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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 옛터, 랩 음악, 민중가요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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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 옛터, 랩 음악, 민중가요

이 영 미

1.

근년 들어 퍼진 '최불암 시리즈'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우리의 의식 속에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확인하게 하는 것이라면, 1991년 겨울을 뜨겁게 달아 오르게 했던 소위 '뉴 키즈 소동'은 우리 사회에서 대중 음악이 차지하는 자리가 얼마나 커졌는가를 다시 한번 실감케 해 주었다. 그리고 뉴 키즈 언더 블록의 방안이 '소동'으로 끝나 버린 뒤, 채 가라앉지 않은 아쉬운 느낌을 타고 돌풍을 일으킨 서태지 붐은 이를 재확인하게 하였다.

2.

뉴 키즈 소동에 대한 매스컴은 일차적 반응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서태지 붐이든 헤비메탈이나 하드록이든 발라드나 댄스 뮤직이든 이러한 음악에 대한 40대 이상의 일차적 인 반응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몰이해는 '정신 없이 시끄럽기만 하다', 미친 놈 같다', '괜히 소리만 지른다', '탈선한 젊은애들의 모습 같다'등등 여러 부정적인 느낌을 수반한다.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좋은 평가가 있을 리 없다.

 

특히 스스로 객관화하기 힘든 예술과 같은 문화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자기 만족의 문화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민족의 문화를 야만이나 후진으로 치부해 버리는 예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들 10대의 대중 음악 문화에 대해서도, 그것과는 현저히 다른 예술 경험과 취향을 가지고 있는 50대의 성인들은 자신들이 향유했던 예술 문화에 비해 열등한 문화로 단정하고 무시한다.

그러나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본다면, 이해 못하기는 피차 마찬가지다. 50대만10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10대 역시 50대의 대중 가요 취향을 이해할 수 없다. 50대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대중 음악 문화로 가지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인 트롯 요, 속칭 뽕짝 가요에 대한 10대의 평가 역시 긍정적이지는 못하다. 50대들은 '심금을 울리는 명가요'라거나 '마음에 드는 신나는 노래'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도, 이들 노래에 대한 10대의 느낌은 '촌스럽다',수준이 낮다', '저질이다', 퇴폐적이다', '여자 나오는 술집에서나 부를 노래이다', '술 취한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등등이다.

이 양자를 조금씩 이해하고 긍정적이면서 또 이들 두 노래 문화에 대해 모두 비판적인 한 세대도 있다. 두 세대의 중간인 30대이며,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이 세대에 속한다. 이들은 즈음 10대들이 즐기는 랩송, 댄스 뮤직, 발라드 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감상 할 수 있으며, 또 뽕짝 문화의 맛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10대가 50대의 뽕짝에, 50대가 10대의 랩송에 대해 가지는 몰이해나 반감 역시 어느 정도 이해하며 공감한다. 뽕짝이 왜색 가요라는 평론가들의 지적에는 50대들이 심정적 거부 반응을 보이며, 요즈음 랩송이 지나친 미국풍이라는 지적에는 10대들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에 비해, 이러한 평론가들의 지적에 별 거부감 없이 공감하는 세대가 바로 이 30대이다. 이들은 이 양자의 문화 어느 것에도 적응할 수 있지만, 어느 것에도 편안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이들이 가장 편안하게 향유할 수 있는 것은 포크송, 즉 70년대의 소위 '통기타 문화'이다. 마치 지금 90년대 초의 새로운 예술 문화적 현상을 '신세대 문학', '신세대 가요' 등의 말로 지칭하듯, 70년대 초에는 통기타와 포크송, 청바지로 표상 되던 소위 '청년 문화'가 신세대의 문화였다. 이들 30대는 뽕짝과 랩송 양자에 비판적 거리를 가지고 있는 대신, 이 포크송에 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긍정적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어떤 대중 가요보다도 지적이고 건강하며 소박하면서도 수준 높은 노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신들이 뽕짝으로부터 최근 랩송까지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이 말해 주듯, 포크송 역시 어느 정도는 일제 시대 이래의 뽕짝 문화와, 또 어느 정도는 지금의 랩송이나 록 등과 맥이 닿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크송에 관한 한 왜색이니 미국풍이니 하는 식의 비판적 거리를 가진 이성적 평가를 하지 못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대중 가요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또 모두 자신의 대중 가요 취향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자신의 것과 다른 취향의 대중 가요에 대해서는 일단 거부감과 심정적인 몰이해를 앞세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3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각 세대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각기 다른 이 대중 가요 문화가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뽕짝과 랩송, 그리고 포크송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공통점이야말로 우리 대중 가요의 본질에 해당하는 어떠한 특성일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즐기며 향유하는 대중 가요 문화의 어떤 본질적 측면이기도 할 것이다.

우선 이들 노래는 대개 모두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목포의 눈물>도 <꽃반지 끼고>도 <보이지 않은 사랑>이나 <난 알아요>도 이 점에 관한 한 동일하다.

 

동서 고금을 통틀어 예술이란 사랑을 이야기하게 되어 있는 것인데 이들 가요들이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다는 것이 무슨 그리 새삼스럽게 이야기할 만한 공통점인가 하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 존재한다는 정도를 넘어서서,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이렇게 한결같이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 한 다는 것은 대중 가요만의 특성이다. 근대 이전의 시조, 민요나 20세기 이후의 가곡, 구전 가요 등 어떠한 것도 대중 가요처럼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 일색이던 경우는 없다. 즉 대중 가요 문화는, 소수 건전 가요류를 제외하고서는, 남녀 간의 사랑, 그것도 주로 슬픈 사랑의 노래로 일관하는 묘한 획일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대중 매체에 의해 전달되는 대중 예술의 생산, 유통, 소비 구조의 소산으로 대중 가요 문화의 본질적 특성이다. 음반이나 방송을 통해 수용자에게 전달되는 대중 가요의 예술가에 의해 생산되어 수용자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마치 현대 산업 사회의 공산물들처럼 음반사, 방송사 등으로 불리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이 이루어져 시장을 통해 수많은 대중들에게 동일한 작품이 대량으로 공급된다. 따라서, 대중 가요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자본이 필요하며, 대중 가요는 자본이 투여된 만큼 상업적인 이윤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

또한 정치적 지배 세력은 대중 가요의 다수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하여 당연히 일정한 간섭과 통제를 하게 되는데, 정치적 지배 세력과의 밀월 관계 없이 상업적인 이윤 창출이 가능하지 않은 대중 가요 생산자들은 이러한 정치적 지배 세력의 간섭과 통제를 받아들이게 된다. 정치적, 사회적인 현상 유지라는 정부의 통제 논리와 그 속에서의 이윤 추구라는, 자본을 투자한 대중 가요 생산자의 논리, 그 양자를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사회적 불만족의 형상화, 이러한 것으로 전화될 가능성이 높은 사회적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형상화가 아니면서, 그 사회 대중들의 보편적인 경험이면서도 자극 강도가 높은 경험을 찾게 된다.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만큼 이러한 여러 조건을 두루 충족시켜 주는 것은 없다. 대중 가요의 가사에서 남녀 간의 사랑 이외인 것으로 자주 등장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삶의 고독감 등의 내용 역시 이러한 기준에 의해 걸러져 나온 것이다.

대중 가요에 관철되는 이러한 정치적·경제적 논리는 우리 나라에서 대중 가요가 처 음 시작되던 1920년대부터 존재했으며, 특히 식민 통치와 계속된 비민주적인 정치 상황에서 이러한, 정치적·경제적 논리는 더욱 강경하게 관철되었다. 그 결과 이제 이러한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는 대중 가요 문화의 내용적 관행으로 완전히 굳어 버렸고, 작품 창작자조차 이러한 구조가 만들어 낸 작품 관행을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두 번째 공통점으로는, 이들 노래가 모두 당시 우리 나라에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크게 미치고 있던 강대국의 대중 가요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심지어 이를 모방, 추종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와 같이 식민지 경험을 통해 근대로 이행한 나라들의 대중 문화가 가지는 특성이기도 하다.

 

두루 알려져 있다시피 뽕짝 가요는 일본 소화 시대 유행가의 이식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뽕짝의 주요한 특징인 장단음계의 선율과 박자는 우리 나라의 민속 음악과는 이질적인 일본 유행가의 선율과 박자이며, 비극과 고통을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그 피해 의식 속에서 체념의 눈물을 흘리는 과장된 비장함의 정서 역시 일본에서부터 받아들인 신파적 정서이다.

대중 가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일제 시대가 주로 일본 대중 가요의 이식기였다면, 해방 이후로는 주로 미국 대중 가요, 즉 팝송의 이식이 계속되었다고 파악할 수 있다. 포크송과 청년 문화의 바람이 분 1970년대 초반은 본격적인 미국 문화 속에서 자라난 전후 세대가 청소년기에 도달할 무렵이다. 즉, 포크송의 붐이란 대중가요권에서 보자면 식민지 세대로부터 전후 세대로 본격적인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일어나 현상이라고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다. 당시 포크송의 전범은 미국의 포크송이나 컨츄리송 등이었고, 당시 유행하던 포크송은 이러한 미국 포크송의 번역, 번안 가요, 혹은 이러한 것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다. 그 후 우리의 가요는 계속 미국 가요, 또는 그것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일본의 미국식 가요의 영향을 계속 받아 왔고, 그것은 급기야 80년대 후반 팝 발라드와 댄스 뮤직, 그리고 랩송 등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미국식 선율과 박자, 화성은 물론, 미국식 발음과 억양, 완전히 영어로 만들어진 노래의 등장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일본 가요나 미국의 팝송은 외국의 가요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우리의 대중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왔다. 일제 시대 대중들은 우리 가요와 함께 일본의 가요를 함께 듣고 불렀으며, 해방 후의 대중들은 미국의 팝송 음반을 구매하며 방송을 통해서 일상적으로 듣고, 또 따라불러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 강대국의 대중 가요는 우리 대중 가요보다 세련된 예술, 우월한 예술로 자리잡고, 우리의 대중 가요는 이를 모방함으로써 세련되어지고 발전한다는 생각이 대중과 대중 음악을 지배하게 되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문화나 외래의 것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며 발전하게 마련이지만, 이러한 일방적인 이식과 모방은 이미 정상적인 교류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문화 제국주의 내지는 문화 식민주의, 문화적 종속 등의 용어로 규정하는 것도 외래 문화가 일방적으로 이입되고 그리고 그 위래 문화가 바로 정치적·경제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바로 그 강대국의 문하라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우리 가요 문화의 주체성 정립을 저해하며, 정치, 경제 등 사회 여러 분야의 현상들과 맞물리며 우리 대중이 미국, 일본의 소비 문화, 생활패턴, 미 감각, 가치관 등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또한 자생적인 노래 문화 발전과는 달리 외래의 새로운 문화가 계속 이입되므로 작품의 경향 역시 빠르고 급격하게 변화하게 되는데, 앞에서 이야기한 세대 간의 음악적 취향의 몰이해, 특히 뽕짝 세대와 80년대 세대간의 몰이해도 이러한 이식 과정이 빚어낸 급격한 변화에 그 한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특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각 세대의 대중 가요는 모두 어떤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일정한 통제와 유도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시대의 대중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현대의 어는 노래 문화보다도 당시 대중과 일상적으로 밀착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대중 가요는 각 시대마다 세상살이, 풍습, 더 나아가 대중의 어법, 관심사, 욕구의 한 측면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반영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30년대의 대중 가요에는 30년대의 세상살이의 모습과 대중의 사고 방식, 인식과 정서들이, 90년대의 대중 가요에는 90년대의 그것들이 담겨 있다. 일제 말기에는 일본의 대륙 침략 정책이 찬양되기도 하고, 해방 직후에는 귀국선을 타고 오는 사람들의 희망이 그려지기도 한다. 60년대 가요계는 끈적한 충무로 거리의 도시 풍경, 화려한 도시 서울에 대한 동경이, 70년대 가요에는 긴 머리 짧은 치마를 입고 솔직하고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는 당시 젊은이의 모습, 이농하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향수 등이 들어있다. 90년대의 랩송에는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그것을 발산할 수 있는 삶의 공간이 그려진다. 각 세대가 서로 다른 세대의 대중 가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세대의 욕구와 세상살이, 생활 감각과 취향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물론 대중 가요가 반영하는 그 시대의 세상살이의 모습, 그 시대 대중들의 희로애락과 인식과 정서는 어떤 한 측면으로 쏠려 있다. 대중 가요에서 받아 내는 그 시대 대중의 욕구는, 계층상승의 욕구, 즉 그 사회에서 '잘 사는 사람`이 되어 남보다 잘 먹고 편하게 잘 살며 부러움을 받고 화려하게 사는 것이다.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도시에서의 삶이 곧 잘 사는 사람들의 삶으로 인식되었던 60년대에, 대중 가요는 도시의 풍경과 도시인들의 모습을 동경할 만한 것으로 이상화하여 그려내고, 70년대에는 동경할 만한 미국적 분위기나 대학생의 자유로움을 그려내는 식이다. 돈 있는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여름 바닷가나 호반의 벤취에서의 여유로운 사랑이나 심지어 향락적인 삶까지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려진다. 앞에서 이야기한 강대국 대중 예술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역시, 일본과 미국의 삶을 동경할 만한 삶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쉽게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계층 상승을 통한 부유하고 여우 있는 삶이란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중 가요에는 그것을 성취하지 못한 대중의 공통과 절망도 표현된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과 비극, 절망은 일하고 먹고사는 것에서의 고통과 절망으로 사실적으로 형상화되거나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결합하여 드러나지 못한다. 앞의 첫 번째 특성에서 설명한, 그 사회에 대한 불만을 방지하고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통제 원리에 의해서이다. 그 결과 대중 가요에서 대중의 고통과 비극은, 남녀간의 이별이나 부모 자식간의 이별이라는 개인적인 인간 관계의 기호로 환치되어 드러난다. 그나마 대중들에게 그 고통과 비극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비극을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서는 건강한 낙관보다는, 그러한 비극이 '당신과 나 사이에 바다가 가로놓인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식의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내가 못 났기 때문', `여자인 것이 죄' 라는 식의 자기 결함 탓으로 돌리며 체념하는 태도를 갖도록 하며, 때로는 `골치 아픈 것은 모두 잊어 버리자'는 식의 순간적인 향락으로 해소하는 태도를 종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 가요는 어떤 노래 문화보다도 그 당시 대중의 욕구와 취향, 고통을 민감하게, 그리고 양적으로 풍부하게 반영한다. 그래서 대중 가요는 대중들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예술로 이 사회에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10대의 랩송이나 30대의 포크송이나 50대의 뽕짝이 모두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대중의 삶과 욕구, 그들의 취향과 고통을 받아 내되, 경쟁적인 계층 상승적 욕구, 강대국의 삶에 대한 동경, 개인적 고통으로의 환치와 비생산적인 패배주의 등 어는 한쪽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중 가요가 대중성을 가지면서도 체제 순응성, 문화 식민지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양면적 본질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대중 가요는 대중에게 즐거움과 위로를 주고 대중에게 사랑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지배 세력의 용인 아래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4.

여태까지 이야기한 것이 각 세대의 대중 가요들이 대중 가요로서 가지고 있는 공통성, 즉 보편적 특성이다. 다른 세대의 대중 가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세대의 생활 감각, 욕구, 취향, 경험을 이해하지 못함은 물론, 자기 세대와 다른 세대의 대중 가요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이러한 보편적 특성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는 대중 가요 자체에 대한 객관적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중 가요 자체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 거리 유지에 도움을 주는 노래 문화가 바로 소위 민중 가요이다. 왜냐 하면, 민중가요는 앞에서 이야기한 대중 가요와는 본질이 다른 노래이기 때문이다. 민중 가요는 대중 매체에 의해 전달되지 않으므로 대자본에 의해 생산되지 않으며 제도적인 정치적 통제를 받지도 않는다. 대중 가요처럼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등 개인적 인간 관계로 제재가 획일화되어 있지도 않으며, 숙명론과 체념의 태도도 없다. 민중 가요 작품은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노래로부터 일하고 먹고 사는 삶의 고통과 즐거움, 우리의 과거 역사와 미래를 노래한 작품까지 다양하다. 민중가요는 처참한 고통은 처참한 대로, 극복의 의지는 힘차게 그려 내며, 일상의 삶의 고통과 낙관을 모두 그려낸다.

민중가요는 대중들 스스로 만들어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고 전승되는 노래이다. 즉, 어찌 보면 앞에서 이야기한 대중 가요의 한계 때문에 대중 가요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이러한 자생적인 노래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민중 가요는 대중 가요가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거에 그치지 않고, 노래 운동, 음악 운동이라는 집단적 움직임을 만들어 냄으로써 대중 가요 문화 자체의 문제점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 해결까지를 내다보고 있다.

민중가요 작품이라고 유별난 노래는 아니다. 작품 내적으로 볼 때 그 원천은 대중가요에 있다. <아침이슬>은 포크송과 찬송가에,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는 60년대 발라드 가요에, <포장마차>는 뽕짝에,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군가에, <제발 제발>은 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그것은 대중 가요 속에 담겨 있는 대중의 취향과 세상살이를 받아오고 있다. 단지 그것을 대중 가요에서와 같은 방향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민중 가요 문화는 아직 대중 가요만큼 대중적이지는 못하다. 대중 가요가 모든 대주의 일상적 삶 곳곳에까지 파고 들어가 잇는 것에 비해, 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민중 가요는 아직 일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한정된 공간 안에서만 향유된다. 물론 늦은 출발에 비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 자본에 의한 대중 매체의 힘을 빌지 않는 민중 가요가 갑작스럽게 확산되리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87년 이후 주로 대학생에게 국한되어 있던 민중 가요의 수용층이 노동 층에게까지 확산되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활동 등 대중 가요의 공간으로까지 존재 영역을 확대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역시 대중 가요의 엄청난 대중성과는 비교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대중의 삶의 취향이나 욕구를 반영한다는 면에서는 대중 가요에 비해 양적으로 부족하다. 민중 가요가 대중가요가 채워 주지 못하는 어떤 부분을 채워 주기는 하되, 대중 가요의 그것까지 모두 다 포용해 버릴 정도로 통이 크지는 못하다.

대중 가요와 민중 가요는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노래 문화의 자산이다. 대중 가요는 대중 매체의 노래 문화를 대표하여 욕구와 경험, 고통의 한 측면을 민감하고 풍부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민중 가요는 그 존재자체가 자칫 대중의 유일한 노래 문화로 절대화 될 수 있는 대중 가요에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게 해 주는 대립항이 되어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으며, 대중 가요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할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럽게 향유하게 되는 대중 가요에 비해 민중 가요는 일정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향유할 수 있지만, 대중 가요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노래 문화에 대한 균형 감각을 찾기 위해 이러한 의식적 노력은 필요하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제 우리 사회에서 대중 가요를 비롯한 노래 문화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소설이나 시를 올바로 읽고 감상하는 것에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는 달리 노래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그러한 태도를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 현재 이 사회를 사는 누구에게나 노래는 시외 소설 못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 가요를 비롯한 노래 문화를 올바로 향유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 노래에 대해 따지고 생각하며 새롭고 좋은 노래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래 문화에 대한 바른 인식과 수용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세대의 대중 가요와 그 속에 담긴 그 세대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영 미 / 고려 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지금은 노래 운동가와 평론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민족 예술 운동의 역사적 이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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