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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름다운 물감 덩어리여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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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름다운 물감 덩어리여

이일

 

그림을 이해하는 두 방식

미국에 대표적인 현존 미술가 가운데 한 사람인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다음과 같은 의미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진정하게 또 편견 없이 한 회화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추상 회화보다 구상회화가 한결 힘들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와 같은 주장은 우리의 통념으로 보아서는 역설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작품에서 향유하는 것, 또는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하면 그린버그의 주장은 오히려 매우 시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실물을 대할 때는 아무도 돌보지 않다가 그 실물을 정 말 실물처럼 화폭에 옮겼을 때 사람들은 감탄한다. 회화란 그 얼마나 허망한 것이냐!

이에 반해 르누아르는 라파엘로의 <성모자상(聖母子像)>을 보고 이렇게 감탄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물감 덩어리냐!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이 두가지 태도의근거는 분명하다. 만일 파스칼이 회화를 허망한 것이라고 단정 했다면 그것은 그가 회화를 단순히 정확히 대상을 재현하는 한 기술로 간주했고, 그 이상의 것을 작품속에서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는 한 발 더 나아가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면 그것이 곧 아름다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소박한 관념과도 상통한다. 한편 르누아르는 아마도 화가로서의 예민한 감수성과 훈련 까닭일지도 모르나 성모자의 아리따운 모습 이전에 그 모습을 검싸고 도는 전체적인 매력, 다시 말하자면 그 작품의 회화적 또는 조형적 조화에 이끌렸다는 말이 된다.

한 마디로 회화의 기능을 순전히 대상을 정확히 표현했다는 것으로 국한시킬 때, 거기에서 나타나는 것이 곧 사실주의 이다. 이에 반하여 회화 언어 자체 또는 그 요소들, 다시 말해서 선·형태·색채 등이 지니는 고유의 독자적, 자주적 가능이 강조될 때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추상적 경향의 회화이다. 그리고 비록 유럽 회화의 근간을 이루어 온 것이 사실주의 정신이긴 하되, 사실, 추상의 두 경향은 이른바 '예술충동'의 두 발판으로서 미술이 탄생한 이래 존재해 왔다는 것이 오늘의 미학적, 미술사적 명제로 정립되어 있다.

앞서든 파스칼의 말은 실상은 바러 사실주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가장 철저하고 의식적인 사실파 화가임을 자초했던 쿠르베마저도 화가적 식견에서는 그 역시 대상의 객관적 재현이라는 지상명령을 자신도 모르게 어기고 있었다. 그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그것을 말해 준다.

어느날 산속에서 그림틀을 세우고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쿠르베 켵을 지나가던 사람이 발길을 멈추고 쿠르베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 당신이 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요?"

그제서야 정신이든 쿠르베는 자신이 그리고 있던 화폭을 바라보다가 그 그려진 사물쪽으로 다가선 후에 외쳤다.

"아, 이것은 나뭇단 이군!"

그는 자기가 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다만 하나의 회화적 소재,즉 '모티브'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티브란 근대의 의미에서 '한 회화 작픔을 만드는 데 적합한 자연의 한 양상'이다. 이미 거기에는 대상이 지니는 '주제'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고 다만 시각적 물체가 존재할 뿐이다.

이와 같은 예는 허다하다. '사실주의의 가장 순수한 상태'를 이룩했다고 하는 인상주의, 그 중에서도 특히 모네를 두고 말하더라도 그는 다음과 같은 충고를 젊은 화가들에게 하고 있다.

자연을 앞에 하고 대상이 무엇이라는 걸 의식하지 말라. 다만 저 쪽에는 초록색 면이 있고 이쪽에는 노랑색 띠, 그리고 또 저 편에는 붉은색 점이 있다는 식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그것을 솔직하게 화폭에 옮겨라.

 

고갱의 생각도 이에서 멀지 않다. '자연을 맹목적으로 모사(模寫)하지 말 것'을 경고한 고갱 역시 젊은 화가 지망생에게 이렇게 충고 했다.

저쪽 나무 그늘은 무슨 색으로 보이오? 보랏빛 낀 색깔이죠? 그렇다면 당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보랏빛을 고기에 칠하시오. 그리고 저 나무는? 초록색으로 비친다면 그것도 가장 순수한 초록색으로 칠하시오. 그리고 고갱의 충고에 따라 그려진 그 젊은이의 작품은 거의 추상적인 작품이었다.

추상회화의 탄생과 전개 과정

추상회화가 탄생하고 개화하기까지에는 오래고도 끈질긴 선각자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 하루 아침에 유행처럼 태어난 것은 아니다. 새로운 표현을 향해 열린 추상의 뭇 가능성과 필연성을 분명하게 의식한 두 선각자의 말을 들어 보자. 라오콘의 격정적인 몸짓으로부터 말 없는 풍경을 거쳐 한 알의 사과에 이르고 그것이 다시금 하나의 원이 됨으로써, 회화가 가장 과묵한 것으로 오히려 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음을 우리는 깨달았다. …… 한 작품 속에서 하나의 점이 때로는 인간의 얼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칸딘스키)

한 회화 작품이란 군사영 말이라든가 누드 또는 그 어떤 일화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어떤 질서에 의해 모여진 색채로 뒤덮인 평면이다.(모리스 드니)표현은 서로 다르지만 이 두화가의 말은 다같이 추상회화를 마지막 논리적 귀착점으로 삼은 유럽 미술의 전개과정을 단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 그길고 그 과정은 약간의 도식화를 무릅쓴다면 다음의 3단계로 요약될 수 잇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주제'의 단계에서 '모티브'의 단계로, 그리고 끝으로 '조형'의 단계로 귀착되었다.

회화에서 주제는 적어도 쿠르베 이전까지 작품을 이해하는 데 거의 결정적인 구실을 해왔다. 주제란 한 마디로 작품속에 담겨진 의미 내용을 말하며 쉽게 말해서 작품 속에 무엇을 그렸느냐 하는 바로 그 '무엇'을 가리킨다. 그리고 주제의 폭은 멀리로는 종교적 주제, 신화적·역사적 주제, 문학적 주제 등에서 가깝게는 풍속적이고 현실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다. 그리고 이 문제를 앞의 인용문과 견주어 보건대 '라오콘의 격정적 모습'이,그리고 '군마라든지 누드 또는 그 어떤 일화'가 바로 이 주제에 해당된다.

주제는 인상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중요성을 상실해 갔고, 대신 모티브가 작품의 '동력(動力)'(이 말이 모티브의 어원적인 본래의 의미이기도 하다.)이 된다. 칸딘스키가 말하는 '말 없는 풍경', 아무 이야깃 거리도 없거니와 하잘 것없는 언덕의 한 모퉁이' 또는 '평범한 초상', 아니면 '한알의 사과'등 이들 모두가 화가의 창작 이욕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한 소재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세잔느가 친구의 초상화를 그리다가 포즈를 취하던 그 친구가 움직이자 "움직이지 말게. 사과가 어디 움직이는가?"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실상 세잔느에게는 인물이건 단순한 사과이건 별 차이가 없는 '안성맞춤의 회화적 소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가 '언덕의 곡선과 여인의 어깨의 선을 결합시킬 것'이라고 했을 때 이 역시 동일한 조형 이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세잔느도, 또 입체주의도 모티브의 단계를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했다. 비록 세잔느가 자연을 원통형과 원추형 또는 원구형으로 환원시키라고 했다 치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입체주의를 거쳐 추상 회화를 예견한 것이었다 치더라도 그것은 다만 이념적인 조형 원리의 시사로 그치는 것이었다.

입체주의 역시 그 원리를 하나의 방법론으로 회화에 적용했을 뿐 끝내 대상의 형태에 서 완전히 해방되지는 못했다. 극심한 변형을 겪으면서도 자연의 구체적인 형상 또는 형상의 흔적은 여전히 화면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입체주의가 미술사적인 위치로 볼 때, 조형상으로는 전통적인 회화와의 단절을 이룩한 시각의 혁신을 가져왔으면서도 회화 이념상으로는 구상 회화(사실적인 회화와 같은 뜻은 아니다. )의 마지막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회화 작품의 순수한 아름다움

입체주의가 그러한 단계에서 벗어나 순수한 조형의 세계, 다시 말해서 추상의 세계로 뛰어들기 위해서는 또 한 사람의 추상화 선구자의 출현을 기다려야 했다. 몬드리안이 그 사람이다. 그 자신이 영향을 받은 입체주의의 한계에 대해 몬드리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입체주의가 자신이 발견한 조형적 혁신의 논리적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발견의 궁극적인 목적인 '순수한 실재'의 표현을 향해 추상을 끝까지 밀고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나에게는 실제라는 것이 '순수한 조형'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본질적 표현에 있어 순수 조형은 주관적 감정이나……형태 및 자연색의 특수성에 규정당하지 않는다. 자연 형태의 외관은 변화하나 궁극적 실재는 항구적이다. 따라서 실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형태를 형태의 항구적 요소로 환원하고 자연의 색채를 기본색으로 환원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몬드리안이 도달한 세계, 그것은 항구적 형태로서는 수평, 수직선을 근간으로 한 네모꼴의 세계요, 색채로서는 노랑, 빨강, 파랑의 삼원색과 그 자신이 '비색 (非色)'이라고 부른 흑, 백, 회색으로 엄격하게 규제된 금욕적인 세계였다. 그리고 그러한 엄격한 비개성적인 구성을 통해서 그가 추구한 '순수 실재'의 세계는 이를테면 플라톤적인 이데아의 세계요, 우주의 기본적이자 보편적인 법칙이 실현되는 세계였다.

몬드리안이 입체주의적 체험을 여과시키며 순수 추상의 세계에 도달했다면, 반대로 칸딘스키는 입체주의의 교훈과는 전혀 관계 없이 독자적인 과정을 통해 '비대상(非對象)'의 추상 회화로 이행해 갔다. 그에게 추상 회화의 가능성에 대한 계시는 오히려 모네의 작품, 그 중에서도 특히 '낟가리' 연작에서 왔다. 이 작품을 대했을 때의 충격을 그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실주의적 회화밖에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도 모르는 그림 앞에 서자 그래도 그 작품에 매혹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카탈로그를 들쳐 본 연후에야 나는 그 작품이 낟가리를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인상은 혼란된 채 나의 머리 속에 남아 있었고 당시로서는 그 발견의 자연스러운 귀결이 어떠한 것인가를 미처 예견할 수가 없었다

그 예견할 수 없었던 귀결은 그보다 훨씬 뒤, 두 번째의 '계시'에 의해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굳어진다. 어느 날 오후 그는 야외 사생에서 돌아와 아틀리에로 들어서 '더없이 희한한 내적 광휘로 빛나는' 작품과 마주쳐 황홀한 채 자신을 잃었다. 이윽고 정신이 들어 문제의 그 작품에 다가서 보니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작품이었고 단지 그것이 벽에 모로 기대어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는 첫 번째의 그 황홀한 느낌을 다시 맛보기 위해 같은 시도를 되풀이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왜냐 하면, 이미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가를 알았고 그렇게 되자 그 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얻어진 결론은 회화 작품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대상, 즉 자연의 형태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결론이었다.

자연을 암시하는 일체의 형상이 없는 '비대상'의, 그리고 오직 색채의 혼연한 조화가 읊어 내는 회화가 여기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금 우리는 이 글 서두에서 언급한 그린버그의 주장의 타당성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회화가 궁극적으로 색채로 된 교향악이라고 한 사람은 또다른 추상 회화의 선각자 들로네이거니 와 이와 함께 다시금 칸딘스키의 말을 음미해 보는 것도 헛일은 아니리라.

젊었을 때 이미 나는 색채가 지니는 무궁한 표현력을 감지하고 있었다. 나는 '사실적'인 것을 '서술'하지 않고 예술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음악가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나는 색채도 또한 음 못지않게 풍부하고 강한 표현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일/파리 대학에서 고고학·미술사학을 수학했다. 현재는 홍익 대학교 예술학과 교수이며 한국 미술 평론가 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 미술에서의 환원과 확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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