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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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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

 

박성래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이 말은 2천 5백 년 전에 탈레스가 처음 한 말이라고 전해진다. 기원전 6 세기에 소아시아 지방에서 상인으로 활약했다는 탈레스는 바로 이 말 한마디로 '자연 철학의 아버지'라는 영예로운 칭오를 얻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과학사에서는 물론이고, 서양 철학사에서도빼놓지 않고 그의 이런 칭오는 애용되고 있다.

탈레스가 자연 철학의 창시자로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그를 경계로 해서 인간의 의식이 신화 단계를 넘어서기 시작햇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의 전통이 신화적 단계에서 이성적 단계로 접어들었고, 탈레스가 그 대표자로 뽑혀 후세에 이름을 남긴 것이다. 즉 신화의 시대가 끝나고 이성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가리킨다.

신화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탈레스의 주장에서부터 인간은 비로소 자연을 좀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나무와 풀, 새와 물고기,돌과 흙 등 얼마든지 많은 종류의 물체들이 존재하지만, 이런 복잡하기 짝이 없는 현상의 세계가 아주 간단한 기본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인간은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착상의 하나임이 분명이다.

물론 탈레스가 그 근본되는 물질을 물이라 지적했다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그 후 아낙시메네스는 공기가 기본 원소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학자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원소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고 있다. 물, 공기 ,불 등이 차례로 다른 자연 철학자들에 의해 현상 세계를 만들어 주는 유일한 원소라고 거론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처음에는 한 가지로부터 세상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으리라고 생각했다고 역사는 밝혀주고 있다.

 

탈레스가 물을 만물의 근원이라 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었다. 고대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우주가 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벽화에는 태양신이 물에서 솟아올라 하늘을 지난 다음 다시 물 속으로 지나 다음날 다시 솟아오르는 모양이 그려져 있다. 또 이집트 사람들은 지구란 것도 거대한 물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라 여겼던 것이 분명하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우주 그 자체가 물 속에 잠겨 있는 자그마한 공간이거니 생각했다. 우주에서 가장 많은 것이 물이란 생각을 가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또 생물 치고 물 없이 살 수 있는 것은 없어보였다. 땅 위에 자라는 모든 생명은 물 없이는 살아 남을 수가 없다는 것을 옛사람들은 일찍부터 잘 알고 있었다. 물이야말로 생명의 원천이었다. 물을 현상 세계의 가장 근원적 물질이라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낙시메네스사 공기를 물 대신 우주의 기본 원소라 말했을 때 그는 물을 공기의 한 가지 변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물론 물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지만, 물을 끓이면 공기가 되는 것처럼 공기야말로 더 근본적인 것이고, 물은 그 특수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아낙시메네스의 주장이었다. 여하튼 이런 의견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들의 주장은 현상 세계는 모두, 한 가지뿐인 원소가 조건에 따라 이런저런 물질로 나타나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의 근원이 되는 원소는 한 가지뿐이라는 일원론의 입장이었다.

사랑과 미움에 따라 물질을 생성

이런 여러 갈래의 일원론은 시칠리아의 의사 엠페도클레스에 의해 종합되었다. 어느 하나만을 운소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이 세상을 만드는 원소를 탈레스의 물, 아낙시메네스의 공기 등을 모두 함께 묶어서 물, 공기, 불, 흙 등 4가지를 원소라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4원소는 서로 합쳐지고, 분해되는 과정으로 여러 가지 물질을 만들게 되는데, 그 결합과 분리의 힘을 공급하는 것은 원소들 사이에 작용하는 '사랑'과 '미움'이라고 주장했다.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은 2천 년 동안 서양 사람들의 기본적 물질관으로 계승되어 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로 이 4원소설을 지지하고 이를 발전시킨 이론을 제시했기 때문에 4원소설은 더욱 반석 위에 올려졌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들 4원소는 이상적인 모양을 가지게 되는데, 불은 정 4면체,흙은 정6면체, 공기는 정 8면체,그리고 물은 정 20면체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이사실을 응용해 4원소가 각각 다른 모양의 정다면체로 되어 있음을 주장했던 것이다.

무게에 따른 계급성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4원소설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들 4원소 사이에는 그 무게에 따라 계급성이 있음을 주목했다. 그것은 무거운 원소는 아래로 향하고 가벼운 원소는위로 향하게 마련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우주의 중심인 지구 둘레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인 불은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할 것이고, 그 아래를 공기, 물, 흙이 차례로 자리잡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것이 바로 4원소가 원래 차지하고 있어야 할 자리인 것이다.

 

그리고 불 저쪽의 우주에는 물론 불보다도 가볍고 더욱 순수한 그런 원소가 한 가지 더 존재한다. 그것은 우주를 구성해 주는 제 5원소이다. 제 5원소는 당연히 무게도 색깔도 냄새도 무엇도 없는 가장 완전한 원소일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의 원소설은 지상에는 4원소설이지만, 우주 전체로 따진다면 5원소 변환이 가능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이미 플라톤도 원소는 여러 가지 정다면체 모양이 형성되어 있어서 서로 다른 원소로 전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생각을 계승한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의 원소에는 각기 두 가지씩의 성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은 차고 습하지만, 불은 건조하고 뜨겁다. 곤기는 습하고 뜨거우며, 흙은 건조하고 차다. 4원소가 가지고 있는 4 가지 성질 가운데 하나만 바꿔 주면 다른 원소로 바뀔 수 잇다는 것을 시사한 이론이었다.

연금술의 의미

실제로 중세 서양파 아랍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계승되어 원소 변환을 위한 실제적 노력이 기울여졌다. 즉 연금술이 그것이다. 그러나 연금술이 발달해 가는 과정에서 서양 사람들은 차츰 황과 수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수은은 그야말로 표현하는 물질의 대표처럼 여겨졌다. 그것은 빨간 가루가 되었다가 다시 은빛의 액체로 바뀌는 요술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중세의 사람들에게는 수은이 바로 원소가 변해 다른 것으로 바뀔 수 있는 대표적 물질로 여겨졌다. 연금술에서 중시되던 수은과 황, 거기에 차츰 소금이 덧붙여져 이들 세 가지를 기본 물질이라 생각하려는 과학자들도 나타났다. 특히 연금술을 의학으로 활용하여 크게 성공한 파라켈수스 3원소설에 집착했다.

 

그런가 하면 벨기에의 반 헬몬트는 파라켈수스의 3원소설을 부정하면서 물만이 유일한 원소라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천문학과 물리학에서 혁명이 일어나던 시대를 살았던 반 헬몬트는 바로 그의 시대를 대표하던 실험적 방법을 통해 그의 주장을 증명해 보였다, 즉 5파운드의 나무를 2백 파운드 무게의 흙 퉁에 심은 다음, 자그마치 5년 동안이나 물만을 주어 그 나무를 1백 69파운드 무게로 키웠다. 그런데 이렇게 무겁게 나무가 자라는 동안 흙의 무게는 거의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무를 그렇게 무겁게 만든 것은 흙이 아닌 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 그는 유리 그릇에 물을 붓고 그것을 끊여 찌꺼기가 남는 것을 확인하고, 흙도 사실은 물로부터 온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런 가운데 영국의 로버트 보일은 물, 공기, 불의 3원소설을 들고 나섰다. 1961년에 출간된 '의심 많은 화학자'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원소설이 연역적으로 유도된 결론이었다고 비판하고, 어느 물질이 원소인가 아닌가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 물질이 더 간단한 다른 물질로 분해되는 아닌가를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그리스 이래의 4원소설이 혼돈 속에 잠겨 있는 가운데 연소의 문제에 대한소위 플로지스톤 이론(phlogiston theory)이 일세를 풍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플로지스톤 이론에 의한 연소와 호흡 현상 설명이 벽에 부딪치다 그 자리에서 근대 화학이 고개를 들게 된 것이다.

 

1789년 간행된 '화학의 원리'd[서 라부아지에는 보일이 제시한 방법에 의한 원소를 다시 한 번 정의하면서 이미 발견돼 있던 가스의 일종이라던 '산소'를 독립된 원소인 것으로 확인하고, 같은 방법으로 수소, 질소 등 가스의 여러 가지 어蚅소를 확정지을 수 있었다. 또 같은 방법으로 그는 33종의 근대적 원소를 확정하여 후세에 근대적 원소 개념과 그 대표적 예를 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동양 세계의 원소 개념, 5행(五行)

물질 세계의 근원적인 성분이란 뜻에서의 원소 개념은 서양에서 주로 발달돼 오늘의 근대적 원소 개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동양에서도 원초적인 원소 개념은 그런대로 전개돼 내려 온 것이 사실이다. 서양의 4원소설과 같은 시대에 중국에서 발달한 5행설(五行說)이 때표적이다.

 

목 ·화·토·금·수의 5가지 근원적인 것으로 보는 오행설은 얼핏 보기에 일종의 원소설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발전 과정에서 보거나, 또 그 응용의 예를 보거나 오행은 반드시 서양의 4원소설과 같은 차원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우선 서양의 4원소설이 물질을 지향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가. 게다가 5행은 2천 년 이상 전에 이미 다섯 가지의 기본 과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여지고 있었고, 실제로 5행은 이런 의미에서 더욱 널리 활용되어 왔다. 세상의 변화 과정을 5행의 연관성 속에서 파악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는 물론 한 가지만이 인정되었던 것이 아니라 몇 가지가 전개되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상생(相生)의 과정과 상극(相剋)의 과정이다.

 

나무는 불을 낳고(大生木), 불은 흙을 낳으며(火生土)m 흙은 쇠를 낳고(土生金), 쇠는 물을 낳는가 하면(金生水), 물은 다시 나무를 길러 준다(水生木). 이것이 상생의 과정이다. 그런가 하면 상극의 과정은 금극목(金克木), 화극금(火克金), 수극화(水克火) , 토극수(土克水), 목극토(木克土)로 되어있다.

 

오행이 변하지 않는 근원적 물질을 가리키키보다는 변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도구로 점점 더 널리 활용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는 동양의 자연관이 서양의 그것과 달리 전개되어 왔음을 실감할 수 잇다. 사실 동양에서는 서양의 원소설이 들어오기까지의 물질 세계를 설명하는 틀로서 원소에 대한 이론이 확실하게 등장한 일이 없다.

 

19세기 초에 활약한 정약용 같은 우리 나라 실학자들이 5행설을 비판하면서 4원소설을 '4행'또는 '4원행(四元行)'이란 이름 아래 뒤늦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동서양 물질관의 차이를 반영한 현상으로 볼수 있다. 그리스 시대부터 물질 세계만을 이상화시켜 설명하려던 노력에서 원소설은 발달했고, 그것이 부정되는 과정을 거쳐 라부아지에에 이르러 근대적 원소설로 확정된 것이지, 동양의 물질관은 원소 개념을 분명히 해 가는 과정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박성래/서울 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현재 한국 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과학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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