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한문 사자성어 사전 - 카, 타, 파

by 처사21
728x90
반응형

쾌도난마(快刀亂痲) 어지러운 일을 시원스럽게 처리하는 것.

 

타산지석(他山之石) 다른 산에서 난 나쁜 돌도 자기의 구슬을 가는데에 소용이 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일지라도 자기의 지덕을 연마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出典》'詩經' 小雅篇 이 말은《詩經》'小雅'의 <학의 움음(鶴鳴)>에 실려 있다.

학이 높은 언덕에서 울거늘, 그 소리는 온 들에 들리는도다.

물고기가 잠겨 연못에 있다가, 혹은 물가로 나와 노는도다.

저 동산에는 즐겁게도, 이에 심어놓은 박달나무가 있으며,

그 아래에 오직 개암나무가 있도다.

남의 산의 돌도, 가히 써 숫돌로 삼을 수 있도다.

학이 높은 언덕에서 울거늘, 그 소리 하늘에 들리는도다.

물고기가 물가에 있다가, 혹은 잠기어 연못에 있도다.

저 동산에는 즐겁게도, 이에 심어놓은 박달나무가 있으며,

그 아래에는 오직 닥나무가 있도다.

남의 산의 돌에, 가히 써 구슬을 갈 수 있도다.

鶴嗚于九皐 聲聞于野

魚潛在淵 或在于渚

樂彼之園 愛有樹檀

其下維?

他山之石 可以爲錯

鶴嗚于九皐 聲聞于天

魚在于渚 或潛在淵

樂彼之園 爰有樹檀

其下維穀

他山之石 可以攻玉

【유사어】절차탁마(切磋琢磨), 공옥이석(攻玉以石)

즐거운 저 동산에는 [樂彼之園(낙피지원)]

박달나무 심겨 있고 [爰有樹檀(원유수단)]

그 밑에는 닥나무 있네 [其下維穀(기하유곡)]

다른 산의 돌이라도 [他山之石(타산지석)]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네 [가이공옥(可以攻玉)]

[주] '타산지석 가이공옥(他山之石 可以攻玉)'-돌[石]을 소인(小人)에 비유하고 옥(玉)을 군자(君子)에 비유하여 군자도 소인에 의해 수양과 학덕을 쌓아 나갈 수 있음을 이르는 말.

타상하설(他尙何說) 한가지 일을 보면 다른 일도 알 수 있다는 말

 

타인한수(他人 睡) 다른 사람의 코고는 소리.

 

탁상공론(卓上空論) 탁자 위에서만 펼치는 헛된 논설. 실현성이 없는 허황된 이론을 일컫는다.

 

탁생(托生) 남에게 의탁하여 생활함

 

탈토지세(脫兎之勢) 토끼가 울에서 뛰어나오듯 신속한 기세를 말한다.

 

탐관오리(貪官汚吏) 탐욕이 많고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관리.

 

탐어여악(耽於女樂) 여자의 풍류놀이를 탐하다.

 

태강즉절(太剛則折)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쉽다.

 

태산북두(泰山北斗) ① 태산과 북두성. ② 세상 사람으로부터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

 

《出典》'唐書' 韓愈傳贊 唐나라 때 4대 시인(四大詩人)의 한 사람으로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굴지의 명문장가로 꼽혔던 한유(韓愈 : 字는 退之)는 768년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서 태어났다. 그는 9대 황제인 덕종(德宗 : 779-805) 때 25세의 나이로 진사(進士) 시험에 급제한 뒤 이부상서(吏部尙書)까지 되었으나 황제가 관여하는 불사(佛事)를 극간(極諫)하다가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천성이 강직했던 한유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좌천, 파직(罷職) 당했다가 다시 등용되곤 했는데 만년에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역임한 뒤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순탄치 못했던 그의 벼슬살이와는 달리 한유는 '한유(韓柳)'로 불렸을 정도로 절친한 벗인 유종원(柳宗元 : 字는 子厚)과 함께 고문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제창하는 등 학문에 힘썼다. 그 결과 후학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에 대해《唐書》'韓愈傳'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당나라가 흥성한 이래 한유는 육경(六經)을 가지고 여러 학저들의 스승이 되었다. 한유가 죽은 뒤 그의 학문은 더욱 흥성했으며, 그래서 학자들은 한유를 '泰山北斗'를 우러러보듯 존경했다. 自愈沒 其言大行 學者仰之 如泰山北斗云. 【준 말】태두(泰斗), 산두(山斗) 【동의어】여태산북두(如泰山北斗)

태산압란(泰山壓卵) 태산처럼 무거운 것으로 달걀을 누른다. 쉬운 일을 뜻한다.

 

태평연월(太平烟月) 세상이 평화롭고 안락한 시대.

 

토붕와해(土崩瓦解)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진다는 뜻으로, 어떤 조직이나 사물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버림을 이르는 말.

 

토사구팽(兎死狗烹) '교토사 주구팽(狡兎死走狗烹)'의 준말로, 토끼가 죽고 나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가 없게 되어 삶아 먹히게 된다는 뜻. 즉, '필요한 때는 쓰고 필요할 때는 버리는 야박한 세정(世情)'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出典》'史記' 淮陰侯列傳 十八史略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를 멸하고 한(漢)나라의 고조(高祖)가 된 유방(劉邦)은 소하(蕭何) 장량(張良)과 더불어 한나라의 창업 삼걸(創業三傑) 중 한 사람인 한신(韓信)을 초왕(楚王)에 책봉했다.(BC 200) 그런데 이듬해, 항우의 맹장(猛將)이었던 종리매(鍾離昧)가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고조(高祖)는 지난날 종리매에게 고전했던 악몽이 되살아나 크게 노했다. 그래서 한신에게 당장 압송하라고 명했으나 종리매와 오랜 친구인 한신은 고조의 명을 어 기고 오히려 그를 숨겨 주었다. 그러자 고조(高祖)에게 '한신은 반심(反心)을 품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진노한 고조는 참모 진평(陳平)의 헌책(獻策)에 따라 제후들에게 이렇게 명했다. "모든 제후(諸侯)들은 초(楚) 땅의 진(陳:河南省 內)에서 대기하다가 운몽호(雲夢湖)로 유행(遊幸)하는 짐을 따르도록 하라." 한신이 나오면 진(陳)에서 포박하고, 만약 나오지 않으면 진(陳)에 집결한 다른 제후들의 군사로 한신을 주살(誅殺)할 계획이었다. 고조의 명을 받자 한신은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래서 '아예 반기(反旗)를 들까'하고 생각도 해 보았지만 '죄가 없는 이상 별일 없을 것'으로 믿고서 순순히 고조를 배알하기로 했다. 그러나 불안이 싹 가신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신은 자결한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고조를 배알(拜謁)했다. 그러나 역적으로 포박 당하자 한신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 있는 신하는 버림을 받는다고 하더니 한(漢)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한 내가, 이번에는 고조의 손에 죽게 되는구나. 果若人言 狡兎死 良狗烹 高鳥盡 良弓藏 敵國破 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 고조는 한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회음후(淮陰侯)로 좌천시킨 뒤 주거를 도읍인 장안(長安)으로 제한했다. [주]《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고조(高鳥)가 비조(飛鳥)로, 양구(良狗)가 주구(走狗)로 나와 있으나 뜻은 같음. 【원 말】교토사 양구팽(狡兎死 良狗烹) 【도의어】야수진 엽구팽(野獸盡 獵狗烹)

 

 

토사호비(兎死狐悲) 토끼가 죽으니 여우가 슬퍼한다. 남의 처지를 보고 자기 신세를 헤아려 동류의 슬픔을 서러워 한다는 뜻.

 

토영삼굴(兎營三窟) 토끼는 숨을 수 있는 굴을 세 개는 마련해놓는다.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미리 몇 가지 술책을 마련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토적성산(土積成山) 한 줌 흙이 쌓여 산을 이룬다는 뜻으로, 적은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일컫는 말

 

토진간담(吐盡肝膽) 간과 쓸개를 모두 내뱉음. 솔직한 심정을 속임없이 모두 말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토포악발(吐哺握發) 뱉어도 보고 먹어도 보고 잡아도 보고 보내도 본다. 현사(賢士)를 구하기 위해 애쓴다는 말

토포착발(吐哺捉髮) 현자를 우대한다.

 

퇴고(推敲)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다듬고 고치는 일 당(唐)나라 시인(詩人) 가도(賈島)가 말 위에서 <승퇴월하문(僧推月下門)>의 싯귀가 떠올라 한유( 韓愈)에게 물어 <퇴(推);밀다>를 <고(敲);두드리다>로 고친 데에서 유래.

 

推:밀 퇴·옮을 추. 敲:두드릴 고 [출전]《唐詩紀事》〈卷四十 題李凝幽居〉민다, 두드린다는 뜻으로, 시문(詩文)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침을 이르는 말. 당나라 때의 시인 가도[賈島:자는 낭선(浪仙),777∼841]가 어느 날, 말을 타고 가면서〈이응의 유거에 제함[題李凝幽居]〉이라는 시를 짓기 시작했다.

이웃이 드물어 한거하고 [閑居隣竝少(한거린병소)]

풀숲 오솔길은 황원에 통하네 [草徑入荒園(추경입황원)]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자고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그런데 마지막 구절인 '중은 달 아래 문을……'에서 '민다[推]'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 '두드린다[敲]'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 여기서 그만 딱 막혀 버렸다. 그래서 가도는 '민다''두드린다'는 이 두 낱말만 정신없이 되뇌며 가던 중 타고 있는 말이 마주 오던 고관의 행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무례한 놈! 뭣하는 놈이냐?" "당장 말에서 내려오지 못할까!" "이 행차가 뉘 행찬 줄 알기나 하느냐?" 네댓 명의 병졸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으며 가도를 말에서 끌어내려 행차의 주인공인 고관 앞으로 끌고 갔다. 그 고관은 당대(唐代)의 대문장가인 한유(韓愈)로, 당시 그의 벼슬은 경조윤(京兆尹:도읍을 다스리는 으뜸 벼슬)이었다. 한유 앞에 끌려온 가도는 먼저 길을 비키지 못한 까닭을 솔직히 말하고 사죄했다. 그러자 한유는 노여워하는 기색도 없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역시 '민다'는 '퇴(推)'보다 '두드린다'는 '고(敲)'가 좋겠네." 이를 계기로 그후 이들은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다고 한다. [주] 가도 : 당나라의 시인. 하북성 범양(河北省范陽) 사람. 자는 낭선(浪仙). 일찍이 불문(佛門)에 들어감. 법명(法名)은 무본(無本). 한유(韓愈)와의 사귐을 계기로 환속(還俗)한 후 시작(詩作)에 전념함.

투서기기(投鼠忌器.) 쥐에게 던지려고 해도 그릇을 깨칠까 꺼린다. 밉긴 하지만 큰 일을 그르칠까 염려되어 제거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

 

투저의(投 疑)

베틀의 북을 던지고 의심함. 曾參의 어머니가 아들을 굳게 믿어 의심하지 않았는데, 베를 짜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와서 증참이 사람을 죽였다고 고함을 쳤으나 곧이 듣지 않았다. 세번째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하니 결국 북을 던지고 뛰어나갔다는 고사. 여러번 말을 들으면 믿게 된다는 말.

 

투편단류(投鞭斷流) 채찍을 던져 강의 흐름을 막는다.

 

파경(破鏡) 부부 사이의 영원한 이별

 

파경중원(破鏡重圓) 반으로 잘라졌던 거울이 합쳐져 다시 둥그런 본 모습을 찾게됨. 살아서 이별한 부부가 다시 만나는 것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파과지년(破瓜之年) 여자의 나이 열여섯 살 초경이 있게 되는 나이

 

파기상접(破器相接) 깨어진 그릇 조각을 서로 다시 맞춘다. 즉 이미 그릇되어 다시 바로 잡을 수 없음.

 

파사현정(破邪顯正)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올바르게 바로잡음.

 

파죽지세(破竹之勢)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라는 뜻. 곧 ① 맹렬한 기세. ② 세력이 강대하여 적대하는 자가 없음의 비유.

③ 무인지경을 가듯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진군함의 비유.

 

《出典》'晉書' 杜預傳 위(魏)나라의 권신(權臣) 사마염(司馬炎)은 원제(元帝)를 폐한 뒤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무제(武帝:265-290)라 일컫고, 국호(國號)를 진(晉)이라고 했다. 이리하여 천하는 3국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오(吳)나라와 진(晉)나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다. 이윽고 무제는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두예(杜預)에게 출병을 명했다. 이듬해(280년) 2월, 무창(武昌)을 점령한 두예는 휘하 장수들과 오나라를 일격에 공략할 마지막 작전 회의를 열었다. 이 때 한 장수가 이렇게 건의했다. "지금 당장 오나라의 도읍을 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곧 잦은 봄비로 강물은 범람할 것이고, 또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단 철군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찬성하는 장수들도 많았으나 두예는 단호히 말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지금 아군의 사기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破竹之勢]'요, 대나무란 처음 두 세 마디만 쪼개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데,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버린단 말이오." 두예는 곧바로 휘하의 전군을 휘몰아 오나라의 도읍 건읍(建業 : 南京]으로 쇄도(殺到)하여 단숨에 공략했다. 이어 오왕(吳王) 손호(孫晧)가 항복함에 따라 마침내 진(晉)나라는 삼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천하를 통일했다. 옛날에 악의(惡毅)는 제서(齊西)의 한 번 싸음에서 승리하여, 강한 齊나라를 합쳤다. 지금 아군은 위세를 이미 떨치고 있다. 비유하면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 다. 몇 마디를 쪼갠 다음에는 다 칼날을 맞아 쪼개어질 것이니, 다시 손을 댈 곳이 없다. 昔樂毅藉齊西一戰 以幷彊齊 今兵威己振 譬如破竹 數節之後 皆迎刃而解 無復著手處也 【동의어】영인이해(迎刃而解), 세여파죽(勢如破竹) [주] 두예 : 진(晉)나라 초엽의 명장·정치가·학자. 자는 원개(元凱). 진나라의 초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오(吳)를 정벌하고 삼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무공을 세움.《춘추(春秋)》《고문상서(古文尙書)》에 통달한 학자로도 유명함. 저서로는《좌전집해(左專集解)》《춘추석례(春秋釋例)》등이 있음. (222∼284)

파란만장(波瀾萬丈) 파도의 물결 치는 것이 만장(萬丈)의 길이나 된다. 일의 진행에 변화가 심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파란중첩(波瀾重疊) 일의 진행에 있어서 온갖 변화나 난관이 많음(=波瀾萬丈)

 

파로대(罷露臺) 지붕이 없는 정자 만들기를 그만두다.

 

파죽지세(破竹之勢) 대나무는 한 번 사이로 칼이 들어 가면 연이어 쉽게 쪼개진다. 겉 잡을 수 없이 나아가는 세력을 형용하는 말이다.

 

파천황(破天荒) 태초의 혼돈을 격파함. 선인이 못이룬 일을 해낸다는 의미로 쓰인다.

 

팔방미인(八方美人) 어느 모로 보아도 아름다운 미인. 여러 방면의 일에 능통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평사낙안(平沙落雁) 단정하고 맵시 있는 글씨.

 

평지돌출(平地突出) '변변하지 못한 집안에서 뛰어난 인물이 나옴'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폐포파립(幣袍破笠) 해진 옷과 부러진 갓, 곧 너절하고 구차한 차림새를 말한다.

 

포관격탁(抱關擊柝) 문지기와 야경꾼, 하찮은 벼슬자리 비유

 

포락지형(포락之刑) 잔악한 형벌.

 

포류지질(浦柳之質) 물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와 같이 허약한 체질, 혹은 머리가 일찍 희는 약한 체질.

 

포벽유죄(抱壁有罪) 값비싼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 죄가 없어도 화를 입게 된다.

 

포복절도(抱腹絶倒) 배를 움켜쥐고 쓰러질 정도로 우스움.

 

포식난의(飽食暖衣) 배불리 먹고 따뜻이 옷을 입는다. 근심없이 편안한 삶. 지나치게 편안한 것은 패륜을 낳는다는 경계의 뜻으로도 쓰인다.

 

포호빙하(暴虎馮河) 맨 손으로 범을 잡고 배없이 강을 건넌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모하게 쓸 데 없는 용기만 내는 사람을 말함.

暴:사나울 폭(관용)·포. 虎:범 호. 馮:탈 빙. 河:물 하 [동의어] 포호빙하지용(暴虎馮河之勇) [참조] 전전긍긍(戰戰兢兢). [출전] ≪論語≫ 〈述而篇〉맨손으로 범에게 덤비고 걸어서 황하를 건넌다는 뜻. 곧 무모한 행동.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한 용기의 비유. 공자의 3000여 제자 중 특히 안회(顔回)는 학재(學才)가 뛰어나고 덕행이 높아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라고 한다. 그는 가난하고 불우했지만 이를 전혀 괴로워하지 않았으며 또한 32세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노하거나 실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 안회에게 어느 날,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왕후(王侯)에게 등용되면 포부를 펴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를 가슴 깊이 간직해 두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는 나와 너 두 사람 정도일 것이다."

이 때 곁에서 듣고 있던 자로(子路)가 은근히 샘이 나서 공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도를 행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만약 대군을 이끌고 전쟁에 임할 때 선생님은 누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무용(武勇)에 관한 한 자신 있는 자로는 '그야 물론 너지'라는 말이 떨어지기를 기대했으나 공자는 굳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맨손으로 범에게 덤비거나 황하를 걸어서 건너는 것[暴虎馮河]과 같은 헛된 죽음을 후회하지 않을 자와는, 나는 행동을 같이하지 않을 것이다."

표리부동(表裏不同) 겉과 속이 다름

 

표사유피(豹死留皮)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뜻. 사람은 사후(死 後)에 이름을 남겨야 함의 비유.

《出典》'新五代史' 死節篇 왕언장(王彦章)은 한갓 병졸에서 시작하여 후량(後梁) 태조(太祖) 주전충(朱全忠)의 장군이 되었다. 그는 뛰어난 용기와 힘으로 쇠창을 옆에 끼고 촉한(蜀漢)의 조자룡처럼 적진을 누벼 군사들은 그를 왕철창(王鐵槍)이라 불렀다. 그는 후량(後梁)이 멸망할 때 겨우 500의 기병을 거느리고 수도를 지키다 상처를 입고 포로가 되었다. 후당(後唐)의 장종(藏宗) 이존욱은 그의 무용을 아껴 부하가 되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왕언장은, "신은 폐하와 10여 년이나 싸워 이제 패군지장(敗軍之將)이 되었습니다. 죽음 외에 또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또 아침에 양(梁)나라, 저녁에 진(晉:後唐)나라를 섬긴다면 살아서 무슨 면목으로 세상 사람들을 대하겠습니까?"하고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는 글을 배우지 못해 무식했으나, "표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을 언제나 말하고 지키겠다."고 하였다. 彦章武人不知書 常爲俚語謂人曰 豹死留皮 人死留名. 【동의어】호사유피(虎死留皮)

풍마우불상급(風馬牛不相及) 멀리 떨어져 있다.

 

풍성학려(風聲鶴 ) 바람 소리와 울음소리란 뜻으로, 겁을 먹은 사람이 하찮은 일이나 작은 소리에도 몹시 놀람의 비유.

 

風:바람 풍. 聲:소리 성. 鶴:학 학. ?:학울 려. 《出典》'晉書' 謝玄傳 동진(東晉)의 명장 사현(謝玄)은 진왕(秦王) 부견(符堅)이 직접 이끌고 내려온 백만에 가까운 군사를 맞아 겨우 10분의 1밖에 안되는 적은 군사로써 이를 회하(淮河) 상류인 비수(?水)에서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대승리를 거두었다. 사현(謝玄)이 대승을 하게 된 내력은 다음과 같다. 진(晉)의 재상 사안(謝安)은 동생 사석(謝石)과 조카인 사현(謝玄)을 선봉으로 삼아 8만의 군사로 서진(西秦)의 백만 대군을 맞이했다. 그리고 사현은 적의 총지휘관인 부융(符融)에게 사자를 보내 이렇게 청했다. "귀하의 군대를 조금만 뒤로 후퇴시켜 주시오. 그러면 우리가 물을 건너가 한 번 싸움으로 승부를 하겠습니다." 군사의 수(數)를 믿고 상대를 깔보고 있던 부견과 부융은 얼마 안되는 적이 물을 반쯤 건너왔을 때 기습작전으로 간단히 이를 해치울 생각으로 사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부융의 북군이 후퇴를 개시하고 남군이 강을 건너기 시작했을 때 북군 내에서 뜻하지 않은 혼란이 일어났다. 그것은 물러나라는 명령을 받은 북군은 남군이 강을 건너오는 것 을 보자 싸움에 패(敗)해서 물러나는 것으로 오인하고 앞을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기 때 문이다. 뒤쪽에 있던 군사들은 앞의 군사가 허둥지둥 도망쳐 오는 것을 보자 덩달아 겁을 먹고 정신없이 달아났다. 이리하여 북군은 자기 군사가 모두 적군으로 보이는 혼란 속에서 서로 짓밟으며 달아나다 물에 빠져 죽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남은 군사들은 갑옷을 벗어 던지고 밤을 새워 달아나며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진(晉)나라 군사가 뒤쫓아 온 걸로 알고 길도 없는 가시밭 속을 헤매며 한데서 밤을 보냈다. 거기에다 굶주림과 추위까지 겹쳐 죽은 사람이 열에 일곱 여덟은 되었다. 청각적인 착각과 아울러 산천의 풀과 나무까지 다 적의 군사로 보였다는 초목개병(草木皆兵)이라는 시각적인 착각도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堅衆奔潰 自相答藉 投水死者 不可勝計 ?水爲之不流 餘衆棄甲宵遁 聞風聲鶴? 皆以爲王師已至 草行露宿 重以飢凍 死者十七八.

[주] 부견 : 전진(前秦)의 3대 임금. 이름은 문옥(文玉), 자는 영고(永固). 시호(諡號)는 세조(世祖). 저족(?族) 출신. 2대 임금을 시해하고 즉위한 후 농경(農耕)을 장려하고 법제(法制)를 정비ㅗ확립하는 등 내치(內治)에 힘씀. 376년 화북(華北:황하 중ㅗ하류 지방)을 평정하고 전진의 최성기(最盛期)를 이루었음. 국력이 신장되자 천하 통일의 야망을 품고 383년 동진을 쳤으나 비수의 싸움에서 대패함. 나라가 분열된 가운데 385년 스스로 목숨을 끊음. (338∼385, 재위 357∼385). 풍비박산(風飛雹散) 부서져 사방으로흩어짐

풍수지탄(風樹之嘆)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어버이를 여읜 자식의 슬픔을 이르는 말. =풍수지감(風樹之感).

 

풍운지회(風雲之會) 밝은 임금과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남을 말함. 훌륭한 사람들끼리 어울림, 또는 호걸(豪傑)이 때를 만나 뜻을 이룸을 뜻한다.

 

풍월(風月) 바람과 달. 자연의 아름다움.

 

풍전등화(風前燈火) 바람 앞의 등불처럼 매우 위급한 자리에 높임. =누란지위(累卵之危).

 

풍찬노숙(風餐露宿) 바람과 이슬을 무릅쓰고 한데서 먹고 잠, 곧 큰 일을 이루려는사람의 고초를 겪는 모양

 

필부지용(匹夫之勇) 소인의 혈기에서 나오는 용기

《出典》'孟子' 梁惠王下 齊나라 宣王이 물어 보았다. "이웃나라와 사귀는 데 방법이 있습니까?" 孟子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오직 仁者라야 능히 큰 나라로써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殷나라 湯王이 갈(葛)나라를 섬기고, 周文王이 곤이(昆夷)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오직 지혜있는 왕이라야 작은 나라로써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越王 구천(勾踐)이 吳나라를 섬겼습니다. 큰 나라로써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道를 즐기는 것이요, 작은 나라로써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道를 두려워하는 것이니, 하늘의 道를 즐기는 사람은 천하를 편안케 하고, 하늘의 道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를 편안케 합니다.《詩經》에도 이르기를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길이 나라를 편안케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크기도 하여라, 선생의 말씀이여! 그런데 과인에게는 한 가지 병이 있으니, 과인은 용기를 좋아합니다." "왕께서는 제발 작은 용기를 좋아하시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칼자루를 어루만지고 노려보면서, '제가 어찌 감히 나를 당해낼 것이냐?'하신다면, 이는 필부(匹夫)의 용기입니다. 이는 곧 한 사람을 대적함이니, 왕께서는 제발 용기를 크게 부리소서."

齊宣王 問曰 交隣國有道乎 孟子對曰 有 惟仁者 爲能以大事小 是故湯事葛 文王事昆夷 惟智者 爲能以小事大 故 勾踐事吳 以大事小者 樂天者也 以小事大者 畏天者也 樂天者保天下 畏天者保其國 詩云 畏天之威 干時保之 王曰 大哉言矣 寡人有疾 寡人好勇 對曰 王請無好小勇 夫撫劒疾視曰 彼惡敢當我哉 此匹夫之勇 敵一人者也 王請大之.

필부필부(匹夫匹婦) '평범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장삼이사(張三李四).

 

필야사무송(必也使無訟) 송사가 안생기도록 정치를 하다

 

필유곡절(必有曲折) 반드시 어떠한 까닭이 있음


 

728x90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독서창고

처사21

활동하기