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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예술의 방황과 모험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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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예술의 방황과 모험

 

여 석 기

현대 예술은 모든 특징을 몇 가지 경향 내지 주장으로 묶어서, 어떤 정신적 기반을 찾아낸다는 작업은 쉽지 않다. 왜냐 하면, 현대 예술이라고 우리가 막연하게 부르는 것 가운데는 표현 재료와 방법이 다른 여러 가지 장르가 섞여 있어서. 그것들을 묶어서 몇 갱의 뚜렷한 방향이나 양식으로 통일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뿐만 아니라, 도대체 현대라는 것의 정신적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여야 좋을지 우리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예술에 고나한 논의의 범위를 일단 20 세기 전반기로 잡는다면 이 시대가 지닌 여러 가지 상황(정신적인 것에서 사회, 경제, 정치적인 것에 이르기까지)에 비추어 몇 가지 추론해 본 결과가 전반기 현대 예술의 그 변화 무쌍한 표현의 어떤 저류를 설명할 수 있지 안겠는가? 거기까지는 가지 못하더라고, 이렇게 추출해 본 결과가 적어도 20 세기 예술의 경향 내지 주장의 어느 모습을 측면 적으로라도 설명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될 것 같다.

1.

우선 대범하게 현대를 이해하기 위하여 19 세기와 대비해 본다면 두 시대가 가진 세계관의 차이가 눈에 뛴다. 이것은 19 세기만이 아니라 서양의 근세, 즉 르네상스 이래로 두드러진 점이지만, 적어도 19 세기 말엽까지 유럽 사회가 지녔던 것은 매우 합리적인 지성에 입각한 객관적 세계관이었다. 그러한 세계관의 기둥이 된 배경적 요소로서 뉴튼의 고전 물리학이라든가, 다윈의 진화론, 콩뜨의 실증주의 철학, 그 밖에도 마르크스의 유물 변증법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철학적. 사회 과학적 내지 자연 과학적 세계 인식이 현실을 일련의 질서 정연한 인과적 생성으로서 이해하였고, 나아가 그러한 연속성이 끝없는 진보에의 가능성을 내포한 것으로서 우주를 인식하게 하였던 것이다. 현실이 하나의 엄연한 객관적 존재로서 눈앞에 있고, 그 현실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하나의 인과 법칙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는, 다시 말하자면 객관적 현실에의 신앙이 곧 19 세기 리얼리즘의 기반이 되었다.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주관을 개입시킬 필요 없이 관찰하고 묘사한다는 데서 리얼리즘의 방법이 생겼고, 한 걸음 나아가 그러한 현실을 이미 선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마치 과학자처럼 몰가치 하게 그것을 분석하고 기술하는 데서 예술의 의미를 찾아보려 한 것이 19 세기 후반의 자연주의자들의 기본 태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좁은 의미에서 리얼리즘이나 자연주의의 문인. 소설가들뿐만 아니라, 회화에서 인상파까지 포함한 19 세기 예술가들의 기본적 입장이라 볼 수 있다. 플로베르, 모파상 또는 졸라의 방법과, 그림 속에 광선과 색채의 자연을 도입시킨 마네. 모네. 피사로. 르누아르, 나아가서는 쇠라, 시냐크 등의 점묘파 화가들은 비록 인습화된 사실파를 비판하고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사실을 극한대까지 이끌고 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또,"사람은 자연을 따름으로써 모든 것을 획득한다"고 19 세기 대표적 조각가 로댕이 말하였을 때, 그가 의미한 것도 바로 이 자연의 사실적 조형이었다. 뿐만 아니라, 연극에서 근대 리얼리즘이 달성한 일대 개혁, 입센이 현실 생활을 꾸밈없이 무대 위에 등장시키고 앙뜨와느의 자유 극장이 극장 안에서 모든 인습과 허위를 추방한다고 공언했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 주류인 스타니스랍스키의 모스크바 예술좌가 무대 위에다 현실을 완벽하게 올려 놓으려고 지나치게 꼼꼼할 정도로 노력하였을 때의 현실도 또한 이러한 외면적 객관적 현실이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현대의 뚜렷한 특징을 찾자면 우선 이점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다시 말하면, 외면적. 객관적 현실이 리얼리티의 전부이기는커녕 중요한 일부도 아니라고 반성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현실이 유기적 인관 법칙에 홀가분하게 지배당하기에는 지나치게 괴물스러운 존재라는 인식과, 세계가 내일이라도 행복스런 유토피아를 이룰 것이라는 낙천적 진보주의에 대한 거센 반발로써 현대예술은 그 첫걸음을 내디뎠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 반성 내지 반발은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현대 예술 전체를 모조리 물들이는 현상도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와 새로운 예술의 운동이 사람의 눈을 현혹시킬 정도로 잇달아 일어나고, 그것이 제각기 특색 있는 깃발을 휘날리고 남과의 차별성을 과시한다손 치더라도 새로운 것의 태동은 이미 전세기 말부터 움튼 것이요, 또 현대 예술이라 해서 전통과의 단절이 깎아 세우듯 두드러진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예술의 전위는 언제나 내일의 기상에 예민한 촉수를 갖고 있어, 합리성에의 일반적 신앙이 시대의 변천에 거역할 도리 없이 반성을 강요당하자 가장 먼저 새로운 것의 표현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20 세기 초의 예술가들은 지금까지 의심할 바 없는 리얼리티로서 받아들였던 저 일상적인 현실이 사실은 지극히 피상적인 허상에 지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또 그 속에 차원을 달리하는 허망과 불안의 심연이 인간 존재의 새로운 국면을 전개시키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과학적 합리주의가 쌓아 올린 현대의 기계 문명이 영혼을 구제하기는커녕 인간을 노예화시키는 지옥에의 길임을 느꼈다. 그래서 현대의 의미를 찾아 자기 심리의 심연처럼 컴컴한 '어둠의 속'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문명의 질곡을 벗어나 원시에의 동경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일상적 논리성을 말살하는 비합리와 추상에의 길로 나아가기도 했다. '현대의 징후'는 20 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예술의 동산에 찬란한, 그러나 매우 질서 없는 꽃을 만발하세 하였던 것이다.

2.

사람들은 현대의 징후의 하나로서 근대적 자아의 해체를 든다. 낙천적 진보의 꿈이 깨어지고 대지처럼 튼튼하다고 믿었던 정신적, 사회적 질서가 붕괴되면서 예전의 가치 체계는 값을 잃고 말았으며, 견고하게 구축되었다고 생각된 자아의 성곽은 예견한 바 있었던 이 현실 인식의 획기적 전환은 이른바 토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의 세계 가운데, 또는 고호의 생활과 예술의 갈등 가운데 이미 일부 표현되었으며, 니체의 철학은 인간의 근원적 불안과 허무의 심연이 일상적 현실 저편에 실존함을 어렴풋하게나마 말해주었다.

 

리얼리즘이 생의 유기적 과정을 무조건 믿고 들어가는 긍정적 태도라고 할 것 같으면, 허버트 리드의 말처럼 "추상주의는 허무의 심연에 직면한 인간의 반항이요, 유기적 원리를 거부하면서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인간의 창조의 자유를 긍정하는 바 불안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 배후에 이러한 사상적 연관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토스토예프스키나 니체가 추상주의에 직결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19 세기의 인상파 화가들이 인간 정신을 단순하게 시각으로 환원시켜 현실을 빛의 파동으로 해체해 버리는 데 만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상파의 계보를 이은 고호가 캔버스 위에다 광기를 칠하고, 고갱이 남태평양으로 색채를 찾아 도피하며, 세잔느로 하여금 "자연은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말하게 하고 "자연은 구체, 원추 및 원통으로서 취급되어야 한다"고 선언케 한 사태의 배후에는, 아무래도 일상적 객관을 예술가의 현실의 전부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새로운 인식이 깃들어 있다. 세잔느의 경우 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그의 신경 구조가 아니라 자신의 작품의 의도로써 자신의 불안과 고독이 본질적으로 설명되는 것"일 따름이다.

이제는 통설이 된 20 세기 미술의 계보에 따르면 세잔느에서(그의 의도와 관계 있든 없든)입체파 내지 추상주의가 생겼고, 고호에서 야수파 또는 표현파의 원류가 시작되고, 고갱이 장식적인 구성주의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에 대해 논한 자격이 없으나, 이러한 현대를 특색 짓는 가지가지 유파가 그 표면상의 어수선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의 경향으로 보아 뚜렷한 한 개의 공통 특성을 지닌다는 사실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19세기까지의 저 현대주의라 할 것이며, 그것은 곧 근대적 자아의 해체에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고전주의라든가 낭만주의, 또는 사실주의라는 유파적 개념을 시대의 주된 사조로 규정지어서 예술사의 흐름을 설명하는 일이 많다. 아울러, 현대 예술의 다양성의 바탕을 이루는, 기성 전통에 대한 반역을 주목할 만하다. 그 반발이 근대적 자아의 해체라는 정신 상황으로써 일부는 설명될 것이라는 점은 앞서 말한 바 있다. 또, 그와 관련하여 기존의 가치 체계에 대한 불신이라든가 나아가 낙천적 진보의 믿음에 대한 반발도 작용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20 세기에 들어와 그 정치, 경제적 추세 -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가장 큰 요소이다 - 와 이데올로기의 충돌을 내포한 험악한 정신의 기상도로 말미암아 한층 더 심각한 양상을 보여 주게 되었다. 이 혼란스러운 다양함 뒤에 숨어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3.

현대 예술의 정신적 바탕을 형성해 준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로서 우리는 프로이트의 심층 심리학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종래에도 예술가의 직관을 통하여 막연하게나마 파악된 바 있었던 인간 의식의 어렴풋한 분야가 이 정신 분석학적 방법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드러나게 되었을 때, 의학자나 심리학자 못지 않게 예술가에게도 그 끼친 바 영향은 심각하였다. 프로이트의 연구는 원래 임상 의학적인 것에서 출발하였지만, 억압된 인간 심리의 밑바닥을 일일이 헤쳐 가면서 거기서 이른바 '검열'에 걸려 억압된 본능적 욕망을 밝혀 냄으로써 19 세기의 인간관에 근본적 수정을 가하기에 이르렀다. 정신 분석학이 무의식 세계의 이름 지을 수 없는 불안과 원망, 욕구와 갈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게 됨으로써, 인간의 내적 심층에 대한 새롭고 넓은 시야가 열렸다.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괴물의 정체가 더 잘 설명될 만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더욱 더 신비스럽기 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세계가 눈 앞에 열림으로써 예술가는 자신의 감수성과 통찰력을 구사하여 프로이트가 발견한 마음의 비밀을 자기들 나름으로 또한 찾아 내고 표현하기에 이른 것이다. 1차 대전 후의 새로운 심리주의 작가들은 이 방법을 빌려서 이른바 '의식의 흐름'의 문학을 만들어 냈다. 즉, 현실을 정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유동적인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종래의 평면적인 묘사 방법을 탈피하기에 이른 것 이다.

문학은 물론 미술의 영역에까지 가장 현대적인 주장의 하나로 지목될 수 있는 초현실주의도 심층 심리학의 영향 아래 생겨났다. 그것이 주장한 바는 조화나 비례ㆍ리듬 같은 19세기적 '밝은 세계'의 미학 원리를 배제하고, 그 대신 무의식 세계에서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갖가지 형상을 통하여 자연스러운 미적 효과를 얻자는 데 있다. 초현실주의는 모든 수단을 다하여 사고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나타내고자 한다. 이성에 의한 일체의 통제와 심미적 윤리성과 선입견 없이 생각하고, 그 생각한 것을 적을 따름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현실적 의식의 구속을 벗어나 자유 연상, 또는 꿈이나 환상 같은 비합리성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초현실적 차원으로 대상을 옮기는 것이 그들의 방법이다. 그러니까 현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길로 흐르는 것은 필연이며, 기존의 가치를 증오와 모멸의 대상으로밖에는 보지 않게 된다.

4.

현대의 기계 문명적 성격을 사람들은 자주 거론하고, 그것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메마름과 비생명성을 말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사회가 조직화됨으로써 인간의 능력이 다만 그 거대한 조직의 미미한 부분품 기능밖에는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인식으로 말미암아, 개인의 생존의 근거가 희박해지고 개성의 가치가 그 값을 차츰 잃어 가고 있다고 느낀다. 이런 경우, 사람은 자신의 생활 감정을 표출하는 데 몇 가지 특이한 표현 방식을 취하게 된다. 앞에 설명한 초현실주의적 방향이 그 하나이거니와, 그와는 반대로 그러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길로서 추상에의 충동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19세기 이전에 나타난 바와 같이, 넓은 뜻의 자연주의는 자연의 충실한 묘사에만 그치지 않고, 자연이건 이간이건 대상에 몰입함으로써 그것과 융합하는 상태, 다시 말하자면 대상이 아니라 '나'와 공존하는 동질의 것으로서, 또는 생명 있는 것으로서 체험되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러한 감정 이입의 미학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생의 유기적 과정을 믿고 들어가는' 경우에만 성립되는 것으로서, 현대처럼 외부적 현실이 인간의 내적 불안의 중요한 원천이 되어 있는 시대에는 그 기반을 상실하게 된다. 그럴 때 인간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은 볼링거의 주장에 따를 것 같으면, 단순한 선과 순수하게 기하학적인 합법칙성을 가진 형식뿐이다. 자아의 해체와 더불어 외부적 현실이 끝없이 변화하고 그 가치 체계가 흔들릴 때, 대상을 확고 부동한 것으로 순화하고자 하는 '추상에의 충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자연은 구체ㆍ원추 및 원통으로서 취급되어야 한다"는 세잔느의 말부터가 입체파를 경유한 추상 미술의 선구적 예언이 되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과의 유기적 관련아래 인간적으로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으로 그 절대적인 요소를 분해하여 새로운 공간을 구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현대 예술의 중요한 일면을 이룬다. 음악 분야의 무조 음악, 이른바 12음 기법 주장 가운데서도 이러한 추상에의 충동을 다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학에서의 '앙띠로망'이니 연극에서의 '앙띠 떼아뜨르'이니 하는 운동 같은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방법에서 요사나 전달을 위한 언어 또는 동작의 유기성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려는 비인간적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기계 문명 속에서 나타난 예술적 모색은 기능주의라는 형태도 낳았다. 인격적 의미의 개인 대 개인의 의사 소통이 불가능하게 되고, 무차별적인 대중의 권위가 절대적인 사회 속에서 개인은 차츰 고립화되고 개인의 주체적 표현은 소수자만을 위한 난해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현대의 기계화 상황에 직면한 객관적 조건을 충분히 만들겠다는 예술의 형태가 곧 기능주의이다. 특히 조형 예술에서 발달된 이 방향은 형태미라는 점에서 추상파와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으나, 형태가 기능에 따른다는 기본적 원리에서는 명백하게 유용성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있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일체의 장식을 없애고 단순 명쾌한 미를 지향하는 이 현대의 미학은 근대 예술이 추구해 온 개인적 창조(사회적 기능을 무시해 버린)나 정감주의를 거부하는 의미에서 매우 현대적이라 할 수 있다. 건축ㆍ공에 등 실용적 예술은 물론, 무대 미술 같은 데까지 그 영향을 뻗친 이 원리도 또한 주체성을 잃은 근대적 자아의 대중 요법을 제시했다는 의미에서 기억해 둘 만하다.

5.

'현대의 징후'를 중심으로 자아의 해체, 현실의 불안 내지 혼돈을 표현한 20세기 전반기의 예술 현상들을 몇 가지 찾아보았다. 프랑스에서 발생한 20세기 초의 야수파나 독일에서 일어난 1차 대전 후의 표현파나, 또는 신즉물주의에 이르기까지 불안의 양상이 매체와 방법을 달리하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는데, 거기에 담긴 내면적이며 어두운 정열이 지성에의 반역, 비합리주의적 경향을 나타내고 있었다는 사실은 앞서 말한 바 있다. 합리주의 이성에 대한 그러한 반발이 또 하나의 표현을 얻은 것이 곧 '원시에의 동경'이다.

서구 문화가 스스로 막다른 골목에 들어갔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 또 하나의 뚜렷한 현대적 징후임은 여기서 새삼스레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나, 현대 예술이 합리성의 극한을 추구하고 난 다음에 느낀 해체 의식에서 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하여 발견한 것에 토인 문화가 있음은 언급할 필요가 있다. 고갱이 유럽을 탈출하여 타이티의 자연에서 강렬한 색채를 찾아냈다는 그 영향이 현대 미술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1905년의 파리의 야수파 전람회에서 이미 나타났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아프리카 흑인의 가면 조각이 피카소의 관심을 끌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재래의 것에 반발하는 그들의 막연한 욕구가 이 색다르고 미개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예술 가운데에서 새로운 미학 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완전한 조형적 자유를 가지고 대상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만을 최대한으로 드러나게 표현하는 흑인 조각은 그 비서구적인 대담한 왜곡으로 말미암아 일찍이 보지 못한 생명력의 리듬을 살려 놓았다. 자질구레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 그 조형 의식은 합리성의 장벽을 깨뜨리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지성에 배반당한 현대의 정신에겐 인간적 정열의 부활을 위한 알맞은 계기가 되었다.

음악에서 예를 든다 하더라도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가운데 표현된 강렬한 리듬, 불협화음의 의식적인 사용 등은 원시에의 동경과 무관할 수 없다. 특히, 미국에서 발생한 재즈 음악은 정통적으로 미국 흑인의 원시적 무용의 리듬을 바탕으로 하여 본능적 정열을 대담한 표현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의 전부는 아니나, 그 일면을 단적으로 나타내어 주고 있음은 여기서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다.

현대 예술이 다채롭다는 사실로 해서 그 장래가 풍요로울 것이라는 단정은 나올 수 없다. 더구나 예술을 지탱하는 사상적 기둥이 19세기적인 것의 안티테제로서, 지금까지 나타난 바로 보아서는 대체로 부정적 경향을 취하고 있는 마당에 그 영속적 생명을 의미하거나, 정신의 회복 가망조차 없는 쇠약을 나타내는 때가 아니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시대인 만큼 상상력의 날개 짓이 어느 다른 시대보다도 더 활발하리라는 것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현대'라는 괴물과 대결하여야 하기 때문에 현대 예술은 그 모든 시행 착오에도 불구하고 결코 빈약할 수 없는 것이다.


여석기/경성 제대(서울대 전신) 영문과를 졸업, 미국 미주리 주립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연구했다. 고려대 명예 교수이며 종합 유선 방송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연극의 현실』,『동서 연극의 비교 연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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