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속에 긷든 논리
by 처사21윤리 속에 긷든 논리
황 경 식
도덕적 상황과 윤리적 사고
도덕의 의미를 아주 넓게 해석하는 사람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상황이 도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모든 상황은 선택을 요구하는 상황이며 선택은 보다 나은 것과 못한 것 사이의 평가를 전제로 하며, 따라서 모든 상황은 분명하게든 또는 암암리에는 도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덕을 좀더 상식적인 의미로 보면 우리는 도덕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도덕과 무관한 상황에도 자주 당면한다. 어울리는 옷 한 벌을 선택하는 상황이나 멋진 주말을 계획하는 것과 같은 타산적인 상황도 있으며, 아름다운 황혼을 즐기는 심미적인 상황이 있는가 하면, 참선이나 명상에 잠기는 종교적인 상황도 있다. 이러한 상황들이 도덕과 전혀 상관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적어도 그러한 상황에서는 도덕적인 관심이 직접적이거나 지배적인 관심은 아닌 까닭에 그런 상황을 도덕과 무관한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적인 상황이란 어떤 것이며 다른 상황과 구별되는 도덕적인 상황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당면하는 도덕적인 상황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다. 우선 가장 일반적으로 당면하게 되는 도덕적인 상황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그것을 곧바로 행동에 옮기게 되는 경우이다. 예컨대 친구와 약속한 것을 그대로 지키고, 출입이 금지된 잔디밭을 밟지 않으며, 규정된 대로의 교통 법규를 지키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나에게 큰 희생이 요구되지 않는 한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경우들이다. 이런 상황은 분명하게 혹은 암암리에 어떤 도덕적 의무나 도덕 원칙과 관련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복잡한 도덕적인 상황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당연히 행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갖가지 유혹 때문에 그것을 행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때 우리는 도덕적인 양심과 이해 타산,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게 되고 결심을 망설이게 되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의지가 박약하여 옮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면서도 행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실천하게끔 의지를 단련시키고 습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인 상황을 이성과 욕망, 선의지(善意志)와 자연적 성향사이의 투쟁으로 설명하고 이러한 투쟁을 통해서 인간 이성과 선의지가 승리하는 것에 진정한 도덕적인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도덕적인 의무와 이해 타산적인 선택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이러한 상황이 도덕적인 딜레마의 전형적인 경우는 아니다.
도덕적 딜레마란
가장 명백한 도덕적인 딜레마는 도덕적인 의무와 이해 타산 사이의 갈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이상의 도덕적인 의무나 도덕 원칙 사이의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경우에 생겨난다. 때때로 우리는 마땅히 어떤 일을 해야 할 의무를 지니면서 동시에 그것을 행해서는 안 될 도덕적인 이유를 갖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을 행해야 할 의무와 동시에 다른 의무를 행해야 할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플라톤의'국가'에 나온 예를 들면, 어떤 친구가 나에게 무기를 맡기면서 그가 필요할 때에 그것을 돌려주기로 약속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흥분된 상태로 찾아와 부정한 아내를 죽이겠다면서 무기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약속을 한 이상 나는 그것을 돌려줄 도덕적인 의무, 즉 약속 이행의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나는 살인을 방조하는 셈이 되고 이는 생명을 존중히 여길 의무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도덕적으로 그릇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가끔 두 가지 도덕 원칙이나 도덕적인 의무가 상충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각각으로 보면 모두가 그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를 갖지만 동시에 두 가지 모두가 행해질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는 하나의 딜레마가 생겨난다. 이러한 도덕적인 갈등은 일반적으로 상충하는 두 가지 의무나 원칙 사이에 우선 순위를 발견하거나 이들보다 더 고차원적인 어떤 제3의 기준에 의해 해결된다 .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할 때 우리는 선배나 친구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과거에 비슷한 사례에 대한 관례를 알아보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해결책 중의 하나는 행위의 목적, 다시 말하면 각 행위가 가져올 결과를 살피는 일이다. 앞에서 든 예에서 내가 무기를 되돌려주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두 가지 행위 중에서 예견되는 결과가보다 좋은 쪽을 택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모든 도덕적인 상황이 이런 식으로 쉽사리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경우가 보다 복잡하거나 극단적인 것이어서 그야말로 진퇴 양난의 형세, 즉 문자 그대로의 딜레마에 처할 때가 있다. 행위의 목적을 위시해서 모든 고려 사항을 검토해 본 연후에도 상충하는 대안들 중 어떤 하나를 택해야 할 결정적인 근거나 단서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의무들 사이의 우선 순위를 결정할 수도 없으며 보다 고차적인 제 3의 기준이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존주의자 사르뜨르의 다음과 같은 예는 이러한 난국의 좋은 사례가 된다. 제 2차세계 대전 중에 한 프랑스 청년은 의지할 곳 없는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는 일과 자유 프랑스군에 가담해서 조국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렸다. 효도의 의무와 충성의 의무가 서로 충돌하게 된 것이다. 그는 각 행위가 가져올 미래의 결과에 대한 정확한 예견에도 자신이 없었고, 따라서 어느 것이 자신의 진정한 의무인지를 결정하지 못 한 채 괴로워했다.
도덕적 갈등과 비극
일반적으로 도덕 철학자들은 해결 불가능한 도덕적 딜레마의 존재를 부인해 왔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도덕적 상황에서 행해야 할 내용을 결정해 줄 완벽한 의사 결정 절차를 제시하고자 했다. 그들은 최선의 도덕 이론이란 모든 도덕적 요구 사이의 갈등을 해소해서 올바른 행위를 제시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이는 공리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아퀴나스, 칸트 등 대부분의 의무론자들도 공유했던 생각이며 오늘날까지도 건재하고 있는 윤리학적인 전통이다. 그러나 현대의 일부 도덕 철학자들은 이러한 합리적인 탐구를 통해 해결되기 어려운 도덕적인 딜레마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그 현실성에 주목하며 이는 샤르뜨르와 같은 실존주의자에 의해 강력하게 대변되고 있다. 사실상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 세계는 강한 도덕적인 요구 사항들 사이의 해결 불가능한 갈등, 즉 도덕적인 딜레마로 충만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랍의 비극인 [안티고네]나[아가멤논], 셰익스피어의 여러 비극들, 그리고 나찌의 아우슈비츠를 무대로 한 소설[소피의 선택]은 이러한 딜레마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고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도덕적인 딜레마는 일상의 경험, 즉 상식 세계에서도 자주 당면하게 된다. 기로에서 가능한 두 가지 대안이 모두 강한 도덕적인 요구에 의해 지지되고 있으며 그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해 줄 객관적인 방법이 없는 경우가 바로 그러한 딜레마적인 상황이다. 생사의 문제와 관련해서 의사와 군인이 당면하게 된 상황들, 그 고민은 바로 철학자들의 처방이 무색한 도덕적인 딜레마가 아닌가 한다.
실존적 선택과 희한
희랍 비극에서 아가멤논은 트로이 공격에 나선 희랍군의 대장이다. 공격을 위한 철전중 폭풍우로 인해 희랍군의 배가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신탁은 바다를 잠재우기 위해 아가멤논의 외딸 이피게니아를 희생할 것을 명했고 모든 희랍인들은 그것이 옳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아가멤논에게는 희랍군을 트로이까지 이끌어 갈 의무가 지워져 있었으며 이는 그의 딸을 죽여야 할 의무를 함축한다. 죽이지 않을 경우는 패전이 필연적인 것이다. 또한 [소피의 선택]이라는 소설에서 소피라는 여인은 두 어린이를 데리고 나찌의 강제 수용소에 당도했다. 나찌 병사는 그녀에게 한 아이를 선택할 것을 요구했고 그녀가 선택한 어린이를 죽일 것이라고 말했으며 또 한 아이는 어린이 막사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피는 도무지 선택하고 싶지 않았으나 병사는 선택하지 않을 경우 두 아이를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녀는 어느 쪽도 선택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 대가는 더욱 비참한 것이었기에 도덕적으로 선택 행위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이상에 제시된 도덕적인 딜레마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딜레마가 갖는 구조적 특성 중 하나는 당사자에게 그 두 가지 선택 중 어느 것도 달갑지 않다는 것이며 또한 어느 것이 더 강한 요구인지도 평가하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대칭적인 구조를 갖는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갈등 상황의 대칭 구조로 인해 어느 한 가지 선택이 다른 쪽의 비중을 약화시키거나 해소하지 못하는 까닭에 어느 것을 선택하든 이는 결국 회한과 후회를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선택이건 도덕적인 감정의 잉여나 잔재, 즉 도덕적인 가책을 수반하여 어떤 종류의 보상이나 변명을 요청하게 된다는 것이다.
도덕 교육과 불행의 예방
흔히 우리는 어린이들이 도덕적인 의사 결정이나 결단을 내리도록 권장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하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도덕적인 딜레마를 제시하고 자\신이 그런 상황에 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기도 한다. 이러한 딜레마는 어떤 대답도 분명히 옳거나 그르게 보이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설정될 수가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딜레마란 합리적인 분석이나 평가가 쉽사리 적용되기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어린이의 경우 집에 불이 났는데 애완용 동물 중 하나밖에 구할 수 없다고 할 때 고양이와 개 중 어느 것을 구할 것인지 물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 어린이에게 이런 처지에서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은 불필요한 고민을 유발하는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특별히 어느 한 동물을 구해야 할 근거가 없을 경우 어린이에게 이런 결정을 요구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이는 결국 어린이에게 어떤 동물이 죽기를 더 바라는지를 묻는 게 아닌가? 어린이에게 제시된 도덕적인 딜레마가 전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것일 경우 그러한 결정을 요구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린이들에게 이런 난처한 상황을 보여 주고서 그런 상황을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물어 본다면 토론은 매우 건설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린이가 화재로부터 어떤 동물을 구할 것인지를 묻는 딜레마가 갖는 가치는 화재라는 불행한 상황을 미리 예방해야 할 필요성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는 데 있다. 물에 빠진 사람 중 누굴 구할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는 보트를 타거나 수영을 할 경우 안전을 위해 조심해야 할 필요성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 사고가 무력해지는 재앙 그 자체보다 재앙을 방지하기 위한 합리적 사려 능력을 미리 길러 준다는 데 있다.
도덕적 예행 연습
그런데 도덕적 탐구를 위한 합리적인 논의의 목적은 물론 일차적으로 도덕적인 딜레마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데 있기는 하나 일단 그런 딜레마가 생겨났을 경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이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분석하는 데도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딜레마는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서 반드시 분석되어야 할 몇 가지 기본적인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교육을 할 때는 교실에서의 무정부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엄격한 규율을 부과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이러한 생각 속에 깔려 있는 가정은 어린이들은 자신이 행하는 일에 능동적으로 가담함으로써 스스로 자율성을 개발할 수 없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여하튼 어린이들이 곧바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에 처했을 경우 그와 관련된 숨은 가정들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일이 더없이 중요한 것이며 그 점에서 철학 교실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가치 문제가 딜레마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도덕적인 문제들은 아주 분명한 해답을 가진 것들이다. 때때로 어린이들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도덕적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사실상 그것은 도덕적인 딜레마라기보다는 그 불안의 원인이 상황과 관련된 정보의 부족에 있거나 사실에 대한 인식이 부정확한 데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 상황과 관련된 사실의 측면만 해명해 주기만 하면 더 이상문제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끔 된다. 또한 어떤 도덕적인 문제는 사실에 대한 무지 때문이 아니고 논리를 잘못 사용한 데 기인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가 의거하고 있는 추론상의 오류를 지적해 주면 상황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여하튼 많은 도덕적인 문제들이 상황과 관련된 사실을 해명하거나 관련된 논리적인 추론의 명료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도덕 교육론의 두 극단
도덕 교육이란 아주 모험적인 과제이다. 더욱이 교육자 자신이 극단적인 도덕적 견해를 취할 경우 생겨날 위험은 훨씬 더 증대된다. 사람들마다 다양하고 상이한 도덕관을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에서는 도덕적인 행위란 전혀 사려나 반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도덕이란양심이나 의무 혹은 사랑의 문제라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철두 철미 논리적 입장을 고수해서 모든 도덕적인 결정을, 전제로부터 결론을 연역하는 논리적 사고로 환원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첫 번째 입장을 취하는 교사들은 도덕 교육이 양심이나 의무 혹은 사랑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별로 교육할 것이 없으며 단지 규범을 주입하거나 모범을 제시하고 설교를 하고자 한다. 이러한 일들 중에서 사례를 보이거나 모범을 예시하는 것은 도덕 교육의 합당한 일부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도덕 교육이란 결국 구체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위 할 것 인지의 절차와 양태를 습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설교하고 주입하는 이들은 개방적이고 공개적인 토론에 관심이 없으며 어린이들이 스스로 해답을 발견하게끔 돕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도덕적인 설교를 하는 이들은 이미 유권적인 해답을 갖고 있으며 그들과 같이 어린이들도 그것을 믿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윤리 속에 깃든 논리의 힘
윤리적인 문제를 논리적 절차를 통해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나름의 의의를 갖고 있다. 왜냐 하면, 모든 도덕적인 문제는 논리적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논리의 측면으로 모든 도덕적인 문제를 전부 환원할 수는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논리적인 분석은 도덕적인 문제의 일부만을 해명해 줄 뿐 나머지 부분은 손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로 우리는 윤리적인 탐구에 있어서 논리적인 분석이 귀중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윤리적 탐구가 주제인 철학 소설[리자]의 전편을 조심스럽게 읽어 가면 어린이들이 윤리적 탐구를 수행함에 있어 논리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 철학 교육에서 논리학의 비중이 자못 큰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다른 토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윤리학에서의 토론도 철저하고 엄정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상황과 관련해서 우리는 숨어있는 여러 전제들에 대한 명료한 이해를 가져야 하며 이러한 전제들로부터 결론으로 나아가는 논리적인 과정을 명백하게 이해해서 그것을 무시해도 좋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인간사를 이성적으로 해결하고자 하고 좀 더 합리적인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손에 논리학보다 더 강력한 도구는 없을 것이다. 논리학이 없을 경우 그러한 우리의 목표는 무의미하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황경식/ 서울대학교 교수이며, 저서로는 '사회정의의 철학적 기초'와 '한국 사회의 시민 의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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