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수상록 / 베이컨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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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란 무엇인가

 

`진리가 무엇이냐`하고 빌라도는 비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대답을 기다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확실히 그 생각을 쉴새없이 바꾸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신념에 고정되는 것을 속박이라 느끼고, 사고나 행동에 있어 자유의지를 즐기는 것이다. 그와 같은 종류에 속하는 철학자들이 이미 없어졌다고는 해도, 생각을 줄곧 바꾸는 어떤 유의 사람들은 남아 있고 그 경향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다만,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만큼의 활력이 그 속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내고자 할 때에 느끼는 곤란과 수고뿐만 아니라, 진리가 발견되었을 경우에 사람들의 사고를 속박하는 것이 된다고 하는 이유 때문에 거짓말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거짓 그 자체를 애호하는 타락된 심정이 있기 때문이다. 후기 그리스학파의 한 사람이 이 문제를 검토하여, 인간이 거짓 그 자체를 애호하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하며 고뇌하게 되었다. 그것에 의해 시인의 경우처럼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상인의 경우처럼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단지 허위 그 자체를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은 모르지만 이진리라고 하는 것은 벌거숭이로서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한낮의 빛과도 같다. 그런데 세상의 가면극이나 팬터마임이나 공연물을 훌륭하게 아름답게 비추는 일에 있어서는 촛불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진리는 한낮에 가장 잘 보이는 진주의 가치만큼은 될지도 모르나, 각종의 빛 중에서 가장 잘보이는 다이아몬드나 루비 등의 가치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리라.

거짓을 가미하는 일을 확실히 기쁨을 증가시켜 준다. 만을 인간의 마음에서 공허한 의견이나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희망이나 그릇된 평가나 멋대로인 상상과 같은 것을 제거한다면, 대개의 사람들의 마음은 가난하고 시든 것이 되어버리고 말아 우울과 권대에 빠져 자기의 존재조차도 싫은 것이 되고 말리라는 것을 누가 의심 할 수 있겠는가? 초기 그리스도의 교부(敎父)중 한 사람은 아주 격렬한 투로, 시(詩)를 `악마의 술`이라고 부르고 있다. 시는 상상력을 채워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짓된 그림자로써 충족시키는 데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이미 언급했듯이 거짓 중에서도 마음속을 통과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잔재하여 굳어버리고 마는 거짓이 해로움을 준다.

인간의 타락된 판단력이나 감정 속에서 이러한 일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 가는 후에 생각하기로 하고, 다만 진리는 본디 자기를 판단하는 데 있어 다른 기준을 좇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진리를 구애하는 일이거나 또는 구혼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진리의 인식은 진리의 현존이고 진리의 신념은 진리를 맛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성의 최고의 선인 것이다. 신이 여러 날에 걸쳐 하신 일 가운데, 최초로 만드신 것은 감각의 빛이었으며 최후에 만드신 것은 이성의 빛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인 안식일에 하신 일은 성령의 빛이다. 우선 물질, 즉 혼돈계 위에 빛을 뿜으셨고, 다음으로 인간계 속에 빛을 불어넣으셨다. 그리고 지금도 항상 그 선민(選民)들 속에 숨결과 빛을 불어넣고 계시는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학파에 뒤질지도 모르는 일파의 철학에 아름다움을 더한 어느 시인은 , 다음과 같은 뛰어난 노래를 하고 있다.

`물가에 서서 배들이 바다에서 이리저리 노니는 것을 보는 일을 즐겁다. 성(城)의 창가에 서서 아래의 전투와 그 귀추를 굽어보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어떤 즐거움도 진리의 높은 것에 서는 일과는 비교할 수없다. -그 언덕은 남이 굽어볼 수도 없고, 그곳의 공기는 언제나 맑고 잔잔하다. 그곳에서는 아래인 골짜기 밑바닥에서 벌어지고 있는 잘못이나 미혹이나 안개나 비바람 등을 굽어볼 수 있다.' 다만 언제나 이와 같은 조망에 교만이라든가 자랑 따위가 아니고 연민이 동반되는 일이 바람직하다. 확실히 지사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자애로움 속에서 움직이고, 하늘의 섭리 속에서 평안을 찾고 진리의 양극을 축으로 하여 회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신학상, 철학상의 진리로부터 일반 문제의 진리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명백하고 솔직한 거래는,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인정하게 되리라고 생각되지만, 인간성의 명예이다. 그러므로 거짓을 섞는 일은 금, 은의 화폐에 질 나쁜 합금을 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쇠붙이를 보다 실용적으로 만들지는 모르나, 품질은 떨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이런 왜곡된 방식은 뱀이 나아가는 방법이다. 그것은 포복으로 나아가는 비열한 방식으로 두 발로 서는 것과는 다르다. 온갖 악덕 가운데 거짓말을 하고 또한 성실치 못한 행동을 하는 것만큼 인간을 부끄러움으로 덮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몽테뉴는 거짓말이 엄청난 치욕이며 혐오할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분석하여 적절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곰곰히 생각해 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신에 대해선 용감하고 인간에 대해선 비겁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거짓말이라는 것은 신에게는 얼굴을 내미는 것이지만, 인간으로부터는 꽁무니를 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허위와 신앙 파기의 사악함을 가장 심하게 드러내는 표현은 아마도 그것이 인간 세상에 신의 최후의 심판을 불러내는 마지막 나팔소리의 메아리가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재림(再臨)할 때의 '이 지상에서 신의(信義)를 보는 일은 없으리라'고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學問)에 대하여

학문은 즐거움과 장식(裝飾)과 능력(能力)을 위하여 도움이 된다. 주로 즐거움으로서의 학문의 효용(效用)은 혼자 한거(閑居)할 때 나타나고, 장식으로서의 그것은 담화(談話)를 할 때 나타나며, 능력으로서의 효용은 일에 대한 판단과 처리에서 나타난다. 일에 숙달한 사람도 일을 하나하나 잘 처리하고, 개별적(個別的)인 부분을 잘 판단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에 대한 전반적(全般的)인 계획(計劃), 구상(構想), 정리(整理)에 있어서는 학문 있는 사람이 제일 낫다.

 

학문에 지나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태만(怠慢)이다. 그것을 지나치게 장식으로 쓰는 것은 허세(虛勢)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학문적인 법칙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학자들의 버릇이다.

학문은 사람의 천품(天稟)을 완성시키지만, 사람의 경험(經驗)에 의하여 학문 자체도 완성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의 천부(天賦)의 능력은 마치 천연 그대로의 식물과 같아서 학문으로 전지(剪枝)해야 할 필요가 있고, 또 학문도 사람의 경험에 의하여 제한되지 않으면 그 제시(提示)하는 방향이 너무 막연하게 되기 때문이다. 약삭빠른 사람은 학문을 경멸(輕蔑)하고 단순한 사람은 숭배하며, 현명한 사람은 그것을 이용(利用)한다. 곧 학문의 용도(用途)는 학문 자체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학문을 떠난 학문을 초월(超越)한 관찰로써 얻어지는 것으로 이는 사람의 지혜에 속하는 문제인 것이다.

반대하거나 논박(論駁)하기 위하여 독서하지 말라. 또는 믿거나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하여, 혹은 담화나 논의의 밑천을 마련하기 위하여 독서하지 말라. 오직 재량(裁量)하고 고찰(考察)하기 위하여 독서하라. 어떤 책은 그 맛을 볼 것이고, 어떤 책은 그 내용을 삼켜 버릴 것이고, 어떤 소수(小數)의 책은 씹어서 소화할 것이다. 이는 곧, 어떤 책은 다만 그 몇 부분만을 읽고, 어떤 소수의 책은 정성껏 주의해서 통독(通讀)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책은 또 대리(代理)로 하여금 읽게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발췌한 것을 읽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수롭지 않은 내용, 저급한 종류의 책에 한한 이야기다. 이 밖의 경우, 개요(槪要)만을 추출(抽出)한 책은 마치 보통의 증류수와 같아서 무미건조한 것이다.

독서는 충실한 사람을 만들고, 담화는 재치 있는 사람을 만들고, 문필(文筆)은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그러므로, 글을 적게 쓰는 사람은 기억력이 강해야 하고, 담화를 별로 않는 사람은 임기응변(臨機應變)의 재치가 있어야 하고, 독서를 적게 하는 사람은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보일 만한 간교(奸巧)한 꾀가 있어야 한다.

역사는 사람을 현명하게 하고, 시(詩)는 지혜롭게 하며, 수학은 치밀하게 하고, 자연 과학은 심원하게 하며 윤리학은 중후(重厚)하게 하고, 논리학과 수사학(修辭學)은 담론(談論)에 능하게 된다.

'학문은 발전하여 인격이 된다.' 뿐만 아니라, 적당한 학문으로 제거할 수 없는, 지능의 장해(障害)란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육체의 질병에 대하여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적합한 운동이 있는 것과 같다. 예컨대, 투구(投球)는 결석병(結石病)에 좋고, 사격은 폐(肺)와 가슴에 좋으며, 가벼운 보행은 위에 좋고, 승마는 머리에 좋은 것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만일 머리가 산만하면 수학을 배우게 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실제로 수학을 풀 때 머리가 조금이라도 헛갈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식별력(識別力)이 없고 차이를 분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스콜라 철학자(哲學者)들을 연구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들은 '머리털 하나라도 잘라 보려고 하는 치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문제를 제시할 능력이 불충분하다면, 법(法)의 판례(判例)를 연구하게 하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이 모든 정신적 결함(缺陷)에는 거기에 알맞은 각각의 특수한 요법이 있는 것이다.

 

줄거리

 

학문은 즐거움과 장식과 능력을 위하여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학문에 지나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태만이다. 학문은 사람의 천품을 완성시키지만, 사람의 경험에 의하여 학문 자체도 완성된다. 학문을 위한 독서는 충실한 사람을 만들고, 담화는 재치있는 사람을 만들고, 문필은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마찬가지로 역사, 시,수학,자연 과학,윤리학 등도 학문에 도움이 되는 과목들이다. 이러한 과목들의 장점은 개인의 정신적 결함을 고치는 좋은 요법이 된다는 점에 있다.

요점 정리

 

작자 : 베이컨(Bacon)

갈래 : 중수필

주제 : 학문 탐구의 올바른 방법

이해와 감상

이 글은 학문하는 방법과 태도에 대해서 서술한 중수필이다. 베이컨은 학문에 대한 맹신이나 맹종을 비판하고 주체의 능력과 필요에 따라서 여러 가지 적합한 방식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곧, 학문은 사람의 행복한 삶을 위해 기여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탐구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찰과 명상을 통해 인간학(처세술)을 논하기도 하고, 예지의 섬광으로 독자를 매혹시키기도 한 베이컨의 수필 정신은 인생을 종교적, 철학적 견지에서 관찰하고 사색하려는 당시 영국의 에세이리스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수필과 학문은 학문의 효용적 가치와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학문을 하나의 장식으로 삼아 약삭빠르게 처세하는 이들에게 한 경계가 되기도 한다. 그가 서두에서 말하는 바처럼 학문은 '즐거움과 장식과 능력을 위하여 도움이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학문은 능력으로서의 효용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학문을 쌓기에 게으르지 않은 사람은 '일에 대한 판단과 처리'에 뛰어나며, '일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 구상 정리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다. 아무리 일에 숙달된 사람이라도 어떠한 일을 조망하거나 전체로서의 부분을 감지하는 능력은 학문 연구를 깊이 한 사람을 따르기 어렵다. 도한 학문은 한 인간의 천품을 완성시키지만 이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경험이라고 한다. 학문과 경험이 합일되었을 때 비로소 학문은 완성된 모습을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참으로 현명한 사람은 학문을 이용하여 학문을 초월한 관찰로써 지혜를 터득하는 것을 결행할 것이다. 그는 '반대하거나 논박하기 위하여 독서하지 말라.' , 도는 '담화나 논의의 밑천을 마련하기 위하여 독서하지 말라.'고 하며 '오직 재량(裁量)하고, 고찰하기 위하여 독서하라'고 권장한다. '독서는 충실한 사람을 만들고, 담화는 재치 있는 사람을 만들고, 문필은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고 주장하는 그의 정확한 서술은 저자 자신 이 학문에 주력한 사람이기에 나타낼 수 있는 삶의 지혜며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수필은 학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필독서(必讀書)로서 어떤 방향으로 학문에 힘쓸 것인지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쾌하고 정확한 이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역사는 사람을 현명하게 하고, 시는 지혜롭게 하며 수학은 치밀하게 하고, 자연 과학은 심원하게 하고, 윤리학은 중후하게 하고, 논리학과 수사학은 담론에 능하게 한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능력이 부족한가를 감안, 이에 맞도록 훈련과 연마를 부지런히 쌓을 때 자신의 정신적인 결함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어휘 풀이

 

전지(剪枝) : 가위로 가지를 자름.

논박(論駁) : 잘못된 것을 공격하여 말함.

재량(裁量) : 짐작하여 헤아림.

 

베이컨 <Francis Bacon> (1561.1.22~1626.4.9)

영국의 철학자·정치가. 런던 출생. 르네상스 후의 근대철학, 특히 영국 고전경험론의 창시자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에서 국회의원이 되었고, 제임스 1세 치하에서는 사법장관과 기타 요직을 지내 ‘벨럼의 남작’, 이어서 ‘오르반즈의 자작’이 되었다. 1613년에 검찰총장, 18년에 대법관 등 날로 권세가 높아갔으나, 수뢰(收賂) 사건으로 의회의 탄핵을 받아 관직과 지위를 박탈당하고 정계에서 실각된 후 만년을 실의 속에 보내면서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였다. 냉정하면서도 유연한 지성을 가진 현실파 인물이었으며, 근세 초기의 사상가답게 그 역시 천동설을 신봉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하여 반대하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를 완전히 불식하지 못한 전통적인 구(舊)사상의 영향하에 있던 사상가였다. 그러나 그의 기본적인 의도는 스콜라 철학의 불비·결함을 비판하고 새로운 경험론적 방법을 발견·제창하려는 데 있었다.

즉, 그는 우주 일체의 활동의 원인을, 특히 우리들 인간이 자유롭게 지배하고 명령할 수 있는 원인을 규명하려고 힘썼으며, 그러기 위해서 인류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지적 재산의 일람표를 작성하여 거기에 무엇이 결핍되었고 무엇을 보충하여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려고 하였다. 이것을 저서 《학문의 진보》에서 말하였지만, 처음에 《학문의 대혁신》 전 6부의 집필을 구상하여 그 계획을 대규모로 전개하려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간행된 것은 3부뿐이었고, 특히 제1부의 《학문의 진보:The Advancement of Learning》(1605)와 제2부의 《신기관(新機關:Novum Organum)》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서 《오르가논》에 대항하는 것)(20)이 중요하다. 그는 기억·상상·이성이라는 인간의 정신능력 구분에 따라서 학문을 역사·시학·철학으로 구분하였고, 다시 철학을 신학과 자연철학으로 나누었는데, 그의 최대의 관심과 공헌은 자연철학 분야에 있었고 과학방법론·귀납법 등의 논리 제창에 있었다.

그는 우선 인간 지성의 도리의 접근을 방해하는 편견으로서 4종의 이도라(idora:우상 또는 환영)를 지적하였는데, 그것은 ① 종족의 우상, ② 동굴의 우상, ③ 시장의 우상, ④ 극장의 우상 등이다. ①은 인류라는 종족에 대한 보편적인 선입관이고, ②는 개인적 편견으로서, 마치 동굴 속에 있듯이 자연의 빛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비유한 것이며, ③은 언어의 부적당한 사용에 기인하는 것으로, 시장에서 있지도 않은 풍설이 나도는 것과 같은 것이며, ④는 논증의 잘못된 규칙이나 철학의 그릇된 학설과 체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으로서, 마치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가공의 이야기에 비유되는 것과 같은 것 등을 말한다. 이와 같은 편견을 일소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적 삼단논법은 지식의 확장에 소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실험과 관찰에 기본을 둔 귀납적 방법을 중시하였다.

즉, 그것만이 다수의 사례를 모아서 표나 목록을 만들어 사상(事象)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였다. 베이컨이 말한 본질은 여전히 중세적 ‘형상(形相)’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자연법칙의 의미도 명확하지 못하며, 수학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자연 속의 보편적 법칙을 양적 관계로서 파악하는 수단을 동반하고 있지 않은 점에서 그 이론이 매우 불충분하였지만, 근대과학의 방법의 중요한 일면을 강조한 것만은 틀림없다. 바꾸어 말하면, 베이컨에 있어 ‘형상’의 탐구는 형이상학이었지만, 그 형이상학의 응용부문은 미신적 마술과 구별된 ‘자연적 마술’이었다. 여기에 르네상스적 마술이 근대과학의 공학적 기술로 전신(轉身)하려 한 전환점이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철학이 지향하는 것은 그와 같은 새로운 마술, 즉 발명·발견을 뜻하는 대로 성취시킬 수 있는 기계공학적 마술의 달성이었는데, 그는 이것을 《뉴 아틀란티스:The New Atlantis》(1627)라는 미완성의 유토피아 이야기에서 항공기·잠수함·인공의 비·합성금속 등의 과학적 발명을 실현하고 있는 이상국의 꿈을 묘사하여 나타냈다. 이와 같이, 과학의 진보에 장대한 꿈을 싣고 과학연구의 방법을 제창하였지만, 그 방법을 실제로 이루는 데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철학 중에서 구현된 방법의 정신, 즉 미래를 예견한 광대한 전망적 정신과 그 지적 전망에 의하여 ‘인류의 왕국’을 확대하여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달성하려고 한 그의 장대한 포부는 그 후에 영국뿐만 아니라 널리 전 유럽의 근대철학에서 그를 선각자 속에 자리잡게 하였다. 베이컨의 실천철학은 그의 문필의 재능을 보인 《수필집》(1597)에서 비체계적으로 논술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기적 충동 외에 사랑이라는 지고(至高)한 덕으로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고 후자에 의한 실천적 활동의 중요성을 역설한 점에서 그 후 영국 고유의 사회적·실천적·공리주의적 윤리의 방향을 시사하였다. 저서에, 《학문의 권위와 진보》(1622) 《숲과 숲》(2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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