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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 우리 문화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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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 우리 문화

 

김 원 룡

민족 문화의 형성

렘베르크에 의하면, 한 민족의 특성은 '역사와 문화, 공동 조상과 언어, 고전 문학과 종교'라고 한다. 공동 조상을 빼놓으면 문화는 민족의 전부이며, 민족의 문화란 민족의 생존 방법의 총계를 뜻하는 것이다. 문화는 자연 환경에 대응하고 거기에 입각해서 형성·발전되는 인류의 생활 수단의 총체를 말하는 것이며, 특정한 토지를 무대로 하고 집단에서 집단으로 전수·계승되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란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특정한 지역적 특색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명동 문화, 서울 문화, 경기도 문화, 중부 한국 문화 등등 여러 지역 문화―그것은 곧 그 지역의 주민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로 불리어지면, 어떠한 지역이 한 민족의 주거지로서 민족적인 단일 문화를 형성하고 있을 때 그것은 민족 문화로서의 한국 문화, 일본 문화, 또는 중국 문화 등등으로 불리게 된다.

결국 민족 문화란 생활 환경으로서의 지역·지리적 조건을 전제로 하여 민족의 생활 방법으로 발전되어 온 문화를 말하는 것이면, 지역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역은 뒤로 물러서고 주민인 민족이 전면에 나서는 문화라고 하겠다.

민족 문화의 형성에서는 민족이 살고 있는 자연 환경이 일차적인 기반이다. 그러나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가 서로 병존·대립하게 됨에 따라 정치·경제 등 대외 관계에서의 역사·지리적 조건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고, 생활 방법은 단순히 자연에 대한 대응뿐 아니라 다른 민족과 나라에 대한 대응 , 즉 정치·군사·경제면에서의 민족 생존 대응이라는 복잡하고 고차적인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민족 문화는 더욱 단일하게 강화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리적 조건에서 비롯하는 역사적·정치적 조건이 점점 민족 문화 형성이나 변화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자연 환경이라고 하지만 산천 초목은 지구 위 어디나 비슷한 모습을 갖추고 있고, 더구나 같은 기후 권일 때에는 더욱 비슷하다. 또 같은 민족 문화권이라고 하여도 지역이 넓어서 자연 환경이 지역에 따라 다른 예도 얼마든지 있다. 그렇게 보면 자연 환경보다는 문화 부담자의 역할이 민족 문화의 형성에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문화 부담자가, 공존·대립하는 여러 민족 사이에서 민족 문화의 개성을 형성·발전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민족 문화는 다른 민족 문화에 대해 뚜렷한 특색을 갖은것이지만, 그 특색이란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구성 요소의 차이가 아니라 그 요소들의 구성 방법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문화 구성 요소가 공통적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로 인류의 생활에 필요한 기본 여건이 공통되는 까닭이고, 둘째로 문화는 반드시 다른 문화와의 접촉·교류를 통해서만 발전하는 것이어서 구성 요소가 공통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 요소 중에는 민족의 생활 조건, 역사적·경제적·정치적 조건 등에 따라 민족마다 배격하거나 멀리하는 것들이 있고, 반면에 특히 애용하거나 보편화하는 것들이 있다. 또 같은 문화 요소라고 하여도 민족에 따라 그 사회적 기능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미술에서처럼 감정이나 관념이 달라서 표현 방법이 다르고 미의 형태가 서로 다르게 발전하기도 한다. 이렇게 문화 요소가 아니라 문화 요소의 기능 변화, 그 구성 방법의 변화가 문화와 문화를 갈라놓은 원인이 된다. 미술에 비유해서 말하라면 미술의 장르가 아니라 미술 표현 방법, 즉 양식의 미가 개성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민족 문화의 성장

그런데 같은 민족 문화라고 하여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뀌게 된다. 민족 문화란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발생하고 그 뒤로는 성장·발전만을 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에 어떤 민족이 이주하였으면 그 지역으로서는 문화가 돌연 발생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어느 민족의 처지에서든 문화는 돌연 발생하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가령 우리 나라의 경우 지금부터 약 6천 년 전쯤 해서 낙동강과, 두만 강가 그리고 대동강가 등지에 몇 개의 초기 신석기 촌락이 자리잡고 어로와 움집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우리 민족 문화의 발생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기원전 3천 년경이 되면 주민도 늘어나고 생활 도구도 전문 토기, 조약돌 제석이 등 공통된 성격을 띠면 생활 방법도 비슷해져서 '전문 토기' 또는 '한국 신석기 문화'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가 형성된다. 말하자면,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지역적 명칭을 붙일 만한 단일 문화권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한국 문화의 발생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면, 그 문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전통 문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 신석기 문화는 기원전 2천 년경이 되면 화북 지방의 용산 문하와 접촉하여 종래의 어렵 이외에 새로 농경 기술을 배워 생활 양식의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되었고, 채도, 흑도, 반월형 석도 등 중국인의 생활 도구를 받아들였다. 이 중국의 농경 문화가 들어올 당시의 전문 토기인 들의 노인이나 유식자들(?)은 외래 문화 때문에 민족의 전통 문화가 뒤흔들린다고 개탄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들어온 외래 문화의 영향으로 변화된 신석기 후기 문화는 그대로 전문 토기 문화로서 이어져 나갔다. 이어 기원전 1천 년경에는 새로운 주민들이 들어와 지석묘를 세우고 무문토기와 청동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한 민족 문화의 형성이란 이런 과정을 밟는 것이며, 그러한 과정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때문에 긴 눈으로 보면 민족 문화란 언제까지나 형성 과정에 있는 것이며, 성장 완료된 민족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성장을 멈춘 민족 문화는 죽은 문화라고 해야 할 것이며, 민족 문화의 성장 정지는 민족 문화의 완성이 아니라 사멸이라고 할 것이다.

민족 문화의 보존과 계승

그러면 완성된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민족 문화는 전체를 놓고 보면 끝없이 성장해 가는 것이지만, 어는 한 시점에서 잘라 보면. 그 시점에서는 상대적인 완성 체로 존재한다. 말하자면, 지역을 토대로 하는 민족적 개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민족적 개성이란 결국 남의 문화를 받아들일 때 자기에게 필요한 요소만을 골라서 수용하고, 지금까지의 문화를 변화시켜 나가는 데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를 조절하는 민족적 생활 방식·사고 방식이 결국 문화에 개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앞에서 말한 문화 구성의 방법인 것이다.

민족 문화란 계속 변화에 가는 것이며, 그 변화를 규제하고 조절하며 방향 지시하는 것이 민족적 생활방식, 사고 방식 즉 민족 정신이라 하겠다. 사실 한말에 상투를 자르라고 했을 때 우리의 조상들은 민족 문화, 아니 민족 그 자체의 말살이라고 펄펄 뛰며 반대하였고, 이웃 일본에서도 전선 밑을 지낼 때는 부정탄다고 소금을 뿌리고 지나간 무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해서 한국인이 서양인이 되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서양식 머리, 옷, 구두에 서양식 집에 살면서도 '나는 한국인'이라는 민족 정신을 잃어버린 한국인은 없으며, 오늘의 한국 문화가 곧 서양 문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변하면서도 민족 문화로서의 궤도에서는 절대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명동의 양복장이가 양복을 잘 만들어도 우리가 입는 양복은 그 형식·착용 방법·사회적 기능 등에서 모두 한국적인 것이며,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내부로 들어가면 온돌이 있고 김치 독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국 화된 것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민족 문화의 본줄기에 가까이 닿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민족 문화의 보존이란 겉모습을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정신 곧, 문화의 모습을 지휘하는 민족 철학, 민족적 세계관을 보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류 문명이 급격히 발전하자, 여러 나라의 문화가 활발히 교류·전파되게 되었다. 그 결과 동서양의 문화 차이가 줄어들고 각 민족 문화 사이의 차이도 계속 줄어들게 되었다. 새로운 지식·철학·사상·예술 양식이 놀라운 속도로 휩쓸려 들어오고 있다. 더구나 중국이 과거처럼 동양 문화의 중심지 또는 자극제 구실을 못하는 문화 무력 자로 전락했기 때문에, 동양의 서양화는 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생활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남산이나 북학에 올라가서 서울 시가를 내려다보면 불과 반세기도 못 되어 완전히 서양화한 모습에 새삼스러이 놀라게 된다.

확실히 생활 환경이나 생활 방식은 사고 방식에 영향을 주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문화내용이나 성격을 변화하게 한다. 사실 초가 지붕의 부드러운 선과 평화롭고 조용한 색감을 늘 대하고 살 때와 슬레이트 지붕의 직선적이고 강한 원색을 날마다 대하고 살 때의 사람의 감정이나 성품에는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아마 이대로 간다면 우리 나라미술의 전통 양식인 자연주의는 표현주의나 추상주의로 바뀌어 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급속히 없어져 가는 예스러운 한국을 슬퍼하거나 비관하고 나서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발전해 나가는 지구의 일원이면서 남과 뒤떨어져 옛날의 생활 환경과 방식을 그대로 고수해 나갈 것인가. 사실은 이러한 딜레마는 옛 사람들 자신도 시대가 변할 때마다 겪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딜레마를 느끼면서도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오늘의 한국으로 이어 온 것이다. 없어지는 과거에 대한 감상은 어느 때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문화는 성장해야 하고, 성장은 곧 새로운 것으로의 발전적 변화를 뜻한다. 외국 관광객들은 변화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현대의 고대'를 보고 기뻐할지 모른다. 그러나 옛날을 고수하고 옛날 환경에서 옛날 기술에 집착하여서는 현대의 국제적 생존 경쟁에서 이기기는커녕 살아남을 수조차 없다. 민족은 전진해야 한다. 그래서 민족 문화도 전진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의 전통 문화로 알고 있는 불교도 그것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이국의 이교라 하여 순교자 피를 흘려야만 했다. 새로운 것의 수용이 결코 전통 또는 민족 문화의 파괴는 아닌 것이다. 새로운 것이라고 모두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그 민족의 생활에 필요하고 발전에 도움이 될 것만 받아들여진다. 다시 되풀이하지만 외래 문화 가운데서 필요하고 유익한 요소를 받아들여 전통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곧 민족 문화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그 과정만 제대로 밟으면 민족 문화는 보존되고 계승되고 그리고 발전한다. 그러니까 민족 문화의 발전 과정을 지휘할 민족 정신만 확고하면 민족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외래 문화가 쏟아져 들어오고 민족의 문화 기반이 뒤흔들리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쓸데없는 것을 추리고 가려내고, 민족 정신이 흩어진 문화 요소들을 다시 모아서 독자적인 구성 방법으로 재편성하여 민족의 문화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물론 민족 문화 성장의 기념물로서 과거의 문화재들은 원상태로 보존해야 한다. 그것은 생활 방법의 고수가 아니라 민족 문화의 이력서를 원상태로 보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활 방법이나 환경을 개선·발전시키는 것은 좋으나 문화 기념물의 파괴나 변조 또는 침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민족 문화 이력서를 말살하거나 훼손하는 일이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르는 일선 행정 기관에 의해서 심심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훼손은 국토 개발이나 지역 개발 사업에 따르는 직접적인 것뿐 아니라 소위 문화재 보호니 단장이니 하여, 동기는 좋더라도 생각과 교양이 부족하거나 기술이 나쁘고 태도가 불성실해서 일어나는 간접적인 파괴도 있다.

민족 정신의 보존

민족 문화의 올바른 보존이란 지금 남아 있는 고유의 민속·국악 같은 것만 움켜쥐고 문화재 보존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다. 종묘에서 펼쳐지는 무악이 우리고유 문화인 것처럼 내외에 선전되지만, 그것이 누가 보아도 중국의 무악에서 시작된 것이다. 민족 문화란 외래 요소를 받아들여 끊임없이 성장하는 살아 있는 문화이다. 옛것만이 민족 문화가 아닌 것이다. 어제 출판된 문학책, 오늘 전시된 그림- 그런 모든 것이 민족 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민족 문화라는 단 일체로 만드는 것이 바로 민족 감정이요, 민족 정신이다. 누누이 말했다시피 민족 문화의 보존과 계승의 핵심이 되고 원동력이 도는 것은 민족의 감정이요 정신이다. 이 민족 정신을 보존하고 주체성을 지키는 일은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힘들지도 어렵지도 않은 것이다. 왜냐 하면, 한국 민족이 한반도라는 자연 환경 속에 살고 있는 한 쌀밥과 된장과 김치를 먹고 온돌 위에 앉아서 살 것이고, 온돌에 앉아서 김치를 먹고 있는 한 한국인의 사고 방식은 어디까지나 한국적인 사고 방식으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민족 감정이나 민족 정신은 그대로 한국 민족의 것으로 남아 있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잡다한 외래 문화가 들이닥쳐도 한국적 감정으로 취사 선택하고 한국적인 문화 구성 방법으로 재구성하게 되어 있다. 한말은 물론이고 조선시대의 문집 같은 것을 읽어 아도 우리의 사고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백 년 전의 여성들이 긴 바지 차림의 현대 여성을 보면 깜짝 놀랄지 모르나, 현대 여성들의 사고방식이 자기네와 똑같은 것을 알면 두 번 놀랄 것이다. 우리는 청바지니 기타니 따위에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그런 것들은 모두 추려서 쓸려나가기전의 일시적인 외래 요소들에 지나지 않으며, 그런 바지 속에는 밥 먹을 때는 김치 없이는 꼼짝 못하는 한국인의 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민족 문화의 보존과 계승은 국민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이루어야 하며, 정부는 문화 수용의 길을 넓히고 때때로 방향 제시를 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한국 민족의 민족감정이나 민족 정신은 민족의 모만에 골고루 퍼져 있고, 문화가 변화하고 전진하여도 민족의 피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한국인의 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김원룡/ 한림대 객원교수이고, 저서로는 '한국고고학', '한국고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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