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 윌리엄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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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윌리엄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손동호-외국어대 영어과 교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고 나면 오차 없는 진실과 아름다운 거짓 중 인간에게 어느 쪽이 더 중요할까 생각해보게 된다．작품의 무대는 미국 뉴올리언스의 허름한 주택가．막이 오르자 등장한 스탠리 코완스키는 아내를 집 밖으로 불러내 『받아!』라고 외치며 피가 밴 고기 꾸러미를 던진다．마치 사냥가서 잡은 짐승을 제인에게 건네주는 타잔을 연상시키는 이 첫 장면은 그의 사람됨을 단적으로 암시한다．

 

그 다음은 그의 처제 블랑시 뒤보아의 등장이다．많은 재산과 가문의 명성으로 귀족처럼 살던 그녀는 현재 무일푼의 궁핍한 처지다．한동안 고등학교 영어선생이었는데 현재는 퇴직하여 언니네 집을 방문하는 것이다．그녀는 언니가 옛날 못지않게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허름한 집에서 나오는 걸 보고 실망한다．

 

뒤보아의 형부는 하사관 출신의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기계류 세일즈맨이다．어원으로 분식한 그의 이름(석기시대인+대장장이)이 암시하듯 그는 다혈질의 근육질로 그녀에게 익숙한 상류사회의 신사들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그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힘과 탐욕을 앞세운 정복과 지배다．그와 아내 스텔라의 관계는 당연히 왕성한 육욕에 바탕을 둔 본능적 사랑이다．뒤보아의 고향은 「아름다운 꿈」이라는 뜻의 도시이고 그녀의 이름은 「하얀 숲」이라는 뜻이다．다시 말해 그녀의 세계는 철저히 비현실적이며 스탠리가 지배하는 세계와 경쟁하여 살아남을 수 없다．

 

뒤보아는 자신이 아직도 부호 집안의 인기 좋은 딸처럼 행동한다．그러나 그녀의 거짓말은 가혹한 현실을 부드럽게 꾸미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녀를 조롱하고 손가락질하며 마침내 도시에서 추방해버린다．모든 것을 잃고 삶에 지친 그녀는 착하고 진실한 남성을 만나 심신을 쉬려 한다．

 

그러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그녀의 고통은 끝내 최악의 지경에 이른다．언니 집을 찾을 때 손에 쥐고 있던,종이에 쓰인 길 안내문은 그녀의 운명을 그대로 암시한다．『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공동묘지행으로 갈아타고 여섯 블록을 지나 이상향역에서 하차하시오』 이상향은 바로 스텔라가 사는 동네 이름이다．그러나 희랍 신화에서 그곳은 산 사람의 낙원이 아니라 죽은 시인의 영혼이 가는 곳이다．뒤보아는 죽음의 세계를 향한 여정에 오른 것이다． 그녀가 읽은 길 안내문은 그녀 가문의 운명도 말해준다．뒤보아 가문은 이상한 저주를 받았는지 사람들이 병들어 차례로 모두 죽어갔다．그녀의 임무는 가족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다가 죽는 장면을 지키고 장례를 치르는 일이었다．

 

그녀에게 충격을 준 또 하나의 사건은 남편의 죽음이었다．우연히 남편이 동성연애자임을 발견한 그녀는 남편을 모욕하는 말을 하고,남편은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뒤보아는 죽어가는 사람들과 죽음에 둘러싸여 살아온 셈이다．그녀가 자주 술을 찾는 것은 고통과 죽음으로 가득찬 세상을 조금이라도 견디기 쉽게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싶어서다．모르는 이들은 뒤보아를 헤프고 타락한 여인이라고 말하지만 그녀에게 남성과의 만남은 남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 또 늘 그녀를 따라다니는 죽음의 공포를 떨쳐버리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다．

 

뒤보아에게 언니네 집은 피난처가 아니었다．오히려 그녀의 추락을 완성시킨 곳이었다．스탠리는 모든 것을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뒤보아는 그 반대다．등이 휠 것 같은 현실의 무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끊임없이 과거와 몽상의 세계로 날아가려 한다．나방으로 비유되는 그녀는 늘 흰 옷을 입으며 밝은 빛을 병적으로 싫어한다．스탠리의 친구 미치와 데이트할 때도 밤에만 외출하며 집안에서도 전등에 종이갓을 씌워 놓는다．그녀는 다시 행복을 찾게 되려는 건지 성격이 서로 비슷한 미치로부터 결혼 약속을 받아내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스탠리의 세계가 비추는 강한 빛은 그녀의 가냘픈 꿈을 사정없이 부수고 그녀의 얼굴의 주름살을 낱낱이 드러낸다．스탠리는 뒤보아의 뒷조사를 하고 그녀의 사생활에 관한 좋지 못한 소문을 미치에게 알려준다．미치는 뒤보아의 생일파티에 나타나지 않고 결국 결혼 약속은 깨진다．스텔라가 분만을 위해 병원에 입원한 날 스탠리는 술을 마시고 들어와 뒤보아를 욕보인다．그 결과 그녀는 미친 증세를 보이게 되고 정신병원으로 끌려간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윌리엄스는 자연주의적 현실에서 꿈꾸는 인간의 비극을 보여준다．스탠리의 관점에서 뒤보아의 생활 방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허위와 허풍 덩어리라고 비난할 수 있다．그러나 뒤보아가 그토록 집착하는 과거의 추억과 상상력은 이전투구의 세상에서 우리가 짐승이나 기계로 변하지 않고 남아있게 도와주는 신비로운 힘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가난하면서도 고귀한 영혼,소박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재산이나 연봉의 액수에 따라 신분의 고하가 결정되기 때문에 「누가 더 세상을 잘 알고 셈을 잘 하느냐」라는 경주에 모두가 달려든다．추억이나 되새기며 공상을 하는 자가 낄 틈은 없다．하얀 숲처럼 비현실적인 뒤보아가 마지막 도피처에서도 짓밟히고 갈 곳은 현실이 아닌 「이상향」 즉 저승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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