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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 -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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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 -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정시화

 

머리말

그래픽 디자인은 주로 상업적인 요소와 결합해서 창조되기 때문에 그 동안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문화, 예술 논의 가운데서는 제외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래픽 디자이너들 가운데는 이 상업적인 요소를 애써 멀리함으로써 그래픽 디자이너로서는 맥없는 짓---다시 말해서 순수 미술 분야의 작품(?) 같은 것으로 전람회만 일삼아 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래픽 디자인에 대해서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먼저 쓰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러한 맥없는 일을 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수적으로 늘어난다면, 또 이들이 개인주의적인 예술가 의식으로 자기 선전적인 전시회만 일삼는다면, 가까운 예를 들어, 출판 문화에 관계되는 디자인은 누가 세련되게 할 것이며, 현대의 문화 생활에서 더욱 요청되고 있는 활자 (문자 디자인)나 여러 가지 그래픽 심벌들은 누가 개발할 것이며, 포장은 누가 연구하고, 더 나아가 그래픽 산업은 누가 발전시킬 것인가?

그래픽 디자인은 미술인가?

그래픽 (Graphic)이라는 용어가 인쇄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픽 디자인을 인쇄 디자인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맥루한은 사람의 눈이 확대된 것이 책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책을 확대하면 정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그래픽 디자인은 산업 사회의 여러 가지 정보를 시각적으로 해석하여 전달하는 일에 관계하는 창조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픽 디자인을 옛날에는 그래픽 아트 (graphic Art)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미적 관심과 상업적인 목적으로 세분화되면서 상업 미술 또는 그래픽 디자인이라고도 불렀으며, 이제는 시각 전달 예술 또는 정보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아졌다. 역사적으로 어떤 하나의 범주를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의 모험이나 양식을 창조했던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각 분야의 기본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모든 분야의 고른 발전을 시대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예술이 각 장르간의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써 새로운 예술의 어떤 돌파구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심지어 그래픽 디자인과 회화가 상호 영향을 받았고 특히 순수 미술의 여러 가지 양식을 그래픽 디자인이 절충했다고 해서 그래픽 디자인이 회화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19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 회화의 대부분의 간결한 형태 묘사는 19세기의 포스터에서 영향을 받았고, 또 많은 현대의 그래픽 디자인이 사실주의나 초현실주의의 양식을 활용했다. 만화에서 영향을 받은 리히텐스타인의 회화, 심지어 로트렉의 포스터에서영향을 받은 피카소의 작품 등, 20세기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19세기 포스터가 가지고 있었던 대중적인 조형 언어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예도 있다. 하지만 그렇아고 해서 회화가 그래픽 디자인이 된 것은 아니다.

회화는 회화 그 자체가 목적이지만 그래픽 디자인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으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 메시지는 현재의 우리 생활을 환기하는 메시지이며 생활 그 자체가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부여된 메시지로서, 그래픽 디자이너에 의해서 시각적으로 해석 (번역)되어 현재의 사회를 환기한다. 그래서 그래픽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설명적 (메시지의 시각적 번역)이기 때문에 회화적인 예를 풍부하게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순수 미술의 미적 성취와 동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많은 그래픽 디자인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실주의, 초현실주의, 큐비즘, 미래파 등의 기법을 활용해 왔다. 그래픽 디자인은 일상 생활 문화의 변화나 진보를 위한 실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순수 미술의 범주에 넣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픽 디자인이 뚜렷하고 구체적인 목적에 봉사하지 않고 회화적인 요소로써 형상화된 채 존재한다면 그것은 회화이거나, 또는 회화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이 사회에서 그에게 부여된 일에 가장 효과적으로 시각적 형태를 만드는 일이다(책을 만들때 저자의 목적이나 내용을 효과적으로 디자인하는 일을 상상 해보자).더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인쇄 매체로서만 읽혀지던 대하 소설의 감동을 영상화하기 위해 효과적인 영상적 요소를 창조하는 것처럼 전파 매체에서도 그래픽 디자이너가 할 일이 있다. 광고 분야에서 그 상징적 본보기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그래픽 디자이너는 정보의 시각적 번역자로서의 역할을 확대해야 하며, 시각 시대의 대중에게 대중적인 조형 언어로써 대중을 위해 봉사하고 사회적인 기능을 다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디자이너들의 말은 그래픽 디자인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교훈적이다.

 

포스터란 예술가의 지위를 완전히 포기하도록 요구한다. 포스터 디자이너는 개성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만약 개성을 주장한다면 포스터 디자이너의 귄리에 위배될 것이다. 포스터는 오직 대중과 그것을 취급하는 사람 사이의 전달을 위한 한 수단일 뿐이다. 포스터 디자이너는 마치 전신 전보 취급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는 뉴스를 창조하지 않는다. 단지 뉴스를 전달해 줄 뿐이다.(카상도르)

포스터는 애매 모호해서는 안 되며 디자이너의 작품이 어려워서 다음 세대가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개인적인 관념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디자이너는 즉각적으로 전달될 수 있게 표현해야 하며, 대중적이어야 한다.(바니코트)

그래픽 디자인―그래피즘

오늘날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직면하고 있는 일이란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중적인 시각 언어를 구사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픽 디자인에서는 고도로 기술적인 수단에 의해서 시각적 형태의 질이 결정될 때가 많다. 사실 그래픽 디자인의 발달에 인쇄 기술(초기의 원색 석판 인쇄)이 그 배경이 되었음을 상기할 때 오늘날의 기술적 진보는 그래픽 디자인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러한 기술적인 배경을 지닌 그래픽 디자인이 산업과 밀착함으로써 전문 직업으로서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탄생하였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디자인의 일관성이라는 통합 디자인으로 그 절정에 달해 있다. 1890년대의 앙리 반데 벨데와 트로퐁 회사, 피터 베렌스와 독일 알게마이네 전기 회사, 근대 영국의 프랑크 피크와 런던 교통, 현대의 이태리 아드리아노 올리베티와 올리베티 회사와의 밀착은 그래픽 디자인의 발전을 잘 보여준다. 그래픽 디자이너와 산업의 관계는 오늘날 사회에서 하나의 그래피즘 (Graphism)이 되어 정보의 발신자와 수용자 사이에서 고도의 시각적 형태를 개발함으로써 우리 일상 문화의 한 측면을 진보시키는데 공헌하고 있다.19세기 말에서부터 오늘날까지의 그래픽 디자인을 개관하면 두 가지 커다란 양식적인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하나는 평면적 간결성이며, 두 번째는 입체적인 사실성이다. 평면적이고 간결한 형태는 19세기 포스터 미술가에 의해서 창조된 양식으로서 다시 장식적인 요소와 조형적인 요소로 변형되었다.입체적이며 사실적인 형태는 1930년대 이후 미국의 그래픽 디자인에 뚜렷했던 양식으로서 빌·보드와 광고에 반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양식은 모두 공통된 목적에서 유래하였는데, 대중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는, 다시 말해서 메시지(또는 이미지)를 간결하고 명료하게 그리고 빠르게 전달하기 위한 화상(畵像)을 창조하기 위한 목적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전자의 경우에는 로트렉이나 무카의 포스터처럼 장식적인 평면 패턴이 있는가 하면(또 독일의 유겐트식의 포스터도 포함된다), 카상드르의 포스터처럼 조형적이면서 장식적인 것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메시지에 대한 친근감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나아가 메시지를 강하게 회상시킬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기법이 많이 활용되었다. 현대의 그래픽 디자인이 1900년대 이후의 미술 운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왔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래픽 디자인은 여러 가지 예술적 양식을 그 목적을 위해서 절충하였고, 또 화가들이 표현했던 것과 꼭 같은 시각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상의 그래픽 디자인이라 해도 그것의 미적 가치를 성공한 최상의 회화의 미적 가치와 동일한 위치에 둘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양식을 창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대중적인 시각 언어를 초월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그래픽 디자인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가 대중을 향한 실질적인 시각 전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래픽 디자인은 항상 주어진 임무와 기술적 효용의 범위에서 기능적인 해상력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그래픽 디자이너는 예술의 발달과 과학의 발달을 함께 알아야 하는 접점에서 중추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어떤 일을 하는가?

우리 나라의 그래픽 디자인이 처음으로 대중과 만났을 때 이것을 사람들은 도안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일은 해방 이후 진보적 미술 교육을 받은 세칭 응용 미술가와 일부 성공하지 못한 화가, 그 밖에 인쇄소의 화공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그것도 주로 제품 포장의 표면, 인쇄, 출판물, 광고 등과 같은 일에 단편적으로 관계하여 일상 생활 가운데서 명멸해 왔다.

우리 나라 그래픽 디자인의 활동을 편의상 세 가지 시기로 구분해서 살펴보자.

첫째, 해방 후 곧 이어서 우리 나라 그래픽 디자인의 원로라 할 한홍택이 관계한 산업 미술가 협회, 또는 상업 미술가 협회 작가들의 포스터 중심의 작품 활동과, 1960년대 초까지의 수공업적 규모를 벗어나지 못한 산업 속에서 이름 없이 명멸했던 각종 포스터, 광고, 포장류 등을 담당했던 이른바 도안가들의 활동을 포함하는 시기. 도안 시대라고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둘째, 1960년대 초 간결 명쾌한 형태와 화려한 색채로 된 일련의 포스터들이 서울의 거리를 반짝하게 했던 제1회 국제 음악제(서울)를 위한 포스터(디자인:조영제, 한도룡, 민철홍)가 등장한 때부터 1960년대 말까지의 시기(상업 미술 시대), 이 시기동안에는 응용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이 결성한 상업 미술가 협회가 기타 선전 미술가 협회 등의 활동이 있었으며 상공 미술 전시회(1960년이 제 1회)의 제 1부 상업 미술부까지 '미술'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셋째, 1970년대 초 이후의 시기를 그래픽 디자인 시대라고 구분할 수 있다. 1966년 상공 미전으로 사실상 그래픽 디자인도 더욱 전문화되었고, 1969년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공적으로 자격 인정된 셈이며(상공 미전 추천 작가) 1976년이 되어서야 산업 디자인전으로 개칭됨으로써 디자인이 법적으로 공식화된 용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어느 때보다도 기업이 그래픽 디자인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인식하여 전문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자문에 응하는 경향이 늘어갔고 C.I 디자인이 체계적으로 실천되기 시작했으며, 소규모이긴 하지만 그래픽 디자인 기업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하는 게 타당한지는 앞으로 더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30여 년 동안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활동해 왔는데 대개 세 가지유형으로 그들의 활동을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유형은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 겸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의 측면에서 보면 프리랜서에 가깝다. 그들은 우선 그래픽 디자이너를 양성하며, 기업의 디자인 문제에 관여하는 컨설턴트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기업이 교수들에게 자문하는 것은 그들이 전문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업에 속해 있는 디자이너들보다 기업의 디자인 문제에 대해 편견이나 선입견에 물들어 있지 않아서이다. 또 그들은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있지 않은 기업의 디자인 프로그램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이론과 실제를 잘 융합해서 바람직한 그래픽 디자인 교육에 접근해 간다.

두 번째 유형이 수적으로 가장 많은데, 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디자이너들로서 주로 생산 업체와 광고 대행 회사의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이 사실상 우리 나라 그래픽 디자인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인력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까지나 고용 디자이너로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독립된 디자이너로 발전해 가는데, 여기서 세 번째 유형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생기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래픽 디자인 기업을 경영하는, 디자이너 겸 사업가라고 말할 수 있는 유형이다. 현재로서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앞으로 산업이 고도화됨에 따라 여러 형태의 디자인 기업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디자인의 무명성과 유명해지려는 디자이너

나는 우리 나라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당면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 진단함으로써 이 분야의 발전을 기대하고 싶다.

누군가가 디자인을 의술에 비유했는데, 이익만을 위한다면 의술도 인술이 될 수 없듯이 디자인도 상업적인 이익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의사가 개업하여 의술을 펴는 것처럼 디자인도 어떠한 형태든지 기업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의사는 인술을 펴는 것으로 사회에 대한 그의 역할을 다하듯이 디자이너도 이러한 방법으로 그의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디자이너란 기본적으로 이름이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명성에서 벗어나 유명해지려고 노력하는 데서 디자이너들의 고민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다수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자기 선전의 방법이나 자기 표현의 방법을 미술가들이 해 온 전람회의 많이 의존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시회의 작품들은 개인주의적인 관념으로 표현된 포스터 규격의 작품을 시중 화랑에서 전시하는 활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앞에서 출판문화에 관한 디자인은 누가 세련되게 할 것이며, 활자나 그래픽 심벌은 누가 개발할 것이며, 포장은 누가 연구하고, 그래픽 산업은 누가 발전시킬 것이며, 우리 환경의 시각적 형태는 누가 창조할 것인 가라고 외쳤던 것이다.

또 앞에서 분류한 세 가지 유형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물론 실제 그래픽 산업에서 훌륭한 디자인을 실천하고 있지만 왜 디자이너들은 그들이 실제로 한 결과를 내놓고 외치지 않을까? 우리는 그래피스 연감과 같은 책에 수록된 그래픽 디자인들은 디자이너들이 실제로 실행했던 결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그래픽 디자이너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상업적 요소와 결합한 그래픽 디자인 이외의 것을 그들의 작품이라고 전시회를 통해서 외쳐 대고 있다.

이것은 사회가 그래픽 디자인을 상업적인 요소와 결합한 것이라고 해서 문화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반작용인가, 아니면 그래픽 디자이너가 하고 있는 일이 본질적으로 무명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작품 발표를 통해서 유명성을 회복하려는 심리인가?

또 이러한 방법으로 외쳐 대는 그래픽 디자이너들 가운데서도 근래에 와서 부쩍 한국적이라는 관념에 집착하고 있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과연 고도의 산업 정보 사회에 살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이처럼 전통을 들먹이는 것에 집착해야 하는가? 나는 이에 대해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의아스러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래픽 디자인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렇다.

'한국적' 운운은 과연 필요한가

공업 근대화의 한 단계가 지나고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면서 국적 있는 교육, 민족 주체 사상,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한 때부터 디자인 분야(특히 공예와 그래픽 디자인)에서도 전통적인 것을 자주 의식한 나머지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강한 집착이 나타났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가장 현대적인 것은 서구적인 문물이었고, 우리의 것은 상대적으로 낡은 것은 취급되었다. 주택이 그렇고 의상, 그릇, 음식, 의식까지도 서구적인 것이 현대적인 것의 대명사처럼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일부에서 한국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과거의 것을 숭상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전자는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났던 경향이고 후자는 외래 문화를 올바르게 수용하고 우리 것에 대한 자의식을 되찾으려는 데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것에 대한 올바른 가치 규범도 없는 채 피상적으로 유행을 추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전통적 또는 한국적인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특히 현대디자인)까지 이러한 전통적 관념에 빠져 피상적인 것을 옮기는 일에 집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들의 옛 생활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길상염원의 한 상징적 형태가 십장생과 같은 장식으로 집약되어 표현되었는데, 오늘날 이것을 정리해서 변형시켰다거나 재구성했다고 해서 전통적 또는 한국적인 디자인인가?

사실은 과거의 유물에 나타난 장식이나 양식도 그것을 창조해 낸 작가(장인)가 있었다. 단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고 또 본질적으로 무명했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떤가? 일부 작가들은 이러한 것을 그대로 베끼거나 약간 변형하고 응용한 작품으로 자기를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도 바람직한 것일까?

구태여 십장생도와 같은 모티브가 필요하다면 자신의 능력으로 새로이 창조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장인들은 하늘을 관찰하고 또 관념화하여 청자에 나타난 구름 무늬를 창조해 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지금의 일부 작가들은 옛 장인들의 지혜를 배우려 하지 않고 장인들이 창조한 이 구름 무늬를 옮기거나 변형하기보다는 실제 하늘을 관찰하거나 새로운 관념을 형성하여 새로운 구름을 창조해 내야 한다.

전통의 참다운 계승은 조상의 지혜를 본받는 것이 아닐까.

디자인의 산업화

서양에서는 기계 문명의 초기인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문화 예술 분야에서 가장 심각한 부조화는 기계적 물질 문명에서 유래하였고, 따라서 항상 반작용으로써 인간적인 도전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는 급속도로 산업화되었고 디자인도 이러한 발전에 따라 존재해 왔다.

1900년대 초에서 오늘날까지 세계사는 산업화로 일관했으며 디자인도 이와 같은 산업 발전을 떠나서는 논의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이러한 흐름을 우리 역사에 대입해서 가정해 본다면 산업화 도상에 있는 우리 세대는 물론이고 다음의 디자인 세대까지도 이와 같은 산업화와 관련짓지 않고는 디자인에 대해서 논의 할 수 없을 것이며 또 디자이너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디자인의 기업화, 더 이상적으로 말해서 예술을 산업화한다는 사상과 그것을 실천하는 능력이 없이는 오늘을 사는 진정한 디자이너일 수가 없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조형적인 문제에만 고심할 때 그는 이미 디자이너가 아니다. 물론 조형적인 능력이 해결되지 않고는 사회에 발언할 권리가 없다. 마치 의술 없이 개업한 의사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래픽 디자이너가 창조한 작품은 이미 재화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래픽 디자이너의 능력은 생산으로 연결될 때만 기능하기 때문에, 만약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이 화랑에서 바로 판매되었다면 그것은 이미 그래픽 디자인은 아니다.

더 예를 들어보자. 국전에서 수상한 회화 작품은 그 자체가 재화로서의 가치도 있고 매매의 대상이 되지만, 그래픽 디자인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 예술가들의 방위세는 어떠한가. 만약 그래픽 디자이너가 예술가 방위세를 부담했다면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아닐 것이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의당 영업세(디자인 기업의 경우)나 종합 소득세(디자인 컨설턴트의 경우)를 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진실로 우리의 그래픽 디자인을 생각한다면 자기 선전이나 자기 과시에 집착하지 말고 묵묵히 우리 환경의 그래픽 형태와 그래픽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자신의 일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전람회를 통해서 개인적인 표현을 하고 미술가 흉내를 낸다고 해서 그들이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된다면, 산업 속에서 묵묵히 활동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그들처럼 훌륭하지 않은 사람들이란 말인가. 단지 그들은 디자인의 무명성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재능을 실제로 발휘하여 생활화하고 있을 뿐이다.


정시화/ 국민대학교 조형대 시각 디자인학과 교수이며, 저서로는 '현대 디자인연구', '산업 디자인 150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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