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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변신'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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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변신'

 

권성우 동덕여대 인문학부 교수

 

프란츠 카프카가 변신을 완성했던 1912년의 프라하와 1998년의 서울은 어떠한 공통점이 있을까.「변신에 묘파된 사회상과 일상사를 통해 이를 확인해 보면86년이라는 시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 두 곳에서 엿볼 수 있는 일상인들의 삶의 세목은 놀랄 만큼 유사하다해고에 대한 두려움회사에 지각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불경기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의 지난함자신의 직업에 대한 한탄저 지긋지긋한 동시에 사랑스러운 가족부모의 빚현대인의 불안과 소외그리고 석간신문과 전차보험회사자명종하숙생지배인외판사원의 존재 등등카프카의 변신이 진정한 고전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현실감과 보편성의 확보에서 연유할 것이다.「변신이 쓰인 지 86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실존(인간에서 벌레로 변하는 충격적인 존재의 전환)으로 대변되는 변신의 세계는 우리에게 커다란 문학적 공감과 감동을 던져준다고 하겠다아울러 우리 사회가 본격적인 경제대란에 접어들면서카프카가 86년 전에 묘사했던 고달픈 일상인의 세계와 그에 대한 탈출 욕구로서의 `변신 모티브'는 한결 핍진한 문제의식을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카프카는 낮에 보험회사에 다니면서 한밤중에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필사적으로 글을 쓴 작가다또한 그는 매제의 공장일까지 도와주었다고 한다이러한 고달픈 생활이 카프카에게 삶에 대한 피로와 압박감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그레고르 잠자라는 이름의 변신의 주인공 면모에는 이러한 카프카의 초상이 섬세하게 스며 있다

 

어느날 갑자기 그레고르는 침대 속에서 자신이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하게 된다자신의 정체성이 완전히 무너지는 이러한 절망적인 정황에서도 그레고르가 정작 고민하는 것은 회사에 지각하지 않을까 하는 사소한 일상사다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고단한 직업과 지각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한다`왜 나는 조금만 늦어도 굉장한 의심을 사는 그런 회사에 다니는 신세일까?'로 대변되는 그레고르의 세계는 모든 일상을 회사에 바친 충실한 회사인의 세계다그 회사인은 자신이 끔찍한 해충으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늦을 걱정을 하고이 황당한 일로 인해 자신이 해고당하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레고르의 초상은 이미 20세기 초반의 프라하라는 도시에서 `자본주의적 일상성'은 그 회로에 포섭되어버린 일상인들의 삶을 철저히 규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여느 때와는 달리 정해진 시간에 회사에 도착하지 않은 그레고르의 소식이 궁금해 그의 집을 방문한 지배인에게 어머니는 󰡒그 애는 머리 속에 회사일밖에 없어요저녁에도 외출하는 일이 없어서 제가 오히려 화가 날 지경이에요󰡓라고 말하고 있다흉측하게 변한 자신의 모습을 지배인에게 드러낼 수 없어 방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레고르에게 지배인은 󰡒최근에 당신의 업무 성과는 무척 불만족스러워요지금이 장사의 호경기를 가져오는 계절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도 알고 있어요그렇지만 장사가 안 되는 계절이란 원래 없는 법이고 있어서도 안 되지요잠자 씨󰡓라고 말하고 있다

 

 

회사 얘기가 나오자 그레고르는 자신이 해충으로 변했다는 사실도 잊고 󰡒금방 문을 열려고 합니다'라고 말하게 되는데이는 그가 회사 일에 대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이렇게 본다면그토록 회사 일에 매달렸던 그레고르가 한 마리 해충으로 변한 장면은 역설적으로 그 완고한 일상성의 그물로부터 탈주하려는 집요한 욕망에 대한 비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하여 카프카는 변신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내면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와 같은 역할'변신이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을까어느 순간 그토록 완고했던 일상성이 너무나 낯설게 변하는 그 순간에 대한 기대를 말이다

 

카프카는 세속적이고 출세지향주의자며 유태계 상인이었던 아버지로부터의 도피와 독립을 위해 보험회사에 다녀야 했다내심으로는 글쓰기에 전념하고 싶었지만현실적인 조건으로 인해 글쓰기와 회사 일을 양립할 수밖에 없었던 카프카는 회사 일 때문에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특히 초기에 그가 다녔던 일반보험회사가 그러했다이러한 그의 체험이 문학적으로 변용돼 그레고르 잠자라는 인물을 통해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변신을 통해 우리는 또한 주체를 바라보는 타자의 미묘한 시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그레고르가 해충으로 변한 모습을 처음 본 어머니는 실신해버리고지배인은 소리를 지르면서 쫓기듯 물러나며아버지는 가슴팍이 들먹일 정도로 운다이러한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접한 그레고르의 심정은 착잡하고 우울하다일상성의 회로에서 탈피해 충격적으로 변한 존재를 바라보는 타자의 눈길들은 너무나 당황스러운 표정을 띠고 있다

 

참으로 익숙하고 낯익은 존재가 어느 순간 너무나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왔을 때 느끼는 놀라움불편함낯섦의 감정들카프카는 바로 이러한 감정의 미묘한 지점들을 묘사하고 있다그리하여 카프카는 우리의 편안한 일상을 뒤집어보면그 속에는 너무나도 신비롭고 낯설며 불안한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변신 모티브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

 

지금 자신의 삶이 고되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기회에 다시 변신을 한번쯤 읽어보는 건 어떨까어떤 식의 변신이든 변신은 현실로부터의 탈주이자 도피며 실종이다그러한 범주의 행위들은 궁극적으로 현실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 것이다우리의 이 누추하고 절망적인 삶을

 

그 뒤돌아봄을 통해 우리는 다시 희망을 기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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