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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 아래 탈을 쓰고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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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 아래 탈을 쓰고

 

서 연 호

 

탈의 전승

15세기 후반에 씌여진 이육의 『청파극담』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떤 사람이 탈을 좋아하는데 어느날 그 집에 병이 전염되자 무당이 말하기를 '탈 때문이다'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즉시 탈을 들판에 버렸더니 과연 병이 나았다. 몇 달이 지난 후 가족중의 한사람이 마침 밭가를 지나다가 전에 버린 탈 위에 피어난 버섯을 잘못 알아보고 따다 먹었다. 한 송이를 먼저 먹자 갑자기 웃으며 일어나 춤을 추었는데 마치 미치광이 같았지만 모두 우연으로 여기고 그다지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에 먹은 사람도 모두가 웃으며 일어나 앞 사람과 같이 춤을 추었다. 춤이 그친 후 물으니 "처음 먹자마자 흥이 절로 나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였다."고 대답하였다.

이 이야기는 탈의 민간 어원설을 잘 함축하고 있다. 탈은 ① 가면, ② 병환, ③ 사고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①은 ②,③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또한 ①을 응용하여 ②,③을 물리치고 해결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썩은 나무탈 위에 돋아난 버섯을 따다 먹고 저절로 흥이 나서 신명나게 춤을 추엇다는 것은 탈이 지닌 예능성을 시사해 준다. ②,③을 퇴치 해결하기 위하여 ①을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는 한편, ①을 응용하여 집단적인 예능을 만들어 전승시켜 온 내력을 설명해 준다.

최근 동해안의 바닷가인 양양군의 구석기 시대 주거지에서 흙으로 빚은 탈이 발굴된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어린아이의 손바닥 넓이만한 그 탈은 아마도 신앙 대상이나 부적으로 사용된 듯한데, 탕이 오래 전부터 한국인의 생활 가운데 자생되어 온 것을 입증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수렵 채집 시대에 탈이 사용되었음은 조개 무덤에서 발견된 조개 기면이나 현재에도 지방의 민속놀이에서 이따금 볼 수 있는 호랑이, 곰, 거북이, 소, 용 등의 동물 가면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농경 문화가 시작되고 계절의 순환에 따른 집단적인 제사와 축제 의식이 민속으로 정착되면서 탈에 관한 인식과 그 응용이 한층 확대되어 온 것은 그 동안에 진척된 고고학적 발굴과 현재에도 상아 있는 각 지역의 온갖 의식과 놀이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분단 때문에 지금은 어떤지 확인할 수 없으나 1930년대 말기까지 개성의 덕물산 최영 장군 사당에는 4개의 나무 가면이 걸려있었다. 전국 무당들의 성스러운 순례지인 덕물산의 탈은 신앙 가면(신성 가면) 전승의 훌륭한 본보기임이 분명하다. 예능 가면은 아직 여러 지역에 살아 있는 축제문화로 전승되고 있어 실증을 드는 데 어려움이 없다.

역사적인 시점에서 보자면 6세기 중엽에 이르러 탈의 전승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동안에 놀이 문화의 하나였던 탈놀이가 국가적인 공식 의례인 이른바「산대놀이」에 채용됨으로써 도시화, 양식화, 고급화의 계기를 맞게 되었다. 물론 다른 한 갈래의 탈놀이는 종전과 같이 농경 의식과 축제의 일부로서 전국에 전승되고 있었음에도 간과될 수 없다.

산대놀이는 산과 같이 높게 만든 가설 무대에서 베풀어졌는데, 연희자는 천한 신분의 광대였으나, 그 관객 중에는 왕과 귀족들이 포함되어 있어 자연히 예능의 고급화가 불가피하였다. 산대는 주로 궁정이나 국가적인 행사가 벌어지는 장소에 설치되었으며, 음악, 무용, 연극, 곡예, 민속놀이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레퍼토리를 공연하였다. 레퍼토리의 고급화, 양식화에는 때마침 수용된 불교 예능과 중국 연희의 영향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5세기 중엽부터 9세기 중엽 사이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고구려악과 백제의 기악은 탈놀이가 중심 레퍼토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들이 바로 산대놀이에 새로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 외래적인 연희들이다. 사자탈의 수용 역시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애초에 탈놀이는 기층 종교인 샤머니즘 내지는 잡다한 민간 신앙의 바탕 위에서 성립 전개되어 왔으나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복합적인 양상을 띄게 되었다. 신라의 팔관회는 산천 제신에게 제사드리는 향토적인 의식이요, 연등회는 사월 초파일의 불탄일을 중심으로 한 불교 의식이었으나, 두 의식에서 똑같이 산대놀이를 공연하게 됨으로써 놀이가 자연스럽게 이원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고려사회가 붕괴되고 유교이념을 주축으로 한 조선 시대가 성립되면서 종래의 불교 교훈극적인 탈놀이는 불교 비판극(풍자극)으로 전도되는 한편, 새로이 현실적인 삶을 토대로 한 극화 작업이 진척되었다. 오늘에 전승되는 대부분의 탈놀이들은 조선조 사회, 특히 그 서민 의식의 성장이 두드러진 후반기의 분위기를 반영해 주고 있다. 한참 높아져 가고 있던 현실주의적사고, 경쟁 관념의 확대 등을 익살스럽게 극화시켜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수도권을 비롯한 중소 도시의 탈놀이와 지방의 탈놀이들이 서로 유사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적인 영향을 서로 끼쳐 왔음을 보여준다. 조선조 시대 지방의 관아에서도 궁중 의식을 모방한 산대놀이, 혹은 그것들과 서민들의 집단적인 놀이 사이에 상호 관련성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탈의 종류와 분포

삼국 시대 이래 탈은 면(面) 또는 가면(假面)이라는 한자로 기록되어 왔다. 사자탈은 산예(攢猊)라 하였는데 산예, 주지는 사자의 다른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사자탈놀이는 사자무(舞), 사자기(伎)로 표기하였다. 사자탈의 경우처럼 흔히 동물 가면에서는 그 이름만으로 탈까지 지시하였다. 용(龍), 봉(鳳), 코끼리(象), 말(馬), 곰(熊), 호랑이(虎), 이리(狼) 등이 그러한 예다.

탈이 괴뢰(傀儡), 귀두(鬼頭), 귀뢰(鬼儡), 면구(面具), 가두(假頭), 대면(代面), 가수(假首), 로 표기된 사례가 많은데, 이는 탈이 지닌 허구적 인격성, 얼굴에 쓰는 도구, 귀신이나 병환을 퇴치하는 종교성, 그리고 탈을 쓰고 노는 연희자 등을 포괄시킨 의미다. 탈의 개념과 그것을 사용하여 연희하는 광대의 명칭이 동일하게 쓰여온 셈이다.

인형 역시 탈의 명칭과 같이 쓰였으며 탈의 일종으로 여겨져 왔다. 인형과 같은 뜻으로 '꼭두'가 전승되어 왔는데, 몽고어의 '고독', 중국어의 '곡독' 등에서 유래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고독'은 신성한 것, 혹은 그런 사람을 뜻하는 어원이며 '곡독'은 인형 혹은 인형사를 지칭한다고 한다. 한국의 꼭두 역시 이상과 같은 개념을 모두 내포하고 있으며 넓게는 탈의 일종으로 인식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고분에서 출토되는 흙인형이나 돌인형, 나무로 깍은 인형이나 가면, 풀이나 짚으로 엮은 인형(제웅) 역시 모두 탈(괴뢰)의 일종으로 취급되었다. 일찍부터 탈의 재료로 바가지가 이용되어 온 까닭에 탈바가지, 탈박이 혼용되었으며 때로는 바가지(박)만으로 탈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탈의 종류는 재료, 형태, 상징, 역할, 시대, 지역별로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오늘날 탈이나 탈놀이가 포함된 연희가 여러 지역에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지난 시대에 왕성하던 탈문화의 모습을 미루어 볼 수 있다. 먼저 연극으로서의 탈놀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탈놀이를 산대 탈놀이라 한다. 양주와 송파에 전승되고 있으나 예전에는 녹번리, 애오개, 노량진, 퇴계원, 구파발, 파주, 포천, 등촌(김포) 등지에서 탈패가 있었다.

황해도 지역에서는 탈놀이를 탈춤이라 부른다. 6.25때 월남한 연희자들이 재건한 봉산, 강령, 은율 탈춤 등이 전승되고 있다. 예전에는 동쪽 지대인 기린, 서흥, 평산, 신계, 금천, 수안, 북쪽지대인 황주 서쪽지대인 안악, 재령, 신천, 송화 그리고 남쪽지대인 옹진, 연백, 해주 등지에도 탈패가 있었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 지역의 탈놀이를 오광대 탈놀이라 하고 동쪽지역의 탈놀이를 야유(들놀음)라 부른다. 고성, 통영, 가산 오광대와 동래, 수영 야유등이 전승하고 있으나 예전에는 율지, 신반, 의령, 산청, 영산, 무안, 진동, 진주, 김해, 창원, 마산, 함안, 부산진, 거제, 도동(진주), 서구리(사철), 남구리(사철) 등지에도 탈패가 있었다. 안동의 하회는 별신굿 탈놀이가 전승되었다.

강원도의 강릉과 회양, 평안 북도의 용천과 철산 , 함경 남도의 원산•고원, 문천, 안변, 흥원, 전라 남도의 구례 등지에도 탈놀이가 전승되었다. 유랑 연희패인 남사당은 덧뵈기라는 탈놀이도 공연하였다.

인형극인 꼭두각시 놀음은 남사당과 같은 유랑 연희패들이 전문적으로 공연하였으나 경기도의 고양, 이천, 용인, 장단, 개풍, 충북의 영동, 음성, 단양, 평남의 용강, 함북의 종성 등지에도 인형놀이가 전승되었다.

이상과 같은 연극적인 탈놀이 이외에도 민속놀이, 특히 농악의 잡겈이나 사자놀이 기타 동물놀이에 탈이 폭넓게 활용되고 무당의 굿놀이에도 탈이 차용되어 왔다.

탈의 재료는 전통적으로 나무, 종이, 바가지 등이 이용되어 왔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나무탈과 산대탈은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종이탈로는 봉산 것이, 바가지 탈로는 양주의 것이 특히 초형이나 색감에서 뛰어나다. 오늘날의 각 지역 대부분의 탈은 바가지로 만들어지고 있다. 남쪽 지방에서는 동래의 말뚝이탈, 북쪽 지방에서는 북청의 사자탈이 유명하다.

연희자와 극중 역할

탈놀이의 전반적인 특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여겨지는 연극적인 탈놀이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한다.

연희자는 관중의 한 사람으로 놀다가 관중 속으로 퇴장한다. 연희자들은 언제나 자신이 남의 탈을 쓰고 있고, 자신도 탈판에서 한 바탕 놀고 구경도 하기 위해 나왔다는 것을 강조 함으로써, 자신의 극중 역할을 이화(異化)시킨다.

이러한 끊임없는 이화 작용을 통해 연희자는 항시 관중과의 친화력을 유지한다. 관중들이 좋아하는 인물인 말뚝이나 취발이 같은 역할을 할 때는 자신과 극중 역할을 적극적으로 동화(同化)시킴으로써 관중과의 친화력을 확장하고, 관중들이 싫어하는 노장이나 양반의 역 할을 할 때에는 자신과 극중 역할을 적극적으로 이화시킴으로써 관중들의 비판력을 증대시킨다.탈놀이는 특정한 작가가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집단으로 작품이 형성되고 집단적으로 계승된다. 물론 어떤 재능있는 개인의 지배적인 창의력을 가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개인의 창의력은 다수의 창의력과 개입으로 인해 개성적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하나의 공동적인 놀이의 창출을 위해서 연희자와 관중은 지속적으로 상호 유발적인 기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정형(定型)은 즉흥에 의해 무너지고 즉흥은 다시 정형을 형성시키며, 끊임없이 반한과 도착을 거듭하면서 현장을 통해 전승 되어 간다.

탈놀이에 등장하는 극중 열할(사람이나 동물)은 우선 그 수효가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잡다하게 망라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여러 가지 동물들도 인격화시켜 활용한다. 그들은 대부분 고양된 인격이나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이기보다는 실수투성이의 미숙한 보통 사람들이다.

행동은 자발적이고 즉흥적, 직관적이어서 차분히 심사 숙고하는 데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이 닥치는 대로 활달하게 즉각적으로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순각적인 느낌이나 영감에 따라 일어나는 언행은 직선적이거나 수미 일관성을 가지지 않고, 도약적이고 분산적이며 예측하기 어려운 감정 폭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탈놀이에서는 어떤 일관된 성격이나 의도적인 이념 같은 것을 찾아 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체적인 의미의 형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흔히 탈놀이에 나타난 연극적인 주제 의식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지적된다.

즉, 첫째로 종교적, 초월적 관념의 허위성과 허망함을 비판하면서 현실적 사고의 중요성을 내세운다. 둘째로, 지배 계급의 신분적 특권과 권위주위를 비판하고, 그들의 무능, 무기력, 탈선을 공격하고 풍자함으로써 만민 평등의 정당성을 내세운다. 셋째로, 부부의 갈등을 통해서 여권에 대한 남성의 부당한 횡포를 고발하고 인권에 대한 사회적 모순을 비판한다. 아울러 젊은 여성 (첩)의 출산을 통해서 다산성을 기원하는 종교적 기원을 드러내기도 한다. 넷째로, 탈놀이에는 잡귀 · 재앙을 물리치는 의식성이 강하게 반영되고 있고, 꼭두가시 놀음에는 사회에 대한 서민들의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의지가 강하게 표현되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탈놀이의 놀이판(놀이 마당)으로는 일상적 공간이 그대로 활용된다. 그러나 일단 탈놀이의 공간으로 전화되면 일상적인 공간과의 사이에 연속성이 단절되면서 공간의 의미와 위계가 달라지게 된다. 일상적인 공간과 연희적인 공간 사이에는 비례 관계가 성립도지 않을뿐 아니라 극적인 표현 양식에 필요한 새로운 공간 개념이 설정된다.

탈놀이에서 관중들은 놀이판을 중심으로 둥글게 들러앉거나 서게 된다. 밤에 공연할 때는 땅바닥에 모닥불을 피우거나 기름 방망이에 불을 붙여 땅에서 가까운 곳으로부터 빛을 위로 투사시킨다. 연희자들은 가면을 쓴 얼굴에 빛을 받기 위해서 15도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연희하게 된다. 탈의 표면에 불빛이 어른거릴 때 탈의 표정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관중들에게 보이게 되고, 표정과 빛이 자아내는 다양한 변화는 탈이 지닌 복합적인 기능과 아름다움을 충분히 나타내 주게 된다.

탈놀이의 놀이판은 중심을 향해서 시각을 모으기 쉬운 장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주위가 모두 개방되어 있어 분위기를 자유 분방하게 유지시키는 이점도 지닌다. 이러한 조건은 극과 관중의 심리적 거리를 쉽게 좁히고 필요한 경우 쉽게 넓히게 하는 작용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연희의 전체적 효과를 기여하게 된다.

무대 장치가 없기 때문에 극중 장소를 나타내려면 대사나 노래, 몸짓 등을 이용한다. 따라서 장면을 자유로히 전환될 수 있다. 탈놀이에서 자주 일어나는 두 장면의 동시적진행은 바로 이러한 공간의 활용성 때문이다. 아울러 탈놀이에서 관중의 참여가 적극성을 띠게 되는 것도 이러한 공간적인 개방성에서 비롯된다.

 

인형극의 공간을 흔히 공중 무대, 평면 무대라고 부른다. 인형이 움직이는 공간이 지상으로부터 떨어진 공중이고, 인형은 관중들에세 앞면만을 보이면서 평면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러한 개념이 생기게 되었다. 3미터 안팎의 평방에 네 기둥을 세우고 사방을 모두 포장의 면을 직사각형으로 뚫어 그 뚫린 부분을 통해 인형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게 해준다.

뚫린 직사각형의 넓이는 보통 가로 2미터 50센티, 세로 70센티 정도이고, 지상으로부터는 1미터 20센티 정도의 높이에 위치하게 된다. 공간은 공연 장소의 사정에 따라 지상에서 더 높은 곳에 설치되기도 한다. 인형들은 무대면이 되는 공간을 통하여 상반신만 포장 위로 내놓고 관중들에게 보여진다. 밤 공연에는 조명이 필요하다. 탈놀이의 경우와 같이 무대 장치라고는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극중 장소의 전환은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형극의 공간은 이 같은 공중 무대, 평면 무대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무대면의 오른편이나 왼편에 면과 약간 비스듬히 자리를 깔고 산받이와 악사들이 앉는다. 산받이는 인형과 이야기나 노래를 주고받는 연희자이며 악사는 반주 음악을 연주한다. 산받이와 악사들은 관중석과 거의 분리되지 않은 위치에서 무대면을 보고 앉아 놀이를 진행시킨다.

간받이와 악사들도 꼭두가시 놀음을 이루는 일종의 보조적 요소로 파악한다면 그들이 자리잡고 있는 장소까지를 포함해서 인형극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탈놀이나 인형극의 극중 시간 역시 현실계의 일상적인 시간과 구별된다. 그것은 일상과 연속적인 시간이 아니라 전혀 '다른 시간'이며 창조적인 연극으로서의 시간이다. 따라서 공연 시간과 극중 시간 사이에는 아무런 비례 관계도 없다. 공연은 장소적 여건에 따라, 공연장의 분위기에 따라, 연희자들의 능력에 따라 연장될 수도 있고 축소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극중 장면의 시간이 비례적으로 축소 연장되는 것은 아니고 극중 시간은 작품의 내적 구조 원리에 따라 전혀 새롭게 창출된다.

예전에 탈놀이는 보통 초저녁에 시작되어 자정 무렵까지 계속되는 것이 통례였고, 이렇게 하기를 2~3일 지속한 후에야 모든 장면이 완결되었다. 오늘날의 공연에 비해 그 만큼 극중 시간이 길었던 셈이다.

탈놀이의 구성과 진행

봉산탈춤은 사상좌 팔목중(목중춤, 법고놀이), 사당, 노장(노장춤, 신장수춤, 취발이춤), 사자, 양반, 미얄 등 7과장으로 구성된다. 꼭두각시 놀음은 박 첨지 유람, 피조리, 꼭두각시, 이시미, 매 사냥, 상여, 절 짓기 등 7과장으로 구성된다.

과장(科場)이란 하나하나의 장면을 일컫는 용어이다. 과장 대신에 마당 혹은 거리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과장을 더 세분한 부분을 경(景), 마당을 더 세분한 부분을 거리라고 쓰기도 한다. 그러나 탈놀이 과장이 현대극의 막(幕)으로, 경이 현대극의 장(場)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양 연극의 플롯과 같은 구성적 의미는 없다.

전 작품은 몇 개의 과장으로 구성되나 각 과장은 서로 긴밀한 연결성이 없으며 원칙적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과장을 이루는 경(거리)들도 독립적일 수 있다. 다만 소재나, 주제, 혹은 등장 인물에서 서로 연관성을 지닐 뿐이다. 과장이나 경을 이루는 단락들도 독립적일 수 있고, 각 단락도 전후 관계나 인과 관계를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꼭두각시 놀이의 경우, 박 첨지는 등장 인물이면서도 작품 전편의 해설자로 나오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이 인과 관계로 연결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각 과장은 독립된 행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흔히 탈놀이의 구성을 일러 플롯에 상대되는 의미로 에피소드적 구성, 혹은 개방적 구성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개방적인 구성의 특징은 부분 부분의 상황을 적극화시키고 얼핏 산만하게 보이는 행위들의 의미나 상징성을 강화시켜 결과적으로 작품 목표나 의미를 찾는 데에 관중들도 함께 적극적으로 행동하게(생각하게) 하는 효과를 동반한다.

탈놀이나 인형극은 극의 진행이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악사들은 진행을 위한 보조자로서 극중 장면에 개입하거나 때로는 관중의 입장으로 돌아가 극중장면을 비판하기도 한다. 등장 인물에게 질문, 반문을 던지고 때로는 행동을 촉구함으로써 사건의 전개 및 의미의 해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는 한편, 분리된 장면들을 중개하고 무대면에 나타나지 않은 사실을 보완함으로써 극중 현실의 경험적 연속성과 완결성이 가능하도록 한다. 특히 꼭두각시에서 산받이의 이러한 역할은 주목할 만하다.

공간의 평면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탈놀이에서 얼굴과 탈의 비례 관계, 춤의 다양화, 의상의 배색, 등퇴장의 변화, 공간의 대칭적 이용 등이 적용된다. 인형극에서는 무대면과 인형 크기의 비례관계, 시각의 공통화를 통한 공간의 역동화, 제한된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한 선택적 제시와 기습 효과, 공간의 상대화와 운동의 상대화 등의 방법이 이용된다.

연희자가 관중에게 말을 걸어 자기의 생각을 직접 전달할 뿐 아니라 자신도 관중과 마찬가지로 '극을 구경하러 나왔다'고 함으로써 극의 내용과 관중의 경헙 세계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심리적 장벽을 제거하고 지나친 극적 환상의 성립을 차단한다. 꼭두각시놀음은 시작에서부터 극중 장소와 공연 장소를 일치시킴으로써 놀이의 임의성과 관중의 개입에 의한 가변성을 미리 개방해 놓는다. 그만큼 현장성을 중시한다.

민속극에서 무용과 음악적 요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능으로 지적된다. 흔히 탈놀이는 탈춤이라고 통칭될 만큼 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춤을 시각적 기능이라고 한다면 음악은 청각적 기능인데, 이러한 기능은 극적인 표현을 성취하는 빼놓을 수 없는 매체로 작용한다. 문학적인 기능은 실제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아울러 문학적인 의미와 가무적인 표현과는 염격히 분리될 수도 없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탈놀이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연희적인 연행 그 자체인데, 이러한 순수한 연행을 위해서 춤과 음악은 자주 문학적 기능을 초월하여 폭넓은 표현 매체로 활용된다.


서연호/ 고려대학교 교수이며, 저서로는 '한국의 탈놀이', '동시대적 삶과 연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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