슈바이처 같은 인격에서 인간 본연의 자태를 볼 수 있을 것이며, 여기에 대한 동경은 존속할 것이다. 분열된 자아가 돌아갈 고향으로 슈바이처의 맥박은 오늘도 아프리카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

 

참고 자료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1875-1965)

독일계의 프랑스 의사 ·사상가 ·신학자 ·음악가.

알자스 카이제르스부르크 출생. 제1차 세계대전 후 알자스가 프랑스령(領)이 되었으므로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였다.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목사와 대학강사로, 그리고 어려서부터 천부적 재질을 보인 파이프오르간 연주가로 활약하였다. 그 사이에 《음악가 ·시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 Sebastien Bach:le musicien-po憙te》(1905) 《예수전(傳) 연구사》 등을 발표하였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의사가없어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모교 의학부의 청강생이 되어 의학을 공부한 후 1913년에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현재의 가봉공화국)로 건너가 오고웨 강변의 랑바레네에 자력으로 병원을 개설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인이라 하여 포로의 몸으로 본국에 송환되고 그의 병원도 폐쇄되었으나 아프리카 생활의 회상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Zwischen Wasser und Urwald》(1921)의 출판을 계기로 그의 인간과 사업이 점차 세인의 주목을 끌기에 이르렀다. 이에 힘을 얻어 다시 랑바레네로 가서 병원을 재개하여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큰 병원을 이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도와 진료에 전렴하였는데, 재차 아프리카로 건너갈 무렵부터 그는 ‘세계의 위인’ ‘인도(人道)의 전사’ ‘원시림의 성자’ 등으로 불려 세인의 존경을 받았다. 1928년에는 괴테상(賞)을 수상하고, 1951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으며, 1952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는데, 그는 노벨상의 상금으로 나환자촌(癩患者村)을 세웠다. 1960년에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가 독립하여 가봉공화국이 되었으나 흑인들의 그에 대한 경외(敬畏)의 마음은 변함이 없어, 새로 창설된 적도성십자훈장(赤道星十字勳章)으로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90세의 생일이 지나고부터 건강이 나빠져서 1965년 9월 4일 전세계인의 애도 속에 죽었다. 그는 신학자로서는 종말론적 요소를 강조하였고, 철학가로서는 칸트를 연구하였으며, 독자의 윤리관인 ‘생명의 경외’를 주장하였다. 음악가로서는 뛰어난 오르간 연주가였을 뿐만 아니라 오르간 개량에 있어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독일과 프랑스의 오르간 제작법과 오르간 음악》(1906)을 발표하고 과도한 풍압(風壓)으로 인하여, 음색이 손상되던 폐해를 제거하는 등 근대 오르간의 간소화를 꾀하였고, 바흐 연구가로서도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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